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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만화의 제작과정 (9)
주인공에 관한 논의는 끝도 없이 많지만 강의가 너무 지루해질 것 같으므로 여기서 일단 조연급 인물로 넘어가기로 하겠다.
영화의 예를 들어보면 누구나 다 처음에는 조연급부터 시작한다.
처음부터 주연을 맡는 행운아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밑바닥서부터 올라와서 경력과 테크닉을 쌓아서 주연급 인물로 데뷔한다.
조연급이란 대충 분류해보면 A,B,C급과 엑스트라등으로 구분하는데(실제로 영화계에서 그렇게 구분하는지는 모른다, 영화를 좋아하는 본인의 분류방식일 뿐이다) A급 조연이라면 거의 주연과 맞먹는 비중을 가져서 미국에서는 따로 조연상까지 마련할 정도로 신경을 쓴다.
만화도 활동사진이 아닐뿐 영상물이기는 마찬가지라서(이것은 따로 논하기로 하자) 아직 세분화된 이론이 없으므로 영화쪽 분류를 따르기로 하는게 훨씬 편할 것이다.
조연이란 주인공을 보좌하는 역할로 끝나는게 아니라 나름대로 개성을 갖고 주인공과 역할 분담을 할 정도의 비중있는 인물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주인공만큼의 부담을 갖지 않으므로 오히려 마음 편하게 작품 속에 녹아 들어갈 수 있어서 좋다.
따라서 조연급 인물들을 얼마나 잘 배치하느냐(만드느냐)에 따라 작품을 전개하는 것이 어려울수도 쉬울수도 있을 정도이다.
A급 조연이란 주로 주인공과 밀접한 관계를 갖인 인간이 대부분이고 이야기 전개상 꼭 필요할 경우가 많기 때문에 쓸만한 조연이라면 얼마든지 만들어도 후회할 일이 없다.
백설공주란 얘기의 모티브를 살펴보면 공주,계모,왕자의 주요인물 이외에 일곱 난장이(아마도 요즘 얘기하는 요정이리라)가 나오는데 그 인물들이 서로 약간씩 개성이 틀려서 기억에 오래남게 한다.
오히려 주요인물(왕은 아예 비치지도 않는다)이 조연같은 느낌을 줄 정도가 되버렸는데 앞으로는 그렇게 눈꼽만큼의 개성이라도 있지않는 한 조연은 커녕 엑스트라도 맡기 힘들다는 딜레마에 빠진다.
예전의 주인공이라는 인물은 될 수있는한 개성이 없는 평범한 인물과 팔자가 좋아서 행운을 만나는 인물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대중의 수준이 대부분 중산층이상으로 올라선 이제부터는 그 행운이라던가 부유하다던가 신분이 높다든가 하는 부수적인 요소는 별로 매력이 없으리라 본다.
이것은 이야기의 모티브 즉, 꿈과 이상을 팔아먹는 만화에서 꿈과 이상의 목표가 바뀌었다는 중대한 사실을 의미한다.
목표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모른채 구태의연하게 작품을 만든다면 틀림없이 실패할 것인데 '완전한 실패'가 된다.
완전한 실패란 시간이 지난후에 다시 선보일 수 없는 문자 그대로 단 한 번의 발매로 끝장난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으로써 사후 50년까지 보장된 저작권을 휴지조각으로 만드는 실패이며 그만큼 자신의 시간과 정력을 낭비했다는 뜻도 된다.
만회할수 없는 실패를 한다면 그만큼 관찰에서 실패했다는 뜻이고 그것은 작가로서의 생명력을 단축했거나 수명이 다했다는 무서운 결과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만화가 하나의 목표가 될 수는 있지만 인생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2000년 4월 만화가 '고 유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