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와 개그 – 곤 GON [기획회의 335호]

!@#… 여하튼 새로 주욱 다 나온 기념으로.

 

다큐와 개그 – [곤 GON]

김낙호(만화연구가)

초등학교가 아직 국민학교로 불리던 그리 오래지 않은 시절, [시튼 동물기]가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미국 보이스카웃 창립자들 중 하나이자, 야생 자연을 각종 그림과 글로 남긴 작가가 그려낸 동물 관찰담이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들은 동시대 유행하던 [파브르 공충기]와는 달리 과학자의 분석적 시선으로 생물의 생태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동물의 삶의 궤적을 때로는 관찰자로, 때로는 동물의 시점이 되어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식이다. 그 안에서 자연의 섭리, 동물들의 본능과 품위, 사랑과 죽음을 발견하며 독자들을 몰입시킨다. 그 어떤 인간에게도 잡히지 않고 가축들을 잡아가던 영리한 늑대가 사랑하는 암컷을 위해 헌신하다가 결국 잡히는 모습, 철부지 곰이 숲 속에서 역경을 거치며 강하게 성장하는 모습 등이 소년소녀들을 울렸다. 아니면 학교숙제로 강제로 독후감을 써야 했기에 울었거나.

그렇듯 대자연 속 동물들의 생활을 그려내는 이야기는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피든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든, 사람들은 동물의 모습을 통해 자신을 읽어내고, 현대 사회 속 인간보다는 좀 더 단순하고 순수한 그들의 행동에서 영감을 받는다. 그런데 이런 내용에서 종종 부족한 것은 바로 유머다. 그도 그럴 것이, 자연의 법칙은 별로 우습지 않기 때문이다. 약육강식으로 언제 잡아먹힐지 모르고, 재해와 사고가 벌어져도 인간 사회마냥 구급대책 제도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과정에서도 살아남는 생명력에 대한 경탄을 보내거나 그래도 동료를 챙기는 군집본능이나 ‘애정’에 감동할 수 있을지만, 어쨌든 장중하고 비장하다. 동물 생활기가 주는 드라마틱한 경탄과 유머감각이라는 나름대로 상반되는 요소들을 성공적으로 함께 섞을 수 있다면, 대단히 이질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한 작품이 될 것이다.

오랫동안 절판 상태였다가 최근 TV애니메이션이 제작되어 재출간된 [곤](다나카 마사시 / 대원 / 7권 발매중)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곤은, 꼬마 공룡이다. 그런데 선사시대 생태계의 거대 조류-파충류가 아니라, 개그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캐릭터로서의 꼬마 공룡이다. 몸통과 머리의 크기가 같은 2등신이고, 눈과 입은 거대하고, 성격은 급하며 힘은 박치기 한번에 부수지 못하는 것이 드물도록 과장되게 강력하다. 이런 지극히 비현실적인 개그물 주인공스러운 동물이, 아주 현실적인 대자연 동물 서식지에 던져진다. [곤]에 나오는 모든 개별 에피소드들은, 어떤 특정한 동물군이 살아나가는 험난한 대자연의 현실 상황에 곤이라는 황당한 캐릭터가 등장하면서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을 그려낸다. 곤은 어떤 동물보다 강하며, 또 성격도 다혈질이다. 그리고 정을 주고 깊은 감정에 빠지지 않고, 그저 늘 맛있는 먹거리를 찾아나설 따름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큰 포식자들을 날려버려서 작은 동물들을 결과적으로 구해주기도 하고, 어떤 동물들의 성장기를 함께 해주기도 한다.

[곤]은 [시튼 동물기]에서 보던 식의 자연 속 동물들의 생활과 곤이 벌이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기이하게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다. 엄마가 죽고 버려진 들개 새끼들이 곤을 부모로 따라다니며 각종 험난한 역경과 천적의 공격을 막으며 결국 건장한 들개로 자라나는 에피소드라든지, 숲의 온갖 동물들과 함께 큰 자연재해로부터 도망가는 출애굽기 같은 에피소드들이 좋은 예다. 각 동물들의 본능적 생태들이 세밀하게 묘사되면서 이야기를 끌어나가면서도, 결정적 순간에는 곤이 출동해서 박치기를 하거나 물어뜯어 포복절도할 상황을 만들어낸다.

두 가지 상반된 것의 조화를 만드는 방식은 의외로 단순하다. 곤은 호랑이를 만나면 호랑이를 물고, 사자를 만나면 사자를 박치기하는 무조건 압도적으로 강한 힘을 자랑한다. 하지만 자연의 커다란 흐름만은 어쩔 수 없다. 곤이야 개그캐릭터니까 화산에 떨어진들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곤 주변에서 함께 하게 된 다른 모든 동물들은 그렇지 않다. 포식자에게 먹히면 죽게 되어있고, 절벽이 무너지거나 화산이 폭발하면 끝이다. 곤의 활동은 몇몇 등장 동물들에게 예외적 상황을 던져줘도, 동물들의 질서를 뒤집지 못한다. 곤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자연현상일 뿐이고, 독자들로 하여금 개그의 재미를 통해 동물들의 삶으로 들어가는 안내자다.

모든 자연 다큐멘터리마다 결국은 다루곤 하는 바다거북이의 일생을 생각해보자. 어미거북이 해변에 알을 낳고, 그 알에서 나온 거북이는 대부분 모래사장에서 포식자에게 먹히고, 바다에 도달하자마자 또 다른 포식자들에게 먹히고, 수영을 충분히 습득하지 못해 죽고, 결국 소수만이 먼 바다로 나가서 성체로 자라나 나중에 다시 다른 해변에 알을 낳으며 생명의 원을 그려내는 과정을 장엄하게 묘사한다. 그런데 [곤]은 좀 더 유머러스하다. 곤이 우연히 버려진 거북껍데기를 뒤집어썼다가 다른 거북이 새끼들과 함께 거북이처럼 여행하게 된다. 가끔 달려드는 포식자들을 박치기로 날려버리고, 큰 장애물들도 부숴버린다. 하지만 자신과 함께 헤엄치는 모든 거북이 새끼들을 보호하는 것은 무리고, 점점 줄어드는 거북이떼가 결국 본능에 따라서 큰 바다의 해류로 들어가는 과정을 함께 겪고 관찰한다.

물론 단순하다는 것은 결코 그렇게 하는 것이 쉽다는 말이 아니다. [곤]이 이런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은 시각적 표현능력에 의지하는 부분이 절대적이다. 이 작품을 처음 펼쳐보면 느끼는 것이 바로 마치 동물도감이나 야생 풍경화를 보듯, 모든 것을 그림 자체로 전달한다는 점이다. 대단히 세밀한 펜선으로 그려진 자연의 풍광과 동물들의 일거수일투족에는, 아무런 글자가 스며들지 않는다. 어떤 동물도, 의인화되어 사람의 언어로 된 생각을 독자에게 전달하지 않는다. 어떤 소리도 인간 언어로 변환한 의성어를 문자로 기록하는 방식으로 장면을 수놓지 않는다. 즉 아무런 대사도, 의성어 의태어 효과도 들어가지 않은, 모든 문자를 배제한 연출로 이뤄졌다. 그저 곤이 만들어내는 과장된 동작과 상황들을 묘사하기 위해 풍경의 일부가 집중선과 섞여 들어갈 따름이다. 곤이라는 상당한 개그캐릭터가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손길이 닿은 공간이 아닌 야생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는 최적의 방식이다. 이와 함께, 동물들의 표정 묘사 역시 대단하다. 해당 동물 특유의 표정과 개그만화에서 활용하는 과장된 ‘인간적’ 표정 사이에서 유연하게 오가면서 각 상황에서 감정의 깊이를 더한다. 그러면서도 의인화의 수준까지는 가지 않도록 절제하여 야생의 느낌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물론 아무리 매 에피소드마다 색다른 동물들을 다룬다고 해도, 여러 권이 넘어가면서 반복적인 패턴에 초반의 신선함은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자연 다큐의 감동과 개그만화의 재미를 완벽에 가깝게 섞어 넣은 이런 재미는 그 정도로 상쇄되지 못한다. 즉 두 장르의 팬들 모두에게 강력하게 추천할 작품이다.

GON 곤 1
마사시 타나카 지음/미우(대원씨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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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그러니까 지금 호): 도련님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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