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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00 여성만화프로젝트 시작, 주제설정과 논의 « 이전글 | 다음글 »
 
NO.00보론| '새로운 여성세대'와 순정만화, 그리고 여성만화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의
| 2004년 05월 03일에 깜악귀 쓴 글
 
 

1. 최초의 '여성'세대가 가진 만화와의 공모 - 여성문화의 형성기와 만화

한국의 순정만화, 순정만화시장과 그 독자군이 지금의 형태를 가지기 시작한 것은 1979년 [캔디캔디]의 유입부터라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주1) 소년만화시장이 지금의 형태를 갖춘 것이 80년대 말~90년대 초반 [드래곤볼]의 유입부터라고 생각할 때, 소녀들이 훨씬 앞선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소녀들이 더 성숙하기 때문에..." 라는 것도 분명 훌륭한 답이긴 하지만, 그보다는 80년대 당시 모든 문화소비 분야에 있어서 여성들이 치명적으로 도태되어 있었다는 것이 더 훌륭한 답이 될 것이다. 교육받을 기회를 얻지 못한 데다가 성인여성, 문화적 소비를 죄라도 짓는 것으로 생각하는 성인여성들은 대부분 문화적 소비에 익숙하지 않았다. "여성의 욕망과 정서"로 소비하는 문화와 상품이 광범위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따라서 소녀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성인여성의 컨텐츠를 수용할 수는 없었다.

소녀들은 새로이 뭔가를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80년대 들어 [캔디캔디]와 함께 [베르사이유의 장미] [롯데롯데] 등 일본소녀만화 유입과 함께 폭발적으로 형성된 일군의 순정만화독자군들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순정만화를 보기 시작한 이 시기의 소녀들은 한국에서 최초로 "여성이기 시작한" 세대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최초로 "여성으로서의 욕망을 가지고 소비하기 시작한" 1세대이다. 동시에 이들은 보편적으로 고등교육을 받기 시작한 첫 여성세대이기도 하다. 이 세대가 대학에 들어갈 때 즈음, 페미니즘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금도 만화는 여성으로서의 욕망을 가장 집요하고 충실하게 반영하는 예술장르이다. '여성들이 보는 영화'가 대규모로 유통되는 일은 없지 않은가 말이다. 하여튼 한국에 등장한 최초의 본격적인 여성소비군들의 시초로 순정만화에 매료된 소녀들을 언급할 수 있겠다. 이제 사회적으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여성문화에 순정만화의 입지는 지배적인 것이었다. 왜 하필 만화였는가. 만화라는 매체에 각인된 사회적 지위와 역할모델에 의한 것이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음지에서 유통되는 데다가, 그다지 교육을 받지 않고서도 쉽게 내용이 전달되는 데다가, 혼자서 몰래 보는데 적합하고 삐른 시간 내에 돌려보기에도 적합하다. 무엇보다 "거기에서 아무도 심오한 이야기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등.

좌우간 만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정받지 못한 무리들의 욕망을 서사로서 발현하여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매체로서 육성되었는데, 한국에서도 이러한 일군의 순정독자들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주2)

 

 

 

여성의 년도별 대학입학 수치 그래프이다. 1980년과 1985년 사이에 대학입학은 급격히 증가하고 그 이후 역시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상승기는 순정만화독자의 형성기와 대략 일치한다. 이들은 "고등교육을 받은(받을)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을 보편적으로 획득한 최초의 세대이다. 이 세대들은 또한 일정한 수입과 문화소비력을 가지고 20대 초반-30대 초반에 걸치는 여성소비층을 형성하기 시작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이 소비층은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역동적인 문화소비층 중 하나이다.

 



2. 순정만화와 여성만화의 구분과 혼재

순정만화는 본격적으로 소비되기 시작한 최초의 여성문화였다. 굳이 확인하는 것이 우습지만 그런 의미에서 순정만화는 발생부터 '깊은 의미에서' 여성만화이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순정만화 이외의 "여성만화"가 뚜렷한 존재하지 않는 이유를 이러한 발생적인 측면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캔디캔디]를 비롯한 일본소녀만화와 그에 영향받은 한국의 순정만화가 다른 만화와 구분되는 변별점은 아마도 "로맨스"와 "장식미"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용의 현실적인 개연성이 무시하는 것도 불사하고, 정서표현의 과잉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러한 변별력은 "소녀성"에 결박되어 있다(여전히 순정만화의 주요독자층은 10대들이다).

성인남성만화는 그 이전부터 존재해왔는데, 아직까지 한국에서 성인여성만화가 뚜렷하게 형성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으로서 만화를 소비하기 시작한 것이 소녀들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성의 만화"인 "여성만화"는 "소녀들의 사춘기적 욕망을 반영하는" "순정만화"와 적어도 당시에는 동일한 것이었다. 현재까지도 "순정만화 = 여성만화"로서 암묵적으로 개념이 유통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 시기 만화에서의 여성성이 소녀성과 동일시되거나 혹은 혼재된 형태로 등장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대본소의 순정만화 중 몇몇은 그 작품에 적합한 연령대로 보아 성인여성과 소녀의 어중간한 사이, 10대 중후반을 아우르고 있는 경우가 있다(예를 들어 김혜린 [북해의 별]). 10대가 보기에는 상당히 성숙한 내용이 담겨 있지만, 성인여성이 보는 것이라 생각하기에는 소녀적인 경우이다. 그것은 소녀들의 순정만화가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는 여성만화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반면, 소년만화는 성인남성만화의 역할까지 커버할 필요가 없었는데, 때문에 소년만화가 순정만화에 비해 그 정신연령이 미숙했던 이유가 된다). 그리하여 한국에서 여성만화와 순정만화, 여성성과 소녀성은 분화되지 않고 혼재된 상태로 "순정만화"라는 명칭의 테두리 안에서 유통된다.

그러나 최초의 순정만화독자군들이 성장하기 시작하였을 때, 순정만화의 일부는 보다 높은 연령대의 여성들의 취향을 반영하게 된다. 순정잡지 [르네상스](88년 창간)에서부터 시작하여 명확하게 '여성만화'를 표방한 [나인](97년 창간)에 이루어 절정기가 된다. 소녀성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킨 여성만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순정만화는 '여성만화'로서의 가능성을 널리 선포했다. 순정만화는 발생부터 최초의 여성만화였으므로, 김혜린, 김진, 강경옥 등 기존의 '순정만화작가'에게서 '여성만화'로서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기존의 순정만화이면서 동시에 여성만화이기도 했던, 기존 순정만화 걸작들에 대해서 "여성만화"로서의 위상재정립이 이루어진다. 여기에는 만화를 보고 자란 여성소비 1세대, 혹은 최초의 페미니즘 세대 사이의 공모와 협업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Critical](1995~1997)과 같은 순정만화에 이념적 토대를 제공했던 인디-비평지의 예를 들 수 있다)

위에서 적어도 90년대 중반까지 "순정만화"는 발생적으로 "여성만화"와 혼재되어 있었다고 언급했다. 따라서 기존의 순정만화의 흐름에서 여성만화로서의 가치를 재정립하고, 최초의 여성만화라는 담론이 순정만화계 내에서 나오기 시작했던 90년대 중반과 [나인]의 창간 이후에는 소녀성에 결박되지 않은 "여성만화"가 본격적으로 "순정"으로부터 분리해서 발전을 도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많은 이진경 등 많은 "여성만화작가"들이 활동하던 장이었던 [나인]이 01년에 폐간됨으로서 증명되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순정만화"를 생각하던 "여성만화"를 생각하던 대부분의 작가들이 대중성보다는 작가로서의 자의식을 중시하였기 때문일까. 생각해보면 단순히 성인여성의 쾌락을 위한 여성만화는 그다지 굵직한 작품도, 성공사례도 없지 않았던가. 일본의 Lady's Comis 같은 형태라면. 혹은 순정만화를 보고 자란 독자들이 성장했을 때 만화의 독자로 계속 남아 있을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다. 이제는 옛날과 다르게, 굳이 만화가 아니라도 여러 가지가 있기도 하고. 만화의 위상 문제일 수도 있고. 어쨌든 이렇게 "여성만화"로서의 시도는 소강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한국의 여성만화는 순정만화와 거의 동일한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이전과는 달리, 순정만화는 여성만화로서의 위상까지 굳이 짊어지고 있지는 않다. 2000년대에 이르어 여성으로서 소비할 수 있는 문화는 만화 외에 다른 것이 얼마든지 존재한다는 것이 가장 뚜렷한 이유일 것이다. 이미 여성의 문화소비력은 사회적으로 상당히 존중받는 데까지 이르었다. 20대 여성의 문화소비력은 그 양적/질적 퀄리티가 대단히 높다. 그리고 그들을 위한 갖가지 문화상품들이 쏟아져나온다. 그리하여 "최초의 여성"이 아닌 "소녀들"의 소비는 "여성만화"로서의 위상까지 굳이 짊어지지 않은 채 마음껏 소녀성을 자랑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당연한 흐름이다.

소녀성에 집착하지 않는, '여성만화'를 위한 시도들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데, 격월간으로 한 발 물러선 [오후](01년 창간) 등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잡지에서 이전과 같은 역동적인 생명력을 발견할 수는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 잡지가 만화를 보지 않던 이 연령대의 여성들"을 공략하는 것 같지는 않다. 혹은 어릴 때 만화를 많이 보았으나 지금은 보지 않는 "구독자층"을 다시 공략하는 시도로도 보이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는 수요, 성장했지만 여전히 만화를 소비하는 20대, 30대 초반 여성들을 소비대상으로 삼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이 잡지의 존재는 아마도 안정적인 수요층이 존재한다는 증명으로 해석될 수 잇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여성만화의 시도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곧 창간될 30세 전후 여성을 대상으로 한 [허브](창간예정) 등을 통해서. 이 부문에는 아직 시도해보지 않은 포맷이 많이 있다.


3. 여성만화와 순정만화의 개념정립을 위하여

현재, 순정만화가 "여성만화"의 대표로서의 위치를 자임하고 있지 않고, 또 그럴 필요도 없는 시기이다. 80년대와는 달리, 순정만화는 그 소녀성을 마음껏 만끽하면 된다. 최초의 여성들, 소녀에게 쾌락을 허(許)한 매체로서 순정만화의 역사는 지금도 진행중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진행중일 것이다. 그리고 순정만화 내에서 여성만화로서의 위상을 찾기 위한 흐름도 진행중이다. 이 두 가지를 억지로 분리시킬 필요는 없지만, 더 이상 순정만화를 여성만화와 동일시할 필요는 없다. 작품 내적으로 볼 때 이진경의 만화와 박소희의 만화는 그 정서나 형식에 있어서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더 많다. 이것은 단순히 순정만화 내에 균열이 있다는 정도의 차이는 아니다. 지금까지 순정만화의 팬들은 순정만화의 사회적 위상을 올리고자 할 때는 이진경의 만화를 들었지만 그것은 순정만화의 주류는 아니었다. 그것은 "순정만화"라는 장르 내적 감수성에 적합하지 않은, 그 이름으로 묶이기 곤란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순정만화가 비록 여성만화였지만, 현재까지 순정만화의 전통 속에서 여성만화를 논하는 것은 적어도,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본다.

순정만화의 분가된 형태로 '여성만화'를 말하는 것은 통사적으로는 타당한 것이긴 하다. 이렇게 보면 '순정만화'는 '여성만화'의 상위개념이 된다. 순정만화가 나름의 힘을 얻자 그 영역 내에서 '좀 더 성숙한' 내용을 그릴 수 있는 작가와 그것을 받아들여주는 독자가 생겨났다. 여성만화를 표방한 [나인]이 창간되었을 때 그것은 순정만화의 전통이라는 본가 속에서 '분가'한 20대 전후의 여성(언니)으로 여겨졌다. 좀 더 높은 연령대의, 성숙한 여성만화를 원하는 작가나 독자라도 모두 '순정만화'를 심상의 고향으로 여긴다. 그들이 보고 자라난 것이 바로 순정만화이다. 여성성은 여기에서 순정성, 소녀성에 암묵적으로 동일시되는 경향을 가진다.

그러나 사실 본래의 분류는 '여성만화'의 대분류 아래 순정만화가 위치하는 것일 터이다. 지금까지는 여성만화의 돌출은 전체(순정만화)에서 부분(특정 '여성만화'들)이 분리-발전하는 형태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여성만화의 흐름은, 시초부터 제한된 부분(순정만화)으로 발생한 것이 에너지를 얻음에 따라서 전체(여성만화)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아야 히지 않을까 싶다.

여성문화가 목욕탕이나 화장실이 성별로 구분되어 있는 것과 같은 한정된 성의 폐쇄적인 문화가 아니라, 범사회적으로 가치있는 경험의 축적을 이루어왔다는 전제와 근거 속에서 여성만화는 사고될 수 있다. 여성공동체와 혹은 그 외의 범사회적 경험 속에서 여성에게 축적된 경험은 여성만화 속에서 '이야기로 구성된 자아'로 모습을 드러낸다. 여성들의 언어와 육체, 감수성으로부터 연원된 감각의 집적이다.

순정만화 역시 이 안에 있다. 그러나 순정만화가 이 전부의 감수성은 아니며 전부의 경험은 더욱 아니다. 순정만화로부터 여성만화를 설명하려는 것은, 여성문화의 특정한 형태로 여성을 설명하려는 시도일 것이다. 순정만화의 전통에 대한 제약 없이, 순정의 몫은 순정에 남겨 두고, 순정을 포함하거나 혹은 포함하지 않는 형태로 여성만화에 대해 사고하고 시도하고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주1) 몇 가지 논란이 있지만 적어도 [캔디캔디]가 순정만화의 잠재적 수요를 폭발시킨 발화점이었다는 것만은 대체로 인정되고 있다. [캔디캔디] 이후로 순정만화는 당시 소녀들의 보편적 문화로 부상한다. 아래는 송락현의 글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한국에 순정이라는 만화 장르가 생성된 배경에 대해서 70년대 중반 <들장미 소녀 캔디>의 국내 상륙을 원인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엄격히 말해 이것은 잘못된 사실이다. 왜냐하면 <캔디 캔디>가 해적판 만화로 출간이 되고 mbc tv를 통해 만화영화가가 방영되기 이전에 이미 한국에서는 순정만화로서의 골격을 갖춘 만화들이 존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만의 소녀만화 시장은 더 이상 명맥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것은 당시 주종을 이루었던 국산 순정만화들의 전반적인 작품 성향이 10대 소녀 계층의 감수성에만 호소하는 지극히 단순한 내러티브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TV보급에 따라서 소녀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었던 것은 다름 아닌 안소니와 테리우스였던 것이다. 이후 80년대 중반에 이르러 국내에서는 새롭게 순정이라는 장르가 태동하게 되는데 바로 이때부터 등단하기 시작한 황미나, 한승원, 김혜린, 신일숙, 김진, 이명신, 이정애, 박연, 강경옥, 오경아, 김미림, 원수연, 이은혜 등의 작가들에 의해서 한국의 순정만화는 마침내 골력을 갖추게 된다." 송락현, [송락현의 애니스쿨-(2권 에니메이션의 모든것)], 서울문화사 |
http://opendic.naver.com/100/entry.php?entry_id=124982

주2) 소년들의 경우, 성인남성 문화 외에 소년들의 문화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년성에 타격을 입은 경우이다. 최근 [시네21]에서 한국영화가 '소년성'에 집착하고 있다는 요지의 특집을 몇 차례 싫은 일이 있다. 즉 일군의 남성감독들이 '유년기'라는 테마에 암암리에 집착하고 있다는 말인데, 그것은 잃어버린 유년기에 대한 보상심리일 것이다. 지금 현재 한국에서 영화를 만드는 남성감독들의 주된 연령대가 30대 후반, 40대 초라고 볼 때, 그들이 말하는 유년기는 1980년 초중반과 겹친다. 이 시기 한국에서 "소년으로서" 소비하기보다는 '예비어른'으로서 성인남성의 콘텐츠를 몰래 수용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즉 90년대 초에 소년만화를 보기 시작한 소년들은 한국에서 최초로 "소년으로서 문화를 소비하기 시작한" 세대가 아닐까 한다. 그 이전에 [꺼벙이](길창덕)와 같은 '명랑만화'가 있었지만 그것은 저연령대를 위해 그려진 만화였다고 하는 것이 옳다. 소년들의 욕망을 대변하는 만화는 아니었다. 그들이 "소년"으로서 자신의 욕망을 소비할 수 있는 상품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90년대 이후로 한국의 인디씬의 모던록 밴드들이 "상실된 소년성"에 집착하기 시작한 것도 맥락이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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