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진 우, Korea.CNET.com 기자 |
'인터넷' 하면
막연하게 생각하지만 '도메인' 이라고 하면 갑자기 눈이 반짝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도메인에서 일확천금의 돈 냄새가 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도메인은 '잘 골라 사두면 떼돈을 버는 사이버 부동산' 으로 인식되어
왔고 실제로 꽤 짭짤한 돈벌이를 한 경우도 많다. 일부에서는 이런 '도메인
업자' 들을 '스쿼터(Squatter)'라고 부르며 비난하기도 하지만 이런
사람들을 말리거나 제재할 뾰족한 명분도 방법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상표권 침해로 제소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지만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려 상표권자들은 '차라리 얼마 주고 사오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았다. 도메인분쟁에
관한 국제적 통일 중재안 UDRP(Uniform Domain name dispute Resolution
Policy)는 이런 사이버 스쿼터들을 때려잡기 위해 ICANN이 도입한 최초의
분쟁조정 시스템이다. 우리말로는 '도메인분쟁 통일중재안' 정도로 해석되는
UDRP는 요약하자면 '도메인 분쟁에 관한 신속 재판과정'이다. UDRP는 1998년 6월 미국정부가 세계지적재산권기구(World
Intellectual Property Organization : WIPO)에 도메인과 상표권 분쟁에
관한 연구를 의뢰한 것이 그 출발이다. 99년 10월 ICANN이 UDRP 설립을
의결하고 첫 중재기관으로 지적재산권기구(WIPO)를 지정하면서 UDRP시스템이
가동되기 시작했고 UDRP가 적용된 첫 사건은 바로 전미프로레슬링 협회가
제소한 wordlwrestlingfederation.com 이었다. 물론 레슬링협회가 승소,
도메인을 가져갔다. 전세계에서 수천건의 중재의뢰가 쏟아져 들어오자
ICANN은 UDRP의 생명인 '신속성'을 지키기 위해 전미중재원(National
Arbitration Forum : NAF)등 3개 기관을 추가로 지정했다. 현재까지
2,000여 건이 UDRP에 의해 판결을 받았고 앞으로도 더욱 많은 사례가
접수될 것으로 보인다.(http://www.icann.org/udrp/udrp.htm
참조) 최근의 UDRP 판결이 언론에 보도된 사례로는 미국의
영화배우 줄리아로버츠의 이름을 딴 줄리아로버츠닷컴(juliaroberts.com)이
있다. 미국 뉴저지주의 러셀(Russel)이라는 사람이 98년 등록한 이 도메인이
자신의 상표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영화배우 줄리아로버츠의 신청을
UDRP가 받아들인 것. 이 사례는 현재 최초 등록자인 러셀 씨가 중재결과에
반발, 소송을 제기하는 바람에 미 법원에 계류중이다.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한 벤처기업 사장이 갖고 있던 조용필닷컴(choyongpil.com)
도 같은 사례로 접수되어 소유권이 가수 조용필 씨 측으로 넘어갔고
한국인이 갖고 있던 효성그룹의 도메인 효성닷컴(hyosung.com)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효성그룹이 회수했다. 이밖에 한국인이 관련된 도메인으로는
한 환경운동 단체가 선점했던 바이오필드(biofield.com)와 토익(toeic.net),
2002월드컵도메인(worldcup2002.com) 등이 있다. 모두 외국의 상표권자에게
넘어갔다. UDRP의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신속함과 비용의
저렴함이다. 1,500달러 남짓의 비용이면 몇 달 안에 원하는 분쟁조정
결과를 받을 수 있다. 물론 UDRP의 중재안이 법적인 강제력은 없고 패소한
쪽에서 법정에 이의신청을 하면 원점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지만 이 결정에
대해 반발을 해서 법정에 제소를 한 사례는 단 한 건 뿐이다. 99% 이상이
UDRP의 결정에 '깨갱' 하며 꼬리를 내린 것이다. 이렇게 낮은 항소율을
보인 재판 시스템은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다. 결정에 대한 집행 또한 신속해서 판결 후 10일
이내에 원고측의 항소가 없으면 ICANN이 자동으로 도메인의 권리를 이전시켜버린다.
자신의 도메인이 남의 손에 들어간 것을 안타까워하던 상표권자들로서는
당장에라도 만세를 부를 만큼 고마운 시스템인 것이다. "상표권자의
앞잡이" 비난도...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이렇게 좋은 제도를 자손만대에
널리 전하고 이런 멋진 발상을 한 사람을 온 인류가 한마음으로 칭송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아쉽지만 천만의 말씀. 이 UDRP 시스템이 가동된
이후 이를 둘러싼 잡음과 항의는 끊이지 않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깡패같은 (Gangster-like)' 시스템이라고 노골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고 있다. 깡패같은 시스템이라는 비난의 근거로 제시되는 데이터는 바로 70%가 넘는 원고의 승률이다. 도메인을 선점 당했다고 주장하던 10명의 상표권자중 7명 이상이 원하는 도메인을 찾아갔다는 것이다. 원고측이 심사도중에 중재신청을 철회한 경우를 제외하면 도메인 소유자의 실제 승소율은 2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UDRP를 지지하는 쪽은 "그만큼 스쿼팅이 성행한다는 반증"이라고 주장하지만 일부에서는 "UDRP가 너무 상표권자의 입장을 두둔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UDRP의 본질은 사법적 판결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스쿼터 겁주기'에 가깝다. 법적인 강제력은 전혀 없고 억울할 경우
법원에 재심청구를 하면 그만이지만 비싼 값에 되팔기 위해 도메인을
등록한 스쿼터들은 UDRP의 중재결과에 지레 겁을 먹고 항소를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UDRP 기관의 관계자들도 "판결에
불만이 있으면 법원에 정식으로 소송을 내면 되기 때문에 중재결과의
불공정성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상표권자는 도메인 소유자에게
언제라도 재판을 걸거나 중재신청을 할 수 있지만 UDRP의 판결에서 패소한
도메인 소유자는 중재결정이 있은 후 10일 이내에 정식재판을 청구해야
한다는 점, 상표권자의 편의를 도모한 UDRP라는 신속중재기관만 설치했을
뿐 도메인 소유자의 편의를 고려한 신속항소절차는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 " UDRP가 상표권자의 이익을 지지하는 쪽에
기울어 있다" 고 주장한다. 그럼 UDRP 이런 판결은 누가 어떤 원칙과 절차에 의해 내리는 것일까. 도메인을 부당하게 선점당했다고 생각하는 원고측이
네 기관 중 하나를 선택해 심의신청을 하면 심사기관은 자체 운영하는
인력풀에서 이 사건을 담당할 위원회를 선발, 임의로 패널을 구성한다.
대개 한 명이 선정되는 게 대부분이고 피고측이 원하면 일정 금액을
받고 한 두 명을 더 추가하기도 한다. 이 위원회는 자의적인 판단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음 세 가지 기준에 모두 부합하는 경우에만 사이버
스쿼팅으로 결정을 내린다. 그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등록된 도메인이 원고의 상표와 동일하거나 매우 유사할 것 2. 피고가 해당 도메인을 등록할 만한 논리적 사유가 없을 것 3. 피고가 해당 도메인을 고가에 되팔려는 악의적
의도(bad faith)로 등록했고 실제로 그런 의도로 사용되었을 것 위에서 언급한 세가지 원칙은 얼핏보면 꽤 치밀한
기준인 듯하지만 대부분의 판결은 세 번째 항목에 의해 좌우된다. 그도
그럴 것이 도메인이 상표와 유사하지 않다면 원고가 시비를 걸 이유조차
없고 누구나 원하는 도메인을 등록할 수 있는 상황에서 '등록의 논리적
사유'라는 것은 지어 붙이기 나름인 것이다. 결국 과연 이 사람이 이
도메인을 고가에 되팔려고 했느냐의 여부가 판단의 중요한 잣대가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오심(誤審)가능성
상존 피고가 악의적 목적으로 도메인을 등록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원고는 UDRP에 제소하기 전에 갖은 수단을 써서
도메인의 매매의사를 확인받는다. E메일로 "얼마를 주면 팔겠느냐?"고
넌지시 묻기도 하고 전화를 걸어 통화내용을 녹음하기도 한다. 이때
피고가 부르는 가격이 높으면 높을수록 불리한 것은 물론이다. 피고들은
이런 덫에 걸려 패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 '악의적 소유(bad faith)'의 적용범위는
점점 넓어져서 매도의사 없이 단지 도메인을 등록해 놓기만 한 경우도
상표권자에게 도메인을 넘겨주라는 판결을 내리고 있어 ICANN이 스스로
정한 '선등록자 우선원칙(First come First serve)' 을 사실상 파기한
것으로 해석된다. UDRP의 문제점은 심의를 담당하는 기관이 여럿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원고의 입장에서는 4개의 중재기관 중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려줄 것 같은 기관을 골라잡을 수 있고 도메인 분쟁
심사비용이 중요한 수입원이 되고 있는 심의기관 입장에서는 이런 원고들(대부분
대기업임)에게 '잘 보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지적재산권기구(WIPO)는 최근 국제도메인(gTLD) 외에도 각 국가별로
관리되는 국가도메인(ccTLD)의 중재까지 서비스(?)하며 건당 1,500달러~4,000달러를
수수료로 받고 있어 이같은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도메인 소유자가 도메인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중재원칙 2번(도메인인 등록의 타당성)을 공략하는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4월 한국기업인 'CPS코리아'가 소유하고 있던 '오일릴리닷컴(Oilily.com)' 도메인을 스웨덴의 패션회사인 오일릴리社가 상표권침해로 WIPO에 제소했지만 CPS코리아측은 "한국어로 신선한 야채를 상징하는 '오이'와 순수한 꽃의 상징인 '백합(Lily:릴리)'을 합성해서 지은 이름"이라며 "무공해 야채를 파는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만들려고 했었다"는 억지스런 주장으로 도메인을 지켜내기도 했다.(http://arbiter.wipo.int/domains/decisions/html/d2000-0203.html 참조) 현지사정에 밝지 못한 중재기관의 오심가능성과
중재에 대응하는 법적인 기술(skill)에 따라 중재결과가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상표권자에 유리한 결정이 잇따르자 유명 상표를 갖고 있는 대기업들은 자사의 상표와 조금이라도 유사한 도메인을 모두 회수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의 검색엔진 업체인 알타비스타는 alvavista.com alyavista.com 등 50여개의 유사도메인을, 인터넷업체 야후는 yafoo.com, yahoa.com, yahogames.com 등 자사명과 유사한 100여개의 도메인을 제소, 이미 그 중 상당수를 넘겨받았다. (http://www.icann.org/udrp/proceedings-list-name.htm 참조) 그러나 '야호(yaho)'라는 단어는 여러나라에서
즐거움을 나타내는 감탄사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무조건 야후의
상표권으로 인정하는 것을 무리가 있다. 특히 캐나다의 UDRP 기관인 eResolution은 기관설립
이전에 등록된 eResolution.com을 경매사이트에 팔려고 했다는 이유로
악의적 이용(bad faith)으로 몰아 회수해가는 등 객관성과 공정성을
상실한 판결들이 눈에 띄고 있다. 선의의
피해자 없도록 제도 보강해야
UDRP는 사이버스쿼팅이 성행하는 현실에 비추어 어느정도 불가피한 제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법적 강제력은 없는 단순한 중재결정"이라는 ICANN측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사법권 이상의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앞으로 늘면 늘었지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이제는 UDRP가 선의의 피해자를 최소화할
수 있는 사법적인 원칙과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그리고 임의로 정한
중재원칙을 고착화 하기 전에 사이버 공간에서의 지적재산권에 관한
신중한 논의가 선행되어야한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서태지가
좋아서 서태지닷컴을 등록한 사람을 스쿼터로 비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UDRP이전에 ICANN의 대표성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인터넷 공간의
기술적 서비스를 위해 만들어진 ICANN이 불가피하게 사이버공간의 권력으로
등장하고 있다면 그 권력을 임의로 휘두르기 전에 정통성과 대표성을
인정받는 과정을 먼저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ICANN이 추진하고
있는 사이버 국회(At Large)역시 그 일환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인터넷포럼(http://www.internetforum.or.kr)의 강명구 교수는 "ICANN은 최근 진행중인 At Large 등록과 위원회 구성 등을 통해 ICANN의 대표성이 확보될 때까지 기술적 서비스를 제외한 모든 정책 추진을 잠정 보류해야 한다"며 ICANN의 대표성 없는 정치권력화에 우려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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