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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03] 서문 | 하나이며 두개인 '여성만화'에 대한 소고
여성만화프로젝트 - NO.03 04/07/19 11:54 깜악귀
1. 대전제로서의 "여성만화"를 바라보는 몇 가지 균열

'여성만화'라는 용어를 이야기할 때의 용도는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단 대전제의 "여성만화"입니다. 그것은 여성이 만들고, 여성이 보는, 사회에 살아가는 인간 중에 '여성'이라는 범주의 인간들이 느끼고 살아가는 이야기(내러티브)와 그에 수반된 욕망과 정체성의 감각이 묻어 있는 만화라는 뜻일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는 "순정만화"라는 이름과 혼용하여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잠깐 복습하죠. 본 프로젝트의 서문에서 말한 대로 한국의 여성만화는 순정만화와 그렇게 뚜렷이 구분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여성만화라는 용어는 순정만화의 격상된 용어처럼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것은 존재하는 여성만화의 대부분이 '순정만화'라는 '장르의 관습"을 존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순정이라는 장르는 여성(특히 10대)의 욕망을 가장 잘 대변하는 틀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작가와 독자가 성숙하고, 당시의 여성독자층이 "보편적으로 고등교육을 받기 시작한" 매우 진취적인 독자층이라는 점을 반영하듯이, 순정이라는 장르의 경계 밖에서도 여성만화가 출현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경계의 안 밖에 둘 다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작품들도 상당히 많았지요. 사람은 눈이 두 개니까, 왼쪽 눈을 감으면 살짝 왼쪽으로 사물이 치우쳐 보이고 그러잖아요. 저 쪽 눈 감고 보면 경계 안이고 이쪽 눈 감고 보면 경계 밖이고.. 이런 케이스도 많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경계 밖의 '여성만화'를 그리는 작가들도 결코 순정이라는 장르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90년대 중후반에 출현한 '여성만화'라는 용어는 아래의 두 가지를 동시에 시사하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기성의 순정만화를 "여성만화"로서 새롭게 사고할 것

둘째는, '순정만화'라는 장르의 틀 밖에 출현하기 시작한"여성만화"들에 주목하고 이것을 새로운 힘을 가진 흐름으로서 키워나갈 것

이 첫째와 둘째는 사실상 모순입니다. 둘이 규정하고 있는 "여성만화"라는 범주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대전제로서의 "여성만화"이고 또 하나는 소전제로서의 '여성만화'입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하려면 다음과 같은 도식을 볼 수 있습니다.

순정만화 ( "여성만화" '여성만화' ( "여성만화"

다이어그램으로 표시해 볼까요. (그림1 - 다이어그램)



이렇게 보면 같은 단어가 때때로는 다른 범주를 가리킨다는 것을 좀 더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지요. 그런데 이러한 사실, 집합의 논리적 모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용어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일어나는 균열입니다. 이를테면 위에서 언급한 '여성만화'의 대전제는 "만화" 라는 전제보다 "여성문화"라는 전제를 더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즉 [여성들의 문화 ) "여성만화" ) 순정만화]

이런 도식이죠. 만화 아래의 하위장르물로서의 "순정만화"가 아닌, "여성문화예술"의 하위장르로서의 "여성만화"라는 새로운 시각인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정도 페미니즘의 수혜를 받은 비평적 관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순정만화를 보고 자란 여성독자들이 대규모로 대학에 진학하여 페미니즘적인 터전을 마련하기 시작한 시기와도 거의 일치합니다. 즉, 순정만화 독자들이 고등교육을 받으면서 사회 속의 여성들의 위치를 자각한 이후의 시각 변화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성만화를 전체 '만화'라는 매체를 기반으로 한 예술장르의 하위장르로 보고 '만화 중에 여성들이 보는 만화'라는 의미로 "여성만화"를 규정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순정만화'라는 용어가 기존에는 '만화 중 여성들이 보는 만화'라는 의미로 쓰여 왔으므로, 이것은 '순정만화의 격상으로서의 여성만화'라는 용법의 정체가 됩니다. 즉, '순정만화'라는 용어의 대체품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이어그램은 다음과 같이 됩니다.

(그림2 - 다이어그램)



즉 ["여성만화"=순정만화 ) '여성만화']라는 도식입니다.

두 가지의 다이어그램을 반영하는 두 가지의 시선은 사실상 혼용해서 쓰이고 있습니다.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은 어떻게 말해도 대체로 알아먹기 때문이지만.

첫째의 다이어그램은 페미니즘 이론의 수혜를 받은 비평가와 일군의 작가들이 공유하는 그 무엇으로 보입니다. 즉 이들은 기성의 만화관습에 대해서 그렇게 "일단 우호적으로 보는"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둘째의 다이어그램은 '순정만화'를 초창기부터 그려온 기성작가들와 그 독자층들의 사고이며, 또한 그들의 후예의 사고입니다. 즉 여성작가와 그 여성팬들의 공감대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고인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첫째는 전체 남성 지배 문화 속에서 여성문화로서 여성만화의 정체성을 사고하려는 흐름입니다. 둘째는 기성만화계 내에서 여성작가와 여성독자들의 정체성을 인정받고 발전시켜 나가려는 흐름입니다.

지금까지는 이 두 흐름 다 "만화예술의 위상 격상" / "여성이라는 성별의 위상 격상"이라는 두 가지에 서로 전혀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균열이 문제가 될 것은 없었습니다. 또 이 균열의 경계가 그렇게까지 뚜렷하지는 않기도 하고요. 굳이 의식하면 균열이 있다 이거죠.

이 혼란은 현주소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억지로 정리해버릴 이유는 없습니다.

본 특집은, 고백하거니와 전자에 조금 더 가까이 있습니다만.. 굳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두 시각에서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소전제로서의 '여성만화'가 바로 다루고자 하는 테마입니다. 즉 커다란 박스 안에 작은 동그라미로서의 '여성만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 작은 원으로서의 '여성만화'가 확장되어 나갈수록 대전제로서의 "여성만화" 혹은 "순정만화"의 범위도 확장되어 나갈 거라는 점입니다. 저 작은 '여성만화'라는 집합은 아직까지는 선구자적인, 혹은 개척자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거죠. 순진한 믿음인지도 모르지만 왠지 그럴 거 같잖아요... 아닌가요?


2. 소전제로서의 '여성만화'

그러면 소전제로서의 '여성만화'의 변별은 무엇인가. 이 특집에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규정할 것입니다.

1) 여성의 욕망을 리얼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만화 (욕망의 리얼리티)

2) 여성의 현실에서의 삶과 생활에 대한 묘사와 성찰이 담겨 있는 만화 (삶의 현장성으로서의 리얼리티)

3)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자의식이 사회 속에서 일으키는 균열을 자각하는 만화 (이데올로기)

이것은 기존의 '순정만화'에 담겨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성만화 프로젝트'의 NO.03 특집에는 이것만을 집중해서 추구하는 일군의 만화들의 일군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준을 만족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기존의 대중장르만화로서의 순정만화로부터 조금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위의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가기성의 만화제작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는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부분이 많고, 그러다보니, 작가주의적인 작품이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필연적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한국의 소전제로서의 '여성만화'에 가장 부족한 것은 대중물로서의 '여성만화'가 부족하다는 것일 터입니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소전제로서의 '여성만화'에 해당하는 작품은 상당히 '진지한' 경우가 없지 않아 있는데, 이것은 미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중물'로서는 상당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 태도이기도 했습니다.

일본에는 흔히 있는, 쾌락추구적이고 리얼한 여성용 성애물은 한국에는 거의 존재하질 않았는데, 이것을 만드는데 굳이 작가주의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어떤 진취성을 띠고 있지요.

작품을 진지하게 만드는 것과 진지한 작품을 만드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소전제의 '여성만화'를 만드는 것은 기성의 틀을 넘는 것이기에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1), 2), 3)에 해당하면서 여성들의 대중적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장르물로서의 성격도 동시에 획득할 때, 그것이 가장 행복한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예를 들어 SEX를 하는 것이 당연하게 나오는 그런 만화가 한국에서는 아직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성의 시점에서 SEX를 다루고 그것을 여성들 간에 공유하는 것은 "당연하게" 필요한 문화적 작업인데 말이죠. 오노주카 카오리의 만화는 이런 점에서 샘플로 선정된 것입니다. 다른 만화들도 제각기 1), 2), 3)의 어딘가에 해당하는 미덕 때문에 선정된 것입니다. 일종의 샘플로서 사고해주시면 되겠네요.

적어도 기존의 순정만화가 "위험하지 않은 여성들의 인형놀이"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여성들에게 당연히 존재하는 성적욕망을 표현하는데 골몰해온 것도 순정만화이지만, 그것을 "되도록 안전한 방식으로" 표현하는데 골몰해온 것도 순정만화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순정만화'는 성애에 대한 환타지로 실제 성애를 대체하는 10대들을 위한 만화장르가 되고 말았습니다.

꼭 성애의 예를 들었지만 다른 현실적인 '여성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를 테면 결혼이나 취업, 육아 등에 있어서 말입니다. 문제를 제기하되, 적당히 환타지로 얼버무리는 식이었죠. 이것은 대중물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어떤 측면에서는, 리얼한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고 쾌락적일'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여성만화가 일본의 Lady's Comics에 대해서 부족한 점이 있다면 이런 부분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요컨데 80년대의 영향인지, 한국에서는 '현실적인 문제' 나 '이데올로기'를 다루기 위해서는 일단 진지하고 무거워야 한다는 관념이 있다고 할까요.

90년대 중후반에 [나인(NINE)]과 함께 우수수 등장했던 일군의 '여성만화'들이 떠오릅니다. 그 성취와 위상은 상당히 높았지만 결국 대중적인 성공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죠. 잡지 폐간과 함께 '여성만화'로서의 시도들은 한꺼번에 사그라들었고 지금까지 위축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실패 요인은 어쩌면 이런 점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물론 다른 여러가지 원인들이 있겠고 지금와서 쉽사리 단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만.

개인적으로, 소전제의 '여성만화'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일종의 탐험가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지도에 기입되는 땅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고 할까요. 일단 지도에 기입되면 나중에 거기에 도로도 놓일 수 있고, 건물도 세울 수 있겠죠. 그러다보면 사람이 살게 되는 거고.

결국은 전체로서의 '여성만화'가 다룰 수 있는 소재, 다를 수 있는 캐릭터, 다를 수 있는 주제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성들이 만화 내에서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을 더 많은 범주에서 확장시켜 나갑니다. "반드시 리얼해야 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리얼한 것을 건드림에 있어서 금기가 존재한다"는 것은 상당한 제약이 됩니다.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건드릴 수 있어야 하죠. 그것은 '순정만화'의 범주를 넓히는 것과 동일합니다. 그것은 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니까요. 10대의 여성들이 육아와 취직, 섹스에 대해서 만화를 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읽어대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입니다.

No03은 당연히 존재해야 할 것들이 존재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럼. 즐독.

('여성만화프로젝트'의 3번째 기획 '두 개의 여성만화'의 서문이었다)
: http://dugoboza.net/tt/rserver.php?mode=tb&sl=22 (co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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