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cpsr.org/internetdemocracy/ICANN-Democracy.html

ICANN에 있어서의 친민주운동 (The Pro-Democracy Movement in ICANN)

by Hans Klein
(원문: 2001년 4월 6일자)



(이 논문은 Peace Review에 제출된 상태임)

  1999년 시애틀 시위는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그리고 세계은행(World Bank)과 같은 국제기구의 정책형성의 역할에 대한 공공 인식을 제고하였다. 또한 그 시위는 세계적 사회운동과 시민들이 세계적 정책형성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참여할 것인가에 대한 지속적인 토론에 기여하였다.

  
이러한 이슈들에 대한 통찰은 최근에 형성된 ICANN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 1998년에 만들어진 ICANN은 인터넷의 핵심적 자원을 관리하는 책임을 지닌 비영리 사적 기관이다. ICANN의 주요 책임은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도메인 이름을 할당하면서, 인터넷의 도메인이름체계(DNS)를 관리하는 것이다. 세계무역기구처럼 ICANN은 정책적 함의가 없는 기술적 기능만을 수행하는 중립적 기관이라고 자주 묘사된다. 그러나 ICANN의 기술적 결정은 정책적 함의를 가지고 있다. 특히 지적재산권분야에서 ICANN의 규정은 도메인 이름에 사용되는 재산권을 정의한다. 지적재산권이 농업분야에서 논란의 대상이었던 것처럼 (농업분야에서 특허는 생물공학기업들이 생산자를 제어하는 중요한 지렛대로 작용함), 도메인이름상에서 표현되는 단어에 대한 세계적 차원의 지적재산권의 생성은 표현의 권리에 있어서의 갈등을 일으켰다. 비록 이런 정책이 새로운 권리는 오직 인터넷 도메인 이름에만 적용된다는 것으로 범위를 제한했지만, 정책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 ICANN은 세계차원의 정책(global governance)과 기술적 관리를 나누는 경계선을 넘었다. 많은 사람들은 ICANN이 세계의 최신 통신매체에 대한 공공정책을 만드는 인터넷 거버넌스 기관으로 변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ICANN의 생성은 적극적인 풀뿌리 인터넷이용자운동을 수반하였다. 지구상의 이용자들은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있어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ICANN에 있어서의 대표권(right of representation)을 주장했다. 상당한 정도로 이 운동은 성공적이었다. 주로 온라인으로 조직된 이용자들은 ICANN의 bylaw를 구성하는 과정에 참여하였고 이용자 대표 메커니즘이 포함되는 것을 성공적으로 옹호하였다. 결과적으로 ICANN은 공식적으로 가장 민주적인 국제기구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메커니즘이 실행되기 전에 ICANN의 직원과 초기의 이사회는 그 메커니즘을 약화시키기 위해 bylaw를 수정하고자 시도했다. 또 다시 주로 온라인으로 효과적인 조직을 만들어 이용자들은 이러한 시도에 저항했고 ICAAN의 이사들이 2000년에 선거를 갖도록 압력을 가했다. 궁극적으로 이사회의 아홉 자리 중에서 다섯 개가 선거에 의해 채워졌고, 그 선거에서 민주적 거버넌스의 옹호자들이 많이 선출되었다. 비록 소수에 제한되기는 했지만, 이용자 대표들은 ICANN에 대한 공공인식 및 인터넷 거버넌스에 있어서의 역할을 제고시키는데 있어서 그들의 위치를 사용할 수 있었다.    

   
다음에서 나는 인터넷거버넌스에 있어서의 민주주의를 촉진하는 풀뿌리 사용자운동의 최근의 역사를 검토한다. 첫째, 중요한 이슈가 무엇인가를 확인하고자 한다. 즉, 텔레비전 이래로 가장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매체(논란의 여지는 있음)의 제도화이다. 그리고 나서 초기의 ICANN의 bylaw의 구성에 있어서 ICANN의 대중참여와 사용자 대표 선거의 역사를 검토한다. 사회운동의 인터넷이용을 위한 다소 폭넓은 교훈으로 결론을 내린다.

  
ICANN에 있어서 주요 사안은 21세기 정보 인프라의 제도화다. 새로운 기술들의 발달은 커뮤니케이션에 영향을 크게 미치며, 어떤 시점에서 각 기술은 법적, 조직적, 정치적 틀 내에 위치하게 된다. 그러한 제도화는 공익의 기본원칙, 거버넌스의 메커니즘, 민주적 투입(input)의 정도, 사용자 및 공급자의 책임과 법적권리 등과 같은 다양하고 지속적인 파라미터들을 정의한다.

  
오늘날의 새로운 기술은 인터넷이며, ICANN은 인터넷의 법적·정치적·사회적 틀을 정의하는 기관이 될 수 있다. ICANN의 지구적 차원의 인터넷에 대한 관계는 미연방통신위원회(FCC)의 미국의 1930년대 방송에 대한 관계와 같고, COMSAT의 1960년대 위성통신에 대한 관계와 같으며, 케이블 텔레비전 법(Cable Television Act: 공공영역을 위한 채널을 만들 것을 규정했음)의 미국의 1980년대 케이블 텔레비전에 대한 관계와 같다.

  
ICANN은 인터넷 거버넌스에 대한 여러 파라미터들을 제도화한다. 핵심적인 인터넷 자원, 특히 도메인 이름에 대한 중앙집중적 제어를 통해, 사이버공간의 문지기(gatekeeper)로서 그 자신을 확립시키고 있다. 사용자들은 그들의 컴퓨터를 인터넷에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ICANN으로부터 그러한 자원들을 확보해야 한다. 문지기로서의 기능은 도메인 이름 사용에 대한 조건을 부과함으로써 규제적 기능으로 전이된다.  호스트 컴퓨터를 인터넷에 포함시키기 위해서 사용자는 사용자 행위에 관한 ICANN의 규정을 담은 계약에 서명을 해야한다. 1999년에 ICANN은 도메인 이름에 있어서 지적 재산 보호를 세계적 차원에서 규정한 계약조항을 공표했다(ICANN의 Uniform Dispute Resolution Policy.)

  
ICANN은 또한 거버넌스에 있어서의 대표성을 제도화했다. ICANN의 bylaw는 궁극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이사회에 대한 참여를 위한 근본적인 규정을 세웠다. 19명의 이사회 자리 중에, 아홉은 기술적 전문가들을 위한 자리이며, 다른 하나는 이사회의 장을 위한 자리이며, 다른 아홉은 사용자들의 대표자들을 위한 자리이다 (사용자들을 위한 이사회 자리의 할당은 친민주적 인터넷사용자운동의 주요 업적이다.)      

  
ICANN은 초기 2년간 두 가지 정책 분야를 건드렸다. 하나는 지적 재산/표현의 자유이고 다른 하나는 산업집중에 관한 것이다. 도메인 이름을 만들 때 허용가능한 글자열(character strings)에 대한 계약조항은 실효성을 지닌 국제법이 부재했던 지적 재산 분야에 관한 범세계적 차원의 규정을 도입한 것이다. 지적 재산, 특히 상표권은 국가의 법률에 의해 규정되는데, 국가의 법률이라는 것은 국제적 영역에서 운영하는 지적재산소유자에게 큰 비용을 부과한다. 전세계에 상표권을 실행하는 것은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며 상이한 법률 체계를 갖고 있는 여러 국가에서 법적 행동을 요구하게 된다. 내재적으로 지구적 차원이라는 범위를 가진 도메인 이름에 있어서 상표의 사용을 둘러싼 갈등이 1990년대에 일어났다. 예를 들면, 도메인 이름 apple.com은 일반적인 영어단어이지만, 다국적 컴퓨터회사의 가치있는 상표를 내포하기도 한다. 현존하는 법률은 기껏해야 세계적 차원의 상표권 실행을 위한 도구를 제공하지만, 일관적인 세계적 차원의 규칙은 다국적 기업과 소비자(공급자를 확인하기 위해 상표에 의존하는 소비자)에게 혜택을 줄 것이다.

  
그러나 ICANN이 도메인 이름에 있어서 상표를 보호하는 규정을 만들었을 때, 그것은 공공정책의 영역에 들어 간 것이다. 민간 기구로서의 ICANN이 상표에 관한 지구적 차원의 공공정책을 만들 권리는 결코 형성되지 않았다. 더 나아가 많은 단체들은 ICANN의 규정이 표현의 자유보다 재산권의 편을 들어주며 도메인 이름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가상적인 apple.com의 예는 상표의 모호한 사례를 보여준다. 다른 예로는 비판적이거나 풍자적인 표현인데, 이는 어떤 나라(미국을 포함)에서는 보호되고 있으며 제 삼자에 의한 상표의 사용을 허용하고 있다(도메인 이름인 GM_sucks.com은 종종 비판적 표현을 담고 있는 도메인 이름의 실용적인 예로서 인용되고 있음). 지적 재산을 규제함으로써 ICANN은 자신의 합법성 및 자신이 만들고 있는 규정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ICANN의 결정이 공공정책영역에 들어간 분야로는 인터넷공급산업(Internet supply industry)의 구조조정이었다. 새로운 도메인 이름의 생성에 대한 제어를 통해, ICANN은 도메인이름소매업의 독점이나 경쟁의 정도를 만들고 있다. 1990년대에 도메인 이름의 소매업은 이윤이 나는 사업으로 증명되었으며, 업계 주자인 NSI는 200억 달러가 넘는 시장평가를 받았다. 다른 회사들도 이 시장에 진입하기를 추구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도메인 이름에 대한 접근을 제어하는 ICANN으로부터 승인을 얻어야 한다. ICANN이 조심스럽게 공급자시장을 확대하는 것은 현존하는 공급자들에게 높은 이윤을 보장해 주겠지만 신규 진입자가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막고 있다. ICANN의 이러한 결정은 반독점과 연관된 공공 정책을 취급한 것이다.

  
세계무역기구의 무역에 관한 규정이 정책적 함의가 있는 것처럼, ICANN의 도메인 이름에 관한 규정도 정책적 함의가 있다. 더군다나 ICANN은 사이버공간의 문지기로서 행동할 권력이 있으므로 미래에도 규제적 행동들을 확대할 수 있다. 따라서 ICANN이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ICANN을 둘러싸고 있는 정치적 역학관계는 많은 집단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해집단의 구성을 특징짓는 일은 지나친 단순화의 위험이 있다. 그러나, 그런 점에 유의하면서 ICANN의 생성 및 운영에 관여된 주요 집단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대체로 두 집단이 있는데, 하나는 "전자상거래 커뮤니티(e-commerce community)"라고 지칭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친민주운동(pro-democracy movement)"이라고 지칭할 수 있다.

  
전자상거래 커뮤니티는 주로 네 개의 그룹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째는 미국방성의 권한하에서 인터넷을 발달시킨 엔지니어링연구 커뮤니티이다. Internet Society에 기반을 둔 이 그룹은 Vinton Cerf(인터넷 프로토콜을 창안한 사람들 중의 하나)와 Michael Roberts(대학교에 기반을 둔 컴퓨터 네트워킹에 있어서의 선구적인 관리자)와 같은 저명한 인물들을 포함하고 있다. 두 번째 그룹은 글로벌 인터넷 프로젝트(Global Internet Project)라고 불리던 상공인 단체에 참여했던 IBM, MCIWorldcom, France Telecom, 그리고 Fujitsu와 같은 다국적 정보기술회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단체를 통해 이 회사들은 전세계적인 전자 상거래를 원할하게 하기 위해서 규제완화정책을 옹호하였다. 셋째는 상표권을 대변하는 그룹으로서 세계지적재산기구(World Intellectual Property Organization)을 들 수 있다. 그들의 관심사항은 회사명과 제품을 보호하는 것이다. 넷째는 미국에서 인터넷 도메인 이름에 책임을 갖고 있는 미 상무성(Department of Commerce)이다.

  
이들 그룹은 인터넷을 주로 전자상거래를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다. 그들의 입장은 새로운 정보 인프라가 사업을 용이하게 하는데 필요한 정도로 규제되어야 하지만(예를 들면, 지적재산권의 강력한 보호), 그 이상 규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표현의 자유나 그들의 시장에 대한 진입장벽에 관한 것에는 명백한 관심을 보이지는 않고 있으며, 인터넷상의 음란한 표현을 규제하려는 정부의 시도에 대해서 찬성하지 않는다   

  
전자상거래 커뮤니티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전략을 갖고 있었다. 하나는 민영화(privatization)이며 다른 하나는 통제(control)이다. 첫째, 그들은 미국정부가 도메인 이름체계(DNS)로부터 분리되고 DNS에 대한 권한을 민간 기업에 넘기기를 원했었다. 둘 째, 그들은 그 민간 기업을 통제하기를 원했었다. 그들은 그 의도를 관철시키기에 좋은 위치에 있었다. 인터넷이 만들어진 이래로 인터넷연구자들은 도메인 이름의 할당을 수행하였고 통제를 유지하기 위해 현상태를 지속시킬 필요성을 느꼈다. 강력한 기업 및 정부의 이해관계에 합류하여 그들은 민영화된 인터넷을 제어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게 되었다.

  
전자상거래 커뮤니티를 반대한 세력은 친민주운동 진영이었다. 친민주운동 진영은 주로 외부자들(outsiders)로 이루어져 있었다. 주로 인터넷이용자단체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단체들, 기슬 및 정책분야에서 명망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 인터넷이 특별한 이익집단에 의해 점유되었다고 보고있으며 그것을 반대하는 데에 있어서 느슨하게 연합하고 있다. 이 운동의 많은 지도자들은 박애주의적 무정부(benevolent anarchy)라는 인터넷 문화를 지지하는 인터넷 기술 연구자들과 정책연구자들이었다. 그들은 전자상거래 커뮤니티가 통제하려는 시도를 반대했다. 그들 외에도 도메인 이름 시장에서 배척당했던 소규모 사업자들이 많이 있었다. 미국의 활동가 Ralph Nader와 연합한 단체를 포함한 소비자권리단체들도 또한 참여하였다. Computer Professionals for Social Responsibility,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그리고 Center for Democracy and Technology 등을 포함한 언론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을 옹호하는 여러 단체들이 합류하였다. 전문가 단체인 ACM(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은 표현의 자유를 위해 일해왔다. 시간이 경과하여 운도잉 지구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독일의 Chaos Computer Club, 한국과 일본의 공익 인터넷 공급자들(public interest Internet providers)은 Association for Progressive Communication과 Electronic Frontiers Australia라는 단체들과 제휴관계를 맺었다.

  전
자상거래 커뮤니티처럼 친민주운동 그룹도 인터넷의 민영화를 지지하였다. 기술자 집단과 소규모 사업자들 사이에 흐르는 자유주의적 가치는 미국 정부가 인터넷에 대한 권한을 포기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친민주운동 단체들은 도메인 이름을 관리하는 민간기업이 투명하고, 책임감 있고, 대표성을 갖춘, 한마디로 민주적이기를 원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그들의 노력은 전자상거래 커뮤니티와 차별되는 것이었다.

  
친민주운동 그룹은 재정적으로 뒷받침이 될만한 단체나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의 중심과는 연결이 미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인터넷민영화가 인터넷 거버넌스를 위한 개방적이고 책임감 있는 기관을 초래하도록 열심히 일했다. 아마도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모두 인터넷전문가라는 것이다. 사이버 공간의 민주주의를 위한 사회운동에 있어서 그들은 지속적으로 인터넷을 이용했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친민주운동은 두 단계로 전개된 캠페인을 추구했었다. ICANN이 생기기 전인 1997년과 1998년에 새롭게 만들어질 조직의 bylaw에 사용자 대표성의 메커니즘을 촉진시킴으로써 그 조직의 구성에 영향을 끼치고자 했다. ICANN이 만들어진 후인 1999년과 2000년에 그들은 민주적 기제를 유지하고 이사회의 자리의 일부를 선거에 의한 사용자 대표들로 채우도록 하였다.

  
비록 인터넷을 위한 조직의 구상에 대한 시도는 1990년대 중반부터 있어 왔으나 1997년에 이르러서야 미국정부가 이 분야에서 공식적 절차를 시작하였다. 1997년에 미상무성은 인터넷 도메인 이름에 관한 사안을 취급하는 주도적 조직으로 불려졌다. 이 분야에 있어서 정책적 리더쉽은 백악관(미국 대통령 클린턴의 정책보좌관인 Ira Magaziner)로부터 직접적으로 나왔다. 나중에 판명되었듯이, Magaziner는 민주적 거버넌스의 요청에 순응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절차상의 촉매제로는 미국정부에 자문을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인터넷 거버넌스 기관을 만들려는 시도가 전자상거래 커뮤니티에 속하는 많은 단체에 의해 1997년 초에 있었다. 다소 대담한 이런 시도는 미국 내에서 강렬한 비난을 받았고 인터넷 정책을 클린턴 정부의 의제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도록 하였다. 이러한 일방적 행동은 또한 친민주주의 운동을 촉진시키게 되었고, 특히 사이버 공간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강렬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던 연구 커뮤니티의 초기 회원들을 자극하였다.

  
1997년 Magaziner의 정책은 전자 상거래 커뮤니티에게 좌절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책 과정은 개방적이었고 포괄적이었다. 이것은 전자 상거래 커뮤니티가 과거에 회피하고 싶었던 것이고 미래에도 반대하고 싶었던 것이다. 1997년 중반부터 1998년까지 미상무성은 도메인 이름 관리를 위한 적절한 정책에 관한 공공의 의견을 구했었다. 친민주운동을 형성하게 될 많은 개인들과 단체들이 의견을 개진했으며, 그 과정에서 사안들에 대해 자신들을 교육시키고 서로를 인식하게 되었다. Magaziner는 또한 개인적으로 전자 상거래 커뮤니티의 회원들, 여러 나라의 정부 지도자들, 그리고 친민주운동의 주도적인 참여자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일년간의 자문 후에 미상무성은 백서(White Paper)를 발간했는데, 백서에는 미국 상무성이 도메인이름 관리의 기능을 민영화하여 앞으로 만들어질 기관의 통제하에 놓겠다고 되어 있다. 의미심장한 것은 그 백서가 제도적 구상의 업무를 인터넷 커뮤니티에 맡겼다는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1998년 9월까지 새로운 회사를 위한 일련의 bylaw에 대한 합의를 이루어야 했다. 또 다시 이러한 포괄적인 접근은 전자 상거래 커뮤니티의 패배를 의미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시민, 소기업, 공익단체들의 참여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제도적 구상의 과정은 제네바, 싱가포르, 버지니아, 그리고 보스톤에서 열렸던 공공회의들로 1998년 여름을 경과하게 되었다. 그러나, 스탠포드 대학교의 법률학자 Lawrence Lessig에 의하면 전자 상거래 커뮤니티는 그 과정을 방해하고자 했다. 전자 상거래 커뮤니티는 참여를 하지 않았으며 대신에 그들이 만든 일련의 bylaw를 일방적으로 제안하였다. 그들은  다른 주요 인물들이 오픈 포럼을 포기하도록 종용하였다. 마지막 보스톤 회의가 취소되었으나, 친민주운동의 회원들은 집요하게 그들의 일을 계속했으며, 이전의 회의에서 다듬어진 원칙들에 의거하여 최종적인 bylaw를 만들어 냈다. 상대적으로 한정된 자원으로 친민주운동 진영은 그들의 작업을 온라인에서 수행했다. 수많은 이메일 토론그룹이 온라인상의 집중적인 상호작용을 허용해 주었다. 세계 곳곳의 사람들은 규칙적인 의사 소통을 유지할 수 있었다.

  
생산적이고 민간주도적인 커뮤니케이션과 더불어 뜨겁고 공격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지속적인 흐름이 있었다. 온라인과 대면적 회의의 형태를 갖춘 공적 토론은 가장 개방적이고 다듬어지지 않은 형태의 풀뿌리 민주주의였다. 전자 상거래 커뮤니티에게, 이러한 무질서는 폐쇄된 세션으로 되돌아가는 유용한 구실을 제공하였다. 개방의 옹호자들을 정신 나간 사람들이라고 소리 높여 비난하면서 전자 상거래 커뮤니티에 속하는 법률가들, 로비스트들, 국방성의 기금을 받은 엔지니어들은 그들의 계획안을 만들면서 떠나기 시작했다. 친민주운동의 활동가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개방적인 위원회에서 일을 계속했다.

  
9월 마감이 다가왔을 때, 여러 bylaw가 미국 상무성에 제출되었다. 전자 상거래 커뮤니티에서 제출된 안은 기술적 전문가들로만 구성된 이사회를 제안했다. 친민주운동 진영이 제출한 안은 인터넷 사용자의 대표들로만 구성된 이사회를 제안했다. 짧은 기간 후에 미상무성은 전문가와 사용자 대표 모두가 포함된 bylaw만을 채택하겠다고 발표했다. 새롭게 태어날 인터넷회사는 폐쇄적인 기술관료적 조직이 아니고 이사회 자리의 거의 반이 사용자들을 위해 예정되었다.

  
따라서 이 역사의 첫 번째 단계는 친민주운동의 두드러진 승리로 마감되었다. 강력한 이익집단이 기술적 전문가들로만 이루어진 이사회를 만들려던 시도에 직면하면서도 친민주 커뮤니티는 평가를 받는 대안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평가는 백악관이 그들의 노력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반영하지만, 효과적인 옹호가 없이는 받아들일 그 어떤 안도 없었을 것이다. 1998년은 민영화된 인터넷에 대한 권한을 갖는다고 할 수 있는 새로운 회사로서의 ICANN을 설립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친민주운동의 두 번째 단계는 ICANN의 설립 이후에 시작됐고 2년 후에 행해졌던 이사들의 첫 선거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 기간에, 즉 1998년 10월부터 2000년 11월까지 친민주 운동은 확대되었다. 미국에서는 언론자유, 프라이버시, 소비자 권리 분야에 있어서 더 전통적인 활동가 그룹들이 참여하기 시작했고, 유럽과 아시아에서는 참가자들의 수가 증가했다. 또한 이 기간에는 그룹들의 연대를 도모하는 노력이 있었다. 1999년 11월에 한 컨퍼런스는 많은 그룹들을 함께 모았으며, 그 어떤 공식적 조정 메커니즘을 만들지 않았지만 많은 개인들을 정책과정에 활동적으로 참여하도록 결집하는 집합적 이익을 인식시키는 것에 기여했다.

  
반면 전자상거래 커뮤니티는 ICANN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비공식적으로 활발하게 일을 했다. 도메인 이름을 관리하는 기술자들이 그들의 연합체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은 큰 이점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ICANN의 설립 후에 곧바로 그들은 bylaw에 명시된 민주적 기제가 실행될 때까지 ICANN을 다스릴 임시 이사들을 발표했다. 나중에 밝혀졌듯이, 임시이사회는 복잡한 과정에 의해 뽑혔는데, 그 과정에서 Ira Magaziner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대체로 전자상거래 커뮤니티가 새로운 조직을 상당히 통제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사회를 뽑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직원을 선택할 수 있는 권력이다. 왜냐하면 도메인 이름 이슈의 복잡성 때문에 직원들이 대부분의 이슈를 결정하는 위치에 있게되고 그 이슈들은 이사회 승인을 위해 단순히 제출될 뿐이었다. 전자상거래 커뮤니티는 신뢰할만한 대학교 행정관리자를 ICANN의 새로운 의장자리에 놓았다. 이사회와 직원들이 강력한 이익집단의 밀실 흥정을 통해 임명됨으로써 ICANN에 있어서의 민주주의는 단순히 bylaw의 형식에 따르는 수준으로 축소되었다.

  
1999년에 ICANN은 민주주의의 실행안을 천천히 전개하기 시작했으며 전자상거래를 보호하기 위한 계획안들을 빠르게 진전시키기 시작했다. 이미 1999년 가을에 ICANN은 도메인 이름에 있어서의 지적 재산에 관한 규정을 만들었으며 지구상의 사용자들에게 그 규정을 강제하기 시작했다. 반면, 민주주의의 실행은 천천히 전개되었다. 회의를 복잡하게 여러 번 가진 후에, 임시이사회는 사용자 대표자들을 위한 자리를 없애기로 1999년 여름에 제안했다. 그후의 토론에서 임시이사회는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사용자 대표들을 위한 이사의 수를 다섯으로 감소시키는 데에 성공했으며, 나머지 네 개의 자리는 추후 검토에 의해 결정하기로 했다. 그 임시이사회는 또한 선거를 위한 후보자들을 지명하기 위한 위원회를 임명하기로 결정했다. 비록 아홉 개의 의석 중에서 다섯에 불과하고 나중에 나왔지만, 이사들을 위한 선거는 2000년에 열렸다. 모든 선거 과정은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졌다. 투표자 등록은 봄에 있었으며 이메일 주소를 갖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가 허용되었다. ICANN에 의해 간주된 다섯 개의 지역 각각에서 지명자를 확인하기 위한 예비선거(primary election)가 2000년 여름에 열렸다. 그리고 나서 2000년 10월에 선거가 열렸다.

  
그 선거는 친민주운동을 위한 큰 승리였다. 두 개의 지역에서 선거결과는 특별히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북미의 경우, 예비선거에서 가장 표를 많이 얻은 네 사람이 모두 ICANN에 대한 통렬한 비판자들이었으며, 최종적으로 선출된 후보는 ICANN의 의장을 해고시켜야 한다는 선거공약을 한 사람이었다. 유럽의 경우, ICANN이 기업의 이해관계에 의해 지배받는 것을 강렬하게 비판한 사람이 선출되었다. 친민주운동은 이 두 지역에서 최상이었다. 아프리카와 남미지역에서는 최종적으로 선출된 후보자들이 친민주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이었다. 반면에 매우 다른 역학관계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일어났다. 그곳에서는 중국과 일본간의 국제적 경쟁이 일어났으며 대기업들과 정부 공무원이 위로부터 아래로의 방식에 근거하여 근로자 투표동원에 개입하였다. 최종적으로 투표에서 승리한 사람은 일본인이었는데 그는 전자상거래 커뮤니티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으로서 후지쯔회사의 지적재산 법률가이며 워싱턴 DC에 있는 회사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따라서 한 지역은 위로부터 아래로의 방식에 근거하여 인터넷사용자에 대한 회사차원의 투표동원이 성공하게 되었다.

  
2001년 말에 친민주 운동진영은 ICANN의 이사회에 두 명의 강력한 지지자들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는 또 다른 두 명을 얻게 되었다. 이것은 예정된 아홉 명에 비해서는 큰 격차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비교가능한 국제기구들보다는 더 시민 대표성을 확보한 것이다.  그들의 목적에 견주어 보면 친민주운동가들은 어느 정도의 성공은 일구어 냈으며, 국제기구의 지배적인 관행의 기준에 견주어 보면 그들은 대단한 성공을 일구어 낸 것이다.

  
ICANN을 둘러싼 친민주운동은 인터넷의 이용에 있어서 효과적이었다. 이 경우에 있어서 운동의 형성과 그 운동의 인터넷기술사용은 개념적으로 차이가 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인터넷 사용자들의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접근, 기술, 또는 훈련에 있어서의 큰 장벽은 없었다. 여기에서 분석된 경우는 충분하게 온라인으로 연결된 커뮤니티의 경우에 해당된다. 이 때문에 이 운동의 경험은 아직 온라인으로 충분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은 조직에게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공할 수 있다.   친민주운동은 다른 측면에서도 특이한 점이 있었다. 친민주운동 진영은 매우 높은 수준의 교육과 부를 갖고 있는 개인들로 이루어졌다. 1960년대 미국 시민운동이 모두 박사학위 소지자들에 의해 주도된 이래로 주도적인 회원들 중의 일부가 박사소지자라는 것은 특이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운동 진영의 모두가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들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아마도 집합적 행동을 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참여자들 중에 명쾌하고, 기술적으로 숙련되어 있고, 정치적으로 민첩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하면서 인터넷이 어떻게 쓰였는가를 고려해 볼 수 있다. 친민주운동에서 발전된 협동의 형태는 집합적 네트워크(collective network)이라고 기술할 수 있다. 인터넷은 다양한 그룹들이 함께 모이고 참여자들이 ICANN과 함께 공통관심사를 공유하는 집합성(collectivity)을 형성하는 것을 허용했다. 그러나 참여자들간의 접촉은 빈약했다. 접촉은 주로 글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이었으며 감성적 내용은 많지 않았다. 그 운동은 커뮤니티라기 보다는 네트워크였다. 조정은 잘 된 편이다. 집합 안에서 많은 목소리들은 유사하여 집합적인 목소리를 확인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네트워크구조가 조정을 가능하게 했으므로 어느 한 그룹이 독차지하거나 봉쇄하는 것을 방지했다. 인터넷이 핵공격에도 견디어 낼 수 있는 다중심적인(multi-centered)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로 자주 묘사되는 것처럼, 친민주운동은 많은 부분들간의 자기조정(self-coordination)이 가능한 탈집중적인 네트워크였다.

  이
러한 집합적 네트워크에 의해 가능한 조직의 유형은 비위계적 조정(non-hierarchical coordination)이라고 칭할 수 있다. 위로부터 아래로의 전략이나 명령 체계는 없었으며, 그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공식적 문서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에 개인이나 단체들은 다른 주체의 행동이나 이벤트에 대해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정보를 가지고 그들은 보완적인 안들을 만들고 집합적 네트워크에서 그 안들에 대해 의견교환을 할 수 있었다. 조정이 일어나므로 위계구조의 단점은 피할 수 있었다. 상층부가 형성되는 위계구조가 없었으므로 위계구조의 상층부를 확보하여 개인적 야심을 만족시키려는 일은 일어 날 수 없었다. 집합 내에서의 지위란 남들에게 인식되어지는 공헌도에 따르게 된다. 위계구조의 조직에서 일어나는 잘못된 인센티브는 방지되었다. 행동의 기본단위는 개인이지만, 전반적으로 집합적인 행동이 이루어진다.

  
위로부터 아래로의 조절이 없으므로 집합성(collectivity)은 자발성(voluntarism)에 의존했다. 개인이나 단체들이 어떤 과제를 인식하였으므로, 그들은 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앞서 있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어떤 개인은 ICANN 이사회에 편지를 쓰고 서명을 받기 위해 그 편지를 전세계로 돌릴 수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차기 ICANN 회의에 제출할 해결책을 작성하고 메일링 리스트 가입자들로부터 응답을 요청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또한 ICANN 이사회 회의와 함께 열리는 인터넷사용자회의를 조직할 수도 있다. 상이한 과제는 상이한 능력을 요구하므로 상이한 개인들의 보완적인 기술은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네트워크 안에서는 주어진 과제를 진전시킬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는 누군가가 존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한 노력은 종종 그 개인을 기진맥진하게 하였지만, 일단 그 과제를 마치면 다음 과제는 다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맡게 된다. 전반적으로 집합적 네트워크 내에서 연결된 사람들에 의해 시도된 조그만 불꽃들이 모여서 정책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괄목할 만한 사회운동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모든 조직적 특성들은 인터넷이 전세계 사람들로 하여금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에 기인한다. 이 운동의 세계성은 일부 참여자들의 영어 사용의 어려움에서 보여진다. 참여자가 전세계적으로 퍼져있음을 나타내는 지표는 송신자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또는 북미인가 남미인가에 따라서 이메일 통신량이 상이한 시간대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인터넷 없이는 전세계적 통신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마도 서로 다른 나라에 있는 조직들에 속한 소수의 직원들만이 서로간에 조정을 했을 것이며 많은 개인들간의 직접적 커뮤니케이션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역량 없이는 ICANN을 둘러싼 친민주운동이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인터넷의 사용을 논의하는데 있어서는 이상주의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인터넷은 사회운동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본 사례연구에 있어서 운동에 참여한 회원들의 경제적·교육적 자원을 포함한 다른 요인들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본다. 더군다나 ICANN에 있어서 사용자 대표성이 전자상거래 커뮤니티의 강렬한 반대에 직면했으므로, 이 운동의 성공은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다.

  
인터넷을 효과성(effectiveness)을 담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기보다는 효과성에 대한 주요 장벽들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인터넷은 개인의 원자화를 극복한다. 인터넷은 위계구조의 잘못된 인센티브를 감소시킨다. 인터넷은 정보공유에 대한 장벽을 극복한다. 인터넷는 자발주의(voluntarism)를 가능하게 해준다. 따라서 여러 가지 실패의 개연성을 감소시킨다. 인터넷은 사회운동이 그 목적을 달성하는데 있어서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추천 문헌  

Froomkin, A. Michael, 2000. "Wrong Turn in Cyberspace: Using ICANN to Route Around the APA and the Constitution," 50 Duke Law Journal 17.

ICANNwatch web site.

Klein, Hans, 1999. "Tocqueville in Cyberspace: Using the Internet for Citizen Associations." The Information Society, Vol. 15, No. 4, November 1999.

Klein, Hans, 2001. "ICANN and Internet Governance" The Information Society (forthcoming, December 2001.).

Klein, Hans, 2001.  "Global Democracy and the ICANN Elections." Symposium edition of info (Forthcoming, August, 2001.)

Lessig, Lawrence, 1998. "A Bad Turn for Net Governance." The Standard. September 18.

Mueller, Milton, 1999. "ICANN and Internet Governance : Sorting Through the Debris of 'Self-Regulation.'" info 1:6 December, 496-520.

출처

Klein, Hans. (April 6, 2001). The Pro-Democracy Movement in ICANN. [on-line]
http://www.cpsr.org/internetdemocracy/ICANN-Democracy.html

번역/정리 : 오정호 (CIGS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