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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담대한 대담 : 서구만화가 오다! - 약간의 불평과 잡담
만화는 흐른다 00/11/08 11:44 두고보자

2001년 1월, 13일의 화창한 토요일에 누프걸・달리・캡콜드가 마주앉았다. 유럽만화에 대한 대담이라고는 하지만, 당연히 이번에 거의 동시에 출간된 유럽만화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 그렇기에 모든 유럽만화에 대한 대담이라고는 절대 이야기할 수 없다는 점(당연하지!)을 모두 염두에 두고 있다. 그래서인지 서로의 반응을 살피고 있는 중...  


Start!!

달리  (머뭇머뭇) 난 사실 실망을 너무 많이 했어. 재미가 없더라구.

누프걸 그건 내용의 문제라기보다는 공감의 문제라고 생각해. 가령 [제롬 무슈로]같은 경우, 그러한 유머 패턴에 익숙한 사람이 느끼는 사람의 재미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재미는 다르니까 결국 코드의 문제지.. 그런 전통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야. 그러니까 좋다싫다 문제 이전에 우선 다르다는 점에서 시작해보자. 뭐가 다른지 어떤 요소인지 그런거. 아까 지적했던 유러러스한 풍자의 문제도 분명 우리 만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면이지.  

달리  권력이랄지 파쇼적인 사회를 비판하는데 그 비유방법이 상투적이고 한가만가한 것같아서 거슬리더라구. 그래서 특별한 재미로 다가오지 않던데. [쌍브르]의 경우, 드라마와 로맨틱한 면이 순정과 닿아있는 면이 있긴 한데...그러나 누프걸과 내가 공감한 건... 설명과 설득력이 너무 부족한 채 주인공을 매력적으로 등장시키고 성격을 드러내고 대사나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데, 독자가 주인공에게 애정을 갖게 하진 못해. 반면 [이비쿠스]가 정말 좋더라구.  

누프걸 나도 [이비쿠스]가 가장 좋았어. 완성도가 있고 ... 근데 가장 프랑스만화다운 건, 프랑스만화의 고루고루 요소를 갖춘건 [잉칼]이라고 봐. 그래서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재밌을 거라고 봐, 근데 왜 [이비쿠스]가 가장 좋냐면은... 그러그러한 전통을 업고서, 앞으로 유럽만화가 개척하고자 하는 면을 가장 잘 보여줬다는 점!! 내용과 표현의 조화, 음... 화법! 얼마만큼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가의 문제지. [잉칼]은 하나하나 끊어지는 느낌이었다구. 죽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비쿠스]의 화법은 정말 세련되고 매끄럽지. 그리고 세련되었구. 그런 면 때문에 상도 받고 가장 미래적인 만화라고 평가받는 거라구 생각이 들더라.

달리 확실히 그림을 너무 잘 그린다는 건 정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 정말 모든 작품이!! 색을 쓰는 거하며... 정식의 ‘회화’교육을 받은 게 아닐까 싶어. 근데 참... 잘 그린 건 알겠는데 그걸 좋아하게 되는 건 또 다른 문젠 거 같아.

캡콜드 음.. 그럴 수도... 만화체라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익숙한 것과, 그렇게 해서 좋아하게 된 것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으니까.  

달리  [잉칼]같은 경우는 잘 그렸어도, 이미 내 취향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내가 그걸 좋아하기는 힘들어. 결국 만화를 보는 재미하나를 잃게 되는 거기도 하지. 익숙하지 않고 알던 거랑 틀린데 이걸 어떻게 접근시키느냐.

누프걸 하하!! 달리는 [피터팬]이 극악하다고까지 평했지. [피터팬]이 초베스트셀러라는 것에 놀랄 정도로 매력 못 느꼈대.  

달리  새로운 창조가 없으면서, 원작에 기대려고 하잖아.

누프걸 [피터팬]이 인기를 끈 이유는 어떤 종류의 상업성을 갖고 있었단 얘긴데. 가령 팅커벨이 섹시하게 그려졌다거나 르와젤(작가)이 포르노만화를 그린 적인 있다는... 그래서 성적으로 어필한 점인지 원작의 명성이 너무 큰 것인지... 내 경우엔 동화엔 나오지 않는 [피터팬]의 실명 찾아주기. 그 점이 맘에 들었어.  

달리  [쌍브르]는 마치 위고가 쓴 듯한... 낭만주의 소설같지 않아? 불같은 사람들, 다들 활활 타오르는 와중에 혁명까지 일어나고... 그러한 격정적 분위기와 완전히 극을 이루는 것이 [니코폴]이고.

누프걸 [니코폴]은 정말 그림을 엄청나게 잘 그렸어. 근데 [니코폴]이나 [잉칼]에서 동일하게 뭔가 신비한 존재가 주인공의 몸 속으로 들어가고, 그 주변에 권력의 암투가 일어나잖아? 유럽에서 상당히 애용되는 코드인가?

달리 신이 인간계에 관여해서 인간계가 흔들리고 하는 등의 신화적 맥락이 워낙 오랜 시간 있었다고 볼 수 있겠지.

캡콜드 [제롬 무슈로]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건 사실 문화정서의 차이야. 프랑스 독서량의 차이, 그 독서량에서 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철학의 위치. 그리고 사회를 볼 때 계급적인 인식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만화에서 그런 것을 끊임없이 다루고 있는 것 같아.  

달리 무엇보다, 내가 유럽만화보면서 우리나 일본이랑 정말 다르다고 느낀 건 칼라만화라는 점에서 색상을 하나의 언어로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야. 단지 아름답게 화려하게 하려는(미국만화에서 종종 그러듯이) 의도가 아니란 말야. 가령 [쌍브르]... [섬]에서 그렇잖아. 아, [이비쿠스]도 마찬가지야. [이비쿠스]도 흑백을 색으로 적극적으로 사용한거지. 색을 하나의 언어로 개발하고, 어느정도 테크닉으로 일가를 이루고, 그것이 내용과 조화되도록 계속 추구되고 있어. 근데 그건 칼라만화를 만들어야지만 발전할 수 있는 거고, 만화가 비주얼한 측면을 갖고 있다면 반드시 개발되어야 할 측면이라고 생각해. 그런 의미에서 적극적으로 수용될 필요가 있지, 우리만화가 풍부해지려면.  

캡콜드 우선 난 유럽 만화 출판에 대해 긍정적이야. 근데 문제는 지금 유럽만화라고 들어온게 같은 뭉탱이로 들어올 수 없는 것인데 같이 들어왔다는 점이 문제야. 예를 들어, 우리나라만화를 미국이 수입해갔는데 2000년에 처음 들여온 게 ‘라이파이’라고 생각해보라구. 실제로 [잉칼]은 70년대부터 시작한거구, [제롬 무슈로]도 결코 최신의 것이 아니라구. 마치 일본영화 들여올 때 처음에 카게무샤 들여왔듯이, 주로 수상작위주... 고전 위주로 유럽만화를 들여왔다는 그 배경을 잊으면 안 되지. 그리고 유럽 ‘대중’만화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구. 애초에 예술성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선별한 거야.  

누프걸 교보문고나, 비앤비 등 출판사들은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선정한 거야?

캡콜드 비앤비는 잘 팔린 베스트셀러 위주로 한 것 같아(그래놓고는 모자이크 처리나 하고 말야!). 교보문고는 비교적 고전 명작들을 위주로 들여오기로 하고 있고... 현실문화연구는 [니코폴]을 시작으로 해서, [섬]이나 [이비쿠스] 같은 사회비판적인 정치적 풍자나 회화적인 것들. 근데 셋 중 어디에서도 본격적인 엄청난 대중 히트작은 들여오지 않았어. 그러므로 우리가 이런 상태에서는 유럽 대중의 취향을 논하기보다는 유럽 만화의 예술적인 성취도가 어느 정도인지 판단해야내는게 더 낫겠지. 그리고!!! 시대들이 뒤섞여있다는 것도 꼭 염두에 둬야 하고... [이비쿠스]는 작년 아니면 재작년 수상작이고, [잉칼]은 수십년전꺼구...  

누프걸 그러니까 화법자체가 틀릴 수 밖에 없으니까 시대상황을 염두에 두고 판단해야만 한다구. 음.. [잉칼]에 나타나는 수많은 소요상황들 말야. “이온화주의자들아! 나를 따르라... 뭐 기타등등” 그런 장면들은 68이 좌절된 이후, 시니컬해진 상황들에 대한 반영이기도 한데도 만화에 대한 시대배경설명은 전무한 상황이잖아? 그런 것들을 같이 고려하면서 읽어야지.  

달리  [니코폴]의 경우만 봐도 지금 세권이 하나로 묶여 나왔는데 한권은 80년도, 하나는 86년도, 마지막은 92년도로 권당 6년이라는 차이가 있으니까 [니코폴]로 묶여나온 한 권 안에서도 사회를 보는 눈이 다르다구. 80년대에는 신보수주의가 득세할 때 그것에 대항하려는 시도를 단순히 문건이 아닌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노력을 높이 사주는 시선이 있었고, 그 분위기 내에서 [니코폴]이 인정받을 수 있었거든. 그런데 2000년대 입장에서 보면... 역사를 바라보는 눈 정도로 볼 수 있는 거지. 어차피 동시대로서의 재미는 애초에 무리고... 그런 재미는 [이비쿠스]에서 구할 수 있는 거구.

누프걸 대중에게 읽히려면 어느정도 동시대성, 현재성이 있어야 하는 거구... 현재 들여온 유럽만화는 사회의 차이 뿐 아니라 시간적 차이 때문에도 대중성을 많이 놓치게 된다는 얘긴데.... 그렇다면 이렇게 들여오는 것에 대한 의미는 무엇일까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사회적인 맥락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음... 비교문화사 같은 차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테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우리만화를 풍부하게 해줄 자극제로서 유럽만화에 기대하고 있는 것인데... 구체적으로 어떤 자극을 줄 수 있을까

캡콜드 칼라사용, 혹은 연출 등의 자극이 있겠지만, 앞으로도 한동안 실질적인 자극을 주긴 힘들거야. 기존에 ‘땡땡’이 한번 보물섬에서 연재가 되었었고, [아스테릭스]가 소년중앙에서 연재가 되었었고... 그 다음 94・95년쯤에는 다르고 출판사가 직접 한국출판사랑 접촉해서 출판하려고 했는데...여하튼 그러한 시도들이 실패한 전례가 있고 거기에 대한 방향수정으로서 작년의 유럽만화 출간붐은 좀 더 명작위주・고급화 전략으로 바뀐 거지.  

누프걸 결국 그림에서 매력을 줄 수 있어야 사고, 팔아야 또 들여올 수 있고... 가령 그림책 출판하는 사람 얘기 들어보면, 서양은 그림책・일러스트 문화가 오랜 전통이 있어서, 그림책의 그림들이 장난 아니게 아름다운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많이 들여오기는 하는데 사실 어린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것은 우리의 그림체라는 거야. 색상・형태 같은 거에 이미 익숙한 것에 대한 기본적인 취향이 있거든. 오히려 수입되었을 때 어른들이 더 좋아한다는 거야. 근데 그림책은 애들 보라고 만든 거니까... 시장이 애매해지는 거지. 만화의 경우, 위상 자체가 애매하잖아, 이것이 어른 것인가 어린애 것인가.  

캡콜드 특히, 이번에 들여온 유럽만화가 그래. 누가 볼 것이가를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들여왔고.. 뭐... 개인적으로야 이번에 들여온 것들을 대단히 환영하는데... 문제는 과연 [쌍브르]나 [피터팬]이 계속 이어져 출판될 것인가지. 지속적인 독자와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수요층이 형성될 것인가... 요새 하이텔에서도 누가 유럽만화얘기가 너무 없다고 제기했다가 한참 갔었는데... 실제로 유럽만화가 당장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별로 얘기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담론이 만들어지지 않는 거거든.

누프걸 어느 정도의 거부감도 작용하고 있는게 아닐까. 유럽만화 거론할 때 꼭 예술만화라고- 왜 예술인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권위를 부여하고는, 작품 각론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만화는 무조건 예술이라는 신비화된 예술개념을 가지고는, 이제까지 우리가 즐겨 읽던 우리의 만화를 폄하하고... 말하자면 계급구분을 한다는 말이지. 그런 점에 대해서 많은 만화인들이 거부감을 갖는 게 사실인데.... 사람들이 소심한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캡콜드 사실 유럽만화를 보고 정말 감동받아야 할 점은 “얘네는 정말 다양하구나” 여야 될텐데... 근데 한쪽에 치우쳐 들여왔기 때문에, 유럽만화의 표현형식과 주제의 다양함보다는 일부만 보고 놀람이 한 방향으로 정해지고.... 모든 담론 자체가 제대로 형성이 안 된 상태에서 무조건 예술만화라고 보도자료로 배포된 것만 쓰기 때문에 아무런 담론도 형성안되고 거부감만 들고 하면... 바로 소외당하기 싶상인 거라구.

누프걸 그래서 더욱 포르노만화에 대한 언급 필요할 거 같다. 실제로 많은 유명한 작가들이 포르노만화를 그린 경력이 있고... 작년에 가서 보니깐, 포르노만화가 고급으로 엄청 비싸게 팔리고 그것이 포르노만화이기 때문에 삼류다라고 폄하되지 않고 단지 장르의 하나로 인정더라구. 작가의 공과 열의가 들어가고 한사람의 생각이 표현된 것이다라고 인정되구. 그런 면을 보면, 우리나라의 성인만화에서 성인물을 삼류로 격하시키고 작가도 챙피하게 여기구 그러면서 점점 작품의 질이 나빠지는 악순환과는 상당히 비교가 되는 것 같어.  

캡콜드 '밀로 마나라'라는 이태리 작가도 펜트하우스에서 포르노 만화를 연재하는 사람인데 일러스트로 개인전 열고 하니깐.

달리  사실 그런 건 좀 더 많은 정보량을 가지고 취재를 하면 알 수 있는 것들이지만, 만화책만 사서는 건질 수 있는 게 너무 적어.  

캡콜드 그건 평론가들이 게을러서 그래.

누프걸 그렇지. 뿐만 아니라 독자들도 돈이 아깝다면, ‘도대체 뭐가 좋다는 건지 모르겠다.’라고 과감하게 제기하고 공론화하고 그러면 좋을 텐데... 예술이라고 띄워주고.... 역시 소심한 것 같애. (깜악귀처럼 과감히 예술적인 분위기만이 읽힌다면서 ‘안 좋다’고 불평을 하던지.) 사실 난 같은 작가의 입장에서 별로 돈이 아깝지는 않아. 그것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을지 보이니까... 그림 자체만으로도 두고두고 보면서 분석해봐도 좋을 거 같구. 근데 그림에 대해서 인색한 게 우리나라 만화계의 편향된 시각이잖아.

달리 전례들이 워낙에 없으니까. 많은 시간을 들여서 필생의 작품을 남기려 하기보다는 먹고살기 위해서 그리는 세대가 앞서 있어왔고... 그 다음 세대는 단지 일본 오락 만화의 세례만을 받았고...  

누프걸 근데 이번에 출판된 거 보니까 정말 팔려야 하는 만화들이더라. 왜냐하면 짧잖아(^^;). [잉칼]은 읽기에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밀도가 높은 만화인데 2권으로 완성시켰다구... 반면, 한국・일본만화가 그 정도의 내용을 담으려면, 수십권 정도 되야 하잖아. 뭐, 설정자료집도 덧붙여서 많이 나오겠고... 그건 결국 대여점 문화 때문인 거잖아. 음... 내용이 많다고 꼭 길어지는게 아니라구, 작가의 의도에 따라서 얼마든지 줄어들 수 있는데 사기도 곤란하게 그렇게 길어지는 건 역시 대여점 문화 때문야!

캡콜드 내가 지금 나온 것 중, [잉칼]을 가장 높이 평가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끝까지 나왔다는 것 때문이야. 6권으로 완간된 것을 두권으로 묶어서 국내에서 출시했잖아. [이비쿠스]나 [쌍브르], [피터팬]은 출판사 사정에 따라 계속 안 나올 수도 있는 거거든...... [잉칼] 자체에 대해서 말하자면, 굉장히 압축적인 작품인데. 억지로 윈집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구조 속에서 필요한 것을 모두 상징화했다고 볼 수 있어... 그리스 혹은 페르시아 등의 전통영웅신화를 기본 모티브로 잡고, 그 속에 인물을 타로카드의 메이저카드12개로 하고... 반(反)영웅이라는 것도 지금 보면 별 거 아니지만, 7, 80년대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매우 선진적인 것이었지. (1980년에 첫 단행본 출간, 그 이전부터 메탈 위를랑에 연재) 그런 점에서 관심을 갖고 보면 할 얘기가 상당히 많은데 국내에 들여오면 그런건 다 사라지는 것들이 된다구.  

달리  타로카드의 캐릭터를 썼다는 것만 보더라도, 일본만화 ‘X'에서도 볼 수 있는 거지만, [잉칼]은 그 점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설명하지 않고 슬쩍 집어넣고 독자가 관련공부를 계속 하게시킨다구. 이런 점에 가까운 망가 작품은 ’화이브 스타 스토리즈‘라고 할 수 있겠지. 드라마를 중시하는 만화로서가 아니라, 독자를 컬트화시키는 만화라는 점에서 말야. 가격이 비싸고 계속 소장하면서 여러 번 읽어야 본전을 뽑을 수 있다는 면에서 [잉칼]이야말로 그런 목적을 가장 잘 충족시킨다고 할 수 있겠지. 물론 매니아성을 무조건 옹호하려고 하는 건 아니야!!(^^;).

누프걸 소장하고 계속 읽는 거 좋지...... 근데 그 전에 적어도 우리 나라에서 출판된 만화들에 대해서는, 캡콜드가 지적했듯이, 유럽 만화의 많은 소실된 의미와 재미들 그리고 그것의 역사적 위상과 맥락을 쫙 꿸 수 있도록 제공되는 연대표, 각주 같은 정도의 서비스는 비평가들이 해줘야 하지 않냐? 만약에 그런 정보가 제공되는 상태에서 다시 읽게 된다면 더 많은 것들을 해석할 수 있을 거라구....

캡콜드 나같은 경우, [잉칼]을 재미있게 계속 읽을 수 있는 이유는, 시대상황과 다시 비교해가면서 공부하면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죠. 어떻게 보면 한국인이라서 갖는 재미기도 하겠지만...  

누프걸 당연한 말이지만 ... 유럽의 만화니까 유럽사회에 대한 것과 함께 제공될 때 가치가 늘어나게 되겠지... 근데 뭐, 이건 이걸 상징하고, 저건 뭘 상징하고 이렇게 매니아적으로 작품을 대하는 것을 통해, 만화가 고급매체가 되는 건 사실인 거 같애. 사실 아무 생각없이 습관적으로 그림을 그릴 때도 있지만, 아주 주도면밀한 상징적 배치를 하면서 그릴 때도 있거든. 그런 것들을 찾아내면서 해석이 풍부해지고 그러면서 고급한 매체로 나아갈 수 있다구. 그런 면에서 상징이 적극적으로 사용되면서 주(主)가 되는 것에 대해 우리만화도 한 번쯤 누군가가 추구했으면 좋겠어.

캡콜드 가장 긍정적인 상이라면, 그런 상징들을 억지로 찾아내고 하는게 아니라 어느 날 어느 시절에 봤는데 뭔가 보이고, 시간이 흐르고 다른 경험을 한 뒤에는 또 다른게 보이는... 의미의 다양한 층위들이 저절로 다가오는 것일텐데. 그러나 그런 다양한 층위들을 억지로라도 공부해서 읽으려는게 매니아들의 긍정적인 면일 수도.

달리   그런데 매니아들에 대해서는 소비적인 측면이 너무 많이 부각되어 있잖아. 별로 소통에 대해서도 관심없고...

누프걸 애호가와 매니아는 다르다. 매니아도 능동적 감상자로서 장점이 있고...

캡콜드 여하튼 그런 매니아층을 유럽만화가 한국에서 포섭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갖는데... 문제는 일본 만화 매니아는 작품 내적인 구조만 파면 되는데, 유럽 쪽은 한 술 더떠서 사회와의 맥락을 살펴야한다는 점이야. 결국 기존의 매니아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키던지 아예 떨궈뜨리던지 하지 않을까.

달리   그렇다면 일본만화는 사회적 맥락과는 관계가 별로 없단 뜻?

캡콜드 아주 관계없지는 않겠지만, 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않고, 작품 내적으로 들어가려는 경향은 확실히 있지 않나? 오시이 마모루가 맨날 전공투(일본 학생운동) 타령이나 하고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많은 경우는 탈시대성을 의도적으로 강조하는 경우가 워낙 많으니까.  

누프걸 우리만화가 진정성을 갖기 위해서는, 독자와 같이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한 연관성을 놓치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연관성이 어떻게 표현되는가 하는 문제는 또 다른 거 같애... 출판된 것만으로는 다양한 표현을 읽기에 한계가 있는 거 같어....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유럽만화는 어떨까.  

캡콜드 특별히 페미니즘을 표방한 만화는 없었지.

달리   뭐... 표방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누프걸은 [제롬 무슈로]에서 가부장제가 풍자되고 있다는 매우 적극적인, 어떤 의미에선 꿈보다 해몽이 좋은 독법을 시도했지만, 난 그렇게 읽히지 않더라구. 내가 그 만화를 왜 읽었던가 스스로 위안하기 위한 게 아니라면 말야. [잉칼]의 경우도, 시대적 맥락같은거...... 그런 거 빼고 얘기한다면, 여신의 이미지・수태의 대상... 뭐 이런게 너무 뻔하다구..  

누프걸 [잉칼]의 그 남성구유인 아들! 걔도 사실은 남자잖아. 모든 주체가 남성인 경향이 있어.  

달리   대통령인 남자가 하이힐을 신고 머리에 꽃을 꽂는다는 식으로 약간의 요소만 차용할 뿐, sf물인데도 권력자는 하렘에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역시 대통령은 남자구, 우주제국회의인가 할 때 온통 남자들만이 지도자로서 참석하고 있구... sf라구 해놓구는 사실 현실의 복제판이잖아. ‘여기’가 아니다라구 속인 거라구.  

누프걸 얼마전에 [어둠의 왼손](그리폰 북스에서 발간된 환타지 소설)을 봤는데, 성공적인 페미니즘sf물은 sf라는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서 평등한 공간을 디테일하게 창조하려는 노력을 보였구 그것이 많은 설득력을 갖게 되는데. 그런데 유럽 sf 만화들은 그런 구체적인 부분에 별로 신경을 안 쓴 거 같애.

달리   sf니까, 여기는 시대가 다르구 다른 공간이구... 뭐 어쩧다저쩧다 설정을 던져놓지만, 결국 나로서는 바로 ‘여기’, ‘지금’으로 보인다구. 재미가 확 없어지는 거지. 오히려 하이힐 신은 대통령, 화장한 총리... 뭐. 이런 것들이 오히려 튀어보여. 차라리 sf 설정이 아닌 것에서는 ‘지금 사회가 그러니깐......’ 하고 볼 수 있어. 근데 sf라면서, 마치 스타워즈엔 공주말고는 여자가 없는 것처럼.... sf라면서 그러면 좀 띵하지.

캡콜드 페미니즘이 이 사회에서 운동이고 방향일 수 있는게, 그만큼 기존 사회가 마초가 되어 있구, 그 점에 대해 별로 신경을 안쓰고 그리면 다 그렇게 나오고 마는 거겠지. 유럽사회에도 그 마초성이 당연히 있는 거고. 어떻게 보면 유럽만화에 대한 과잉기대라고 할 수 있겠지. 유럽이라고 무엇이든지 진보적이다라고 믿어버릴수 없는 거구...

달리   [섬]은 매우 여성적인 이야기라고 읽히던데. 여성적인 시각이 섬세하게 깔려있다고 생각해. [섬]이라는 거 자체가 바다를 가르는 느낌이고, 시간과 공간이 애매하게 섞여있잖아. 그 갇힌 공간의 여성을....

누프걸 유럽만화의 진보적인 가치, 사회비판에 중점을 둔다면 왜 인디만화는 출판에서 빠졌을까.

캡콜드 지금 출판된 만화의 진보성이라고 하는 것은 대체로 계급성에 대한 언급이고, 그 이외의 다양한 시선... 예를 들어, 페미니즘같은 경우도 결여되어 있고....

(누프걸 독일 학생운동은 마초적이어서 여자애들이 집단으로 탈퇴해서 망했대. ^^ )

캡콜드 진보적인 가치를 담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건 여러 가치들 중 한 두 개를 담고 있다는 거 뿐이지 모든 진보의 덩어리가 유럽만화는 아니라는 얘기야.  

누프걸 결국 출판된 거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누군가 정리해줄 순 없는 거야? 책마다 해설서가 붙어있긴 한데 정말 그렇게 구태의연하고 성의없는 건 처음이야.

달리 그냥 칭찬일색이지 뭐.

누프걸 작품의 사회적 맥락에 대해 조금의 정보라도 제공하려고 하는 노력은 없이, 몇 년에 무슨 상 탔고, 이 작가의 전작은 무엇이며, 작품내용에 관한 간단한 코멘트 뭐, 그런 거밖에 없더라구.

캡콜드 그 작품을 둘러싼 사회적 상황이 어떻구, 그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이것을 그렸구, 지금 우리에게 어떤 화두를 던져주는지를 알려줄 수 있어야 되는데 말이죠. [제롬 무슈로]는 분명 코미디인데 뭘 풍자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정보가 없으니까. 과연 몇 명이나 보고 웃었을까 궁금해.

누프걸 난 많이들 웃었을 거 같애. [제롬 무슈로]를 사보는 사람들은 애초에 웃을 준비가 되어있는 정도의 사람들이었을 거 같어. 근데 [제롬 무슈로]는 언제 꺼지?

캡콜드 이번에 출판된게 원래는 2권이었던 거 합친 건데... 80년대말 90년대 초에 처음 나왔을 걸.  

달리  근데 내가 순정만화에서 김기혜 뭐 이런 작가를 생각하면, 난 별로 안 좋아하지만 인기있는 거 알고... 그런데 그 사람에 대해서 작가론이나 작품론을 써주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거든. [피터팬]을 읽으면서도 난 그것이 대중적인 작품인 줄 모른채 ‘아니, 이걸 보고 사람들이 예술이라고 여긴단 말이지... 사람들 미쳤어’ 그렇게 생각했거든. 하지만, 이제는 마치 김기혜나 원수연같은 작가의 작품처럼 [피터팬]도 작품이나 작가의 어떤 문제점을 짚어내려고 할 필요는 없을꺼 같다고 생각하게 됐어. 어차피 [니코폴]이나 [이비쿠스]랑 [피터팬]이랑은 지향점이 다른 것일 뿐이니까.  

누프걸 [이비쿠스] 살 때 나우시카도 같이 샀거든. 나우시카도 장난 아닌 밀도를 갖고 있잖아. 읽는데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리고 차분히 정독을 해야하게끔 분위기 자체로 밀어붙이구.  

캡콜드 인쇄된 종이 자체도 뭔가 갱지 같은.. 환경친화적인...^^

누프걸 넌 그렇게 생각했냐... 난 뭔가 학술서를 대하는 듯한^^... 난 [나우시카]는 그림도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무엇보다 핵심은 내러티브에 있다고 보는데... 화려한 뭔가보다는 주제와 이야기로 승부하려고 했다고 보고, 그렇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읽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구. 밀도면에서 [잉칼]과 같은 수준인 거 같은데...그 정도의 부담을 일본 만화뿐 아니라 유럽만화에 대해서도 독자들이 각오를 해준다면 훨씬 많은 것을 얻게 되지 않을까(물론 이 경우는 미야자키 하야오였기 때문에 가능한 거기도 하지만).  

캡콜드 결국 오늘 대담의 주제는 평론가들이 게을렀다는 거야. 그냥 쉬운 일만 한 거지. 유럽만화에 대해서는 써줄 사람도 없구. 얼치기들이 설치고 있다가 진검승부를 하자 그러니까 다 꽁무니빼는 거지 뭐.

누프걸 미국만화와의 차별성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캡콜드 슈퍼맨같은 완전 대중적인 것이 들어와서 그걸로 미국만화 전부를 판단하는 경향이 있어. 하지만, 아트 슈피겔만, 닐 게이먼 등등의 인디작가들도 결코 녹녹하지 않지. 미국만화에도 유럽만화 못지 않은 작가주의 성향이 있고 여러 층위가 있어. 물론 그 비율은 유럽・미국・한국・일본이 다 각각 다르겠지만. 그런데 우리는 우리에게 들어온 부분만 가지고 전체를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는 거지.  

누프걸 출판사의 수익성이 출판결정의 문제라면, 온라인상으로 홍보해서, 적어도 보고자 하는 사람은 볼 수 있게.

캡콜드 소개통로 자체가 넓어져야 돼. 그 다음에 그런 것들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유통경로가 마련되어야 하고. 사실 일본만화만 보더라도 왠만한 매니아나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언더니 인디니 하는 거 읽기 힘들잖아.  

달리  프랑스 만화를 가지고 유럽만화라고 말할 수 있나. [섬] 하나만 스페인 만화고... 나머진 온통 프랑스 만화던데.

캡콜드 일본만화가 한국만화를 대표할 수 없듯이 프랑스만화가 유럽만화는 아니겠지만. 프랑스 만화가 양적으로 질적으로 우위인건 사실이니까.

누프걸 내가 한국만화에서 좋아하는 작품과 심드렁한 작품이 있듯이, 유럽만화 속에서도 고를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어.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하구. 열혈독자라면, 지금은 사서 자신이 번역까지 해서 봐야 되잖아. 뭐 그걸 다 감수하더라도 무엇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고, 번역되어 나온 것에 대한 설명도 없는 상황이구. 그냥 툭 던져놓고 만다는게 가장 큰 문제야. ....  

달리  유럽만화를 다 구비해놨으면서도 ‘만화는 취급안해요’라고 하는 식의 서점도 있어. 우리는 유럽만화를 만화로 받아들이고 자극을 받으려고 하는 것인데 말야...

캡콜드 유럽만화에서 유럽자가 떨어지고 그냥 만화로서 바라봐야 돼. 그걸 통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만화라는 범주 자체를 넓혀야 되고. 근데 출판사도 유통경로도 다 갈려있고...

누프걸 사실 장르로서 나뉘어질수 없는 것인데... 유럽만화=예술만화 하는 식으로 장르취급받는 느낌이 있어.  

캡콜드 어차피 한 부분만 들어왔으니까... 대중적인 캐릭터 중심의 만화는 없어서 그런거지뭐..

캡콜드 우선 출판사는 만화라는 게 단순히 도매해서 많이 파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 독자들은 다른 읽기 방식이 있다는 점. 창작자들은 새로운 창작 방식이 있다는 점... 뭐 이런 점들을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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