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의 정도를 걷다 – 『카페타』[기획회의 060701]

열혈의 정도를 걷다 – 『카페타』
김낙호(만화연구가)

한국은 세계적인 자동차 강국을 자처하면서도 자동차 문화는 그다지 번성하고 있지 않은 특이한 나라다. 자동차 생산이나 판매량에서는 미국이나 일본, 유럽의 강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만 정작 자동차가 생활 문화의 독특한 단면이 되어있는 자연스러운 이미지가 부족하다. 아, 물론 한국 대도시 특유의 난폭운전이니 비슷비슷한 색상과 모델로 가득한 거리니 하는 정도의 것은 있지만 말이다. 특히 그런 단면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은 자동차를 대중 스포츠 오락으로서 활용하는 것, 바로 모터스포츠 분야다. 포뮬러 급의 레이스는 F1800 정도 밖에 없으며, 선수층도 좁고 대중적 기반마저 적다. 하기야 모터스포츠는 자동차 회사들이 자신들의 우수한 기술력을 자랑하기 위한 경연장이니 만큼, 기술력보다는 서비스나 가격경쟁력 등을 강점으로 마케팅하고자 하는 업체들이 주종을 이룬다면 그다지 효용이 없기는 하다. 하지만 기계와 인간이 하나가 되어 극단적으로 격렬한 상황 속에서 경쟁하는 스포츠가 지니는 현대적인 매력과 쾌감이란 결코 만만치 않기에, 은근히 아쉬울 따름이다.

카레이싱이 보편화되어있는 자동차 강국 가운데, 미국은 그것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일본은 만화를 만든다. 특히 장편 연재만화에 있어서 카레이싱은 지지기반과 전문지식만 갖출 수 있다면 썩 좋은 소재다. 머신의 세세한 튜닝에 의한 성능 향상, 정비사와 운전사와 매니저 사이의 팀워크, 기계의 부족함을 극복하는 정신력, 0.1초의 승부에 목숨을 거는 장인정신에 가까운 승부욕, 스포츠맨십과 상업성 사이의 갈등까지, 드라마틱한 요소가 넘쳐난다. 게다가 그 것이 한판승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쌓여가면서 성장을 하는 방식의 흐름이 가능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상황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서 트랙과 머신들을 빌려오지 않아도 된다. 그저 자료 참조를 열심히해가면서 멋지게 그려서 연출해내면 된다. 다만 여느 전문 소재 만화와 마찬가지로, 잘못하면 지나치게 세세한 매니아의영역으로 들어가게 되어 대중적 호소력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으니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만 말이다.

『카페타』(소다 마사히토/학산/2권 발매중)는 카레이싱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공식을 엮어내는 장르 오락만화다. 이야기는 편부 슬하에서 살며 자동차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는 한 어른스러운 소년 캇페이타의 성장담으로 시작한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서 직장에서 폐품과 중고부품들을 긁어모아서 카트를 만들어주고, 소년은 카트를 타면서 자신의 레이서로서의 재능을 발견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표지에서 볼 수 있듯 이야기는 소년이 성장해서 정식 레이서가 되어 활약할 때까지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작품이 주목할만한 점은 어떤 대단히 특이한 새로운 발상을 담고 있거나 독특한 스타일로 독자를 놀래키기 때문이 아니다. 정반대로, 너무나 우직할 정도로 고전적이기까지 한 열혈 성장물의 정도를 가고 있기 때문이다. ‘열혈’은 모든 것을 뛰어넘는 강렬한 열망과 물러서지 않는 고집을 통해서 어떤 불가능한 난관이라도 결국 뛰어넘어버리는 방식의 전개를 지칭하곤 하는데, 원래는 일본 대중문화에서 완성한 공식이지만 오히려 한국인의 정서와 부합하는 부분이 많다 (마치 한국에서 국민스포츠가 되어버린 고스톱처럼 말이다). 이미 전작 『스바루』나 『출동 119』 같은 작품을 통해서 열혈 정서에 대한 놀라운 솜씨를 보여준 작가의 근작인 만큼, 『카페타』의 정서는 책장을 넘기다가 손이 데일까 걱정될 정도로 뜨겁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한곳으로만 몰두하는 주인공은 정도를 걸어가며 자신의 재능을 하나씩 발견하고 성장시킨다. 아버지와 친구들 등 각종 조력자들은 그의 열정 하나에 반하여 그가 더욱 자신을 불사르도록 도와준다. 소년은 레이서가 돼서 유명해지겠다거나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목표 따위 없다. 다만 자동차로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달리는 것 자체가 모든 것을 쏟아 붇고 싶을 정도로 좋을 뿐이다. 폐품으로 만든 싸구려 카트라고 할지라도, 주인공의 그런 열혈이 투여되면 최고의 머신들과 어깨를 견주며 달릴 수 있게 된다.

앞서 언급했듯 이 작품은 ‘공식’에 충실하다. 공식을 깨버림으로서 즐거움을 주는 길과 좋은 공식의 정도를 우직하게 추구함으로써 즐거움을 주는 길 가운데 명백한 후자인 셈이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캐릭터 구도는 전형적인 완성된 천재와 대비되는 미완성 천연 천재의 성장기다. 완성된 천재는 좋은 환경과 스스로의 노력이 겸비되어 그 자리에 올랐으나 마땅한 라이벌이 없기에 오히려 고독한 존재다. 그에 비해서 미완성 천재는 천부적 재능을 이제야 하나씩 발견해 나아가는데, 그 성장의 속도가 대단히 빨라서 어느 틈에 완성된 천재의 관심을 끌게 되며 라이벌로 올라선다. 천재적 주인공과 천재적 경쟁자가 서로 더욱 큰 완성의 경지를 향해서 달려갈 수 있기에『유리가면』같은 고전 만화든, 『대장금』같은 비교적 최근의 드라마든 즐겨 쓰는 구도이기도 하다. 그리고 장기연재를 위해서 각 성장의 과정은 피라미드형으로 단계가 나누어져 있어서, 하나를 해결하고 다음 목표를 향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F1에 나가기 위해서 어릴 적에 카트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라는 것이 이 지점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 모든 과정을 질주하게 만드는 추진력은 바로 앞서 이야기한 ‘열혈’이다. 완성된 천재 역시 미완성 천재 주인공의 추격에 감화되어 잊고 있었던 열혈의 불길을 지펴나가는 방식으로 결국 강력한 실력경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열혈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은 역시 작가의 물오른 연출력이다. 둥글둥글한 모양이지만 거친 선으로 이루어진 인물들은 일견 부드러워 보이면서도 결정적인 순간 거칠게 불타오를 준비가 되어있다. 풍부한 표정과 땀방울이 만화적 과장을 이루어내며, 리얼하게 묘사된 배경이나 머신과 대비를 이루며 더욱 독자들을 이입하게 만든다. 순간의 클로즈업과 강렬한 순간의 큰 장면묘사를 효과적인 리듬감으로 배치하는 칸 연출 역시 일품이다. 부드러운 독서의 흐름을 막을 정도로 스타일리쉬한 실험을 하지 않으면서도 강렬한 현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자동차의 세세한 부품이나 운전설명에 낯설다 할지라도, 감정적으로 격양된 뜨거운 연출에 공감하며 볼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것은 훌륭한 작가적 재능이다.

물론 아직 연재 초입에 있는 작품에 대해서 완성된 평가를 내리는 것은 힘든 일이다. 실제로 이 작가는 전작에서, 열혈과 천재성의 성장 속도가 폭주하여 이야기를 도저히 수습 못하고 중도에 하차해버린 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중의 이야기이고, 지금 당장은 이 꼬마 카 레이서의 성장담이 궁금해서 계속 몰입하여 지켜 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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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PS. 그런데 열혈우주격투발레만화 스바루는 언제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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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thoughts on “열혈의 정도를 걷다 – 『카페타』[기획회의 060701]

Comments


  1. 스바루보다야 카페타가 더 낫죠. 카페타는 앞으로도 새로운 경기들이 많은데 비해, 발레는 그 이상 올라갈데가 없잖아요.-_-; 에스컬레이션이 가능한 소재도 몇개 없나봐요;;

  2. !@#… 기린아님/ “…우주인과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카레이서들일 것이다!”라고 한 10권 넘기면서 오바질만 안한다면. –;

  3. 자전거 도둑의 센스를 기억한다면…
    이분 한권한권 마다 가슴에 불을 지피는 센스는 정말…

  4. 스바루는 작가의 홈페이지에 ’30대 안에 연재 재개를 목표’로 한다고 써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