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가리의 신체 변천사
작성: 1999.1.30. 김낙호(capcold@nownuri.net)
... <총몽>의 말그대로 '한자루 잘 갈아진 칼같은' 주인공 가리. 원래 사이보그 / 안드로이드를 주 소재로 하는 만화는 몸을 갈아치우는 것도 비교적 자유롭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이보그물에서 주인공은 하나의 '딱 알맞는' 몸을 가지고, 혹은 중간에 한번쯤 파워업을 위하여 몸을 바꾸는 그정도에서 그칩니다. 주인공의 이미지가 몸과 함께 바뀌어 버린다면 작가로서도, 독자로서도 참으로 난감한 일일테니까요. 터미네이터를 상상해 보십시오. 오늘은 그 강력한 육체로 총을 갈겨대다가, 내일은 손을 믹서기로 바꿔끼우고 부엌일을 한다면?
... 하지만 이 작품, <총몽>은 다릅니다. 주인공인 가리는 정말이지 손바닥 뒤집듯이 몸을 갈아치웁니다. 부서져서, 용도에 따라서, 어느 쪽으로든 말입니다. 일반 시민, 귀여운 소녀, 전사, 레이서... 그럼에도 얼굴만은 같은 것을 끼우고 다닐 따름이지요. 가리의 신체 교체는 무엇보다 가리의 성장과 관계됩니다. 가리가 성장해 나가면서, 다른 일들을 하면서 거기에 가장 적합한 몸을 지니는 것이지요. 가장 사이보그다운 시점에서 사이보그를 다루는 작가의 역량에 다시금 감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뭐 여하튼 하나하나씩 살펴 나가기로 하겠습니다.
0. 가리 이전: 특공대원 요꼬
시기: ~ 200년 전의 우주전쟁까지
...몸의 특징이 어떠한지 특별한 자료가 없습니다. 그래도 화성의 고대무술인 기갑술을 익힌 특공대의 몸인데다가, 당시의 과학력은 '광전사'같은 유기 생체를 만들어낼 정도였으니까 상당한 수준의 육체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무슨 특별한 기능이 내장되었다기 보다는 기본 격투성능이 뛰어난 육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독자들에게 여러 활약들을 보여줄 틈도 없이 우주선의 폭발에 휘말려서 바로 박살이 나버립니다. 그리고 요꼬(의 머리는) 지구로 추락하고, 그곳에서 무려 200년간이나 쓰레기더미 속에서 썩어갑니다. 생체 뇌를 무려 200년간이나 보존시킬 수 있었다는 것 하나만으로 보더라도 얼마나 대단한 육체였는지를 알 수가 있겠지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가리 이전의 '요꼬'는 별로 정이 안가는 캐릭터라서 그냥 이쯤 넘어갑니다.
1. 이드에게 발견된 요꼬 / 가리
시기: 200년 전의 추락 ~ 이드 발견 당시
...결국 기억을 잃은 한 두뇌는 200년 후에 이드 다이스케라는 사이보그 의사에 의해서 발견됩니다. '놀랄 만한 보존상태'에 내심 감탄해 마지 않는 이드.
2. 평범한 소녀
시기: 이드 발견 이후 ~ 마카크와의 첫 싸움
...이드는 가리가 자신이 빌어마지 않던 '소녀 조수'가 되어주기를 원합니다. 얌전한, '여자다운', 귀염성있는 평범한 여자아이. 정말로 이드는 로리타 콤플렉스인지... 아니면 계속 곤조 아저씨하고 둘이서 칙칙하게 있는 것이 지겨워져서 '여동생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여하튼 '가족'을 원했던건 확실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해서 예쁜 평범 시민형 여자몸을 구해줍니다.
...하지만 여자수인과의 싸움에서 가리는 격투가 자신의 과거 기억을 되찾는 열쇠이며 자신의 피를 끓게 하는 그 무엇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가리는, 예쁜 인형옷 같은 드레스까지 미리 사두었던 이드의 기대를 져 버리고 헌터가 되어서 이드의 '밤생활'을 도우려 합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첫 상대가 마카크라니... 바로 박살이 나버리죠.
3. 광전사
시기: 마카크와의 첫 싸움 패배 이후 ~ 유고 사별
...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모델'입니다. 마카크한테 깨진 후 이드는 전에 줏어두었다가 그 진가를 알고는 무서워서 적당히 덮어두었던, '광전사 육체'를 가리에게 줍니다. 이드는 가리의 잠재능력이 광전사의 몸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지요. 아니나 다를까, 광전사 몸은 가리에게 너무나 잘 들어맞습니다. 자팡처럼 광전사에게 먹혀 버리지 않고, 그 기능만을 끌어내어 자신의 전투에 사용합니다. 복장도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들었던 디자인인데... 여하튼 유고와의 사별이라는 극적인 계기로 가리는 모터볼 리그에 뛰어들고, 모터볼 전용 육체로 교체하면서 광전사 몸을 에드에게 보관을 맏깁니다. 하지만 이 에드라는 인간은 가리가 다시 떠날까봐 두려워서 이 육체를 노바박사에게 팔아버립니다 (자기가 무슨 선녀와 나무꾼이라고). 나중에 자팡에게 붙었을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버립니다...
4. 살육의 천사
시기: 유고 사별 이후 ~ 모터볼 은퇴
...가리가 모터볼 2부리그의 스타, '살육의 천사'로 활약할 당시의 모터볼 전용 육체입니다. '내구성'보다는 '기동성'을 강조했음이 한눈에 드러나는 모델입니다. 발에는 아예 바퀴까지 달려있고, 전투의 방식은 양팔 (나중에는 한팔)에 달린 칼을 펴서 긋는 식입니다. 모터볼에는 꽤 괸찮을지 모르겠지만, 가리의 전문인 기갑술을 100% 쓰기에는 좀 무리인 육체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레이서로서의 능력은 움바의 실력을 믿어도 괜찮을 겁니다.
5. 일반시민
시기: 모터볼 은퇴 ~ 광전사 자팡과의 격돌
...참나. 기껏 리그를 제패하고 은퇴를 했더니, 이전 (광전사) 몸을 팔아넘겼다는 겁니다, 글쎄. 뭐 어쩔 수 없이 - 가 아니라, 이제는 더 이상 격투를 하지 않고, 이드와 함께 평범한 나날들을 즐길 수 있겠지라는 소박한 소망으로, 가리는 다시 일반시만의 육체로 돌아갑니다. 물론 마카크 퇴치, 모터볼 제패등의 명성덕에 그녀에게 덤비는 사람도 없고. 뉴캔사스 바에서 가수를 하면서 헌터들에게 격투교관 역할도 하는 등 참 잘 살아가고 있었는데... 상황은 그녀를 왼쪽 그림과 같이 만들어 버리지요. 물론 이 육체도 1권을 못버티고 박살이 납니다.
6. TUNED
시기: TUNED 임무 시작 ~ 노바에게 폭사당할 당시
... 자렘과의 거래. 자신을 배반한 고철도시에 실망하고 가만히 죽어 버리려는 가리를 다시 살 게 한 것은 이드를 만날 수 있다는 작은 희망. 결국 그녀는 이 시리즈에서 가장 오랫동안 유지하게 되는 이번 육체, TUNED를 받습니다. 이 육체는 말 그대로 참으로 자렘의 과학기술의 결정체입니다. 가리의 격투능력을 100% 소화해낼 수 있는 육체. 그것도 10년동안이나. 물론 각종 장비 또한 어떻게 보면 그 육체의 일부나 다름없습니다. 게다가 TUNED 회선을 통해서 자렘 지상감찰국의 전투지원까지 받을 수 있기에, 그녀는 말 그대로 1인 군대 역할을 합니다.
... 강력함 이외에도 이 육체는 피부에 가까운 소프트 티슈로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쇠'가 아닌, '피부'의 느낌인 것이지요. 오른쪽 그림에서처럼, 아예 부품정비를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앞부분이 자크처럼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참 편리하겠군요. 여하튼 10년의 세월이 흐른 것을 보여주고자 했는지, 이전의 가리보다 약간 더 풍망해지고, 무엇보다 표정이나 몸짓 등이 훨씬 더 성숙한 느낌을 줍니다... 이는 또 작가의 역량이겠지요. 여하튼 무려 4권을 버티다가 결국 노바 박사에 의해서 박살납니다.
7. 이마지노스
시기: 자렘 상륙 ~ 희생
... 이것도 나름대로 새련된 육체였는데, 단 한 단원 나오고 끝나는군요. 여하튼 이 육체는 노바 박사의 절정에 이른 기술력의 개가입니다. 광전사의 몸을 기반으로 한 이것은, 초창기 가리같이 광전사의 힘을 끌어내면서도, 그 디자인은 TUNED와 닮은 부드러운 형태입니다. 게다가 두뇌 오버클락킹이라는 희대의 필살기를 견딜 수 있는 강인함. 초 스피드로 대기권을 벗어나도 부서지지 않는 내구성.
... 하지만 그 이름이 뜻하는 바는 따로 있습니다. 노바 박사가 숨겨놓은 한가지 기능, 바로 인위적으로 세포 증식 변환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팡의 경우같은 엄청난 광기에 의해서 '먹혀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때를 인위적을 정할 수 있다는 것. 그 변신의 모습은 바로 자신의 잠재의식, 상상력 (Imagination)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자팡의 모습도 바로 그가 마음속에 그린 스스로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만약 노바 박사가 폐인이 되지 않고 이것을 양산화시켜서 유통을 시켰다면? 업의 연구는 절정에 달할 것입니다.
... 뭐 여하튼 가리는 결국 고철도시를 구하기 위하여 다시 한번 (그러나 이번에는 진정으로) 스스로를 희생할 결심을 하고, 그녀의 마음은 세상을 구하는 모습으로 형상화 됩니다. (만약 노바 박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면? 아마도 화성대왕 로봇이 열심히 이음쇠를 붙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8. 생신
시기: 포기아(비산)에 의해 구출 ~
... 세포체 속에서 5년동안 숙성한 그녀의 유전자는 '열매'라는 형식을 통해서 다시 하나의 개체로서 '나무'와 분리됩니다. 애초에 가리의 유전자는 나무의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무가 그녀를 '밀어냈다'고 하는 것이 더 알맞는 표현이겠지요 - 물론 과학적 근거는 터무니없이 부족하지만. 여하튼 뇌속에 있던 그녀의 유전자는 말 그대로 '인간'이었던 관계로, 가리는 생신의 육체가 되어서 나옵니다. 포기아에 대한 기억까지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지만 말입니다(뇌가 통째로 나무속 어디인가에 보존되어 있지 않고서야). 뭐 여하튼 작가는 마무리를 피노키오 이야기같은 해피엔딩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포기아는 좋아라 할 것입니다) 자, 이제 우리는 아줌마가 되서 애들을 한 너댓명 낳아 기르면서 포기아에게 돈 벌어오라고 바가지를 팍팍 긁는 가리의 모습을 상상해봐야 할 것입니다.
... 참, 참고로 자렘과의 거래당시, 꿈 속에서 가리가 생신이 되었던 것과, 오로보스 속에서 그녀가 '노바 박사에게 발견되어져서 정말로 소녀다운 아이, '아리타'가 된 상황' (우스운 일은, 가리의 영어번안 이름이 하필이면 아리타라는 것입니다)의 육체는 제외?습니다. '실제'가 아니니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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