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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어떤 만화를 지지할 것인가 - 리얼리즘의 외연을 확장하는 만화 (1)
만화는 흐른다 02/12/03 13:38 김태권
1.

나는 리얼리즘 만화를 지지합니다.

리얼리즘 만화라고 하면, 보통, (1) 그림이 사진처럼 세밀하여 옷의 터진 솔기와 얼굴의 주름을 빽빽하게 그려놓거나, 아니면 (2) 거창한 역사적 사건-주로 주인공이 얻어터지는 쪽-을 다루거나, 그도 아니면 (3) 지지리도 고생하는 사람의 지지리도 고생스런 일상을 그리거나 하는 만화를 생각하십니다. 그러다보니, 리얼리즘 만화를 지지한다는 말은, 피로한 운동권이 초췌한 낯을 한 채 남루한 옷을 입고 퀴퀴한 방에 앉아 지루한 말을 하며, 구석구석 다 떨어진 누런 만화 책장을 넘기며 "그래! 이래야 해!" 라거나 "나쁜 놈들! 타도해야해!" 라는 둥, "~여야해!!!"라는 각운의 말을 부정기적으로 내뱉는, 그런 침침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공연한 말이 아니라, 실로 제 친구가 그런 몰골을 하고 "오!한강"을 읽었거니와, 일본 전공투 시대의 고사이기도 한 것입니다. 낮이면 경찰 기동대에 두들겨맞고는 분노의 눈물을 흘리며 밤이면 "내일의 조"(국내명 "허리케인조")를 보고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그들의 운동은, 한국과는 달리, 단기간 격렬하게 타오르다가 끝내 몇 년 가지도 못하고 허공 중으로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역시 "내일의 조"에 나오는 대사처럼 "새하얗게 타올랐어"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뭐, "내일의 조"와 일본-한국에서의 저간의 사정은 nufgirl님께서 정리하신 바 있고, 필자도 그 입장과 같습니다만, 이 글에서는 줄이겠습니다.

필자가 여기서 말한 리얼리즘 만화에, 물론 그런 혐의가 ... 있습니다! 사실 제가 하려는 이야기가 그런 것 맞습니다. 현실의 비참함을 다루는 그런 만화를 지지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보기엔 현실은 비참하니까요!

프리더에게 얻어터지는 손오공보다, 무슨 집회하다가 진압부대에 얻어터지는 노동자 아줌마 아저씨들이 몇 대를 맞아도 더 비참하게 맞는 마당에, 필자는 전자보다 후자에 더 관심이 가고 더 감정이 움직입니다. 게다가 그 사람들은 맞아서 반신불수는 될지언정 초사이어인으로 변신하지는 못하니까요. 얼어죽고 굶어죽고 맞아죽은 사람들을 드래곤볼을 모아서 살려낼 수도 없으니까요. 이러한 관점은 이 글의 기본적인 입장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지지하고자 하는 만화들은, 앞서 이야기한 것 같은 유형들과는 전혀 다른 만화입니다. 앞에 든 (1), (2), (3)의 유형을 보면, (1)은 주로 오세영 작가의 작품, (2)는 "오!한강"과 최근에는 "꽃", (3)은 이희재 작가의 작품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지지하고 계시는 만화입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이 만화들이 현실에 접근하는 방법에 어딘지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전혀 다른 방식의 만화들을, 필자는 지지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 이유를 리얼리즘의 "전형"이론에서 찾고자 합니다.



2.

엥겔스는 어느 서한에 이렇게 썼습니다.

"내 생각으론 리얼리즘이란, 디테일의 성실한 묘사보다도, 인물의 전형을 잘 살리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요컨대, 인물의 '전형'이 리얼리즘의 중요한 요소라는 것입니다.

오지랖넓은 엥겔스가 남긴 다양한 분야의 어록은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말 역시 많은 것을 고민하게 만드는 말인즉, 오늘날까지도 작가와 이론가들은 전형의 문제로 골치를 썩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몇몇 작가들이 이 명제를 금과옥조로 삼아 여러 독자들을 피곤하게 만들었습니다. 작가가 엥겔스의 말을 알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려 함인지, 아니면 창작이 귀찮아 쉽게쉽게 하려고 그랬는지, 그도 아니라면 사고가 경직되기라도 한 것인지, 아울러 그렇게 안 만들면 얻어맞고 어디 끌려갈까봐 그랬는지, 미친 듯이 재미없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엄청 노력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모모한 나라들의 남아있는 소설과 미술의 몇몇 작품을 보면, 양은 많은데 재미는 없고, 눈썹짙은 사람들 나와서 웃느라, 또는 우느라 입을 에에 벌리고 있습니다. 왜 모두들 눈썹이 짙은 것일까요-필자도 비쩍 마른 주제에 눈썹이 짙습니다만. 아무튼 그 영향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의 창작방법론에까지 남아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물의 전형'이 아니라 '전형적 인물'만 훨훨 활개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도, 그리고 엥겔스 본인도, 무척 강조한 사항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작품은 무엇보다도 생생하고 재미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종종 그 점이 간과되는 면이 있어 아쉽습니다. 라쌀은 독일 노동운동의 지도자로 다재다능한 사람이었습니다. 마르크스가 영국에 망명해서 지지리도 가난할 때 라쌀이 관광차 놀러와서 눈치없이 눌러앉아 호의호식하다가 독일로 돌아간 일 때문에 마르크스가 엥겔스에게 불평을 늘어놓은 일도 편지로 남아있습니다만, 아무튼 그 라쌀이 역사적 사건에 대한 희곡을 써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보낸 적이 있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그 역사극에 대해 칭찬은 하면서도, 불만을 표시한 바, 그때 마르크스가 적어보낸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은 극 중에서, 개인을 단지 시대정신의 메가폰으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세익스피어를 보다 연구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엥겔스는 한 술 더떠, "대사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도 합니다.

이 말은 헐리우드에서 나온 시나리오 작법 가이드 책에서 똑같이 찾아볼 수 있는 말입니다. 주제는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서 노골적으로 제시되면 안된다, 고전극의 기법을 연구하라, 행동을 통해 보여주어라 등등. 이렇게 하는 이유는, 드라마가 재미있어야 하니까요.

만화도 마찬가지겠지요. 시대극이건, 언제건, 착한 사람이 나와서 진보적인 이념을 줄줄줄줄 말풍선 가득 읊어대면, 재미가 없습니다. 만화 역시 말도 말이지만, 행동을 해야 재미있습니다. 심지어는 주제없이 행동만 해도 재밌잖아요? 물론 필자가 그런 만화를 지지한다는 건 아니지만.

마르크스와 엥겔스 역시 주제없이 행동만 있는 만화를 좋아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형적 인물'만 나오는 만화를 보았다면 참 재미없구나 생각했을 터, 그 마당에 "이게 당신 이론에 따른 것이랍디다"란 말을 들으면 분개했겠지요. 뭐, 마르크스 생전에 이미 "(그들이 이야기하는 게 마르크스주의라면) 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야!"라는 말을 한 적도 있습니다.

'전형'을 구현할 때, '인물의 전형'을 형상화해야지, '전형적 인물'을 도장찍듯 만들어내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진부한 작품, 지루한 만화를 지지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뒤에 뒤 절반이 계속됩니다) to be contin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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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고보자  [특집] 어떤 만화를 지지할 것인가 - 리얼리즘의 외연을 확장하는 만화 (2)
3. 이런 의미에서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만화가 요구됩니다 : 첫째, 생생할 것 ; 둘째, 전형을 형상화할 것. 즉, 예술적 형식에 충실하면서도 리얼리즘을 희생해서는 안되며, 반면 리얼리즘에 목을 맨 나머지 생경함으로 흘러서도 안된다는..  05/10/27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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