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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다시 문제는 창작이다 - (3) 만화 창작 환경과 시스템의 지형도
만화는 흐른다 04/04/20 05:12 halim
■ 만화제작총론 - 만화판을 구성하는 제영역과 상황들

만화는 창작과 제작 혹은 생산의 영역에 묘하게 중첩되어 있는 분야인 것처럼 보인다. 작가의 창작과 창작물을 일정한 방식으로 가공하여 단행본 혹은 다른 포맷의 것으로 상품화하는 과정이 다양한 방식으로 맞물려있기 때문에 만화에서 이 두 가지는 상호 영향을 미치면서 고유한 특성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여기에서는 만화판을 구성하는 다양한 영역들을 창작작시스템 측면에서 일별하면서 각각의 특징과, 상황, 창작자와 만화창작시스템의 관계를 조명해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각론에 들어가기 전에 만화판 전반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의미에서 두 가지 정도의 문제제기를 하고 가도록 하자.

한국만화는 어렵지 않다?!

우선 첫 번째는 한국만화가 어렵다 혹은 한국만화산업이 위기에 처했다는 인식은 과연 제대로 된 것인가라는 부분이다. 이러한 류의 인식은 최근 몇 년간(실은 90년대 들어서 계속) 만화계를 지배하고 있는 듯 보인다. 무엇이 어떻게 어렵고 하는 세세한 근거에 대한 논의는 이 글의 범주를 벗어나므로 일단 제쳐두더라도 이러한 단순한 인식이 어디로부터 온 것이냐를 일단 지적할 필요가 있겠는데 이는 아마도 90년대 초반 이후 본격화된 ‘잡지-단행본시스템’을 한국만화의 전부 혹은 거의 대부분으로 보는 관점에서 온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한국의 만화판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일본만화의 시스템을 그대로 들여온 ‘잡지-단행본 시스템’이 현재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만화를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위축되는 분야가 있는 만큼 다른 쪽에는 새롭게 재인식되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영역들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만화

두 번째는 1인창작과 집단창작 혹은 1인예술과 종합예술의 경계선에 애매하게 자리잡고 있는 만화의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창작자 1인이 창작의 전과정을 책임질 수 있고 그러한 경향이 지배적인, 흔히 1인예술이라 불리는 장르가 있고, 다양한 재능을 가진 여러 인력이 단계별로 결합하여 최종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종합예술이라 불리는 장르가 있다.

만화는 어느 쪽일까. 기존의 일반관념에 의하면 만화는 ‘1인예술’이다. 대중의 인식이 그러할 뿐 아니라 만화에서 작품성 혹은 예술적 가치를 발굴하고자 하는 담론의 영역에서도 암암리에 1인예술로서의 만화를 전제로 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의 만화담론에는 ‘프로덕션 시스템에서 도출될 수 있는 걸작’에 대한 비평적 잣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여하튼 1인 예술로서 만화에 대한 일반과 달리 현실적으로 작가 한사람이 창작의 전과정을 책임지는 경우는 일부에 불과하다. 프로덕션 시스템의 경우를 논외로 하더라도 잡지연재작을 위해 구성되는 화실과 스튜디오들, 그림작가와 글작가의 결합, 이야기구성 혹은 콘티단계에서부터 관여하는 편집자의 역할 등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작가성이 명확한 영역의 만화들의 경우에도 엄밀한 의미에서 1인 창작이라고 하기 힘든 부분이 다수 존재한다. 우리가 어떤 작품의 작가에게 찬사를 보낼 때 그 찬사는 구체적으로 그 작가가 수행한 어떤 작업에 대해서 주어지는 것일까? 작가성을 인정받는 메인 창작자를 제외한 다른 스태프들은 무엇을 했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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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상기한 몇 가지를 염두에 두고 현재 한국의 만화판을 구성하고 있는 각 영역들을 제작/창작시스템의 차이를 위주로 하여 일별하도록 하자. 우선 최소한의 산업적인 가치를 가지고, 일정수준 이상 제도화 되었으며, 자체적으로 하나의 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일곱 개의 영역을 다룰 것이며, 비평적인 의미 혹은 만화장르의 다양성 차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타의 영역들은 좀 더 간단히 언급할 것이다.

우선 표1을 보자. 일곱 개의 영역을 여덟 가지 항목에 걸쳐서 비교하였다. 기존에 이와 같은 작업이 이뤄진 적이 없었으므로 낯설은 용법이나 구분이 있을 것이고, 논란의 여지도 있다. 표를 해석하기 위한 약간의 보충설명을 하자면 ‘작가성’이란 특정할 수 있는 자연인으로서의 작가가 창작의 전반적인 과정과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경우를 말하며, 예술적 성취 혹은 사조로서의 작가주의와는 무관하다. ‘저작권’ 항목은 최종생산물의 저작권이 누구에게로 귀속되는지를 보여준다. 프로덕션 시스템의 경우는 당연하게 여겨질 것이다. 학습/아동만화에서 이 부분은 아직 일반적인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만화창작의 일반적인 경우에 비추어 작가에게 저작권이 귀속된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하나, 성공적인 아동/학습만화의 대부분은 출판사(혹은 기획사)에서 제안하여 기획, 내용구성, 제작, 최종적인 결과물의 완성도까지 책임지고 작가(그림작가 & 스토리작가)에게는 필요한 부분에 대한 용역을 주는 방식으로 제작되고 있으며 이 경우는 출판사가 저작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제작규모에서 ‘소규모’는 작가를 중심으로 몇 명의 문하생과 어시스턴트로 소규모의 스튜디오를 구성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참여인력의 규모에 대해 일반화 하여 이야기 한다면 스튜디오 창작의 경우 대개 3~5명 선, 즉 하나의 방 안에서 작업의 전 과정이 이뤄지는 수준이며, ‘대규모’ 즉 프로덕션 시스템에는 10명 이상 수 십명이 팀을 이뤄서 필요에 따라 작품제작의 각 단계에 투입된다. A급 뎃생맨과 배경맨을 보유한 유능한 팀은 주로 신문연재물 등에 투입될 것이다. 스튜디오와 프로덕션은 단순히 참여인원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그 구성원들이 출판사/프로덕션의 직원으로서 (월급 받고) 일하는 것이냐 아니면 출판사와 독립적으로 작가개인에게 협력하는 것이냐에 따라 갈리게 된다.

유통경로에서 신문만화와 온라인만화의 경우 단행본출간시의 유통경로는 일반 서점용 단행본과 동일하다. 학습/아동만화도 기본적으로는 일반 단행본과 동일한 유통망을 거치지만 할인점, 편의점 같은 몇 가지의 유통경로가 추가된다. 현재 만화유통망은 일반서적 유통망과 분리 되어 있으며 다시 코믹스(소설류 포함)총판, 잡지(만화 및 일반잡지 포함)총판, 대본소용 일일만화 총판이 독립적으로 혼재되어 있는 상황이어서, 이러한 유통망의 비일관성이 만화시장의 활성화를 저해하는 중요한 요소로 지적되고 있는 상황이다.

< 표1 - 각 영역별 제작시스템 비교 >


☞ 일일만화와 프로덕션 체제

일일만화라는 명칭은 매일 1권 이상씩(=보통은 격일로 두 권) 선보이는 출간속도에서 연유한 것으로 일판만화 혹은 공장만화라고도 불리며 침침한 만화방, 자욱한 담배연기,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성인남성들의 공간으로서 한 때 만화를 이야기 할 때 사람들이 떠올리는 어떤 상징적인 이미지를 구성하고 있다.

프로덕션 시스템이 언제부터 현재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만화방 문화가 50년대부터 존재했던 만큼, 만화방과 함께 대량생산하는 만화들도 공존해왔을 것이지만 시대별로 그 성격은 조금씩 다르다. 70년대 이전의 대량생산 만화는 편수에서 현재의 프로덕션에 뒤지지 않지만 작품당 분량이 현격히 적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수십 명이 투입되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또한 연간 수십 작품을 내놓는 다고 하더라도 출판사에 직원으로 소속되어 창작을 하는 방식보다는 명목상으로라도 유령작가를 설정하여 개별 작가가 창작하는 형식을 고수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듯이 별도의 건물을 가진 문자그대로의 ‘공장’으로서 프로덕션 체제가 자리 잡은 것은 80년대 들어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시장이 크게 확대되어 개별 프로덕션들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일 것이다. 이현세, 박봉성 및 수십 명의 작가(=프로덕션 경영자)들은 휘하에 팀제로 구성된 수십 명 혹은 백 명 이상의 제작진을 운용하면서 신문만화, 잡지만화, 대본소만화 저마다의 필요에 맞추어가며 연간 수백 권을 내놓기에 이른다.

일일만화와 프로덕션 시스템은 80년대 후반 이후 지속적으로 위축되어 왔으며 현재는 전체 10여개 프로덕션(2004년 들어 대본소용 신작을 내놓은 프로덕션은 5개 정도이다), 대본소 1,800여개 수준으로 위축된 상태이다. 여기서 더 축소되면 시스템이 돌아갈 수 있는 하한선을 넘어가는 셈이므로, 향후 1~2년 안에 전통적인 포맷의 일일만화(갱지, 적은 분량, 단 2주 만에 전질 완결 등)은 사라지고 대여점과 대본소를 동시에 공략할 수 있는 성인용 단행본 등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 신문만화

한국만화의 제 영역 중 가장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왔고, 가장 폭넓은 대중을 소구하고 있는 분야이다. 신문만화는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중 첫 째는 한 바닥이내의 분량(일반적으로 한 칸 혹은 네 칸)으로 만들어지는 1인 창작의 시사, 풍자만화이다. 시사만화의 신문게재는 한국만화역사의 가장 앞선 시기 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상당기간 동안 만화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시사풍자만화는 1988년 박재동의 한겨레 그림판 이후 은근한 비유에서 직설적 수사로 단순한 선에서 현실의 빡빡함을 드러내는 복잡한 선으로 변모하며 목소리를 높여왔고 현재도 상당한 위상을 갖고 있지만, 산업적인 측면에서 조명할 수 있는 부분은 그다지 많지 않다.

두 번째는 오락성을 강조한 극화만화들이다. 70년대 일간스포츠에 게재되기 시작한 고우영의 삼국지를 비롯한 일련의 역사만화들을 기점으로 할 수 있겠고, 강철수, 한희작, 방학기 등이 이 영역에서 활약해 왔지만 이들이 좀 더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을 전후하여 각 스포츠신문들이 만화면 확장경쟁을 펼치면서부터이다. 단행본기준 4~6쪽의 극화만화를 일간연재하기 위해서 프로덕션들이 본격적으로 참여하였고, 이를 통해 스포츠 신문 만화면의 상업성과 오락성은 더욱 강화되었다(두 차례 만화사냥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 것은 덤).

세 번째는 1인 혹은 스튜디오 창작을 통해서 만들어지며 한 바닥 혹은 그 이상의 분량, 오락성과 캐릭터성의 강화, 컬러사용, 일상성과 시사성의 결합을 주된 특징으로 하는 일련의 생활만화들이다. 스포츠투데이 창간과 함께 연재되기 시작한 김진태의 ‘시민쾌걸’은 이 분야를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1인 창작이며 그로 인한 생산성의 한계에 대해서는 단순한 선, 면채우기식 컬러링, 주2회 연재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시사풍자의 역할을 상당부분 기존 시사풍자만화로부터 뺏어왔으며, 오락만화로서는 기존 극화연재물 보다 더 넓은 독자층을 소구하고 있다. 또한 인터넷시대에 맞추어 온라인 연재를 통한 시너지 효과 창출 혹은 온라인만화로부터 작가충원 등의 전략을 취하고 있기도 하다.

덧붙이자면 신문만화는 작가에게 안정적인 지위를 보장함과 동시에 - 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신문연재 작가들이 있음을 상기하라 - 가장 높은 수준의 고료를 지급하는 영역이다. 이는 신문사들이 기존 잡지고료나 단행본 인세수준에 무관하게 신문 면당 제작비를 기준으로 고료를 책정하기 때문이다.

☞ 서점용 단행본

서점에서 유통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단행본을 말한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온라인 및 각종 지면에 연재된 후 단행본화 되는 경우도 같이 고려할 수 있다. 그 외에 잡지-단행본 시스템의 그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제작, 출간되며 단지 ‘잡지게재’의 단계만 제외된 대여점용 코믹스판형 단행본들도 있으나 이는 넓게 보아 잡지-단행본 시스템에 포함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전 검증 없이 서점에서 바로 독자들과 승부하기 위해 출간되는 단행본의 비율은 좀 더 낮을 것이다.

서점용 단행본의 출간은 70년대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되어 왔으므로 일정한 흐름으로서 일반화하기는 힘든데, 70년대 많은 만화 독자들에게 전설로 남아있는 클로버 문고 시리즈와 유사한 만화문고들이 어린이들에게 환영을 받았으며, 비슷한 시기에 박수동, 고우영 등의 성인대상 만화들이 간간히 서점용으로 선보이면서 주목받았던 것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서점용 단행본이 만화판에서 주류를 차지한 적은 (온라인 만화 중 에세이툰이라 불리는 부류, 학습만화의 탈을 쓴 아동만화에 대해서는 따로 또 이야기 할 것이므로) 아직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고, 서점에서 사서보는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책들이 지금 정도로 출간되기 시작한 것도 최근 3~4년의 일이다.

서점용 단행본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주체들은 기존의 만화메이저가 아닌 신생 만화전문출판사 또는 새로운 사업영역을 찾아 들어온 일반출판분야의 대형 출판사들이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좋은(작품성 뿐 아니라 책으로서 고려할 수 있는 모든 측면에서 좋은) 작품에 대해서는 높은 판매고가 나타나는 긍정적인 피드백의 체제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이후 점진적으로 확장될 것이다.

☞ 잡지-단행본 시스템

지금은 원래 그랬던 것처럼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지만, 만화잡지에 연재하고 연재분량을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방식이 대두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아 1988년 최초의 만화주간지인 아이큐점프가 등장한 이후 이다. 그 이전에 전문만화잡지나 만화게재 지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잡지출판사에서 연재진행에 맞추어 바로바로 단행본으로 내놓는다든가 하는 식의 시스템적 고려가 없었으며, 애초에 연재만화 중 아주 일부만이 단행본화의 행운을 누릴 수 있었으므로 잡지에 만화를 연재하는 것과 그것이 이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1988년 아이큐점프가 창간되고 비슷한 시기에 최초의 순정지인 르네상스도 창간되었지만 잡지-단행본 시스템이 만화판을 석권하게 된 것은 조금 더 기다려서 1993~1994년 즈음이었다. 드래곤볼, 슬램덩크 등 일본만화의 히트작들과 100만부 클럽을 구성하는 소년만화들이 정식단행본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연간 출간종수는 세 자리에서 네 자리로 자릿수가 틀려졌다. 자릿수가 틀려진 것은 출간종수 만이 아니어서, 그 이전에 전국적으로 수 백 곳에 불과했던 만화대여점도 비슷한 시기에 큰 폭으로 증가하게 된다.

잡지-단행본 시스템이 최근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은 다분히 ‘제 발등을 찍은’ 측면이 강하다고 볼 수 있는데, 간단히 말해서 단기간에 지나치게 많은 종수를 밀어낸 것이 화근이었던 것이다. 잡지에서 미처 소화하지 못한 수천종의 작품이 대여점 수요만을 노리고 매년 쏟아져 나왔으며 이로 인해 잡지-단행본 시스템의 한 축인 잡지의 입지가 취약해졌다. 반대로 가장 강력한 마케팅 수단으로서 잡지에 의존할 수 없는 단행본은 이전만큼의 종당 판매고를 기할 수 없게 되었고 그에 대한 출판사들의 대답은 ‘출간종수를 더욱 늘리는 것’ 이었다. 그리하여 악순환 시작.

☞ 아마추어/동인 만화

만화가 문화예술 분야의 다른 장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발한 분야를 찾아본다면 아마추어/동인만화의 영역일 것이다. 아마추어 만화동호회들이 생겨난 것은 1980년대 초반이었지만(최초의 아마추어 만화동호회로 간주되는 PAC이 창립한 것은 1983년이다) 당시의 동호회들은 프로작가로 가기 위한 전단계로서 스스로를 자리매김했으며, 각개약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므로 초기 얼마동안은 시스템적 측면에서 그다지 언급할 부분이 없었다.

그 후 전국적인 만화동호회들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 ACA(아마추어 만화연합)가 생겨난다. ACA는 매년 2~3회 자체적인 만화페스티벌과 판매전을 주최했으며 이를 통해 서서히 ‘데뷔를 위한 중간단계’로서 뿐 아니라 자체로 어떤 목적성을 가지고 활동하는 아마추어 만화판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90년대 후반으로 오면서 2차창작물의 비중 확대, 팬시상품 판매, 프로작가의 동인활동 지속, 좀 더 본격적으로 사업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아마추어 시장에 개입하기 시작한 코믹월드의 등장 등 여러 가지 변화가 계속 된다. 이를 통해 현재의 아마추어/동인만화는 ‘프로로 가는 중간단계’의 이미지를 거의 벗어버린 상황이다.

장르를 막론하고 아마추어창작의 영역은 보통 뚜렷한 흐름을 감지할 수 없는 파편화된 상태로 머물러 있거나 혹은 상업화, 제도화와 무관한 지점에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만화와 같이 아마추어창작의 영역이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오버그라운드가 부럽지 않을 만큼 활성화, 상업화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 것 이다.

아마추어/동인만화에서 좀 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부분은 아마추어/동인만화판의 활동이 창작과 소비의 이중적인 성격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 이다. 이는 동인만화에서 2차창작의 부분이 매우 강조된 결과로 자체로 만화를 창작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원전을 소비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으로서 ‘표현언어로서 만화’가 이후에 전체 문화예술지형도 상에서 어떤 입지를 차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하나의 단서가 될 것이다.

☞ 학습만화? 아동만화?

70년대 이전의 아동/학습만화는 아마도 가장 먼저 해외만화의 세례를 받은 분야였을 것이다. 일본에서 수입, 번역된 컬러판 과학만화, 미국에서 들어온 성서, 역사만화들이 고급스런 장정으로 소개되었으며 나름대로의 입지를 확보하였으나, 기본적으로 한국만화계의 당시 흐름과 유리되어 있었으므로 큰 의미를 갖지는 못했다. 아동/학습만화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이원복이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를 선보이면서부터 일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여러 가지 한계점이 지적되기도 하지만 이원복의 대학교수라는 신분과 맞물려 상당히 오랫동안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는 만화의 오락성, 저급성, 유해성에 관한 문제제기에 대한 강력한 반례 중 하나였다.

박흥용, 신동우 등 알만한 작가들을 기용하여 제작된 10권 20권 분량의 만화한국사 등 몇 가지의 전집물, 은근히 스테디 셀러로 자리잡은 한자학습만화들, 교과서를 만화로 보는 것을 내세운 만화교과서 등 아동/학습만화의 맥은 꾸준히 이어져왔으나, 현재와 같은 규모로 확장된 것은 ‘공전의 히트’라는 표현이 걸맞는 홍은영의 ‘그리스로마신화’이후 이다. 전질 1천만부 이상이 팔렸다고 하는 이 작품은 법정소송에 휘말려 있기도 하지만 그 와중에 튀어나온 800억 운운의 수치들이 ‘만화도 돈이 된다’는 인식을 세간에 심어주는 듯하니 이점 에서는 그다지 나쁠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기의 제작시스템 비교에서도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출판사에서 기획하고 작가가 그림을 그려주는 현재의 시스템에서 저작권문제가 아직 모호하게 남아있는 편인데 우선은 이것이 깔끔하게 정리되어야 작가와 출판사가 모두 만족하며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이 영역에서 출간되는 만화단행본들은 외형상 학습만화의 체제를 취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오락거리로서 만화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넘어서 학부모들에게 거부감 없이 선택되기 위하여 그러한 방식을 취하고 있을 뿐 내용면에서는 아동만화로 간주해도 무리가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 온라인만화

우선 출판만화를 스캔하여 온라인에 올린다고 해서 온라인만화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하자. 온라인에 게재할 목적으로 온라인의 환경에 맞추어 제작된 만화의 첫걸음은 1997년 권윤주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재하기 시작한 ‘스노우캣’이다. 제작비 절감, 게재공간 확보 배포비용 최소화, 창작의 자유도 극대화 등 ‘고료’에 대한 부분을 제외하면 창작자에게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을 가지고 있는 온라인 만화는 순조롭게 그 폭을 확장해왔고 2002년 들어 폭발하며 독자적인 계를 형성하게 된다. ‘스노우캣’으로부터 온라인만화의 대통을 이어받은 ‘마린블루스’, 출판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둔 ‘파페포포 메모리즈’와 12트럭 쯤 되는 비슷한 성격의 에세이툰들. 온라인만화에 깊이와 교양을 더한 드문 사례인 ‘십자군 이야기’, 인디의 감수성을 옮겨온 ‘메가쇼킹알타리센터’, 인터넷 폐인문화의 역동성을 대표하는 ‘김풍넷’ 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2002년 말 출간된 ‘파페포포 메모리즈’의 성공 이후 - 물론 온라인만화의 단행본화는 ‘스노우캣’이 먼저였고 꽤 주목을 받았었지만, 새로운 시장을 열지는 못했다 - 온라인만화는 출판만화와 긍정적인 결합을 하게 된다. 작가입장에서는 출판사의 눈치를 볼 것 없이 독자와 직접 상대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출판사 입장에서는 ‘온라인에서 선보이고 독자들의 반응을 끌어내는 것’ 까지가 작가의 몫이며 출판사는 온라인에 선보이고 있는 무수한 만화들 중 반응이 좋은 것을 고르기만 하면 되므로 나쁠 것이 없었다. 물론 출판사에서 먼저 작가를 설득하여 온라인상에 선보이도록 한 후 인지도를 제고하면서 단행본 출간을 준비하는 좀 더 전략적인 경우도 적지 않다.

☞ 다른 영역들

경제논리를 들이대기 곤란하다는 없다는 이유로 ‘기타’가 되어 버린 몇 가지 영역들이 있다.

- 카툰 : 만화의 제 분야 중 가장 국제화 된 분야가 카툰일 것이다. 상업만화가 미국, 프랑스, 일본의 3대 만화문화권을 중심으로 편제되어 있는 반면, 카툰전시회에서는 아프리카, 동유럽, 러시아, 인도, 남아메리카 작가들의 작품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전시회나 작품집/화집의 형태로 선보이지만 순수미술이 그렇듯이 돈 문제와는 촌수가 좀 멀다.

- 인디만화 : 적어도 동아시아 만화문화권에서는 인디만화와 아마추어/동인만화가 구분된다. 인디만화는 상업화와 대중적인 저변확대를 꾀하고 있는 아마추어/동인만화와는 확실히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으며, 비록 배는 고플지라도 다수의 재능 있는 작가와 좋은 작품을 배출하고 있다. 화끈(Hottoon), 악진(AKzine), 바카스, 파마헤드(pamahead), 코믹스(comix)와 같은 이름들을 기억해두도록 하자.

- 실용만화 : 오락성과 학습성이 혼재되어 있는 일반적인 학습/아동만화와 달리 만화언어를 채용하였지만 오락성을 가급적 배제하고 실용성을 강조한 책들도 있다. 생명공학, 의학, 건축학, 수학, 회계, 경영의 제 분야에서 간간히 보이는 ‘만화의 포맷을 취한 실용서’들은 신기함과 반가움을 제공해주긴 하지만 굳이 ‘장르만화’의 관점에서 파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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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논란의 여지는 많다.

이제 까지 이야기한 것은 말하자면 일반론이다. 섣불리 결론을 내리기 보다는 여기서 더 나아가 만화의 미래에 관한 생산적인 논의를 끌어내기 위해 만화창작시스템과 관련된 몇 가지 화두를 던져보는 것으로 마무리를 대신하기로 하자. 이제까지의 주마간산 식 흩어보기가 해답을 끌어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Q. ‘집단창작’ 혹은 ‘프로덕션 시스템을 통한 제작’의 결과물에 대한 비평적 잣대를 어떻게 들이댈 것인가 또 거기에서 얻어지는 비평적인 평가는 어디로 귀속될 수 있는가?

h - 예컨대 영화라면 수백 수천 명이 참여하더라도 ‘작품성에 대한 평가’의 대부분은 감독[=연출자]가 가져가게 된다. 만화의 경우는 어떤가? 프로덕션 시스템을 통해 도출된 걸작-만약있다면-에 대해 우리는 어떤 평가를 내리고, 그 찬사를 누구에게 돌려야 할까? 김성모에게? 아니면 그의 유능한 뎃생맨에게?

Q. 1인 창작의 미명하에 한 사람이 스토리, 연출, 작화의 전 과정을 책임져야 하는 현재의 제작방식을 고수하면서 상업적, 산업적, 예술적인 한계를 돌파할 수 있을까?

h - 예를 들어 실제로 한 작가가 이 모든 것을 다 하고자 한다면 그는 자신의 모든 인적자본과 시간을 온전히 창작[=문자그대로의 노동]에 투입하여야 할 것이며 이는 장기적으로 작가의 창조력을 고갈시키고 작품의 완성도를 저해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반면 충분한 완성도와 재충전의 요건을 충족시키면서 이 모든 것을 다하고자 한다면 지나치게 낮은 생산성으로 인해 전업작가로서 자신의 입지를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Q. 현재의 만화제작시스템 상에서 블록버스터 전략은 가능한가? 힘들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h - 한국의 상업만화에서 블록버스터 전략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도는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일 것이다. 원래 계획의 1/3로 축소되어 있는 지금의 ‘천국의 신화’말고 프로덕션 시스템의 가장 뛰어난 제작진을 투입하여 전질 100권으로 기획하고, 8억원에 이르는 선인세계약과 서점용의 고급스런 장정, 일간신문광고를 포함한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1997년 이전의 ‘천국의 신화’ 말이다. 그러나, 한국만화 블록버스터의 첫 번째(그리고 마지막)시도는 유감스럽게도 시장의 논리가 아니라 예상하지 못했던 외부요인(1997년의 만화탄압)으로 중단되었다.

Q. 우리는 만화를 원 소스로 하여 성공한 영화, 드라마, 게임, 애니메이션의 사례를 많이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그 반대의 경우는 거의 없는가?

h - OSMU에서 one source가 되기 위해서는 무수한 실패사례를 포함하는 거대한 콘텐츠 풀의 구축이 전제되어야 한다. 현재의 만화는 이 점에서는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 연간 1만권, 종수로도 3~4천을 헤아리는 출간규모를 보라. 반면 multi use의 한 축이 되기 위해서는 기획력과 자본력을 투입하고 그에 상응하는 return을 기대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만화시장/출간종수=종당매출액’의 공식을 상기하라! 만화는 이 조건을 충족 하는가 혹은 어떻게 하면 충족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것을 만화의 속성으로 인정하고 나름대로의 길을 찾아야 할까?


* 계간만화(2004 봄)의 기사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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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참고사항

계간만화(2004, 봄)에 게재된 특집의 (두고보자와 공유하지 않는) 나머지 글의 축약본을 보기 위해서는 http://www.qcomic.com/qmanhwa/q2004spring.php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자료실에서는 만화산업 및 콘텐츠 산업전반에 관한 자료를 열람할 수 있다. http://www.kocca.or.kr/data/news.jsp?strBbsid=1


○ 관련사이트

코믹월드 (http://www.comicw.co.kr)
아이세움 (http://www.i-seum.com)
만화중심 (http://www.comiclife.net) - 폐쇄되었다!
: http://dugoboza.net/tt/rserver.php?mode=tb&sl=8 (co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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