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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 만화 독서의 이해
만화는 흐른다 06/10/10 05:45 capcold
이맘때면 항상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느니 하는 수식어와 함께, 책을 읽는 미덕이 강조되곤 한다. 그러면서 종종 독서와 비슷하지만 사실 진짜 독서가 아니기에 오히려 진짜 독서를 방해하는 그 무언가로 만화책에게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씌우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하지만 역시 정작 중요한 것은 책이 문자만으로 되어있는가 아니면 그림과 글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가라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책 속에 담긴 내용이 어떤 식으로 우리의 지식과 삶의 자세에 소화되어 들어가느냐의 문제다. 다른 모든 매체들과 마찬가지로, 만화 역시 어떤 만화책을 어떤 식으로 읽는가에 따라서 때로는 삶의 교과서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오락거리가 될 수도 있으며, 때로는 읽은 만큼 오히려 시간을 낭비하고 인격에 해악이 되는 것도 있다.

사실 어떻게 읽느냐의 문제에 대해서 모든 취향을 충족해줄 수도 없고, 모든 상황 맥락을 완벽하게 고려해서 하나의 단일한 독서법을 조언해주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하지만 만화이기에, 만화의 독서 특성을 감안하며 읽는 것에 대한 몇 가지 작은 팁은 줄 수 있을 듯 하다.

만화를 읽는다는 것의 특성을 감안하기

우선 다른 ‘문자서적’과 다른, 만화만의 가장 큰 독서 특징은 바로 시각연출이다. 시각연출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가에 따라서 만화 작품의 맛을 제대로 음미하느냐 아니면 그냥 당혹감에 빠지느냐의 차이가 크게 갈린다. 어떤 매체로 표현되는 이야기 예술이든 간에 가장 기본적인 향유는 이야기의 핵심 내용인 줄거리자체를 파악하는 것에 있겠지만,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제대로 느껴볼수록 그것은 단순한 파악이 아닌 진정한 이해와 공감으로 다가간다. 예를 들어 김현식이 부른 걸작 가요 ‘내사랑 내곁에’를 듣는다 치자. 그냥 가사를 음미하는 것과, 가사를 전달해주는 그 감미로운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즐기는 것과, 나아가 그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절절한 목소리까지 느끼는 것은 전혀 맛이 다르다. 만화도 당연히 마찬가지다. 줄거리만 파악하려고 힘쓰며 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모든 과정을 느껴가면서 가면 된다. 많은 만화 독서 초보자들이 저지르는 실수가, 줄거리 파악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는 정작 그것이 표현되는 시각연출의 매력을 놓치고 넘어가곤 한다는 것이다. 그림이 주는 풍부한 감정, 그림칸의 연속에서 흘러가는 독특한 리듬,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서 기대감이 느껴지도록 만드는 긴장 연출 등은 만화의 핵심적인 표현이다. 물론 반드시 의식적으로 평론가마냥 분석적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다. 그냥 전체를 즐긴다는 마음가짐이면 충분하다.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바로 만화 독서 특유의 ‘속도’다. 너무 서둘러 읽지도 말고, 너무 하염없이 느릿하지도 말고, 딱 이야기의 흐름이 원하는 정도로 자신의 눈과 머리도 같이 굴리기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만화책을 읽는 속도는 곧 자신의 독해 용량과 작가의 연출 사이에 균형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다른 이야기성 시각 매체인 영화의 경우, 작가의 연출 속도에 맞추어 관객이 자신의 용량을 일방적으로 맞춰야하기 때문에 2-3시간의 집중 감상만으로도 쉽게 피곤해진다. 반대로 문자 서적의 경우 작가가 시간에 대한 통제를 거의 하지 못하기 때문에 독자가 오로지 자신의 이해력에 따라서 흡수하게 되는데, 따라서 이야기의 박진감 보다는 사고의 방향에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만화는 출판매체 특유의 자율성을 지니면서도, 그림의 연속으로 된 이야기이기에 작가의 시간 연출 개념이 강하게 작용한다. 그 결과, 독자는 작가와 함께 대화를 나누듯 만화 작품의 완급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나가며 읽게 된다. 사실 정해진 법칙이야 없지만, 적어도 한 칸씩 음미하며 읽도록 고안되어 있는 밀도 높은 만화작품을 수 십 권씩 쌓아놓고 빠르게 넘기도록 고안된 대본소 무협극화 읽듯 읽으면 그 속에 담긴 진짜 재미를 음미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볍게 읽어야 할 작품을 칸칸이 살펴보며 천천히 읽으면 영 맛이 떨어진다. 자신의 독법과 작품의 제시 사이에 균형을 맞추는 과정 역시 지나치게 전문가 흉내낼 필요는 없고, 단지 염두에 두면서 독서를 하면 좀 덜 어색한 읽기가 가능하다는 정도로 시작하면 좋다.

세 번째는 바로 만화가 낯설 수도 있다, 어려울 수도 있다고 열린 마음으로 읽는 자세다. 많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만화는 쉽게 읽힌다는 상식은 자칫하면 쉬워야 한다는 고정관념, 쉽지 않으면 좋은 만화가 아니라는 아집으로 전이된다. 만화가 쉽게 읽히지 않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인정해라. 영화를 볼 때는 모든 영화가 다 이해가 되는가, 아니면 문자 서적을 읽을 때 모든 작품들이 다 이해가 가는가. 게다가 만화는 대중문화와 함께하고 또한 장르의 관습 역시 많다. 따라서 다른 문화권, 다른 세대, 다른 스타일, 다른 취향이면 그 매력이 차단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 순정만화가 30대 이상 남자 성인들 상당수에게 홀대받는 것은 작품이 나빠서, 장르가 유치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절대 아니다. 바로 일평생 받아온 성차별 교육 덕분에 남자 성인들이 순정만화를 읽는 독법에 익숙하지 않고, 따라서 장르를 즐기는 법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순정만화로 그려진 수많은 걸작들을 모두 놓치는 것이고 말이다. 이해가 안 되면 이해의 방식을 바꾸거나, 좀 더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중에 보거나 할 수 있다. 지금 당장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완전히 버리면, 나중에 후회할 따름이다.

네 번째는 ‘다시 읽기’다. 책도 다시 읽어보고 음악도 다시 들어보듯, 마음에 들었으면 만화도 다시 읽을 준비를 하는 것이 좋다. 혹은 뭔가 더 있는데 아직 덜 건졌다 싶으면 다시 읽어라. 서가에 두고두고 간직하며 다시 읽을 만화책이 꼽혀있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혹은 주변에서 그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듯이 말하면, 부끄럽지 않다고 설명해줄 수 있을 만큼 그 작품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기를 바란다. 여하튼 첫 독서 과정의 쾌감도 물론 중요하지만, 독서의 결과 남은 감성, 그리고 다시 읽어가면서 더욱 쌓이는 무언가를 염두에 두는 것이 유익한 독서방식이다. 지극히 크고 아름다운 독서문화 생활이다. 요새는 만화책을 소장용으로 구하기도 이전보다 훨씬 쉬워져서(만화출판계 특유의 고질적인 짧은 유통기한의 문제는 여전하지만), 총판이나 전문점에 가지 않아도 웬만한 대형서적, 온라인 숍들이 편리하게 갖추어져 있다. 다시 읽기, 좋은 독서습관이다.

즐거운 독서는 스스로 만드는 것

마지막으로, 비단 만화 뿐만 아니라 문화콘텐츠 전반에 해당되는 한 마디 당부를 덧붙이고자 한다. 만화를 그냥 보지 말고 읽기를 바란다. 그냥 읽지 말고 즐기기를 바란다. 그냥 즐기지 말고 삼매경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기를 바란다. 좋은 문화예술은 결국 스스로 즐길 준비가 된 만큼만 즐거운 법이다. 팔짱끼고 심각한 표정으로 긴장하고 앉은 이들에게는 세상의 어떤 개그쑈도 재미없다. 귀를 막고 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음악도 성에 차지 않는다. 즐길 준비, 좋은 내용을 흠뻑 흡수할 준비를 하고, 만화책을 이제 한권씩 꺼내볼것을 권장한다.


(부천만화정보센터 소식지 '만화정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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