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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그랬어] 어떤 잡지가 아이들을 의식화한다. 그런데....
이 만화 봤어? 03/11/12 03:49 깜악귀
사회에 존재하는 어떤 사상진영이든, 아이들을 사로잡으려는 노력은 매우 가상한 데가 있다. 그것은 교사가 아이들에게 이라크 파병에 대해 반대하는 교육을 하거나 마르크스주의 계열의 노동관계를 설명하려는 광경을 목도하는 사회의 반응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아이들에게 그런 것을 가르치다니!" 이것은 마치 '반칙'이나 금기가 깨어지는 순간을 목격한 사람의 흥분과도 같다. 재미있는 일은, 같은 이야기를 어른에게 한다고 해서 그것이 범죄적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당신의 말은 옳을 수 있다"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만은 그렇지 않다. "물들인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이들이 아직 자신이 어떤 사상을 가질지 스스로 결정하고 있지 못하다 - 말하자면 '주체'가 아니다 - 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특정 사상에 대해서 무방비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공식적이지 않은 특정 사상에 기반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말하는 것은 '반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가르침이든 특정 사상에 기반하지 않은 것은 없다. 그것은 교육의 위험성과 동시에 필요성이다. 아이들은 무엇이든 배워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무엇이든 배울 수 있다. 아이들은 '주체'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직 '주체'가 아니라는 미완의 파워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어른들을 그들에게 매이게 하고 끊임없이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드는 파워이다.

90년대 후반, 몇 군데의 중도계열 잡지에 글을 쓰며 칼럼리스트로 이름을 알린 김규항이 아동용 만화잡지를 창간한다는 소식을 몇 달 전에 들었을 때 든 생각은 그가 만화 [스노우캣]의 종이 단행본에 쓴 평문(혹은 추천사)이었다. 인터넷 상에서 무료로 제공되면서 인기를 끈 이 만화는 작가를 대변하는 스노우캣이라는 캐릭터가 방 안에서 뒹굴뒹굴 혼자 노는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이는 정치적인 80년대 학번 세대의 눈으로 보면 납득하기 힘든 쁘띠 부르주아의 탈정치적 행태와 맞닿아 있는 작품이었는데 의외로 뒤켠에 실린 김규항의 평문은 매우 호의적이었다. 그것이 이외로 여겨졌던 것은 자신과 동년배(소위 386) 중 누군가가 그런 만화를 그렸다면 그가 반드시 그것을 난도질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B급 좌파라고 칭하는 금욕주의적이고 성마른 계율의 전도사....

그는 [스노우캣]에서 자기 세대와는 대조되는, 자신 이후 세대의 신선함을 발견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든다. 오염되지 않은 신세대의 순수성과 예민함. 오우, 물론 내가 그 소위 '신세대'에 한 발을 걸치고 있는 세대이니만큼 윗 세대의 이런 식의 시선은 솔직히 아주 역겨운 것이지만. 좌우간 나는 그 속에서 자기 세대에 대해서는 거의 피해의식이 뒤범벅된 예민함을 보이면서도 자기 아래 세대에 대해서는 꽤나 관용적일 준비가 되어 있는 김규항을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김규항의 글이 실리던 [야후매니아]가 있었다. 만화잡지라기 보다 만화가 실리는 중도진보 문화지 정도에 속했던.

그리고 내 눈 앞에 바로 무려 '아동잡지'인 [고래가 그랬어]라는 잡지가 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만일 운동가가 아이들에게 집착한다면 그 이유는 몇 되지 않는다고. 아이들이 좋아서거나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그 쪽이거나, 아니면 그냥 어쩌다보니까라거나. 그게 아니라면 남은 이유는 하나다. 그것은 동시대에 대한 환멸과 그에 대한 보상욕구이다.

잡지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 편집자를 중심으로 논의하는 것은 안 될 말이며 부당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 잡지를 펼쳤을 때의 받았던 느낌을 설명하는데 이것을 빠뜨리기는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고래가 그랬어]는 김규항이라는 인지도를 가진 특정한 개인이 아니었다면 만들어내기 힘들었을 기획품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잡지에 참여한 사람들의 면면으로 인해 더욱 부각된다. 발행인/편집인인 김규항을 비롯, 고 이오덕과 윤구병 등이 편집자문이다.

참여한 만화가들의 목록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바로 그 민중미술의 최호철이 전태일을 그린 만화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은 어른의 눈으로 보아도 대단한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만화 외에도 여러 가지 만화관련 집필과 활동으로 잘 알려진 박무직이 그의 출세작인 [무일푼 만화교실]의 아동판으로 보이는 [쉽고 재미있는 무일푼 만화교실]로 참여했다. 그 외에 인디만화계열의 간판 중 하나인 이경석, [비빔툰]의 홍승우 등. 이 정도의 작가를 모아서 만화잡지를 만든다는 것은 큰 프로젝트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잡지는 불황에 시달리는 만화계 내에서는 대단히 용기있는 시도로 주목받을 것이다. 이것은 고급작가들을 모아서 만든 고급담론의(진보담론) 아동만화잡지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잡지는 사실상 [보물섬] 등과 같은 만화잡지라기 보다는 만화를 주요전달매체로 선택한 아동잡지로 보는 것이 옳다. 잡지의 표지에서도 '어린이 교양 월간지'라고 쓰여있을 뿐이다. 또한 [고래가 그랬어]는 '의식화'라는 매우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제작된 아동잡지이다. 위에서 기획자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것은 이 아동만화잡지가 마치, 한 선배의 말을 빌리자면, '아동용 [아웃사이더]'의 만화판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아웃사이더]가 [야후매니아]의 틀을 빌린 채로 아동화한 것이다. 여기에서 만화라는 매체가 선택된 이유는 글을 읽게 하는 것보다는 만화가 더 아이들에게 부담없이 다가갈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만화라는 매체 혹은 장르로서의 정체성은 이 잡지에서는 그다지 중요해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만화작품 그 자체의 재미보다는 그 만화가 아동들에게 전달해줄 메시지가 더 우선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만화가 아무리 정보전달이 수월한 매체라고 해도 재미없는 내용이 만화로 그린다고 재미있어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부담없이 읽힌다는 것 뿐. "교과서를 쉽게 읽는다"고 해서 교과서 자체가 재미있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잡지에 실린 몇몇 '교육적인' 만화와 글들은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 아니 한계라는 말이 좀 부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기획자들이 의도한 것이 정확하게 아동용 대안 교과서의 만화화라고 여겨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획자들이 의도한 것이 이것이라면 이 잡지는 해당하는 목적을 대체로 충족시키고 있다. 하지만 필자에게 이것은 좋지 않다기 보다는 부족한 지점이라고 생각된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또 다른 교과서인가에 대해서 회의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쟁이 싫어요"라는 노래를 어린이들에게 부르게 하는 것이 과연 효과적인 의식화인가? 교과서에서는 군대에 가서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혹은 세계인구 100명 중에 몇 명이 문맹이고 몇 명이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지역에 살고 있는지, 몇 명이 비만이고 몇 명이 영양실조인지를 설명해주는 것이 과연 훌륭한 의식화인 걸까? 맥도날드가 왜 좋지 않은 음식인지를 가르치는 것은?

이 잡지의 진보적인 지식들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려 드는' 지향이 과연 어떤지를 판단하는 것은 미묘한 지점이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이것은 "어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려 드는" 방식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마지막 장에 실려 있는 퀴즈에 가서는 멈칫하게 된다.

1. 전쟁이 일어나면 항상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1) 관광객 2) 여성과 어린이 3) 대통령 4) 부자

필자라면 "전쟁에 따라서 다르다"라고 답할 수 밖에 없다. "올바른 답"이 정해져 있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아, 물론 2)가 정답이다. 나도 안다. 그런데 저런 질문과 답을 제공받고 나면 항상 "전쟁이 나면 항상 여성과 어린이가 가장 큰 피해를 받아야만 하는 거구나"라는 식의 생각이 들어버리는 것은 필자가 삐뚤어져서인지 모르겠다. 나는 이 잡지가 어른들의 강박을 아이들에게 주입하려 한다는 인식을 받는다. 물론 국정교과서도 그렇다. 그러니 국정교과서의 편향성에 대립해서 무엇인가를 하는 게 왜 나쁘냐고? 아, 물론 나쁘지 않다. 하지만 "부족하다". 이것은 80년대 의식화의 문제, 그리고 90년대에 들어서 끊임없이 벽에 부닥친 대학가 의식화의 문제를 조금도 해결하지 못한 채 타겟을 아동으로 바꾼 것은 아닌가.

내가 대학에서 의식화에 대해서 공부하였을 때(파울로 프레이리) 의식화는 자기 안에 억압된 이야기를 끄집어내어서 문자화하고 이성화하며 세계의 구조와 매카니즘에 대해 깨우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읽었다. 그것은 인간을 대상화하는 사회에 반대하여 인간을 주체화하려는 모든 시도라고 했다. 그래, 머리로는 알았지만 그런 의식화를 실제로 해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의식화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세뇌'의 뉘앙스를 풍기는 채로 부정적인 감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렇다면 이 잡지가 의도하는 의식화는 무엇인가.

"머리가 큰 녀석들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이제 세상에 오염되어서 받아들이질 않으니 순수한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이야기를 해봐야겠다"라는 식이라면 문제다. 이 잡지는 그런가, 혹은 아닌가. 독자들의 시선으로 파악해볼 일이다. 하지만 난 이 잡지의 '의식화'가 과거의 의식화가 가진 한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한 산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동의 의식화, 혹은 아동의 계몽화는 이렇게 편의적이어서는 안 된다. 당장 누가 탄압받고 있는지 억압받고 있는지 가르치기 이전에 세계를 감각하는 방식부터 가르쳐야 하는 것이 아닐까. 다른 나라의 현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법을 가르쳐면 전쟁이 나면 누가 가장 많이 피해를 보는지 스스로 깨우칠 수 있다. 혹은 깨우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 아닌가?

교사 : 전쟁이 나면 여자와 어린이가 제일 많이 죽어요.
     그래도 여러분들은 전쟁이 좋아요?

아이들 일동 : 아니요!

일단 복잡한 이야기는 이만 접도록 하자.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위에 언급한 성격의 만화와 글들이 이 만화의 중요지향이라고 생각되긴 하지만,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만화작품'들이 실려 있다. 그것은 잡지의 기획자들은 "재미있는 잡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도 한 켠에서 멈추지 않은 것 같다. [고래가 그랬어]가 잡지로서 재미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데, 이 잡지가 가진 정치적 지향과는 별개로 이것은 의무적으로 사야 하는 이론서나 교과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재미있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다. 이 점에서의 배려로 잡지는 굳이 의식화에 치중하지 않더라도 선정적이지 않은 재미를 중시한 만화부터, 적당히 교훈적인 내용까지 포괄하고 있다.



가장 관심을 끌 만한 최호철의 [태일이]를 보면 굳이 아동교육만화라는 꼬리표가 달리지 않아도 될 만한 작품이다. 그의 풍경과 인물묘사는 그야말로 대가라는 찬탄이 아깝지 않다. 화면구성과 인물묘사의 구체성은 이 작품을 상투적인 전기만화의 수준을 넘어서게 한다. 아이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어른들도 읽으면서 유치하다는 인상을 받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홍승우의 [신세기 소년 파브르]는 1회로 봐서는 그다지 메리트가 없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무직의 [쉽고 재미있는 무일푼 만화교실]은 안정감 있게 제 몫을 하고 있지만 그 몫이 큰 것은 아니다.

[강철소년 크람바]는 굳이 아동용이라고 하지 않아도 재미있지만 실제로 아이들 손에 쥐어졌을 때 그들이 원하는 내용인지는 모르겠다. 이 점은 [수학귀신]이나 [열무낭자]도 마찬가지로, 작가들의 개성적인 내용과 화법이 잘 표현되어 있고 그로 인해 재미있지만 과연 아이들이 좋아할지는 검증이 필요하다. 이 점은 이경석의 [을식이는 재수없어]도 마찬가지다. 그의 작품군 중에서도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거니와 더 문제는 그의 작품들에 비해서 특별히 연령대가 낮은 층을 타겟으로 한 인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 작가들이 "아동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가"의 문제와 연관이 있지 않은가 싶다. 이 문제는 이경석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며 위에서 언급한 최호철의 만화에도 마찬가지다. [태일이]가 좋은 작품인데다가 아동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고는 해도 본격 아동만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잡지에 기용된 만화가들은 평소에 아동만화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작가들이 아닌데, 그 점은 아동만화의 대체적인 기본공식이 - 원색 위주로 복잡하기 않게 채색하며 얼굴과 눈이 크다 - 그다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베스트셀러가 되어버린 [만화 그리스로마 신화]를 확인해보라). 물론 그들의 평소 만화보다는 칸이 크고 선이 간략화되어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가들이 아동만화에서 자신의 재능을 드러낼 수 있는 작가들인지에 대해서는 의심이 든다 .

[고래가 그랬어]는 용감한, 주목할 만한 시도임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잡지가 '의식화'라는 점에 있어서 2000년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형태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아동잡지'라는 부분에 있어서 새로운 형태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라는 것은 아깝지만 사실로 보인다. 둥근돌에 색칠하는 공작이 소개되어 있는 페이지를 보고 드는 생각이다. 요즘 아이들이 이 잡지를 읽고 직접 돌을 주워다가 물감으로 색칠하는 것을 하고 싶어할까? 엄마가 옆에서 함께 시킨다면 모를까. 요즘은 다들 컴퓨터 게임하고 놀지 않나? 아름답고 건전하며 의미있긴 하지만 뭔가 공허하다. 아이들이 돌맹이에 색칠하며 놀게 하고 싶어하는 것은 어른들의 향수이고 어른들의 욕구다. 컴퓨터 게임이 돌맹이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른들의 발상이다.

전체적으로 어른들을 위해 만든 아이들 잡지라는 인상이 잘 지워지질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적 성향의 아동잡지(만화를 주요 전달매체로 하는)"라는 것은 주목할 만한 아이템이고 이 잡지가 참여한 사람들이 이름값을 하는 잡지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무려 2000년대에 필요한 것이 80년대 식의 의식화던가? 당신 세대들은 한 발자욱도 더 나간 것이 아니구나... 아, 물론 내 세대에는 아무 것도 없지. 나도 안다.


이 글은 20003년 10월 19일에 작성하여 중등 [우리교육] 11월호에 게재된 "고래가 그랬어: 2%보다 약간 더 부족한 고민과 형식"을 보완-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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