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만화의 제작과정 (13)

 

 

  

 

 

 

 

 

 

 앞서처럼 자칭 민족사랑 대행진 준비위원같은 논쪼로 강의를 펼치려고 하면 마치 감당할 수 없는 숙제를 떠안은 아동처럼 질린 표정을 하고 쳐다보는 사람들을 무수히 보는데 적당히 세상을 봐온 주입식 교육의 잔재가 몸에 배인 사람들은 만화뿐 아니라 무슨 일을...문화,예술적인 일...해도 그 배경에 깔린 내면을 들여다 보고는 그런 표정을 지을 것이다.

 

그렇다면 점잖은척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 만화를 만들겠다고 끼어들었지만 알고보면 만만한 일이니까 까짓거 나도 한 번 해보자는 식의 속셈이거나 자기의 재주를 뽐내보자는 얄팍한 심사에서 덤벼들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대중예술(문화)는 쉬워보이니까 아무나 할수 있다는 몽상을 하는 사람을 종종 보는데 본인은 아니라고 우겨도 속셈은 뻔한 것이다. 물론 만드는자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쉬울수도 있고 어려울수도 있는일이 이런 대중 문화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어떤 작품이든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만드는자의 피와 땀과 눈물이 배있지 않으면 가치라는 것이 생기지 않는다.

 

한동안 강요에 의해서 아니면 먹고 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닥치는 대로) 만화를 만들던 때가 있었는데 단지 그 이유만으로 만화를 만들던 사람들은 소원대로 소리없이 사라져 갔다.

 

물론 자연법칙(자연 도태)에 의해서 사라진 경우도 있지만 본인이 보기에는 대부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작가의식의 결여로 인한 탐구,관찰,노력등이 부족해서) 별 고민도 안하고 갖고 있는 재간과 경험만으로 어영부영 만들다가 자업자득의 원칙대로 사라진 것으로 여겨진다.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수 없다.

또한 만화라고 해서 작품이 대량 생산의 팬시 상품이 될 수도 없으니 ...만화는 이야기가 있는 그림이라는 기본적인 제작 목적을 인식하지 못한다면...목적을 잘못 설정하면 결과는 너무나도 자명하게 만화가의 자멸로 나타난다.

 

다행히도 작가가 하는일은 순수한 개인적 일이기에 홀로서기만 잘 견뎌낸다면 어느 조상님의 시처럼 '백설이 만건곤할제 독야청청 하리라' 할수도 있다.

 

주변에서 아까운 재주와 재간을 가지고도 비참한 상황으로 떨어져간 많은 사람들을 볼때마다 안타까운 생각도 없지 않지만 어차피 작가의 길은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혼자만의 외로운 길이다.

 

얘기가 너무 심각하게 나가는 것 같으므로 잠깐 순정만화라는 변수로 돌려보기로 하자.

 

변수라고 말하면 기분나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만화면 만화지 다른 명칭이 덧붙는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의미에서 하는 소리이니 오해없기 바란다.

 

순정만화는 대부분 여성이 그린다.

 

전에는 종종 유행따라 남성들도 순정만화라는 것을 만들었었는데 알고보면 남성에게도 어느정도 여성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에 충분히 수용할수 있다.

 

세상의 반은 여자라는 얘기가 있듯이 여자들만을 위한 만화라서 순정만화라는 닉네임이 붙었는지는 모르지만 또한 여성들도 어느정도 남성심리를 갖고있기 때문에 남성들을 위한 만화를 만들수도 있다.

 

우스개 얘기로 꼬랑내나는 남자보다 향기로운 여자의 체취를 선호한다는 향수론을 펼치는데 어느 정도 일리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순정만화라는 변수를 인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여성들은 드라마를 꾸미는데 숨은 재주가 있다.

 

여태까지의 관행(?)상 무지막지한 남성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머리를 잘 써야한다는 본능적인 계산에서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드라마 즉,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재치는 남성들보다 한수 위라는게 중론인데 그렇다고 순정이라는 한물간 용어를 붙인다는 것은 성차별과 다름없는 행위라고 본다.

 

어쩌면 남성들이 여성들의 드라마 꾸미기 실력(재주라고 볼수는 없다)을 많이 본받아야 할 것같기도 하다는게 요즘의 추세인데 경쟁상대로 써 본다면 상당히 버거운 상대인 것만은 틀림 없다.

 

남성위주의 사회에서(앞으로도 당분간 그 관행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숨어지내던 여성들의 특성상(작가의 특성과 비슷하다) 충분한 관찰을 할수 있었으므로 사태(드라마)가 어떻게 전개될른지 충분히 숙지할 여유가 있었고 기회가 오면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결사적인 인생이 그렇게 만들었으리라 보는데 이 또한 작가가 갖춰야할 기본 소양이므로 그냥 자연스럽게 만화이야기 속으로 스며들 수 있다고 본다.

 

어쨌든 만화가로써는 더할나위 없는 정통성(?)을 싫든 좋든 지니게 됐으므로 소질을 충분히 발휘할수 있는 다크호스인데 남성이든 여성이든 선배든 후배든 동료든간에 경쟁자가 있다는 것은 상당히 기분 좋은 일이다.

 

혼자서 뛰는 경주는 너무 외로우니까.

 

 

 

                                                                           2000년 4월 만화가 '고 유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