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총몽, 그 아쉬운 마지막을 이해한다
올린이: 김낙호 (capcold)
게시일: 99년 1월 30일
'총몽'. 뭐하나 아쉬울 것이 없을 듯한 완전에 가까운 설정과 화려한 연출력, 탄탄한 필체, 거기에다가 작가 개인의 다방면에 대한 관심사까지 적절하게 녹아들어간, 특 A급 SF - 그 중에서도 사이버펑크 계열의 만화다(만.화.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 애니가 아니라). 물론 전반적 분위기가 매우 디스토피아적이고, 주인공들이 다소 광기가 넘쳐나며, 무엇보다 별로 '팬시성'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주류계열의 관심사에서 충분히 밀려날 소지가 있는 작품이다(하지만 난 그것이 오히려 좋다. 요새 만화들의 '귀여움에 대한 강박관념' 이란 가히 눈뜨고 못봐줄 지경이니... 물론 귀여운 캐릭터들로 할건 다하는 가이낙스의 에반게리온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일수록 한가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있다. '끝이 너무 급박하다'라는 것.
그렇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끝을 굉장히 황급히 마무리지었다. 마지막장 (자렘 정복)과 에필로그에서 보여준 그 스토리 전개는 좋게 말해서 군더더기 없는 연출이고, 보이는 대로 말하자면 한권분량을 한 단원으로 날림원고를 한 것이다(마치 대한민국 만화계에서는 너무나 흔한 일, 잡지사에서 독자 인기순위 하락을 이유로 조기 중단을 요청한 것 같은 식으로 말이다 - 권가야님의 '해와 달'이 이런 식으로 조기중단 되었을 때는 출판사에 테러라도 하고 싶었다). 여러 복선들, 의문들이 일부는 너무나 급박한 속도로 해명이 되 버리고, 일부는 여전히 미궁속에 남겨진 체로 말이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 필자는 총몽의 결말에 관해서 아야기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결말의 의미와 바람직했을 뻔한 모습들에 관해서 말이다. 작가가 무슨 병을 앓았었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뭐 여하튼 몇줄 적어보겠다.
바자크는 덴을 잃고 해산, 자렘의 지상감찰국 역시 해산(따라서 TUNED시리즈도 폐기), 이드의 생존 확인, 노바 박사 사망. 임.무.완.료.
이제 더 이상 가리가 여행을 할 이유가 없어졌다. 단 한가지도 없는 것이다. 자렘과 지상의 연결 및 대화합? 그것은 가리의 몫이 아니다. 그것은 전사가 아닌 정치인의 몫인다. 이제 가리가 갈 곳은 한곳 뿐, 바로 '집으로'이다. 고철도시? 어쩌면. 슈미라도 보고 싶고, 헌터 친구들(몇이나 살아남아있는지는 몰라도)도 다시 만나고. 어쩌면 뉴캔사스 바도 다시 재건하고. 하지만 그 전에 가고 싶은 곳은 '바다'다. 바다에 가면 녹이 슬 것이라고 놀려대던 포기아(비산)이 있는 곳으로. 자, 이제 슬슬 출발해볼까?
사실, 이 작품은 여기서 끝날 수도 있었다. '가리'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부분이 끝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기약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어도 무방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질문들이 남아있지 않는가. 1. 자렘의 정체는 무엇이며, 2. 과거의 오랜 우주 대전쟁은 과연 무엇이며, 3. 가리의 이전 자아인 요꼬(유진)은 누구였으며, 4. 무엇보다, 우리 귀여운 루우 콜린스양은 어떻게 된 것이가? 하는 것들이다. (사실 여기에 5번째의 질문, '어떻게 자렘과 지상세계는 화합할 것인가'라는 질문도 있지만, 이것은 카오스라는 인물을 중심에 놓고 생각해보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 이건 나중에 다시 보도록 하겠다).
자, 그 질문들을 모두 대답하기 위해서, 작가의 분신역할을 하고 있는 노바 박사가 (이 작품을 통틀어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라고도 할 수 있다) 다시 등장한다. 항상 용의주도한 그는 자기 칩두뇌의 백업을 복부에다 심어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원래 가지고 있던 Restorer 로봇들로 나머지 기관을 복원하고. 이미 LADDER 위원회의 자렘 복귀초청을 받은 그였다. 하지만 그는 준비없이 그냥 냅다 자신이 도망쳐나왔던 그 위선적인 곳으로 돌아갈 위인이 아니다. '보험', '보디가드'가 필요한 것이다. 자렘의 어떤 통제기관보다도 강한 보디가드 말이다. 꼭 자신의 심복일 필요도 없다. 단지 '자렘과 과거의 일들을 모두 알아'내려고 하는 자신의 동기와 약간이라도 공통분모가 있으면 그만이다. 그는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이미 자렘의 중앙컴퓨터 메르키세덱과 맞서 싸울 준비를 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노바 박사의 '업의 극복'은 그 업보를 만들어낸 장치들, 자렘이라는 거대 실험실과 누군가가 만들어낸 현재의 이 상태를 규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노바박사에게는 누구보다도 진정한 의미에서 강했고, 무엇보다 '자신의 업'을 극복한 (자신의 업을 극복한 또다른 진정한 강자였던 자슈건은 유감스럽게도 죽어 버렸으니) 가리를 그 보디가드로 지정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별로 앉혀놓고 설득할 시간도 없을뿐더러, 자기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면 먼저 목부터 치려고 할 가리를 순순히 데려갈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 '보디가드'임무를 위해서 필요한 특수 광전사 몸체를 이어붙이기 때문에 어차피 몸뚱아리도 필요없고. 게다가 유고의 이야기에서도 나왔듯이, 자렘에 갈 수 있는 방법은 '생체 실험제료'로서 뿐 아닌가. 무지막지한 인간. 그래서 가리에게 폭탄을 안겨줘서 산산조각낸 다음 뇌세포를 열심히 수집해서 가방에 넣고 '가브리엘'에 올라탄다.
철저히 조각났다가 재건되는 과정에서 가리는 다시 한번 꿈을 꾼다 (제목이 암시하다시피, '꿈'은 이 작품에서 커다란 역할을 한다; 오로보스같은 인공 꿈이던, 자연산 꿈이던 간에). 자신의 과거, 또다른 자신이었던 '요꼬'(유진, 리리)의 꿈을.
요꼬는 화성에 기반을 둔 '광신도' 단체의 특공대원이다. 여기서 나오는 상황만으로 (약간 무리해서) 과거 역사를 거의 재구성해볼 수 있다. 인류는 다른 행성으로 이민을 갈 정도로 상당한 과학적 발전을 했으며 (반대로, 이민을 가야할 정도로 지구가 피폐했으며), 효과적인 우주여행을 위한 지구측 소속의 '예루'라는 우주정거장이 있다. 아마도 건담에서 이미 다루어진 바 있는, 지구인과 '비지구인' (화성인 등) 간의 탄압과 착취의 역사, 그리고 그에 대한 항거 및 그에 편승한 패권주의, 파시즘, 광신 단체등의 여러 전쟁들이 지리하리만치 길게 이어졌으리라. 그 속에서 더 이상 원래의 이상도 목표도 없는 '승리'만을 위한 광기에 가득찬 아귀다툼만이 판치리라. 여하튼 월면도시의 돔을 폭파시켜서 도시 전체를 몰살시키는 등의 비열함의 극치를 달 리는 양상으로 치닫던 전쟁 속에 요꼬는 있었다. 화성에서 기갑술로 단련한 강인한 신체와 정신력을 가진 특공대원들이 비열한 작전에 하나 둘 투입되며,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거의 전멸에 가까웠던 특공대에 내려진 마지막 임무는 우주 정거장 '예루'를 핵폭탄으로 파괴시키는 것. 요꼬는 부상당한 동료들을 '안락사'시키고 임무에 뛰어들려 하지만, 함선이 파괴당하는 바람에 자신도 지구로 추락해 버리고 만다.
역시나 노바 박사는 가리를 자렘으로 데리고 왔다. 여기서 가리에게 새로운 몸을 주고, 자렘을 구경시켜준다. 자신의 목적, 자렘과 잃어 버린 과거사를 알아내겠다는 것에 동참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문이다. 여기서 가리는 깨끗하고, 세련된 현대도시인 자렘을 거닐 게 된다. 그러다가 '엔드죠이'라는 기계를 보고야 만다. 공중 자살소. 자렘인들이 주장하는 '문화의 극치'. 맞는 말이다. 갈 때까지 간 인간의 오만 아닌가.
'생'을 위하여 그렇게 치열하게, 처절하게 싸워왔던 그 모든 순간들, 때로는 허망하게, 때로는 장엄하게 생을 불태웠던 그 많은 인연들을 간단하게 무시해 버린 것이다. 생을 비웃은 것이다. 가리는 자렘의, 인간의 그 오만함과 나약함에 허탈해한다. "이게 유고가 그렇게 가고 싶어했던 자렘이란 말인가?"
사실 노바 박사는 그것을 일부러 가리에게 보여주고 싶어했을 것이다. 이제부터 가리는 적극적으로 노바의 방향에 동참한다. 하지만 우선은 자렘에서 유일한 친구인 루우를 찾아 나선다. 아마도 안좋은 일을 당하고 있을 것이기에. 그리고 쓰레기장에서 그녀를 구해낸다.
이 루우 콜린스라는 인물도 참 대단한 인물이다. 지상인을 이해하려 하는 마음. 자렘과 지상의 구도를 개혁해 보고자 하는 유일한 자렘인 (이드도, 노바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게다가 다소 푼수끼가 보이는 귀여움까지. 아니나 다를까, 그녀도 '불량품'인 것이었다. 단, 이드나 노바같이 지능쪽으로 이기보다 '감수성'쪽으로의 불량품이다. 사람을 만드는 것은 '건강한 생신'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대뇌가 없다는 것을 알 게 된 후에도 그녀의 반응은, 물론 처음에는 상당히 충격을 받지만, 이내 "저놈들이 내 뇌를 훔쳐갔단 말이야~!" 이고, 다른 애들도 그런 꼴을 당하는 것을 막으러 가야한다는 것이다. 루우의 이야기가 너무 압축되어 버린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좀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루우의 이야기, 루우의 생각과 고민, 갈등을 더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말이다.
사실 대뇌를 빼내갈 정도의 의학수준을 가지려면 상당한 인체실험 자료가 필요할 것이다. 의료국에서 지상으로부터 인간의 장기를 계속 배달시키는 것도 이것과 관련이 있다. 역시나 '인간 복지'라는 측면보다는 '인간 통제'의 측면을 더 생각하게 한다.
여하튼 당초의 진영에서 러셀박사가 머리를 부여잡고 뛰어내리고 루우가 그 자리에 합류한 상태로 자렘 중심부로의 진군은 계속된다. 그 중간에 두뇌 뽑기 의식을 방해하러 간다. 여기서 자렘 아이들의 반응은 또 걸작이다. '뇌가 없어도, 규격화가 되더라도 자랑스런 자렘의 시민이 되고 싶다' 라는 것. 이제야 드디어 처음부터 왜 자렘의 모습이 이렇게 낯이 익었었는지 깨닳게 된다. 자렘의 모습은 바로 나치가, 일제가, 박정희가 꿈꿔오고 그려오던 그 이상향, 바로 파시스트 천국의 모습인 것이다. 자신의 날개로 날지 않는 새. 더 높이 날으려 하지 않는 새. 이들은 루우와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충격을 받지 않는' 것이다. 역시나 여기서도 좀 더 여유가 있었다면 자렘의 그 파시즘적 모습을 더 자세히 묘사해줄 수가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여하튼 (노바박사가 원하던 대로) 마침내 더 이상 소동을 방치해둘 수가 없던 중앙컴퓨터가 노바를 받아들인다. 이미 완력으로 가리에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닳은 중앙컴퓨터는 예루와 자렘의 정체를 밝힌다. '궤도 엘리베이터'. 인간 우주진출의 핵심, 대기권, 중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설치된 진정한 의미의 우주 정거장.
하지만 그정도는 노바 박사도 이미 알고 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왜 그것이 가동이 중지되고, 자렘은 지상으로부터 분리되고, 자렘을 이토록 유지시키는 목적이 무엇인가이다. (다소 설정상의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노바 박사는 마이크로 로봇들을 이용, 물리적으로 중앙컴퓨터의 방호회로들을 차단 (해킹!), 진짜 메르키세덱의 대답을 들으려 한다. 그리고 공개되는 200년 전의 사건. 식민 혹성에 지구적 환경을 조성하는 작업 (테라포밍)을 둘러싼 자원분쟁으로 인한 전쟁이 오래 지속된 당시. 오랜 우주전쟁으로 인하여 인간에 대한 회의가 들게 된 메르키세덱은 최후의 희망으로, 지금의 자원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자원을 찾아나서기 위해 자신이 완전관할하는 도시 '쟈렘'의 시민 수만명을 탐사선에 태워 우주로 보내려 한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딸 들과 같은 그들이 탄, 인류의 미래를 걸려고 했던 탐사선은 전쟁의 와중에 파괴당하고 만다. 이에 분노한 메르키세덱은 지상 연결 부분을 파괴하고 엘리베이터를 정지함으로써 위 아래로 자렘을 완전히 고립시켜 버리고, 자신만의 '예쁜 정원'을 자렘에서 가꾸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예쁜 정원은 생산하는 것 없이 소비적이기에, 자원을 충당할 다른 원천이 필요하다. 그래서 만든 것이 자신만의 정원을 위해서는 어떻게 되도 상관없는 일꾼들이다. 바로 '고철도시'. 또한 자기 정원의 애완동물들이 과거와 같은 같은 '발정'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거세'를 한다. (물론 직접적인 설명이 부족하기에, 이전 내용들, 그리고 '가타카'에서 나온 것 같은 '완전통제 파시즘 천국' 개념들과 잘 짜맞추어 봐야 한다)
그렇게 지내기를 200년. 그 질서가 이제 노바라는 거세를 극복한 애완견과 취급도 안하고 있었던 한 여자 사이보그 때문에 완전히 깨지려고 하고 있었다. 그래서 컴퓨터는 미쳐 버린다. 자신이 만들어낸 모든 질서를 파괴하려는 것이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자신의 육중한 몸체를 떨어트리는 것만으로도 예루의 원심력으로 전체를 붕괴시킬 수 있기 때문에 말이다.
노바박사는 그 높은 자존심, 그 모든 것을 알아내겠다는 이상을 한순간에 접고 '생'에 대한 집착을 보이게 된다. 이번만은 자신에게 백업이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희망은... 가리를 접착제로 이용하는 것. '원래 이런 일에 사용하려 한 것이 아닌데'라면서 꺼낸 세포증식 변형 스위치는 가리의 몸을 단 한번, 자신의 자의식에 따라서 변환시킨다. 광전사의 몸에서 봉인을 푸는 장치인 셈이다. 그런 비슷한 변환을 했던 자팡의 예를 기억해보라. 아마도 노바 박사는 유사시에 가리를 '자팡화' 시켜서 자렘을 부술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실험을 통해서 그 이마지노스 (이름에서부터 이미 냄세가 풍기지 않는가) 몸체를 양산화, 좀더 효과적인 '업의 극복'을 실험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수십년간의 많은 인체실험을 통해서 (마카크와 이마지노스 사이에도 무려 13-4년의 시간이 있었으니) 그의 기술은 절정에 달했으니 말이다. 자기 자의식이 형상화하여 자신의 업을 극복한다 - 멋지지 않은가. 단, 현 단계에서는 그 증식 변형은 단 한번이다. 그리고 노바 박사는 자신의 모든 신념에 위배되는 일을 하고야 만다 - 가리에게 희생을 구걸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업 극복을 타인에게 미루는 일이며, 생에 구차하게 집착하는 것이며, 무엇보다 타인에게 '빚을 지는' 일이다. 이후에 노바 박사가 폐인이 되는 것은 필자는 결코 칩두뇌의 이상으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리의 잠재의식, 자의식의 형상화. 그것은 우주와 하나가 되고자 하는 그녀, 모두를 위해서 희생양이 될 것을 선택한 그녀의 마음의 모습이다. 그것은 ... 한송이의 거대한 꽃이 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여기서 끝났으면 훨씬 더 여운이 강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뭐 작가는 약간 더 질문에 대답해주기로 결심을 했나보다. 그래서 이어지는 에필로그.
붕괴된 자렘 체제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잡은 것은 당연히도 벡터, 루우, 케이아스 3인방이다. 이미 고철도시의 상권과 인맥을 잡아 (팩토리를 등에 업고) 실질적인 도시의 통치자 역할을 하고 있던 벡터의 장사꾼적인 수완은 필수적이다. 루우는 바로 자렘과 지상을 잇는다는 대사업을 통해서 고철도시 주민들의 단결을 이끌어낼 인물이다. 이정도의 명분을 지닌 대규모 사업이라면 당연히 혼란에 빠질 수도 있는 고철도시의 질서를 어느정도 붙잡아둘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케이아스의 카리스마다. 그의 스타성과 흡인력은 이미 라디오 케이아스를 통해서 모두들 익히 접한 바다. 그런 그가 적극적으로 과거의 경험들을 사이코메트리 능력으로 흡입, 이용한다면? 성공을 충분히 점칠 수 있는 상황인 게다, 이 3인방은. 다만 작품이 너무 스피드를 올려서 거기에 대한 설명이 없기에 이것을 천천히 곰씹으며 추론해내야 한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리고 작가가 왠지 편애하는 듯한 포기아의 이야기도 결말을 내야지. 가장 '총몽'의 분위기에 안 어울리는 그에게 작가는 해피엔딩까지 보장한다. 마치 인간를 위해 희생양이 되었다가 3일만에 부활했다는 그리스도처럼, '꽃'이 수태한 열매 속에서 가리는 부활한다. 과학적 근거라면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두가지 명분 - 즉, 희생양의 부활과 포기아에게 해피 엔딩을 -을 위하여 동원되고야 만다. 그리고는 다소 김빠지는 마지막 키스신으로 작품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여전히 고철도시는 시끌법적할 것이다. 아니, 예루까지도 그렇게 되어 버렸다. 어쩌면 다시 인간은 우주로 진출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다시 새로운 주종관계, 그에 따른 새로운 신념들, 가치관들이 충돌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고철도시 문화는 자유롭다. 이데올로기도, 종교도, 가치관도 없는 곳. 이전 자렘의 통제된 박제 질서의 반대말이다. 여전히 고철도시는 슬럼일 것이고, 여전히 범죄, 싸움 등은 골목마다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바뀐 것이 있다.
바로, 새가 자신의 날개로 힘껏 날아오를 수 있는 하늘이 생겼다는 것.
...이상이 필작 대충 정리해 본 마지막 파트에 대한 이해다. 마지막화와 에필로그에 이르러서 급격하게 떨어진 연출력과 너무 많은 것들은 너무 단시간내에 모조리 해명하려 한 과욕 (그 반대편에는 에반게리온의 TV 25/ 26화가 있다 - 단시간만이 남았다면 꼭 다 해명할 필요가 없다는 자세)이 돋보였다고나 할까, 확실히 총몽의 결말은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작품 전체를 놓고 곰씹어보며 그 의미를 생각해볼 때 총몽의 진가는 드러난다. 총몽은 가리의 '성장기'인 것이다. 소녀에서 성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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