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지 시장이라...비판하려면 한없이 비판할 수 있고, 옹호하려면 한없이 옹호할 수 있는(웃음) 소재로군요.  어쨌든 저의 기본적인 시각은 [긍정]입니다.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하거든요.  일종의 이벤트란 느낌이어서.

  일단, 이야기를 하기 전에 동인지 시장에 대해 먼저 살펴보고 넘어가겠습니다.  동인지라는 것은 맘맞는 사람들(다른 동호회에 속해있는 경우도 있음)이 모여 일시적으로 회지를 내고 (대개는 판매전에 참가한 후) 모임을 해산하는 형태를 취합니다.  마음이 맞았다면 계속 같은 이름으로 동인지를 낼 수도 있구요.  최근에는 동호회지보다 동인지 형태가 더 늘어난 감이 없지 않습니다만.  (아무래도 어딘가에 속해 있는 것보다 아는 사람들끼리 연합한 형태가 취향에 맞는 걸까요?)  지금 아마추어 시장을 이콜(=) 동인지 시장이라고 봐도 별 무리는 없지만...일단 개념은 다르다고 봐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아마투어 시장을 동인지 시장이라고 언급한 것이니 이 점 양해바랍니다.

우선 이들 시장의 경향을 시기별로 구분해보면,

1) 80년대 : 프로지향의 자기만화를 그리는 것이 대세.
2) 90년대 : 성적인 묘사가 강화된 남자들간의 사랑이야기 - 야오이가 각광.
3) 90년대 중반~ : 야오이는 소설 쪽으로 중심이동, 만화는 인기만화의 패러디가 경향을 이루고, 만화캐릭터로 분장하는 전문적인 코스튬플레이 동호회가 등장하는 등의 다분화.

...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청소년 보호법 때문에 동인지 시장이 떠들썩했던 것이 바로 저 2)와 3) 사이에 있었던 일입니다.  반드시 그것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그런 식의 부정적인 외부의 시각을 수용하여 자체정화가 있었던 때이기도 합니다.  아마추어계 내부에서도 지나친 선정성과 천편일률적 스토리에 진력을 내고 변화를 모색했던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으니까요.  (야오이가 만화보다 소설로 중심이동을 한 것에는 그런 자체노력의 결과가 반영된 것입니다.) (뭐, 개인적으로 야오이란 장르 - 이제는 거의 장르라고 생각합니다만 - 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것만이 '대세'였다는 것에 문제가 있었다는 거죠:)

  동인지 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들은 대개 지나치게 유행에 민감하고(아마추어계 내의 유행 말입니다.  뭔가 상당히 특이해보이고 뭔가 상당히 있어보이는 만화를 지향한다는.) 대세를 이루는 경향에 쉽게 휩쓸린 결과 - 자세히 보면 다르지만 얼핏보면 다 똑같은 일본식 만화를 양산해내고 있다는 생각에서 나옵니다.  게다가 요즘엔 자기만화는 안그리고 죄다 남의 만화 패러디만 해대고 있으니까요.  아니면 팬시만 그려 팔던가 만화캐릭터처럼 이상한(?) 옷 입고 어기적어기적 걸어다니던가.  그리고 대부분은 척 봐도 알 수 있는 일본만화입니다.  (이런 매국노같으니~ 소리가 절로 나올 지도?;)

  하지만 이들에게는 그것이 하나의 행사입니다.  우리나라처럼 놀 곳 없고 공부만 죽어라 파야하는 아이들에게는 [만화축제]라는 것을 계기로 이런저런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보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옷도 좀 찢어서 입어보고, 팬시란 것도 만들어서 호객행위(웃음)라는 것도 한 번 해보고.  이런저런 기획을 하면서 취미가 맞는 친구들과 시시덕거리기도 하고.  ...[규제]가 없거든요.  뭘 해도 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 게 아니니까.  일종의 해방구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청소년보호법이 아마추어 시장에 손을 뻗기 시작했을 때, 혹은 아마투어들 자체 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이들이 반대했던 것은 - 별로 찔릴 것(?)이 없는 사람들마저도 - 그런 자유를 침해받는다는 것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별로 존경심도 일지 않는(웃음) 정부가 일방적으로 칼침을 놓겠다.고 나오니까 그대로 열이 받았던 거지요.  (지금 일고 있는 [통신질서 확립법]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발도 비슷한 이유가 아닌가요?)

아마도 문제가 되는 부분이라면,  
- 얼핏 보면 개성이 강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그림체들이 다 엇비슷하다.
- 오리지널 창작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인기(대개는 일본)만화의 패러디다.
- 야.한 게 많다.

가 될텐데...그건 자신들이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보고 아니다 싶으면 안사면 되는 거 아닌가요?  동인지 시장이 예전에는 프로를 지향하는 아마추어들의 모임이었다면, 지금은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제멋대로 축제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만화가가 동인지 활동을 통해 데뷔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든 만화가가 될 사람은 자기 스타일의 만화를 그려서 데뷔하게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동인지 시장을 통해 아마추어 만화가들(이들 중 프로 지향이 얼마나 될까요?)을 가늠하고는 앞으로의 우리나라 만화계를 걱정하는 것은 지나친 과민반응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음...그리고 아시겠지만, 동인지 시장의 경향과 일반대중의 성향은 별로 일치하지 않거든요. 동인지 시장에서 소위 '팔리려면' 일단 자극이 강하고 특별히 그림이 뛰어나다던가, 것도 아니면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도 그림 괜찮고 재미만 있으면 입소문이 나서 팔리게 되어 있어요.  하지만 동인지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다고 데뷔해서 히트작가가 되는 건 아닙니다.  입맛이 틀리거든요.  동인지 시장이란, 대개 그냥 만화를 보는 사람들보단 좀 그리거나, 매니아틱한 사람이 오는 빈도수+지출비용이 크기 때문입니다.  수요 자체가 틀리단 얘기죠.

  동인지 시장이 점차 어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따라서 대세에 휩쓸리며 단지 '야하니까' 만화를 그리고 또 글을 쓰는 어린 학생들이 걱정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평생 알맹이없는(웃음) 만화만 그릴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사람이란 게 그렇지 않던가요.  첨엔 재미있다고 보다가도 기왕이면 뭔가 다른 색다른 게 있었으면 좋겠다...하고는 그 안에서 또다른 것을 찾게 마련입니다.  (제가 야오이를 하나의 '장르'라고 표현한 것에는 이런 이유도 있습니다.)  결국, 사람 하기 나름이랄까요.

  그리고 동인지가 자극성이 강한 소재를 주로 다루는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그게 '멋져보이니까'란 단순한 이유도 있지만, 동인지는 인쇄부수가 적은만큼 기존의 프로만화보다 가격이 비싸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런 만화를 찾는 사람들은 투자한 만큼의 뭔가를 바라기 마련이거든요.  ...뭐, 우리나라 만화계(?)의 발전을 위해 이 한 몸 희생하여 지갑을 기꺼이 비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죠.  (저기요, 만약 그런 거라면 패러디집을 사지 말고 몇 안되는 오리지널 만화를 사주세요.)  투자한 만큼의 값어치 - 라는 것은, 다시 말해 [프로만화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걸 말합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기왕이면 값도 싸고 그림도 멋지고 더 재미있고 완성도높은 프로작품을 사지 뭐하러 비싸고 양도 적고 그림도 떨어지는 아마추어의 작품을 사겠습니까.  ...외국 나갔다 비싸더라도 기념품 하나 집어오는 기분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웃음)  그렇다면 프로만화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것은 무엇일까요?

  물론, 지금 동인지 시장의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들.이겠지요.  간단히 '야오이'와 '패러디'입니다.  둘다 프로들은 할 수 없는 거잖아요.  할 수 없다기보다, 할 수 없게 막고 있는 것이지만.  동인지 시장에는 [규제]가 없다.는 점이 이들 소재를 다루는 것엔 상당한 플러스가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주류를 이루는 이유는 - 그것이 '잘' 팔리기 때문이죠...  아마투어 시장이라고 해서 자본주의 논리가 안먹히는 건 아니거든요.  게다가 그리는 당사자들이 그리는 걸 즐긴다는데 할 말없죠.  그려서 즐겁고, 팔아서 돈 벌고.  앞서 말씀드렸지만, 동인지는 언제나 적자거든요.  특별히 잘 나가는 프로들이 있는 곳이 아닌 이상에야 대개는 적자를 면치 못합니다.  물론 그래도 만드는 건 그 자체를 즐기기 때문인거구요.  

  대개의 토론이나 논란의 결과를 보면 그렇지만, 부정적인 면을 보는 사람은 당시의 현상을 말하고 긍정적인 면을 보는 사람은 원칙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원래 의도만으로 설명하자면 나쁜 게 어디있겠어요.  다수결을 옹호하는 민주주의란 것도 그렇죠.  자칫하면 중우정치가 되지만, 그래도 그런 구조의 장점을 인정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살아남은 것이 아닌가요. 핵 문제도 빼놓을 수 없군요.  어떤 문제나 그렇겠지만, 결국은 운용하는 사람 나름인 것입니다.  (...아, 이런 교과서적인 발언을-_-;)  (원래 이런 문제는 이런 결론이 나오게 되어 있으니, 돌은 저기 건너편에다 던져주시길.)

  글 마무리는, 문화는 능동적으로 향유하는 층이 늘어날수록 더 깊고 다양해진다...는 친구놈의 발언을 인용하겠습니다. (어쩌면 이 녀석도 어딘가에서 줏어들은 말일 지도 몰라요. (웃음))  그리고 그게, 규제한다고 되는 문젠가요...  그런 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하는 제가, 지나치게 긍정적인걸까요?  

                                             (사진출처: [만화인]) [**두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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