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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소년만화' - 소년만화의 시대...였던가?
만화는 흐른다 02/07/29 22:53 capcold
1. 들어가며: 왜 소년만화인가

당혹스러운 질문부터 시작해 보겠다: "왜 두고보자에서 소년만화를 다루고자 하는가?". 우선 소년만화가 과연 무엇인지라는 문제부터, 과연 소년만화가 두고보자 식으로 파고 들어가 볼만한 이야기꺼리가 있기는 한 것인가라는 지점 너머, 그래서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 라는 시니컬한 질문까지, 뭐 하나 명확하게 대답해 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커버 스토리치고는 참으로 석연찮은 시작이다.

우선,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가장 현상적인 부분에서부터 파고들어가보자.

1) 소년만화라는 말은 현재, 상당히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다. 만화서점이나 만화방 벽에 붙어있는 순위차트에는 소년만화/순정만화로 각 권의 대여나 판매순위가 기재되어 있다. 인터넷 만화 사이트들에도 자연스럽게 '소년만화'라는 분류기준이 하나의 섹션으로서 버티고 있으며, 많은 작가들이 '나는 소년만화를 그린다'라고 자청하고 있다. 소년만화라는 말의 실체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명백히 존재하는 '현상'이다.

2) 일반적인 만화 독자들이 만화하면 떠올리는 어떤 상 가운데, 우리가 흔히 '소년만화'로 분류하는 작품들이 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에게는 만화=소년만화라는 공식이 성립되기까지 하는 듯하다. 특히, 90년대 한국에서 '큰 히트'(가시적인 판매부수가 높은 것을 포함)를 친 만화책들이 상당수 여기에 해당이 되어, 만화를 둘러싼 담론 속에서 하나의 주류를 형성했다 - 결코 유일한 주류라고 할 수는 없지만, '주류'인 것은 그다지 부인하기 쉽지 않다.

이 두가지의 인식에서 출발, 소년만화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고자 한다. 소년만화는 어디서 와서 어떻게 쓰이며, 특히 한국이라는 배경 속에서 그 범주나 의의, 특성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아니, 과연 무언가로 묶일 수는 있는것인가? 또한, 과연 소년만화는 한국만화계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가. 한가지 확실한 것은, 소년만화에 관해서 이런 이야기를 끄집어 내기 시작하다 보면 분명히 한국 만화의 90년대가 어떤 식으로든지간에 정면으로 보일 것이라는 점이다 - 그것이 '순정만화'와의 대척점으로서 상정하기 위해서이든, 만화산업의 흥망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이든, 90년대의 만화수용 양상 전체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든 마찬가지다. 사실 바로 이러한 지점 때문에, 소년만화를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음... 사설이 길었다. 좋든 싫든, 이 글이 끝날 때까지만은 소년만화의 세계로 빠져들어 보자. 아무리 재미없어도... 아무리 길어도... -_-;


2. '소년'은 무엇을 원하는가

쉽게 시작해보자. 소년만화는 말 그 자체에서 이미 "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라는 의미가 강력하게 담겨있다. 그렇다면, 소년만화를 논하기 위해서는 '소년'이 무엇이고,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먼저 살짝 건드려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성장 패턴이라는 측면에서 소년이라는 것은 대략 남녀 성역할을 처음 자각하는 시점부터, 사춘기를 거치고 2차 성징이 완전히 안착하는 순간 사이라고 할 수 있다(참으로, '안전한' 정의다). 쉽게 말하자면, '아, 난 남자구나'의 시기부터, 생물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한사람 몫'을 할 수 있을때까지의 사이라는 것이다(조금도 쉬워지지 않았다...하지만 이건 도덕 교과서가 아니니까 이쯤에서 넘어가자). 혹은, 그러한 시기에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감수성을 지니고 있는 인간들도 '마음은 소년'인 셈이다. 키워드로 만들어 보자면, 남자의 성장기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장은 여러 맥락 속에서 존재한다: 사회 일반의 양상이라는 맥락(특히, 한국사회라는!), 자신의 생물학적/정신적 성장(혹은 성장의 거부)이라는 맥락, 그리고 특히 남자라는 맥락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생겨나는 일련의 욕구들이, 바로 소년만화가 소년을 대상으로 한다고 할 때 충족시켜주어야 할 것들이다. 즉, 소년만화에서 만족을 느끼는 독자들은 그 성장기 속에 있거나, 아니면 여러 가지 이유로(그 시기의 취향을 자신의 만화 취향 일반으로 굳혔다든지!) 성장기를 벗어난 이후에도 그 취향을 고수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러한 전제에서 바라보면, 흔히 소년만화로 일컫어지는 장르에서 중심적으로 드러나는 내용물이나 감수성의 상당 부분을 커버할 수 있다.

그중 하나로, 성에 대한 묘사를 생각할 수 있다. 소년만화에서 성의 묘사는, 소년의 성적 판타지를 반영한다. 아무리 고상하게 포장한다고 해도, '소년'은 성욕의 덩어리이자, 육욕의 화신이다. 그것은 자신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한층 더 강력한 생물적인 기본 욕구로 변형되어 표출되는 것일수도 있고, 단지 유전자에 새겨진 진화론적 암시 때문일수도 있다. 여하튼 생물학적 성장이란, 그런 것이다(생물학적인 성장패턴과 사회학적인 입지구축 스케쥴이 이렇게나 크게 어긋나있는 현대 사회가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은 대부분, 성욕을 현실사회 속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풀어나가면서 생활을 할 수 있는 처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들은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든 해소하고자 하는데, 한국이라는 사회의 표면적으로 폐쇄적인 성 담론 패턴이나, 한국에서 남성이 지니고 있는 사회적인 지위를 고려할 때 그것은 '낭만적인 감수성'이나 '예술적 승화' 같은 고상한 짓거리보다는, 과장되고 과격한 육체적 성애에 관한 환상의 교류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남자 고교 화장실 낙서' 문화인 셈이다.

이런 욕망(-_-;)을 반영하기에 가장 편리한 매체 가운데 하나는 (포르노 영화를 제외하자면)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한 '만화'이며, 한국에서 소년만화는 이러한 측면을 열심히 파고들어왔다. 반쯤은 농담이지만,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의 폭에서 '아이큐 점프'가 초창기에 가장 강력한 인기를 끌었던 것은 16호(쯤)의 '아마게돈' 연재분량에서, 여주인공의 가슴이 정면으로 노출되는 씬이었다 - 세상에, 성인만화도 아닌데 이런 강력한 장면이(당시로서는...)!

그리고 그 다음의 충격적인 이정표는, '드래곤볼'의 라이센스 연재가 시작되면서 처음으로 여성의 유두가 묘사되었다는 것이었다. 여체를 통한 성적 어필은 당시에 '소년만화'를 기존의 다른 만화들과 구분짓는 매우 중요한 잣대였으며, 노출의 정도는 소년만화로서의 재미의 척도 가운데 하나였다. 물론 그 이후로도 성적 판타지의 충족 방식은 꾸준히 다양화되어왔고, 하렘물이니 메이드물이니 하는 수많은 공식들이 생겨나서 물을 건너 한국까지 건너왔다. 성적 판타지의 충족은, 소년만화의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라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당연히도,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성과 함께, '폭력' 역시 소년들의 중요한 관심사다. 폭력과 성은 동전의 양면이다; 전자는 개체의 보존, 후자는 종의 보존이라는 생물학적 대전제를 위한 필수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자신의 사회적/생물학적 정체성이 흔들리는 성장기에 그 원초적이고 단순한 욕구에 몰두하는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경로다. 소년만화에 있어서 성이나 폭력 모두, 이 분야에서 훨씬 관대하게 발달해온(?) 일본 소년만화의 유입 및 한국만화의 이에 따른 패러다임 변화와 함께 급격하게 충족의 수위가 올라갔다. 물론 한국이라는 맥락에서 폭력은 성보다는 임팩트가 약했는데, 그것은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성에 대해서 (표면적으로는) 억압적이면서도 폭력에 대해서는 무심한 - 말그대로 군대같은 문화가 잔재해왔기 때문이다. '북두의 권'에서 온몸이 터진다고 해도, 그것은 방학숙제로 받은 반공 교양서적에서 입이 찢어져 죽은 어린이의 시체를 국민학교 입학때부터 늘상 보아온 여러 한국소년들에게는 상대적으로 큰 충격이 아니었다.

하지만 성이나 폭력같은 소재/표현적인 측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장'이라는 전체 맥락이다. 사실 성장이라는 테마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할 것도 없다. 비단 소년만화가 아니더라도 성장은 서사 문화의 가장 중요하고 널리 인기있는 테마 가운데 하나인데, 자신의 모든 것이 성장이라는 테마 한 복판에 던져져있는 '소년'의 입장이라면 그 공감의 폭이 오죽하겠는가. 성적 판타지는 성숙으로 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스트레스 해소이며, 폭력은 이미 충분히 폭력적인 '사회'로의 입문과정에 불과하다. 설득력있는 성장 스토리라는 맥락 속에서 소재적인 자극과 즐거움이 주어지는가, 아니면 그런 맥락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자극만 존재하는가에 따라서 소년만화가 주는 쾌감의 방향은 전혀 달라진다.

이러한 요소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조합해내는 것이 바로 '소년만화의 히트공식'이다. 한 사례로 일본만화 '드래곤볼'은 소년만화의 최강 히트공식의 덩어리로서 추앙받아 마땅한데, 에스칼레이션되는 폭력적인 파워게임, 동료와 적의 역동성, 섹스어필, 변신과 성장 등을 형식과 내용 양측 모두에서 강력하게 '설립'했다. 수많은 이후 작품들이 여기서 만들어진 공식을 크고 작게 도입했음은 물론이다.

...물론 이런 주장들은 일반론에 불과하고, 여기서 소년들의 심리분석을 해보고 싶은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다. 게다가 현대 대중문화에 관한 장르론들이 의례껏 그렇듯이, 나름대로 상당히 일반적인 특성이라고 생각해서 뽑아낸 사항들이라 할지라도 당연히 예외 역시 많다. 다만 '보편적으로 인기를 얻는' 소년만화들의 내용 방향의 근저에 깔린 정서가 어떤 것인지를 거칠게나마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 즉, '소년'들과, '소년기'를 거친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설명조차 필요없는 부분이라는 말이다. 그것이 어느정도 이루어졌다면, 이런 것들보다는 소년만화라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개념이고, 어떻게 발달해왔는지를 따지는 것이 (단행본이 아닌) '총론글' 차원에서는 백배 더 유익할 듯 하다.


3. 소년만화의 시대?

그냥, 솔직해지자: 소년만화의 범주는 애매하다. 애매하고 경계는 모호하지만, 어떤 '상'은 존재한다. 그렇다면, 몇가지 개별적인 축을 가정하고 서서히 좁혀들어가는 방식이 효과적일 듯 하다. 그럼, 소년만화라는 개념이 현재처럼 쓰이게 된 과정을 살펴보도록 해보자.

소년만화라는 용어 자체는 누구라도 예상 가능하듯이 일본에서 건너왔다(일본만화의 역사를 다루고자 하는 지면이 아닌만큼 너무 세부적으로 들어가지는 않고자 한다). 소년만화라는 용어가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쓰인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정치/풍자 카툰 일반을 제외한 오락만화 일반이 아닌 하나의 '만화유형'으로서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2차대전후, 데즈카 오사무의 '신보물섬'부터 시작되는 전후 만화 부흥기부터였다; 일본에서는 전후 만화의 초창기부터 '만화소년' 등으로 대표되는 잡지 연재 체제가 조기에 확립되었다. 특히 46년에 소녀 대상 잡지인 '소녀구락부'에 오사무의 '마아양의 일기장'이 연재개시하면서 '소녀만화'라는 용어가 만들어졌고(비록 소녀만화의 독자적인 '부흥'은 한참 뒤에 찾아오지만 말이다), 소년만화라는 용어는 자연스럽게 더욱 일반화되었다. 즉, 연재 지면의 성격에 따라서 만화의 '장르'를 구분하는 방식이 일찍이 확립되었다는 것이다. 아주 간단하게, '소년만화'라는 말은 '만화소년', '소년 선데이', '소년 매거진' 등 일련의 소년만화잡지에 연재되는 작품들을 지칭할 수 있게 되었다(아주 친절하게도, 이러한 잡지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소년지라는 것을 명백하게 이름에 드러내주고 있다). 연재지면에 따른 구분, 즉 "소년만화지에 연재되면 소년만화다" 라는 큰 울타리가 여기에서 이미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 '쉬운' 설명이다. 일본에서는 출판업이 일찍이 발달하고 쉽게 독자층에 따른 분화가 이루어진 덕분에, 이러한 소년잡지 연재 만화들은 자신의 지면이 대상으로 하는 독자들의 욕구를 충실하게 반영하는 일련의 독특한 방식들로 특화되었다. 따라서 단지 지면을 지칭하는 것 이상으로, 그 지면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하나의 '스타일'을 지칭하는 것으로 발전했다(그러니까, 소년들의 욕망에 충실한 스타일 말이다). 즉, 비록 소년만화의 지면이 아니라 '소녀지'에 연재가 되더라도, 소년지 연재작품들에서 확립된 일련의 특성들을 따를 때 적어도 '소년만화풍'으로 명명을 해주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어떤 작품을 보면서 '이게 무슨 소녀만화야... 완전히 소년만화구먼(일본어로)', 혹은 '이 작가는 소녀만화에서 소년만화로 전향했다' 라는 식의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즉, 소년만화 스타일을 따르는 것을 '소년만화'라고 불러 주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일본 이야기는 그만하고, 이제 한국에 이러한 개념들이 어떤 식으로 들어왔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적어도 80년대, 혹은 그 이전부터 만화를 보던 사람들은 '소년소녀만화'라는 명칭을 기억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라고 해서 만화가 연재되는 소녀 잡지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대본소 시장에서 일본의 소녀만화에 대략적으로(!) 비견될 수 있는 범주인 '순정만화' 라는 개념이 덜 보편화되어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80년대의 '보물섬' 잡지까지만 해도 남녀 어린이 독자 모두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는데, 단순히 어린이 만화라는 용어보다는 '소년소녀만화'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되었다. 이것은 단지 소년만화와 소녀만화가 한 잡지에 연재되고있다는 개념보다는, 정말로 소년소녀 모두 즐기라는 듯한 의미였다('소년소녀 세계명작선' 등, 당시 열풍이었던 마음의 양식이 되는 좋은 책(-_-;) 전집류들의 마케팅 표어와도 깊은 연관이 있으리라 판단된다). 사실 당시 한국은 출판 시장 자체가 일본처럼 활성화되어 있던 것도 아니었고, 성인/미성년자라는 구분 이상의 세분화된 만화 잡지 출판은 80년대 중반 이후까지도 그리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한 일본에서 소년만화의 범주에 속하는 여러 작품들이 단행본이나 잡지로 해적판이든, 도작이든, 참조든 여러 형식으로 이미 유입되고는 있었으나, 지면으로서 나누어지지 않은 만큼 '소년만화'라는 하나의 범주로서 규정되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소년만화라는 용어가 실제로 표면화되어 사용된 것은, 88년 말이다. 80년대를 거치면서 국산 순정 만화의 질적 상승, 독자의 커뮤니티성 등에 힘입어, 한국에서는 점차 수요층에 따른 만화의 장르 분화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 그리고 88년, 최초의 순정만화 전문지인 '르네상스'와 미성년 남성향 만화잡지인 '아이큐점프'라는 두 형태가 한국에 새로이 도입되었다. 바로 이때부터 '소년만화'라는 용어가 한국에서 급속히 통용되기 시작했다. '아이큐점프'가 직수입해온 일본식(정확히는, '소년점프'식) 잡지 제작 시스템은, 일본식의 소년만화 시스템을 자연스럽게 들여오는 지름길이었다. 실제로 소년만화라는 용어나, '소년'들이 보는 만화라는 독자층 에 관한 규정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즉, 소년만화라는 개념은 일본식 소년지를 표방한 '아이큐점프'에서 내세운 마케팅의 일환으로서 한국땅을 밟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소년만화라는 용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기존의 만화잡지와 스스로를 차별화하고, 10대 남성이라는 소구 독자층에 강력하게 호소를 하자는 의도가 다분히 드러났다(그렇다, 지금 행태들을 보면 상상도 하기 힘들지만, 당시에는 소년만화잡지가 마케팅도 했다! 전유성이 나오는 TV 광고까지!). 여하튼, 이러게 해서 한국에서 소년만화라는 용어의 통용, 지면에 따른 구분 등이 도입된 것이다.

그런데 초창기 아이큐점프의 연재 만화는 실제로는 아직 혁신적인 새로운 제작 시스템을 만들어냈다기 보다는, <보물섬> 등 기존 잡지 지면에서 활동하던 기성작가들의 '소년만화풍' 작품 성향을 기반으로, 성과 폭력, 10대적 감수성의 최신유행 등을 한층 더 강하게 충족시켜주는 방식으로 작용했다. 김형배의 '헬로 팝', 이상무의 '제4지대', 이현세/야설록의 '아마게돈', 배금택의 '영심이'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보다 확실히 '소년만화'로서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게 된 것은 사실상 도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볼' 라이센스 연재 이후다(드래곤볼의 라이센스 연재가 90년대 이후 한국만화에 있어서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상징적인 사건이었는지는 굳이 여기서 다시 강조하지 않아도 될 터이다). 80년대 이후 일본 소년만화의 교과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드래곤볼의 대히트 이후, '잡지 편집부'는 이 작품을 히트공식으로 삼아 국내 작가들에게 집중적으로 벤치마킹하도록 유도했다(아~주 밝게 표현하자면 말이다).

왜, 이왕 배끼는 것, 확실하게 배끼는 것은 어떨까. 일본에서 소년만화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재낀(소위 '600만부 전설') <소년점프> 잡지를 따라하기 시작했다면, 그들이 히트한 방식인 "다루기 쉬운 신인작가를 뽑아내서, 잡지 편집부에서 하라는 대로의 생산물 만들어내기"까지 따라하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대원의 '소년챔프' 지는 91년 창간되면서, 초창기부터 바로 이 전략을 그대로 밀고 나갔다; 해오름, 그라피티 등 일련의 고등학교 만화창작 동호회 인맥에 대한 집중적인 관심이나, 당시 '어쩐지...저녁'의 이명진으로 대표되는 '고교생 작가'의 육성 등이 이런 맥락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자사 잡지에서 연재한 작품이 어느 정도 연재분량이 모이면 바로 단행본을 출간한다는 일본식 만화상품화 포맷을 완성시킨 후에서야 이 전략은 진정한 빛을 발한다(물론, 이것은 드래곤볼 단행본의 일반 서점판매의 성공에 힘입은 것이다). 이제 이런 한국식 '소년잡지'들은, 신인 작가들에게 일본 소년만화의 히트공식을 집중적으로 요구한 감각적인(?) 작품들을 주문 생산하고, 그것들의 단행본 가운데에서 소위 '100만부 전설'(진짜 사나이, 마이러브, 어쩐지...저녁, 붉은 매 등 일련의 국내 작가에 의한 작품들이 일제히 단행본 시장에서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일대 '사건')이 만들어졌다. 국내에 소개된 소수 초대형 일본 소년만화 히트작이 가지고 온 강력한 오락성에 매료된 만화독자들은, 그것을 최대한 비슷하게 발현시키고자 한 국산 작품에도 한동안은 유사한 호응을 해준 것이다(아, 도서대여점 이야기는, 여기서는 논외로 해두고 넘어가자).

물론 그 이전에도 일본만화의 영향은 상당했지만, 이 때의 '소년만화'들은 화풍도, 연출도, 대사도, 심지어는 클리셰나 소품들까지도 기존의 한국만화보다는 일본 소년만화 대형 히트작들에 더 종족 유사성을 지니고 있었다(한 사례로 이명진의 '어쩐지...저녁'의 경우는 찬합도시락, 일본식의 둥근 삿갓, 오토바이 레이스 등이 작품 내적인 위화감 없이 등장, '작가는 재일교포다!'라는 헛소문이 돌기까지도 했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한국에서 소년만화의 내용적 스타일이라는 측면은, 일본 소년만화의 제작방식 및 내용적 특성을 철저하게 모방하는 것으로서 형성이 되었다.

하지만 산업적인 차원에서 그 임팩트는 상상 이상이었다. 여하튼 이로써 '밀리언셀러'로서의 만화, 집중적인 산업/상업적 관심의 대상으로서의 만화, 새로운 오락 방식으로서의 만화라는 고지를 단숨에 이러한 신생 '소년만화'들이 점령하게 되었다; 그리고 점점 더 유입이 늘어나는 일본 작품들과 함께, 소년만화는 대외적으로 만화를 대표하는 얼굴이 되어가고 있었다. 천민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잘 팔리는 것이 가장 그 매체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후의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소년만화의 성공담에 힘입어 몸집을 키워나간 이들 소년만화지 중심 만화출판사들은, 점차 일본 만화 수입종수를 늘려나갔다. 초창기에는 자사의 잡지에 연재된 것만(그것도 일부만) 단행본화하다가, 이내 잡지 연재를 하는 2-3 작품이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종수를 곧바로 단행본화해서 유통시키는 제살깎아먹기를 시작했다... 뭐, 이쪽 이야기는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할수록 주름살만 늘어나니까, 다른 지면으로 넘기도록 하겠다.

여하튼, 대략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일본에서 만들어진 소년만화라는 개념이 한국에도 안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 소년만화라는 개념은 비교적 명확하게 자체적으로 형성되어 갔던 일본의 경우 보다 복합적이다. 우선 일본에서도 통용되는 원초적인 의미 그대로, 1) '소년지에 연재되는 만화'라는 의미, 또는 2) 이러한 잡지들에서 소년을 대상으로 하면서 만들어낸, 일련의 스타일을 지니는 만화라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1)의 경우, 전차 연령층별 공략이 세분화되면서 '영'지니, '아동'지니 하는 구분 속에서 소년이라는 말 자체를 점점 더 전문화된 범주로 만들어나갔다; 또한 2)의 경우, 장르간 경계가 점차 희미해지는 속에서(소년만화적인 요소들을 담고있는 순정만화라는 말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아진 것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경계'라는 것 자체가 그리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 또한 점차 세분화되어야만 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소년만화'에 하나의 축이 더 있는데, 그것은 3) 90년대 초부터 주류 잡지출판사에서 만들어내고 수입해온 남성향 만화의(거칠게 말해서, 특별히 여성향을 강조하지 않았으면 대체로 남성향이다!) 특성 일반을 모호하게 총칭하는 것이다. 사실 순정만화의 경우 일치감치 일본의 대작 소녀만화들의 문법이나 감수성을 한국 작가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수용, 소화해내어버렸기 때문에 90년대 중반에 불어닥친 일본만화 수입 봇물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한국 순정만화에 대한 규정이나 전개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기회에...). 하지만 '비성인 남성향 만화'의 경우, 갑작스런 문화충격과 함께 일본 초히트작의 공식에 완전히 얽매이게 되는,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났다. 따라서 이러한 류의 만화는 이 당시를 기점으로 큰 변화의 단층이 생겼고, 이때 새롭게 등장했던 만화방식 자체가 한국에서 '소년만화'가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소년'이라는 용어는 더 이상 단지 어떤 특정한 성별이나 연령층을 일컫는 것 뿐이라기 보다는, 이미 하나의 '장르' 내지 '상품 방식'이 된 것이다. 실제로 정작 일본에서는 다시 지면에 기반해서 청년만화, 성인만화 등등 다시금 많은 세분화된 구분을 만들어냈지만, 한국에서는 출판시장의 폭이나 출판업의 전문성이 떨어져서 그런 방식의 연령층별 세분화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영지, 소년지, 아동지 등이 상당히 중첩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90년대의 변화기 이후부터 만화를 읽기 시작하고 그 만화에 맛들인 독자들에게는, 성인, 청년 구분을 넘어서서 그 큰 범주 자체가 소년만화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엄밀한 정의하에서의 분류라기보다는, 소년만화로서 받아들이는 독자 측면의 접근인 것이다.

말이 자꾸 복잡해지고 있지만, '동네 만화방의 신간 안내 기준으로' 거칠게 나누자면 소년만화(흔히, '코믹스'라고도 부른다)-성인 및 일일만화-순정만화라는 식의 큰 틀이 만들어진 이치인 셈이다(실용만화 등은 편의상 논외로 했는데...불만 있으신 분?). 현재 소년만화 개념이 한국에 정착한 모습에 가장 가까운 것은, 바로 이것이다.


4. 만화의 '주류'와 소년만화

앞서서 소년만화의 내용, 소년만화의 흐름을 이야기했다면, 이 부분은 '산업체계로서의 소년만화'를 이야기하는 곳이다(아마도 제일 재미없는 부분에 도달하신 것을 환영하는 바이다...-_-;). 사실 '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들은, 신기한 노릇이지만 만화가 하나의 산업으로서 발달한 여러 만화문화권에서 꽤 주류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애초에 소년만화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일본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미국의 주류만화를 차지하고 있는 슈퍼히어로물의 경우도 거의 모든 측면(성장 스토리, 성, 폭력, 변신...)에서 명백하게 '소년'층을 독자로 하고 있다. 사실 유럽의 경우도, 예술성 지향의 만화들이 아닌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는 상당부분 신화적 영웅물, 미스테리물 등 '소년'스러운 취향을 다분히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범 세계적으로 주류 사회가 남성 위주로 짜여져있다는 측면과, (주류)만화는 성장기에 주로 읽힌다는 폭넓은 고정관념(물론, 시장 현실에 근거한)이 결합되어 있는 듯하다.

확실히, '소년'의 감수성을 공략하는 만화가 비단 일본만화 시스템만이 아니라 범세계적으로도 하나의 중요한 트렌드를 이루고 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중요하게 생각해봐야할 지점은, 소년만화가 그 시스템 속에서 차지하고 있는 역할과 위상의 문제다. 현상적으로 볼 때, 대부분의 소년만화는 기본적으로 대중 오락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헐리우드 주류 스튜디오에서 만들어내는 오락물들과도 같이, 수많은 순수하게 오락을 목적으로 하는 작품들이 양산되고 있다 - 말 그대로 '산업'인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서도, 걸작이 탄생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훨씬 더 많은 절대다수의 작품들은 '생산품'으로서 짧은 오락을 위하여 단명한다. 새로운 표현적 실험, 작가적 고집, 새로운 생산/유통방식에 대한 고민은 시스템화의 좁은 한계 속에서만 이루어진다.

최근의 소년만화에 대해서, 상상력이 빈곤하다, 소재 중심주의에 빠져있다, 메시지보다는 그림발에만 치중한다, 등의 비판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주류 시스템화의 길로 들어서버리는 만화 - 아니 대중문화 장르 일반의 문제일 수 밖에 없고, 질문은 오히려 '어째서 그 중에서도 소년만화가 그렇게 확실히 빨리 시스템화되었는가'라고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수많은 요소들을 고려해봐야 하겠지만, 한국의 경우는 비교적 해답이 명확하다: 애초부터 그런 시스템을 먼저 들여온 후, 소년만화라는 범주를 그 시스템에 맞추어 육성(과연?)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88년 이후 본격화된 한국의 '소년만화'는, 일본 소년점프의 전례를 따라서 철저하게 당대 주류 소년문화의 집약체를 표방, '트렌디'성을 강조했다. 작품의 자체적인 생명력보다는 트렌드를 강조하는 것은 보다 강력해진 상업적인 고려의 반영이었는데, '100만부 전설' 등으로 인하여 소년만화가 상업적 성공의 모델처럼 받아들여지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되었다. 뭐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소년들은 별다른 노력없이 쉽고 재미있게 만화를 보며 공감할 수 있었고, 그 트렌드를 중심으로 또래의식을 키울 수 있었다. 게다가 아직도 따라할 일본만화는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듯 했고, 새로운 트렌드는 계속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약발'은 지금에 와서는 결국 길어야 10년짜리인 것으로 판명되고 있는 중이다. 우선 일본 소년만화라는 '든든한 빽'은 생각보다 너무 빨리 밑천을 드러냈고, 한국의 소년만화 잡지들의 연재작들은 각각 비슷한 화풍과 비슷한 내용으로 허무한 자기반복을 일삼게 된지 오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소년만화는 가장 '산업화'되어 들어왔기 때문에 한때의 큰 성공을 거두어 '만화의 얼굴' 역할을 할 수 있었고, 바로 같은 이유 때문에 산업 시스템의 부실 공사에 따른 급격한 쇠락을 겪고 있다. 문제는 허풍처럼 지나간 10년의 경험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었는가, 라는 것인데... 최근, 성인지를 표방하고 만들었으나 실제로는 (이제는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 지난 10년간의 소년만화지 제작패턴을 따라갔던 '웁스'라는 잡지가 무기한 휴간에 들어갔다. 적어도, '어떻게 하면 안되는지'라는 점 하나만큼은 아픈 수업료를 치뤄가면서 배워나가고 있는 중인 셈이다.

소년만화가 지난 10여년 동안 한국만화의 산업적 측면에서의 '주류'로서 인식되어왔다는 것은 그다지 부인할 수도, 부인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엄연히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고 존재하는 '다른 주류'들을 모조리 무시하고 잊어버리면서까지 그 속에서 도취되어 있다면, 무척이나 곤란한 일이다. 산업 시스템으로서의 소년만화가 삐걱거림으로써, 작품으로서의 소년만화가 쇠락해버린다면 그것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 것인가.


5. 앞으로도, 소년만화를 계속 보고싶다.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소년만화는 전체 만화 속에서 상당한 지분을 차지할 것이다. 여하튼 지구의 절반은 남자들이고, 그들중 상당수가 어떤 의미에서든지 '성장기의 소년'이다(에...-_-;;;). 남성 우월적인 현행 사회구조들이 극적으로 바뀌지 않는 동안만큼은, 여전히 소년만화가 산업적으로도 '주류'의 위치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욕망에 충실하고, 공식화되고, 산업화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는 그다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만큼 대상 독자들에게 보편적인 쾌락을 주면서, 그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장치들이 새련되어졌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그러한 소년만화를 즐겨보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산업적 모순이나 기타 문제로 인하여 '우수한' 소년만화가 줄어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한국이라는 맥락에서 그것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현실인식이다. '소년만화'의 시대는 한국에서는 사실은 10년여밖에 안됐고, 소년만화는 90년대 중반 잠시 이루어졌던 '100만부 전설'의 후광을 업은 덕분에 대외적으로 만화의 산업적 가능성의 '얼굴역할'을 하고 있는, 특정한 만화 방식 한가지일 따름이다. 이 점을 인정하고, 다른 영역의 만화들(순정만화든, 성인만화든, 실용만화든, 시사만화든, 유럽만화든, 미국만화든 뭐든!), 나아가 만화 바깥의 영역들(굳이 다 열거하기도 귀찮다!)과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훨씬 더 많은 교류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소년만화 = 만화 전체'라는 식의 인식은 어떤 의미에서든 간에 장르 전체의 자살행위에 불과하다. 교류는 내용적인 측면에서, 산업적인 측면에서, 혹은 기타 어떤 측면에서나 모두 필요하다. '100만부가 팔리던 시절도 있었지...'라는 식의 향수나, 그것에 기반한 이상한 화풀이는 단지 허무할 따름이다. 소년만화와 소년만화판의 닫힌 틀거리를 이제 사방팔방으로 열어제껴야 한다는 말이다.

노파심이지만, 물론 이 말은 게임의 만화화에 매진하자라는 식의 또다른 자살행위로 뛰어들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소년만화가 계속된 자기 표절과 근친 상간으로 생명력을 잃어버리기보다, 다시 다방면에서 에너지를 흡수하여 '내 소년적인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활력을 창조해냈으면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소년만화를 계속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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