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특이한, 동물 키우는 만화들 [도서관저널 1305]

!@#… 동물 키우기, 사람 키우기.

 

약간 특이한, 동물 키우는 만화들

김낙호(만화연구가)

‘애완’동물이라는 용어가 사양길에 들어서고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어느덧 제법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풍경이다. 그만큼 동물을 키우고 가족의 일원으로 취급하는 것이 어떤 생활의 맥락에서든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문화가 되어온 것인데, 덕분에 동물을 키우는 것에 관한 만화들도 양적으로나 다양성 측면에서나 더 풍부해져왔다. 한쪽으로는 워낙 만화가라는 창작노동이 집에서 눌러앉아 작업하기 쉽다보니 반려동물을 통해서 정서를 달래는 것도 있고, 다른 쪽으로는 동물을 키우는 내용으로 사람들과 더 효과적으로 작품의 소통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것도 있다.

가장 평범하게 보자면, 동물 키우는 만화는 작가가 자기가 키우는 고양이를 자랑하며 귀여워 죽겠다는 내용으로 적당히 작품을 가득 채우며 마찬가지로 고양이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읽는 단순한 취향 공감대 일상만화가 떠오를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 류의 작품들은 흔하고, 애호가들의 무리 안에 들어서있지 않은 많은 이들에게는 전체적으로 무의미하다. 하지만 그런 방식과는 조금 다르게 동물 키우기를 논하는 작품들이 있으니, 그런 부류는 소재 자체에 함몰되기보다는 좀 더 다양한 방식의 재미든 교훈이든 연결해볼 여지가 생긴다. 이런 소재인데도 이런 식으로 엇나가며 멋진 작품이 되는 것이 가능하구나, 라는 감상을 준다면 특히 훌륭하다. 약간 특이한, 동물 키우는 만화들을 살펴볼 시간이다.

동물 키우기의 다른 일면들

동물 키우기 작품의 평범함을 깨는 한가지 직관적인 방법은, 귀여워 죽겠다는 팔불출스러운 자랑을 뒤집는 것이다. 뻔히 상상되는 귀여움, 애착 같은 것을 대폭 밀어내고, 동물 키우는 것의 고난을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사실 애초에 동물을 키우고 그 내용으로 만화를 그린다는 것 자체가 애정은 충분히 있다는 것이니, 반대급부로 문제점들을 잔뜩 꺼낸다고 해도 충분히 양가적인 느낌을 준다. 자신이 키우는 동물의 난감함에 대해 강력한 유머감각으로 풀어내는 작품 [우리집 새새끼](골드키위)의 주인공은 문조다. 그런데 문조라는 새의 기본 기질도 그렇고, 작가가 키우는 문조는 아주 맹렬한 말썽덩어리다. 배변을 아무데나 놓는 것은 기본이고, 부리로 냅다 쪼아서 공격하는 것과 교미를 위해 달려드는 것 등에 있어서 민폐 그 자체다. 착한 것도 귀여운 것도 아닌 성격과 행동의 문조인데, 그냥 문조이다보니 귀여운 모습이다. 이런 새의 행태를 묘사하고 그것을 키우는 과정의 소동들을 각종 패러디 개그와 천연덕스러운 상황 유머로(흔히 온라인에서 쓰는 ‘개드립’이라는 속어가 이 작품의 서사 스타일을 가장 잘 압축해준다) 풀어나가는 작품이다. 반려동물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까지 새똥이 난무해도 될까 독자들이 오히려 신경 쓰이게 만드는 거침없는 유머 덕분에, 반려동물에 대한 동경과 환상 깨기를 동시에 이뤄내고 있다. 덕분에 반려동물이 아닌 모든 반려 존재들을 대할 때 사실은 양가적인 면이 있지 않던가, 넌지시 떠올리는 계기도 되어준다.

장르표현의 반전을 통해 특이한 동물 키우기 만화로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이토 준지의 고양이 일기 욘 & 무](이토 준지)는 유명 공포만화가 이토 준지가 자신이 집에서 키우는 두 마리 고양이와 겪는 일상을 에피소드로 그려내는 만화다. 이 작가는 원래 갑작스런 저주로 인한 일상 파괴, 그로테스크한 신체 변형 등을 주로 소재로 삼으며, 특히 퀭하게 눈이 들어간 공포에 찌들거나 짜증이 가득한 인물들의 모습이나 기이하게 일그러진 형상의 요물 등이 특기다. 그런데 마치 공포만화의 거장이자 부조리 개그만화에서도 명작을 내놓은 우메즈 카즈오처럼, 이토 준지의 동물 키우는 만화는 유머 넘치는 상황으로 가득하다. 자신의 고양이들을 마음껏 쓰다듬고 싶은데, 부인에게 대하는 것과는 달리 자신에게는 영 소원한 고양이와 친해지고자 별 노력을 다 한다. 그런데 그런 실없는 상황들을 우선 일인칭이 아니라 3인칭 관찰에 가깝게 그려내고, 무엇보다 공포만화에 사용하던 그림체와 비슷한 그림과 분위기 연출을 그대로 활용하여 작가의 그런 귀여운(?) 모험들을 묘사해내고 있다. 덕분에 이 작품은 그냥 동물 키우는 만화의 애정과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이하면서도 소심해서 우스운 어떤 평범한 현대인의 좌충우돌 애정 갈구 모험담도 될 수 있다.

동물 키우기를 통한 인간사 이야기

동물 키우기를 소재로 하면서 주제조차 딱 그 선에 머무는 것은 아까운 일이다. 이왕 관심과 공감을 끌어올 수 있는 소재라면, 그것을 활용해서 더 많은 다른 생각들로 연결해볼 가치가 있다.

먼저, 시점을 바꿔보면 방법이 있다. 사람이 동물을 키우는 내용이 줄거리이기는 한데, 실제로는 키워지는 동물이 주인공으로서 사람 세상의 여러 일면들을 관찰하는 전개다. 그것도 어떤 주인님의 연애생활이나 일상을 그려내는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의 비루한 생활들, 그 안에 있는 비열함과 욕심, 따뜻함과 나눔을 이야기하는 식이라면 더욱 좋다. 그런 작품이 바로 [검둥이](윤필)로, 각종 비정규직 노동의 현실을 살아가는 개를 주인공으로 감동을 준 [흰둥이]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차기작이다. 검은 색의 개 검둥이는 이북 출신 할아버지에게 키워지며 가난하지만 소박한 생활, 그러나 늘 헤어진 가족을 그리워하는 주인의 모습을 본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 과정에서 인간사회를 움직이는 돈이라는 물건을 보게 되고, 그 후 밀렵꾼, 투견꾼 등 여러 주인을 거치며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사회의 맞물린 탐욕의 모습들에서 연민만큼이나 분노를 쌓아간다. 그리고 흘러들어온 도시에서 만난 것은 인간 주인이 아니라 그를 그저 평범하게 대등한 존재로 여겨주는 비정규직 노동자 개 흰둥이다. 주인에게 키워지면서 주어진 역할을 위해 타인을 상처 입히는 것과 다른, 그저 존재를 인정하며 함께 나누는 것을 생각해보게 만든다. 동물 키우는 만화를 읽으며 이런 식의 생각까지 닿도록 만드는 것이 대단하다.

그런데 특이함으로 하나의 극단을 이루려면, 동물을 키우는 만화인데 사실은 동물을 키우지 않는 것보다 더 나아가는 경우가 있을지 모르겠다. 모순되는 이야기지만, 그런 작품이 있고 또 대단히 재미있기까지 하다. [해치지 않아](HUN)는 동물원 사육사로 일하던 주인공이 자신이 짝사랑하던 여인을 그리며, 경영상 이유로 문을 닫게 된 동물원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이야기다. 사장을 설득하고, 특출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으나 지금은 그저 그렇게 은둔하고 있거나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인력들을 각지에서 끌어 모은다. 그런데 문제는 동물원 동물들을 사육할 돈은 애초에 없고, 그래서 내놓은 작전이 바로 정교한 동물모양 장비를 입고 사람들이 동물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람이 동물 흉내 내면서 들키지 않아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코끼리 배변을 어떻게든 최대한 현실감 넘치게 재현하겠다는 무모한 고집이라든지 각종 유머러스한 대목들이 넘쳐난다.

즉 동물 키우는 동물원 이야기지만, 동물을 키우지 않는 작품이다. 나무늘보 역할을 하는 알바생, 2인조로 기린을 하는 직원 커플, 작동장치를 만드는 천재아동 출신 정비사, 진짜 같은 질감을 만들어내는 미술가 할아버지 등 멀쩡한 사람들만 가득한 동물원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이 거짓말이, 방문객들에게 꿈을 주고 자신들에게도 각자의 꼬여있는 문제들을 조금씩 해소하게 해준다. 결국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며 돕고 교감을 나누며 어떤 식으로든 성장해 나아가는 이야기인 셈이다. 사람들의 함께함과 성장을 논하고자 한다면, 동물원 만화에서 동물을 키우지 않는 기발함까지도 동원할 수 있다. 그런 것이 바로 나누고 싶은 주제가 있고, 멋진 상상력을 발휘해서 표현해내는 좋은 작품의 특징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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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학교도서관저널. 특정 컨셉 아래 청소년들에게 추천하는 책들을 묶는 내용으로, 만화를 진득하게 즐기는 것의 즐거움과 세상사에 대한 관심을 적당히 배합해보자는 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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