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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캔디캔디'/미즈키 쿄코,이라가시유미코 - 절망하지 않는 한국순정의 외래신
여성만화프로젝트 - NO.01 04/06/10 07:11 메리메리

[캔디 캔디] (완결) / 쿄코 미즈키 글 / 이가라시 유미코 그림
단행본 : 하이북스 (애장본 5-완) 2002


캔디 스토리는 굳이 순정만화에만 한정시킬 것 없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명랑한 여자주인공 연애 스토리의 원형이다. 소설에서 찾아보자면, 당장 여성문학의 고전 샤로트 브론테의 [제인에어]가 [캔디캔디]와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아로 대변되는, 가난하고 불행한 출신의 그녀들은 성품만은 참으로 명랑하고 올곧아서 남성 주인공들과 로맨스를 이루어낸다. 여성문화의 핵심을 차지하는, 로맨스를 다루는 작품들은 크게 두 가지로 갈라지는데,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이나 [베르사이유의 장미]처럼 심각한 비극적 분위기파가 있고, 다른 한 편에는 [제인에어]나 [캔디캔디]처럼 희망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밝은 분위기의 작품들이 있다. 1979년 3월, 전 10권(일신사)으로 (해적판이지만) 발간된 [캔디캔디]는 로맨스를 다룬다는 점에서 한국 여성 독자들의 욕망을 충족,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동명 애니메이션이 수차례 방영됐다. [캔디캔디]의 등장을 시작으로 한국 순정만화 시장이 지금과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됐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명랑한 주인공 캔디와 캔디 주변의 다양한 개성을 지닌 미남들과의 로맨스 양식은 그야말로 교과서적인 한국 순정만화 코드다.

그런데 여자주인공들의 특성이나 로맨스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제인에어]와 [캔디캔디] 같은 고전들, 그리고 캔디의 등장 이후 쏟아져 나온 명랑파 순정만화들은 일정 부분 다르다. 캔디 스토리의 만화들에는 짜증날 만큼의 천진함을 갖춘 여자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그녀들은 모든 일을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판단하고 행동하지만(그리고 그 점이 희한하게도 냉미남에게 어필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실행할 힘이 스스로에게 없음을 인지하지 못하며, 아무리 불행해도 세상이 자기편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러나 정작 캔디형 여주인공의 원형 [캔디캔디]에는 짜증스러운 천진함과는 약간 거리가 먼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캔디는 분명 어리고 천진한 면이 있어서 훗날에 대한 아무 생각 없이 아드레이 할머니와 학교 교장과 같은 권위적인 인물에게 반항한다. 또한 테리우스와 테리우스 어머니와의 상봉에서도 멋대로 끼어드는 등 사고를 잘 친다. 그런데 그런 캔디의 모습은 나이 든 독자들에게 마저도 짜증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며, '그럴 듯하다'라는 감정이입을 강하게 불러일으킨다. 이는 주변의 모든 남자들이 캔디를 좋아하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후반부에 닐이 캔디를 좋아하는 과정까지도, 원래 장르적 법칙이 그러니까 좋아하게 된다는 식의 설명을 넘어서서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순정만화의 고전으로서의 [캔디캔디]가 어떤 성취를 이루었기 때문일까.

사실 답은 뻔하다. [캔디캔디]가 탄탄한 구성을 갖추고 있고, 장르의 원형이 될 만한 캐릭터들을 설정해서 그들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캔디가 아무리 착하고 천진하게 굴어도, 주변 남자들이 다 캔디를 좋아해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일차적으로 [캔디캔디]가 독자들에게 공감을 일으키는 이유는 드라마틱한 스토리전개에 있다. 캔디와 테리우스의 사랑 이야기가 주요 골자를 이루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전부가 아니다. 각각의 스토리라인은 독립해서 소장르의 원형이 될 만큼 선명한 소재와 플롯 구조를 가진다. 캔디라는 인물에 대한 하나의 총체적인 서사라는 인상을 준다. 부모님 없이 버려진 고아(캔디)가 천대받다가 귀족의 신분까지 상승하지만 이에 안주하지 않고 간호사로 자수성가하는 이야기도 있고, 여자친구들끼리 오해를 극복하고 우정을 다지는 이야기(캔디, 애니, 패트리셔)도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어쩔 수 없이 사고로 잃은 아픔을 치유하는 이야기(안소니와 스테아의 죽음)도 있다. 지금의 시점에서는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들 수 밖에 없는 이 모든 이야기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드라마틱하게 전개되어 캐릭터들의 고뇌와 갈등을 증폭시킨다. 물론 스토리 전개의 주요한 연결고리는 캔디의 옛사랑에 대한 회상이다. 동산 위의 왕자님에 대한 환상은 안소니와의 만남으로 이어지고, 죽은 안소니를 그리워하다가 테리우스를 만나게 되고, 테리우스와 헤어진 뒤 그녀를 위로하는 알버트씨가 재등장하는 것이다. 때문에 [캔디캔디]를 지배하는 주 정조는 사랑의 성취가 아니라 헤어짐의 아픔과 엇갈리는 운명의 숙명성, 그리고 그 고통을 수용하고 다시 살아가는 캔디의 건강하고 활기찬 감정이다. 그래서 "그녀(스잔나)를 행복하게 해 줘요."라고 테리우스에게 독백하며 눈물을 흘리는 캔디의 모습이, 명랑하고 천진한 캐릭터라는 처음의 설정에도 불구하고 조화를 이루어 독자들의 심금을 울린다. 감정이입을 이루는 다른 요소로는, 이 이야기가 이국적이면서도 어설프지 않은 시공간을 갖추고 있어, 비현실적이고 작위적인 느낌을 지울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캔디캔디]의 원작이 마즈키 교코의 소설이라는 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캔디가 보여주는 여성상은 20세기 초반의 직업을 가지기 시작한 서구 여성을 대변한다. 미국의 시골에 진짜 있을 법한 고아원 포니의 집, 엄격한 귀족 문화와 수도원 학교 등의 풍경, 캔디가 간호사가 되어 일하는 남루한 병원, 전쟁시의 암울한 사회적 분위기는 꽤 리얼한 맛이 있다.

따라서 [캔디캔디]가 전혀 예쁘지 않은(그림으로 봐서는 꽤 귀엽다. 설정이 그럴 뿐이다) 여자 주인공 캔디와 냉미남 테리우스, 온미남 안소니를 내세워서 명랑파 순정만화의 장르적 법칙을 세운 원형이라는 점 이외에도, [캔디캔디]가 순정만화 역사에 남을 만한 작품이자 다양한 장르로 분화되기 전의 총체적인 결합을 담은 고전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캔디캔디>는 예측 불가능한, 엇갈리는 사랑의 숙명성과 삶의 무상함을 전달하지만 그 숙명과 무상함의 심리는 평범한 개인의 심리적 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며, 어떤 장르적 법칙을 도식적으로 따라가지도 않는다. 즉 개별적인 것들이 분화되기 이전의, 훌륭하게 결합된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개별적인 관계들이 지닌 미묘한 심리의 분석이나, 엇갈리는 사랑이 일으키는 질투와 선망, 증오 같은 것은 [캔디캔디]에서 기대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과 악/사랑과 미움 같은 이분화된 속성들이 구체적으로 잘 결합되어 있어서 도식적인 작품으로 치부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캔디-테리우스의 스토리 바톤을 이어받은 수많은 순정만화들이 고생 끝에 확실하게 남자주인공과의 연애에 성공하게 만들어주거나 아예 실패를 통해 비극적인 감정을 흩뿌려 예상되는 결말로 이어진다면, <캔디캔디>는 캔디에게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헤어짐을 감내하면서 살아보라고 말한다. 캔디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계속 보내는 경험을 할 뿐이다(캔디를 좋아하는 남자치고 팔자 잘 풀리는 사람 없다). 그녀는 '지나가는 내 청춘, 내 사랑'을 애도하는, 숙명성을 대표하는 테리우스처럼 과거를 애도하며 현실을 살아간다. 비행기에서 격추된 스테아의 죽음과,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패트리셔와 캔디의 고통스러운 모습도 마찬가지다. 안소니를 그리움으로 간직하는 것처럼, 스테아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도 잊을 수 있다고 말하는 캔디의 모습은, 쉽게 그려낼 수 있는 경지는 아니다. 결말부의 포니의 동산을 달려가며 울지 말고 살아가자며 웃는 캔디의 모습은, 이 모든 묵직한 이야기들을 명랑함으로 커버하는 캔디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쓸쓸하다. 그래서 지금은 패러디가 될 만큼 촌스럽게 여겨지는 순정만화 특유의 고전적인 양식들 - 꽃이 흩날리는 배경이나 눈물로 인해 번쩍이는 눈, 과도하게 비트는 포즈 등이 [캔디캔디]에서는 그다지 부자연스럽게 여겨지지 않는다. 가끔 닭살이 돋기는 하지만, 아무튼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잘 읽을 수 있다. [캔디캔디]의 로맨스 구조가 지닌 재미와 생동감 때문에 캔디 스토리는 하나의 코드가 되었지만, 작품의 다른 장점들이 잊혀지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사족이지만 해피엔딩이 없는 게 그렇게도 아쉬웠는지, 캔디캔디의 결말을 덧붙인 한국 만화책도 나돌았다. 결말은 캔디와 테리우스가 다시 만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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