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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페르세폴리스'와는 상관없는 '새만화책' 이야기 - 꼬셔주지 않는 만화 이야기
만화는 흐른다 05/11/04 16:53 깜악귀
최근 '새만화책'이라는 출판사에서 출간된 [페르세폴리스]라는 만화가 있다. 이 만화는 이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한 여성작가의 어린 시절 회고담이다. [쥐]와 비교될 만한 물건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일단 '만화로 진지한 무엇인가를 하는 것 자체를 일단 환영하는 사람'들 대다수의 지지를 받는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만화 평론가 박 모씨나 캡 모씨 블로그에도 빠짐없이 오르고 있고, TV에도 짧게나마 잠깐 나왔다. 검색엔진을 돌려보면 신문보도도 간간히 되고 있다. 나 자신도 예외가 아니어서, 아는 기자에게 이 만화를 다루어보는 것이 어떠냐고 권한 바 있고 실제로 기사가 나와 버렸다.

[페르세폴리스]가 일정량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확실한 듯 하다. 그러고보면 [페르세폴리스]는 만화 출판사 '새만화책'의 출간물 중 가장 주목받은 책인지도 모르겠다. 알라딘이나 예스24의 만화부문순위를 보면 대박 정도는 아니지만 판매고도 나쁘지 않다. 그건 반가운 일이다.

잠깐 출판사 '새만화책' 이야길 해보자. 직접 방문한 적도 있긴 하지만, 이 만화 출판사는 미술적 감성으로 접근한 '만화'를 주로 출간한다는 느낌을 준다. 말하자면, 미대생 감성이 꽤 옅보인다는 뜻이고, 이건 시각적 감성면에서 일반대중문화에 비해 상당한 고급한 취향을 자랑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달리 말하면, 이 고급스러움은 만화적인 천박함에 기반해 있지는 않다. 이 말이 곧 만화는 천박해야 한다'라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다만 대중만화적인 전통보다 미술적인 전통에 입각한 스타일이 주를 이룬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감성은 만화의 대중적인 전통을 배제한 채로 만화를 사유한다고 할까. 요컨데 '만화를 예술로서 전유'한다는 느낌을 준다. 또 다른 말로 하면 '만화는 시각아트의 하위 장르다' - 라고 주장하는 느낌의 출판물들이 꽤 나온다는 말이다.

만화는 시각아트의 하위 장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리면 그렇게 되고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리면 별로 그렇지 않게 된다. 혼종성은 어차피 만화의 장점 중 하나이다. 다만 나는 이 출판물들이 시행하는 미술적 감성과 만화와의 조우가 '만화의 독자성을 탐구'한다기 보다 만화와 미술의 경계영역을 탐사한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실 나는 미술이나 시각 아트 계열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사람이므로 이러한 시도에 대한 나의 흥미도는 그리 높지 않다.

아, 물론 이러한 시도는 모두 훌륭한 것이다. 어떤 시도든 간에, 일정 퀄리티에 도달하면 그것은 알려질 만한 가치가 있다.

'새만화책'의 작품들은 퀄리티가 높은 편이다. 내가 구매한 최근 작품의 예를 들어보면, 정철의 [EDEN]은 일단 작가가 그 그림에 들인 작화의 집착 하나만으로도 구매할 만한 작품이었다. 말풍선을 사용하지 않고 내러티브를 전달하겠다는 의지가 신선하기도 했거니와 (이게 성공적이었느냐와는 별개다) 작화에 들인 공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이었는가를 피부로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결국 소장하고 싶어서 샀다. 그러나 이것이 여러 사람들에게 돌려지면서 읽힐 '보편적 가치'를 획득하고 있는가는 또 별 문제이다. 무슨 말이냐면 나는, 그걸 샀지만, 주변에 추천하진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읽고 싶어할 것이냐에 확신이 없었고, '꼭 읽어야 할 가치가 있다'라고 말할 구석도 (내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 보편적 가치가 없으면 어때. 모든 만화가 다 그래야 할 필요는 없어. 만화는 아트일 수 있는 것이고, 그건 어떤 감성과 스타일의 전위일 수 있다는 말이야. 일반인의 시각에서 이해받을 수 있어야만 가치가 있다 - 라는 건 너무 상업적인 발상이야 - 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내 말이 그 말이다. 나는 새 만화책의 출판물이 '출판물로 나올 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 확실하게 지지한다. 어디선가 누군가는 저런 출판물을 내야 하고, 누군가는 확실히 그 만화를 보고 감흥을 얻을 것이다 - 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서적이란 단순히 상품이 아니며, 문화이며, 유산이고, 혹은 진실에 대한 신앙의 간증이고, 책을 사는 것은 그에 대한 십일조를 바치는 것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또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만화의 내러티브 전통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으며, 누구나 단번에 격한 감성으로 캐릭터의 정서를 한방에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물론 그 과정에서 그 형식과 스타일은 복잡화되어 왔지만, 특히 일본만화가 그렇다. 나는 만화의 대중물로서의 형식진화는 - 작가주의적인 측면에서의 형식진화보다 그 퀄리티와 치열함 면에서 몇 배나 강력했다고 믿는다.

그런데 미술의 감성은 이런 식으로 발전한 것은 아니다. (적어도 미술이 자기 스스로가 '예술'이라고 인식한 이후에는 그래왔다) 하고 싶은 말인즉슨, '새만화책'의 만화들은, 대중물로서 치열하게 발전해 온 만화의 장르적 어법이나 내러티브의 힘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배제한 채로 미술만의 독자적인 감성을 만화에 대입하려 하는 것이 많았다고 본다. 그런데 그 감성을 미술학도가 아닌, 혹은 그에 친화적인 감성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 과연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새만화책에서 발간한 바 있는 '계간만화'의 초기 몇 회인가가 그랬다.

모든 실험이나 시도는 어떤 의도와 어떤 퀄리티로 행해지든 옹호되어야 하지만, 모든 실험이나 시도가 가치를 인정받고 주목받는 것은 아니다. 요컨데 새만화책의 출판물들이 마이너한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이것은 소위 '작가주의 만화가'에 대해서 가지는 공통적인 불만이기도 하다. 사실 '작가주의 만화'라는 말처럼 안 좋은 말도 없다. 이 말인즉슨, 결국 '시장에서 환영받지 않을 만화를 열심히 그린다'라는 말 외에 뚜렷하게 포인트를 두고 보아줄 만한 구석이 없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조금 이야기를 돌려보자. 사실 '작가주의 만화'를 보고 싶어할 만한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내가 그 만화를 보아야만 할 이유'를 친절하게 제공받기를 원한다.

이 사람들의 심리란 "자 날 꼬셔봐"이다. '독자'란 기본적으로 심각한 왕자병/공주병 환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일 년에 몇 권 사서 읽지도 않는 주제에, 자기는 급이 낮은 책은 읽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소위 '작가주의 만화'가 파고 들어갈 수 있는 심리적인 빈틈이 생긴다. 그러나 자기가 '찾아' 읽지는 않는다. 아, 심심해, 뭐 특별한 거 없나, 재미난 거 없나 - 하고 사는 주제에 자기가 '찾아' 읽지는 않는다.

작가가 꼬셔주어야 한다. 그런데 새만화책의 출판물들은 '꼬셔주지' 않는다. 좋은 작품들인데, 꼬셔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연애가 되질 않는다. 야오이 용어로 하면 작가는 영원한 공이고 독자는 수가 아닐까. 어느날 밤 땀에 젖은 웃통과 음욕을 과시하며 덮쳐 들어야 하는 것이다. 독자가 '이러지 마세요'라고 하면서도 지갑을 열고 그 책을 사버리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요소의 부재는 새만화책의 최근 출판물인 [그림자 소묘]의 경우, 조금 나았지만 어느 정도 비슷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만화는 (새만화책 출판물 답지 않게!) 비쥬얼의 압박이 그다지 없고 내러티브가 간소하고 편안하다.

[그림자 소묘]는 내러티브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과 작품의 시각적 스타일이 성실하게 조응하는 작품이다. 작품의 각 요소가 간소하면서도 보편적인 메세지 하나를 전달하기 위해 서로 차분하게 대화하고 합의점을 찾아나간 흔적이 보인다. 새만화책 출판물 답다고 할 만한 미대생 감성이 있지만, 그것이 보편적인 이야기로 충분히 녹아 있다.

꽤 괜찮은 소품이었고, 나는 이걸 샀다.




주인공은 소묘를 하는 여중생이다. 그녀는 소묘를 해나가면서 '사물의 존재감'이라는 것을 깨우치게 된다. 이 과정의 디테일이나 성실함이 상당히 좋은, 편안한 힘을 발산하고 있다. 요컨데 작품의 그림체 (도판을 보라)와 소묘를 해나가는 여중생이라는 소재는 서로 조응한다. 결국 그렇게 주변의 정물을 묘사해나가면서 자기 자신을 발견해나가고, 주변도 새롭게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박하고 편안하면서 성실한 이야기, 그러면서 장르의 어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이야기는 의외로 흔치 않다. 좋은 작품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충분히 했다. 그러면 질문 하나.

그런데 이 만화는 '무엇'인가?

'작가주의 만화'

내가 지금 '뭘 그리든 사람들이 '이건 OO다'라고 알아줄 만한 방식으로 그려라'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꼭 그래야만 할 필요도 없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가장 건강에 좋고 퀄리티도 높을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이건 내 생각일 뿐이고.

다만, 나 역시 꽤나 오만한 독자라서, 이 만화가 좀 더 나를 꼬시기 위해 노력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그건 '대중친화적'으로 그리라거나 '좀 더 상업적인 포인트'를 두고 그리라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내 말이 어떤 만화가 자기를 사야 할 이유를 독자에게 설득해나갈 수 있는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인 것만은 틀림없다. 이것을 갖춘 만화가 반드시 좋은 만화는 아니다. (나쁜 만화도 많다) 그러나 이것을 갖춘 만화는 일단 독자에게 '말을 거는' 만화다. '말을 거는' 만화는 독자에게 자신을 전달할 기회를 더 많이 제공받는다. 그러면 감동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이런 문제는 작가가 '제작 단계'에서부터 이미 반영하고 있어야 하는 문제이므로, 작풍이나 작품 제작 태도에 이미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내 말은 상당히 폭력적으로 들릴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작가들은 사는 사람을 위해 자기 작품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순수예술이 아니라 절반쯤은 진열대에 걸려 있는 '상품'이기도 하다면, 적어도 절반의 손이라도 내밀어서 나를 꼬셔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걸 다른 사람에게도 권할 만한 확실한 가치를 나에게 던져주었으면 좋겠다.


왠지 이 만화들은 나에게 '난 너와는 별로 상관없다'라는 포스를 풍긴다고 할까? 사고 싶은데도 왠지 망설이게 한다. (왠만한 서점에서는 구하기 힘들다는 것도 문제긴 하다) 물론 정말 나랑은 상관없는 작품일 수는 있다. 그러나 작가는 그래도, 여러 사람들에게 읽혀지길 원했다고 - 나는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지금 영국국립 미술관에 걸려 있는 수많은 고매한 회화들도 사실 당대에는 당대의 대중을 '꼬시려고' 수없이 노력했을 것이 아닌가? 나는 어떤 종류의 예술이건 작가는 서비스 업종이거나 유흥업 종사자로서의 속성을 어느 정도 갖고 있고,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싫은 사람은 안 그러면 그만이지만.

새만화책의 출간물이 꽤 팔리고 있기 때문에 약간 좋은 기분을 타서 이렇게 주절주절했는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주 안 좋은 이야기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사실 몇 년 전에 번역서인 [헤이, 웨잇]을 산 적이 있는데 이건 상당히 좋은 책이었다. 다만 겉보기에는 너무 허접해보인다는 점(책의 제본이 중학교 노트 같다고 할까?)과 유통망이 좁다는 점으로 인해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안 팔린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지만, 책을 구입하면서도 꽤 아쉬웠던 것이다. 좀 더 꼬시려고 노력했으면 이 작가는 더 많은 사람이랑 연애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 하는 아쉬움이었다.

새만화책의 이런 특성은 다른 출판물에도 어느 정도 녹아 있다. 작가가 꼬시는데 재능이 없어도 출판사는 부킹을 시켜주느라 난리를 쳐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연애를 하고 싶어 죽겠는데 한번도 사귀어본 적이 없는 친구를 테이블 앞으로 끌어내듯이. 새만화책의 책은 좋은 작품들이 많지만 언제나 이런 점에서 부족하지 않나 싶다.

물론 출판에 대한 철학이야 각자마다 다를 것이고, 새만화책의 출판인은 이런 생각에 찬성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냥 독자로서의 불만을 토로하는 정도로 이런 글을 쓰고 있다고 읽어주면 좋겠다.

[페르세폴리스]는 오랜만의 물건이고 최근, '중동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하다'라는 것을 조금 자각하게 된 한국인들에게 더욱 그런 듯 하다. 요컨데 이 만화는 관심있는 분야의 독자를 '꼬시고' 있는 듯 하다. 비록 만화판에서 물건이라는 것은 일반 서적만큼 확실한 판매고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이 꽤 입소문을 타긴 했지만 그게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한 것은 아니듯이.

뭐 그래도 일단 팔릴 만큼 팔렸으면 좋겠다. 이 글이 독자가 출판사에 구애하는 글인지 원망하는 글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페르세폴리스]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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