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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문하생' - (2) 노동자로 보는 만화가, 만화보조인력
만화는 흐른다 02/12/30 11:32 깜악귀
1. 창작과 상품, 그리고 노동

작가가 노동자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아마 꽤 어려운 분류기준을 요할 것이다. 우리는 순수한 개인의 표현으로서의 창작물을 만들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공로를 '노동'이라고 보지 않는다. '노동'이란 고전적인 의미로 이야기해서 가치를 생산하는 인간활동이다. '노동'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것은 '상품'이다

대부분의 만화는 상품으로서, 팔리기 위해 고안된 공식들을 엄밀하게 고수하며 제작된다. 그 내용과 스타일은 상업적인 고려 하에 놓여져 관리받는다. 물론 크고 작은 미묘한 차이가 있고, 이 크고 작은 미묘한 차이는 무척이나 중요한 것이긴 하다.

아무리 상업적인 의도로 만들어진 만화라 해도 그것은 창작물로서의 미적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상품으로서의 성격도 동시에 가진다. 어떤 만화가 팔기 위해서 그린다는 말을 부인할 수 없다면 그것은 상품일 터다. 그건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니며, 요즘 나오는 대부분의 영화가 상품이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상품을 만드는 행위를 노동이라 하고, 노동을 하는 사람을 노동자라고 한다.

그것이 고려청자를 빚듯 초절정 내공을 가진 장인과 그 밑의 도제의 노동이든, 아니면 공장사장과 관리노동자, 생산노동자에 의한 것이든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잡지연재 작가처럼 가내수공업의 성격을 띠든, 대본소 만화처럼 공장 내의 노동이든 노동의 성격이 변할 뿐, 노동이라는 점에는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만화들이 상당한 노동량을 요구한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숨돌릴 새 없이 페이지를 뽑아내야 하는 주간지 연재 시스템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2. 창작인과 노동자 - 애니메이션 노조의 사례

창작이 어떻게 노동이 될 수 있느냐고 반문하시는 분들을 위해, 창작과 노동은 서로 배치되는 개념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에 대한 선례를 애니메이션 노조의 결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애니메이션 노조의 결성 당시, 근로자(노동자)의 판단 기준에 대해서 노동부에서 받은 회신 서한의 일부를 인용해보자.

....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여부는 민법상의 고용계약이든 도급계약이든 계약의 형식에 관계 없이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상에 임금을 목적으로 사용종속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하며, 여기에서 사용종속 관계가 있는지의 여부는 아래와 같은 기준에 의해 판단할 수 있습니다.

가. 업무의 내용이 사용자에 의해 정하여지고 업무의 수행도 구체적으로 지휘-감독을 받는지 여부.

나. 근로자가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사용자로부터 정상적인 업무수행 명령과 지휘-감독에 대해서 거부할 수 있는지의 여부.

다. 시업 및 종업 시간이 정해지거나 사용자의 구속을 받는 근로시간이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는지의 여부.

라. 지급받는 금품이 업무처리의 수수료 성격이 아닌, 순수한 근로의 댓가인지의 여부.

마. 복무위반에 대해서 제재를 받는지의 여부.....

이 경우, 만화가의 경우가 '노동자'에 해당하느냐의 여부는 약간 애매하다. 말하자면 출판사에 의해 직접고용된 노동자의 성격을 띠고 있는 만화가가 있을 수 있다. 특히 신인만화가의 경우. 항목을 비교해보자.


만화의 내용과 그림 스타일까지 잡지사에서 지시받는 경우는 이미 일반적이다-(가). 지휘-감독에 대해서 거부할 수 없다. '짤린다'라는 말은 만화가와 노동자에게서 공통적으로 쓰이는 어휘다-(나). '다'와 '라', 사용자(잡지사)에 의해 구속되는 근로시간이 정해져 있는가의 여부는 사실 좀 애매하다. 마찬가지로 원고료는 원고처리의 수수료 형식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복무위반에 대해서 제제를 받는지의 여부에 있어서는 '짤린다'라는 말로 설명 가능할 것이다. 노동자와 다를바 없다-(마).

만화가의 노동자로서의 성격은, 비록 세부에서 엇나가는 부분이 있지만 충분히 이야기할 만한 것이다. (다)와 (라)의 어긋남은 사실 중요한 문제가아닐 수 있다. 근로시간이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고 작업산물에 따라 수수료 형식으로 지급받는 비정규적 노동자는 의외로 많다. 그리고 이런 경우가 오히려 더 노동자의 표준에 들어맞지 않기 때문에, 더 심각한 노동인권의 문제를 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만화가의 경우 직업으로 인식되는 데도 불구하고 정규직 노동자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놓이는 경우는 알다시피 비일비재하다.

물론 중견만화가의 경우, 출판사의 오더를 거부할 수 있는 힘이 생길 수 있듯이, 이런 상황들은 만화가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자-자영업자-프리랜서까지를 한번에 포괄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상술하자면 만화가가 일종의 출판사로부터 하청을 받는 하청업체 사장과 같은 경우가 있다. (소위 말하는 공장사장) 잡지 연재작가의 경우 가내 수공업식 제작 시스템을 갖춘 자영업자인 경우가 많고, 스노우캣처럼 자율적인 창작을 지향하는 개인적인 프리랜서의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 만화가가 출판사에 대해서 어느정도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입지를 가지고 있는가와 관련이 있다. 따라서 만화가를 일괄적으로 노동자로 보는 시각에는 한계가 있다.

중요한 것은 만화를 그리는 작업이 노동이라는 것이며, 그 작업을 하는 이를 노동자로 볼 수 있는 시각이다. 그리고 만화보조인력의 경우, 즉, 문하생, 어시스턴트 등의 경우, 그들은 위의 애니메이션 노조에 대한 노동부의 회신 항목에 뚜렷하게 들어맞는 노동자로 보야야 옳다. 굳이 항목별로 비교하며 근거를 갖출 필요도 없을 것이다.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로 인해 가려져 있긴 하지만, 그들의 작업은 객관적인 노동이다.


3. 만화보조인력의 노동자로서의 성격이 직시되어야 하는 이유

만화가 노동을 통해 제작된다는 사실이 뚜렷이 인식되어야 하는 이유는, 일단 사실에 대한 인식에 있지만, 당위적인 가장 큰 이유는, 만화의 제작을 위해 노동을 하는 이들의 노동환경과 인권 문제 때문이다.

이 특집에서 사례로 들고 있는 만화가 장태관 문하생 사건이 어느 정도의 사실이든 여부에 상관없이, 이 사건은 문하생의 노동자로서 가지는 사회적 '약자'로서의 위치와 그 노동환경, 처우의 특수성 문제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아닌지는 경찰과 법정의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농후한 일이라는 것은 만화계 전체의 문제일 것이다. 노동자로서의 현실적인 입지에 대한 자각이 없는 이들의 상황은 더욱 나쁜 노동환경에 대한 아무런 예방조치도 마련할 수 없게 할 것이다.

스승과 제자, 장인과 도제라는 환상은, 노동의 성격을 가리지 못한다. 최근에는 교수님 밑에서 갖은 잡일에 시달리는 대학원생의 노동자 성격 여부에 대한 공론화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 가장 비슷한 사례로서, 영화계의 스텝들의 노동착취 문제에 대한 공론화 시도가 있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받지 못하는 것 뿐 아니라, 여성스텝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의 문제 등, 영화 스텝들의 사례는 미래의 작가가 되기 위해 현재의 착취-폭력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만화보조인력의 경우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노동시간 연장의 요구에 저항할 수 없고 작업환경에 대한 개선을 요청할 수 없는 입지. 만화보조인력을 관리하는 '선생님'의 인격에 모든 것이 달려 있는 인간관계, 좁디 좁은 만화판의 속성, 모든 것은 만화보조인력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 혹은 사회적인 관심이 한번도 기울여진 적이 없는 우리 사회의 음지 중 하나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만화를 단지 낭만적인 크리에이티브의 산물로 상상하는 만화팬의 책임이기도 하지 않을까?

사실 만화가의 경우에도 이러한 시각은 유용할 수 있다. 잡지사나 출판사와의 계약관계에 있어서 끊임없는 종속적인 위치에 놓이는 가장 큰 이유는 잡지사가 작가에게 발휘할 수 있는 권력이 강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작가가 현실적인 문제를 바라보는 현실적인 시각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생각된다. 출판사와의 계약문제에 있어서 일방적으로 불합리한 관계맺게 되는 일 등은, 그것이 불합리하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부재하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막연한 예술가의 위상이, 노동자로서의, 혹은 직업인으로서의 당연한 권리찾기를 소홀히 하게 되는 사각지대를 반든다. 예술가가 무슨 돈.. 하는 시각은 대중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만화가에게도 있다.

이러한 시각이 만화보조인력에게는 더욱 치명적이다. 출판사에 종속적인 관계에 놓이기 쉬운 만화가, 그 만화가에 종속적인 관계에 놓여진 문하생 밑 만화보조인력.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퀄리티의 원고를 뽑아내야 하는, 문하생은 작가에게 감독받고, 작가는 출판사에 감독받는 노동형태. 일반적인 노동형태와 차이점보다 유사성이 훨씬 더 많다. 이것은 사실 고용관계 면에서 영화스텝의 그것과 비슷하고 노동환경으로 따지면 소규모 게임제작업체의 그것과 비슷하다. 이 둘이 노동이듯이, 만화보조인력의 작업도 노동이다.

예술에 종사한다는 식의 막연한 시각은 치명적이다.

만화보조인력은 만화라는 음지의 매체 중에서도 더욱 음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만화보조인력 사이의 활발한 정보교환과 관계맺음, 지원단체의 형성, 연대 등이 있을 수도 있겠다. 활발한 공론화 작업. 혹은 점점 만화의 성격이 노동력을 적게 들이고 생산주기를 늘이는 방향으로 바뀌어가도록 하는 것도 곁가지지만 방법의 일종이다.

만화를 만드는 데는 작가와 만화보조인력의 처절한 노동이 필요하다. 이 사실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독자들은 만화를 즐기고, 그것에 열광하거나 침을 뱉을 뿐이다. 그러나 좋은 독자라면 만화의 제작과정과 그 산물 간에는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어떤 만화가 어떤 작업환경 속에서 만들어지며, 만화보조인력과 만화가 사이의 관계와, 불합리 등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리고 문하생 제도의 장-단점에 대해서도 깊이 토의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소한 만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의 현실이 철저하게 공론화되고 그 시스템의 개선점이 토의되는 것이 필요하다. 만화가와 만화보조인력 뿐 아니라 만화가 지망생도.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이유는 현실을 이겨낼 힘을 가지게 위해서다.

노파심에서 말하자면 필자는 이것이 만화가 얕보이게 되는 길이 아니라, 정확하게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글에서 일단의 한 걸음은, 다음과 같은 정도의 시각일 듯 하다.

.... 애니메이터는 예술가라는 자부심과 '애니메이션 기술 노동자'라는 의식이 혼재되있는 엄연한 노동자다

- 류재운 애니메이션 노조 위원장. 노동일보 인터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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