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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000] 특집 : 한국만화계의 과거와 현주소 (1) 중견만화가 고유성 대담 - 만화계의 이전 모습과 검열

 

   

 

   2000년입니다(이런 말을 하기에는 8개월은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하지만 여전히 하나의 이정표를 지났다는 느낌이 다가오지 않는 것은 여전히 만화를 둘러싼 여러 제반 환경들은 그대로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웹진 '고구마'는 창간호 첫 머리기사부터 곧바로 만화'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과연 우리 만화계의 현주소는 어떻게 어디까지 와 있으며, 무엇이 문제인지를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고자 합니다. 첫 기사는 (우리 측에서는 '원로'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스스로는 이렇게 불러달라는) 중견 만화가 고유성 선생님과의 대담입니다. 대담은 모처에서 무려 10시간동안 연속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가운데 이번 기사에서는 우선 만화계와 관련된 몇몇 주요 주제에 대한 이야기들 위주로 발췌하였습니다. 원래의 질문 진행 순서와는 큰 차이가 있으니, 양해하고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정리자 :  김낙호)


 만화계의 이전 모습과 검열에 대하여...

 

Q: 선생님은 만화 캐릭터로서 다른 만화에 많이 등장하시더군요.
A: 우리 친구들이 (지금은 친구들이라 부르지만) 상당히 재주있는 사람들 많았어. 김철호, 허영만, 김영하, 등등. 나중에 보니 특정 시기에 재주꾼들이 한꺼번에 몰려서 나오는 때가 있더라고. 바로 위가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형'이라 부르는 선배 작가군 - 이향원, 한희작, 강철수씨 등이 있고. 그 사람들하고 우리들은 중간에 치이는 세대라고 할 수 있어. 원로작가들은 (갈비씨 그린 양반, 박기정, 김종래씨 등이고. 이들이 활약한 5-60년대에 폭발적으로 만화가 많이 나왔어. 그때 대본소(만화가게) 만화들이 굉장한 수준을 자랑했고. 50년대 말 60년대 초에 이미 '우주전함 야마토' 같은 수준의 만화들이 등장했을 정도이니. 규제가 없으니 SF만화들 중에서 신랄하고 놀랄만한 것들이 많이 나왔어.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가, 5-60년대 3-4년 쯤에 지독한 비판을 받았어. 그때부터 시작해서 박통 (정리자 주: 박정희 대통령) 들어오면서 소위 '기강잡기'라는 것이 시작됐고, 만화라는 것을 사회 5대악에 하나 더해서 6대악으로 취급했지.

Q: 만화가 되기 전에 영향 받은 것은?
A:김원빈씨 만화. 64, 5 년에 '별소년'이라는 SF 만화가 있었어. 소년중앙일보인가에서 연재했는데,  그때 신문을 구독해서 그걸 잘라서 전부 모아두었지. 그 양반 때문에 만화 시작했다고 할 수 있어. 소년신문에 연재하기는 너무 아까운 실력이었지. 대본소용 주먹대장은 '어깨동무' 쪽과는 판이하게 달랐지. '어깨동무'쪽은 미국식으로 선을 줄여서 그린 것이란 말이야. 컬러를 입히면 기가 막히겠지...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원고 속도도 느려서...만화판에 오길 잘못했지.
예술만화 형식으로 미국 '헤비메탈'처럼 한달에 2-3쪽이라면 됐을텐데, 상황을 잘못 만난 경우야. 보통 당시 50쪽짜리 만화에서, 한 사람이 500권까지 만들어내던 시대였으니까. 데셍 작업에만도 50명이 있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으니. 진짜 대본소 안에서는 거의 지옥같은 상황이었어. 그런 상황에서 김원빈씨는 1달에 50쪽짜리 1,  2권을 내고 있었고. 사방에서 독자들이 찾지만, 원고가 안나왔어. 그때 독자들이 길이 잘못 들었지. 지금도 의식이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독자, 작가, 출판사 3박자가 모두 엉망이야. 서로 메리트를 높여갈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출판만화는 가망성이 없다고 봐. 전에 같이 폐쇄되어 있으면 모르겠지만, 개방이 되고 있으니까. 가까운 일본만화도 들어오고 있고.

Q: 만화가가 제 대접을 받으려면 작가중심 메니지먼트 필요할 것 같습니다.
A: 유명한 만화잡지의 편집부장이 한 소리가 있어: "작가가 나보다 월급 많이 받아가다니".(웃음) 그래놓고 SICAF 같은 행사에서는 권위자인양 행세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끝까지 왔다고 봐. 혁명적인 뭔가가 있어야 해. 인터넷이 제대로 되면. 개인적으로 홈피 만들고 알려질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하려고 5-6년전에 컴퓨터에 매달렸던 거지. 내 작품을 다른놈 손에서 주물림 당하는 게 신물이 나서. 작가들이 대중예술가로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아니고. 진짜로 밥벌이를 하려고(좌판 장사꾼처럼) 하고 있으니 말야. 그나마 지가 파는 것도 아니고, 남들이 팔아주길 바라는 모습까지도 보이고. 기존 출판계가 해결보기는 어려워. 개인의 힘으로 개선할 수 있는 것, 없는게 있기는 하지. 후배들이 올라와서, 제대로 고생없이 자리를 잡아서, 혹은 고생해도 고생의 이유를 알고 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해. 그래서 ARGO (정리자 주: 하이텔에서 고유성 선생님이 운영하는 소모임) 등도 만들고. 그런데 작가나 출판업자는 안오고, 독자들만 잔뜩 와서 팬클럽처럼 됐지만. (웃음) 이렇게 되면 미래가 없어. 인터넷 쪽은 출판물이 아닌 영상물이라서 마음이 걸리기는 하지만. CD-ROM은 또 영상물이라고 영상물 심의위원회 심의를 받아야 하거든. 내 참 더러워서...(웃음)

Q: 60년대 초반만 해도 작품들이 상당한 고품질이었더군요. 중후반부터 대본소 체제, 합동 등,으로 인하여 질이 하락하고. 만화산업이 양이나 장사꾼 쪽으로는 불어났다는 인상을 주더군요.
A: 그게 자업자득이야. 만화가들이 출판사들과 야합, 대량생산한 거지. 내가 막 들어올 때 그런 상황 시작했어. 몇몇 작가들이 작품성보다 양으로 생산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더군. 장사꾼으로 돌아선거야, 주도적 작가들이. 그때부터 그렇게 된거야.

Q: '골리앗'이라는 작품은 64페이지짜리 판형이었는데...
A: 왜 64쪽이냐 하면, 권수를 많게 하려고. 보물섬이 전문잡지로 나오기까지, '점프', '챔프' 나올 때까지만 해도 만화는 모두 대본소 중심이었어. 그 이후에도 한참 대본소 중심으로 돌아갔고. 아직도 대본소는 있고. '점프', '챔프'에서부터 일본식 잡지 연재 관행이 시작된거야. 그것도 지금도 인기순위가 떨어지면 단행본이 안나오고. 쪽수 200쪽 가까운 단행본을 당시 어떻게 일본식으로 내놓나. 우리나라에서는 수십권 쌓아놓고 보는 습관이 있어.

Q: '복제 인간' 등은 당시 상당히 시대를 앞서가는 작품이었는데요.
A: 원래 가야 할 만큼 간 것 뿐이지. 외국에 진출했다면 맥도 못추었을껄. 국민의 만를 보는 시각이 있어야 하고, 내수시장이 필요해. 내수시장이 안 되있으면 아무것도 안돼. 일본애들은 내수시장을 너무 확보해서 우물 안 개구리가 되버린 경우지만. 거기다가 일본은 너무 비대화해진 '공룡'이라서, 한 번 쓰러지면 멸망할 꺼야.그 전까지는 우리나라도 그랬고.

Q: 70년대에 대본소 작품을 그리게 된 경위는?
A: 73년에 제대하고, 74년도까지 문하 하다가, 도저히 안되겠어서 자작할 수 있도록 소개시켜달라고 했지. 지금처럼 원고 들고가서 하는 그런 게 아니라, 출판사에서 작가로 쓰고 싶으면 선생이 가서 얘좀 써줘라 했지. 대량 제작능력이 없으면 써주지도 못하고. 출판사들이 그때 다행히 3-4개 늘어나서 작가가 모자라니까 거기에 들어간거야.

Q: 80년대의 잡지연재들 상황은 어땠나요?
A: 튼튼하던 잡지사 월간잡지사들이 그때부터 바들거리기 시작했어, 보물섬이 나온 이래로. 전부터 일본식의 만화 전문잡지를 만들자고 작가들이 꼬셔서 만들었었지. 잡지는 소위 사후심의였는데, 전문만화지가 나오니까, 이걸 어떻게 처리할지 아는 놈이 없었어. 그래서 급한김에 결정을 내린게, 원고에 심의를 받아서 심의필을 바로 받는 거. 원고를 하고 나면 바로 심의실로 끌려가는거지. 다시 그런 일 이 있으면 정말 짱돌 들고 찍어야돼. 내가 SF를 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게 가장 심의를 안걸려서야. 로봇 킹도 한번 폐기를 맞았던게, 그때는 바빠서 식자까지 다 해서 가지고 갔는데 폐기가 나왔어. 왜냐고 했더니, 호연이가 우주에서 우주복 안 입고 맨몸으로 나갔다고. (웃음) 안드로이드였지만 말이야. 사실 요지는 안드로이드냐 아니냐가 아니라, 아직 안걸렸으니 한번 걸어본다는 수작이었지. 로봇 부서지는 것도 못그리게 해서, 연탄재와 영수증이 날라다녔지. (웃음) 공란으로 비워둘 수는 없으니까. 혼 만들때도 하도 지워대라고 해서 얼마나 열받았는지. 처음에는 빨간 펜으로 원고 위에다가 그었어. 이게 뭐냐고 항의를 했지. 몇 페이지 뭐가 어쩌고 목록을 만들면서도, 그러는거야. 그래서 그들이 술수를 쓴다는게, 파란 색으로 바꿨더라고. 인쇄가 되지 말라고 뭐 그런것도 아니고(주: 아마도 빨간색이 기분나쁘니까...?). 왜 원고에 손을 대냐고.

Q: 인터넷이 출판만화를 그대로 올려서는 그 재미 그대로 느끼기 아직 힘든 경우가 있지요?
A: 심의 없이, 작가 마음대로 만들어 올리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건 그때 가서는 진짜로 나와 문제 제기한 인간과 상대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 지금은 출판사에 가져다주고, 심의를 받아서 나오고 있어. 도대체 왜!!! 작가가 심의를 받는 게 아니야. 옛날부터 창작의 자유는 기본법이야.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심의를 왜 받느냐? 바로 출판사에서 받는거야. 심의 안하고 나오면 문공부 등에서 허가 취소 등 제재를 가하니까. 딱지 정도로 심의가 줄어들었다고는 하지. 청소년 윤리위원회라는게 애초에 심의실 근무하는 사람들이 낙하산으로 지나가는 자리로 만듬. 1년 예산 15억. 원래 심의실을 없애자고 했는데. 졸지에 퇴출당하게 생기니까 청소년 보호법 안에다가 청소년 매체라고 만화를 박아 넣어버렸어. 초기에는 심의가 없었지. 특정한 작가관이나 만화출판 기회가 따로 없었어. 당시에는 서점 가는 것도 비싸서 못갔지만... 검열제도 등, 만화계는 엉망진창이야. 이제부터 기초를 세워야 할 판이지. 외국 사례들도 보고. IMF로 본색이 드러났는데, 60년대에서 하나도 진도가 안나갔던거야. (웃음) 지금 40년이라는 세월을 어디서 보상받나. 기초적인 구조를 연구한 사람도 없어.

Q: 교과서를 미국처럼 만화화하는 계획이 있었다는데.
A: 옛날에 전두환이 들어왔을 때 교과서를 미국처럼 만화화 하는 걸로 기안이 잡혀서 예산까지 내려오고 그랬는데, 나도 와서 세미나에 참석해달라고 해서 갔더니 실제로 제작과정에 가보구서 아주 학을 뗐어. 실제로 제작까지 들어가지는 않고. 국정교과서에서 민간 출판사에다 출판을 맞기는 식으로 의욕적으로 해 가지고 하자고 했었는데, 삽화가 들어가는 게 한 권당 600점이었다구. 그걸 어떻게 하냐구... 한달 만에 다 그려야 하는데. 아니, 할 수도 있었는데, 돈만 많이 준다면야. (좌중 웃음) 근데, 돈도 많이 주지도 않거니와 그 때 교과서 단가가 엄청나게 낮아서 아니, 교과서 단가가 낮은 게 아니라 그 때 돈이 내려오는 게 책 나오기 한 달 전이라는 거야. 그래서 미리 돈을 주면 어디 덧나느냐 그랬더니 멍~ 하다가 문교부 담당자가 하는 말이 일단 책이 제작되면 일일이 다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거야. 최종적으로 돈이 나오는 게 (출판) 한 달 전인데... 그거야 돈이 안 나오면 못 찍는 건 당연한 거니까. 삽화가들이 거기서 그러더라구. 우리가 하면서 울면서 그린다구. 왜 그걸 하냐 그러면 할 게 그것 밖에 없으니까. 우린 그래도 만화 그린답시고 푼돈이나 만질 수 있는데 창피해서 거기 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없지. 거기다가 또 다른 것은 만화로 그걸 그리면 최소 반 이상은 체크 당해서 다시 그려야 되고. 우리나라 교과서는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하고 달라진 게 하나 없어. 그렇다면 이건 교육이 완전 개떡이라는 예기거든. 진짜 이러면 학교 보낼 필요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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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  dugoboza
 ▶ 조회: 1459 | 등록: 2002/01/15 
rwPFUkUXszDH rephqr 2010/04/09
생각해보니 이 글은 `웹진 두고보자` 혹은 `만화비평집단 두고보자`가 그들의 이름을 걸고 외부에 내어놓은 첫번째 글 입니다. 어쩌면 꽤 기념비적인 것 일지도 ... halim 2002/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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