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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문하생' - (1) 문하생의 현황
만화는 흐른다 02/12/30 11:36 
0. 들어가며

자신이 만든 작품에 이름이 나오지 않는 만화 작가, 문하생은 어디에서 어떻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떤 형태로 만화계에 입문하며, 어째서 그런 형태로 활동을 하는 것일까. 아니, 그 이전에 문하생은 어떻게 개념지워야 하는 것일까. 이 글에서는 화실 내에서의 노동 형태를 기준으로 문하생의 범위를 잡고, 화실에서의 역할과 현황을 간단하게 살피도록 하겠다.


1. 만화 보조 인력의 분류

메인 작가가 아닌, 작품에서 부분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은 만화 보조 인력이라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이야기하는 문하생은, 만화 보조 인력의 한 부분이다. 만화 보조 인력의 범주는 다음과 같이 나뉠 수 있을 것이다.

* 제자 : 한 만화 작가의 후계로서, 작가에게서 배우고 일을 도우며 수학한다. 일반적인 표현예술에서의 제자와 동일한 의미.
* 공장제 작가 : 대규모 만화공장, 프로덕션에서 분담에 따라 원고 작업을 하는 인력. 분담하여 완성한 원고 만큼의 작업료를 받는다.
* 어시(스턴트) : 만화 작가가 급히 숙련된 일손을 필요로 할 때 임시로 고용하는 인력.
노임은 주로 일당으로 지불. 연재작가가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 문하생 : 제자의 양산형. 낮은 수준의 작업료를 받으며 만화 작가의 일을 도우며 수학. 제자와 어시도 문하생이라 통칭하여 부르는 경우가 많다.


위의 구분은 표면적인 것일 뿐, 공장제 작가를 제외한 세 형태는 혼용되어 쓰이는 단어이고, 실제로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제자와 문하생은 큰 차이가 없으며, 큰 화실의 경우 문하생과 공장제 작가의 구분을 하기도 쉽지 않다. 이 글에서는 노동 형태에 따라 구분하여, 완벽하게 분업화하고 고정된 공장 혹은 프로덕션에서 일하며 장당 작업료를 받는 보조 인력을 제외하고, 비정규적으로 작업을 돕는 어시도 제외한 나머지를 통칭하여 문하생이라 부르도록 하겠다.


2. 화실에서 문하생의 존재 이유와 역할

‘만화’가 가지는 예술적, 문화적 가치를 제외하고 산업적인 측면에서만 볼 때, 공장화 하지 않은 화실은 가내 수공업 형태의 소규모 사업장이다.

현재 한국 만화계의 주류인 잡지 연재 시스템 하에서는 多作과 速作이 작가의 생명이다. 일 주일 단위로 새로운 작품을 그려낸다는 것은 한 명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두, 세 개의 잡지에 연재하거나 신문 연재를 하는 경우는 부담이 가중된다. 보조 인력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이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잡혀 있는 공장제 시스템으로 가기에는 많은 자본과 확고한 경영 마인드가 필요하다. 적정한 수준에서 사업을 유지하고, 규모에 맞게 수주를 따와 알맞게 배분하고, 정확한 날짜에 많은 수의 작가에게 작업료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개인의 창작 활동이 아닌, 중소기업 수준의 사업이 되는 셈이다.

연재 시스템 아래의 작가는 공장이나 프로덕션보다 작은 규모의 시스템에서 어느 정도 숙련된 소수의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정기적인 제작과 마감이 반복되기 때문에 어시와 같은 임시 인력보다는 고정적으로 일을 도와줄 수 있고, 숙련도 되어 있는 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실에서는 적은 임금으로, 지속적으로 일을 도와줄 수 있는 문하생을 필요로 한다.


3. 문하생의 현황

* 문하생으로의 편입

일반적으로 문하생의 생활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평소 존경하던 작가의 화실로 입문하면서 시작된다. 잡일부터 시작해서 점차 일을 배워 나가, 펜터치, 뎃생을 실습하며 실력을 키워 나간다. 이때 실습이란 바로 스승의 원고이고, 실전으로 내공을 키우고 스승의 배려(소개, 인맥 등 지식 자본)로 외공을 키워 데뷔를 목표로 한발 한발 나아간다. 중세 유럽의 도제 시스템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수의 만화가 지망생이 문하생이라는 길을 택하는 이유는, 작가가 문하생이 만화 시장, 특히 잡지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해 주기 때문이다. 만화는 홀로 작업하는 외로운 직업이기에 만화가들은 발이 넓거나 사회성이 뛰어난 편은 아니다. 용감하게 잡지사에 원고를 들고 가서 출판을 요청하는 지망생은 그다지 많지 않다. 안전한 루트인 공모전을 통하거나, 선생님의 소개 하에 잡지의 연재를 따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가부장적 보호를 제공하는 가족, 화실

문하생은 노동을 제공하지만, 노동만큼의 임금을 받지는 않는다. 수업료를 지불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화실이 완벽한 자본주의적 작업장이 되어, 작가가 문하생의 노동력을 일방적으로 착취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문하생을 가부장적으로 보호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영국의 초기 자본주의처럼) 문하생이 많을 경우 화실의 부담도 만만치 않다. 여러 명의 식대부터 시작하여, 기거할 수 있는 충분한 작업 공간, 차비 등 기본적인 지출이 상당히 크다. 만화 시장이 축소되어 ‘일감’이 없는 현 상황에서, 문하생을 거두기 위해 공장 만화의 수주를 받아와 작업을 하는 화실도 있다.

* 복잡한 권력관계

작가와 문하생의 관계는 한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다. 스승과 제자 사이이자 고용주와 피고용주, 작업 감독과 현장 노동자. 여러 층위가 뒤섞여 작은 화실 안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다. 어떤 층위에서든 작가가 문하생보다 높은 위치이고, 계약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문하생이라는 위치는 언제나 착취당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스승과 제자 사이라는 것은 일방적인 관계는 아니다. 스승은 제자를 끌어주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적 자산을 제자에게 물려주는 것은 스승의 의무이고, 그 사이에서 인간적인 정이 싹트기 때문에 제자가 작업료의 체불을 이유로 화실을 뛰쳐나오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애매한 계약관계, 불평등한 권력 관계 하에서도 문하생이 큰 착취를 당하지 않고, 당한다고 느끼지도 않는 것은 바로 이 도제 시스템 때문인 것이다.

또한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고용주와 피고용주의 관계가 애매하다. 작업량이 뻔히 보이고, 가족주의적 이데올로기가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에, 피고용주가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을 때 고용주가 감시 감독만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함께 일하고, 함께 고생하고, 함께 결과물을 내놓기 때문에 고용주가 이익을 독식할 수도 없고, 피고용주가 임금이 체불되었다 하더라도 쉽게 요구할 수도 없다.


4. 문하생 제도의 문제.

그러나 작가가 일방적으로 가부장적 보호를 깨어버리는 순간 문하생은 공중에 뜰 수밖에 없다. 계약도 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문하생은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지식자본도, 권력도 월등한 작가에게 당당히 자신의 몫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그러한 작가가 대다수라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문하생을 제자로 여기거나, 형편이 닿는 한 체불 없이 정당한(이라기 보단 시장에서 결정된) 작업료를 지불한다. 그러나 성문화된 계약서도 없고, 자신의 위치에 대한 자각도 없는 문하생들은 만약의 경우에 기댈 수 있는 방패막이 전혀 없는 것이다.

더구나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경험 없이 곧바로 화실에 입문하고, 외부와 단절돼 홀로 작업을 계속하는 문하생은 사회의 물정에 어둡기가 십상이어서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챙기는 것이 쉽지 않다. 동료간의 관계 보다는 만화가와의 관계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문하생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이나 연대도 약하기 마련이다. 노동자로서의 자각도 없기 때문에(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의식적인 단체 행동을 하는 것도 힘들다. 스승과 제자, 작업 감독과 노동자 사이의 아슬아슬한 균형이 깨지는 순간, 피해는 고스란히 문하생에게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 마치며

이제까지 만화 보조 인력의 일부인 문하생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고, 화실 내에서의 그들은 보호막이 전무하기 때문에 언제든 착취당할 위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보았다.

현재 화실 내의 여러 가지 문제가 밖으로 표출되지 않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서라기보다는 복잡한 권력 관계에 말려 드러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지도 모른다. 가려진 세계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겠지만, 최근 알려진 문하생의 작가 고소 사건은 화실이 무풍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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