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혼란 속에서 삶을 찬양하다 – 도련님의 시대: 나쓰메 소세키 편 [기획회의 336호]

!@#… 한국작가들을 소재로 이런 식의 작업을 하면 아마 장르가 액션 스릴러가 되겠지만…;;

 

변화의 혼란 속에서 삶을 찬양하다 – [도련님의 시대: 나쓰메 소세키 편]

김낙호(만화연구가)

사회적 근간의 대격변을 사회 내부가 아닌 외부의 압력에 의해서 강제당했을 때, 그리고 격변이 어쨌든 정착하여 좀 더 근대적인 세상이 되고 난 다음,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변화의 시기를 돌아보며 우리는 흔히 ‘개화기’라고 부른다. 닫혀있던 상태에서 무언가를 열어 변화를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되는데,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해서는 제국주의적 식민정책과 세계무역 확대 정책이라는 형태로 먼저 근대적 틀을 갖추었던 서구열강들에게 문호를 반강제로 열게 되었던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초를 가리키곤 한다.

개화기는 단순히 신기한 문물이 들어오는 시대가 아니다. 온 사회가 늘 그래왔고 계속 지속되리라 믿었던 안정적 가치관을 외부의 무력에 의해 완전히 부정당하고, 친숙하지도 더 낫다고 확신할 수도 없는 완전히 새로운 사회체계와 문화를 최대한 빨리 장착하지 않으면 큰일난다고 위협받는 시대다. 그런 변화를 거부하거나 받아들이는 방식에 있어서 사회 내부에서는 여러 분파들이 갈리며 서로 강력하게 반목한다. 장엄한 차원에서라면 민란과 내전과 독립운동이 일어났고, 일상적 차원에서는 개개인들 가치관의 방황, 다양한 이념적 경도 등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런 혼란의 시간들을 가장 적극적으로 관찰하고 해석하며 나아가 동시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당장 상황들에 대처하기 바쁜 위정자들과 상인들보다는 바로 작가들이다.

[도련님의 시대: 나쓰메 소세키편](세키카와 나쓰오, 다니구치 지로 / 오주원 옮김 / 세미콜론)은 일본의 개화기였던 메이지시대 말기에 활동했던 대표적 문학가 나쓰메 소세키가 그의 명저 ‘도련님’을 집필했던 과정을 다루는 작품이다. 메이지 유신 전후의 대대적 내전을 기적적으로 완만하게 수습하고 서구식 제국주의를 빠르게 받아들여서(그 결과 다들 알다시피 얼마 후 조선을 무력으로 합병하는 국가범죄로 이어졌지만) 외형의 근대화를 이룬 개화기 일본 사회였지만, 옛 가치들과 서구적 새 가치들의 충돌은 제도만큼 빠르게 타결되지 않았다. 적어도 사회가 본격적으로 군국주의화되기 이전까지, 전통파, 서구 추종파, 당대의 혁명적 평등론이었던 사회주의/공산주의 이념에 경도된 이들 및 여러 가치관들이 정치에 대한 분개든 그저 사라지는 툇마루에 대한 한탄이든 일상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그런 세상에서 문학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도련님의 시대]는 실존 인물들과 역사 속 에피소드들을 허구의 상황들과 섞어가며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도련님’을 구상하게 된 과정이 그의 생활 속에 있으며, 주요 등장인물들의 모델은 바로 주변의 사람들과 겪은 일화들이었으며, 오고가는 여러 인연들 속에서 작품의 주제의식들이 가다듬어졌음을 한 꺼풀씩 설명해낸다. 첫 단원에서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하는 것부터, 마지막 단원에서 탈고를 하고 후일담을 서술하는 순간까지,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평탄하고 유려하게 흘러간다. 역사속 인물들이기에 만들어지는 현실감 속에서, 일본 근현대사에 중요한 인물들과의 가상적 만남들도 슬쩍 끼어든다. 심지어 그 중에는 격동의 시대에 식민사상에 반대하며 그 핵심인물을 처단하고자 했던 외국인 청년 안중근까지 있다.

[도련님의 시대] 같은 내용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는 개화기라는 배경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이다. 이야기로서는 실화 부분이든 허구 부분이든 당대 현실에 대한 집요한 역사적 고증이 필요하고, 시각적으로는 공간무대의 현실적 존재감 및 섬세한 감정들이 담긴 표정 묘사가 요구된다. 스토리를 맡은 세키카와 나쓰오는 세밀한 자료 참조, 다큐와 소설의 느낌 한 가운데를 오가는 건조한 이야기 흐름으로 잘 절제된 정서를 만든다. 한국어판의 세심한 번역과 각주 역시 이런 세밀한 디테일을 한층 살려준다. 그림을 맡은 다니구치 지로 역시 명불허전으로, 풍부하고 세밀한 공간감과 무덤덤한 표정들의 과장없는 정서 표현을 보인다. 거의 정적일 정도로 느릿하고 꽉 찬 연출 전개는, 독자들을 페이지를 질주하기보다는 천천히 산책하게 만드는 효용이 있다.

개화기의 혼란 속에서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이자 일본 근대문학의 스타 격인 나쓰메 소세키가 취한 자세는, 신경쇠약이다. 그는 주점에서 언쟁 오가다가 의기투합한 각양각색의 젊은이들을 불러들여 함께 지내는 고전적인 배포와, 민주제든 프라이버시든 ‘모던한’ 가치들이 인정되어야 하는 현실 사이에 있다. 생계를 위해 강의를 했는데 상당히 여유롭게 살게 된 물질적 현실 뒤에는, 서구문물을 수용하고자 하되 서구 강사를 배격하는 양면성 속에서 결국 자신이 어부지리를 얻었다는 죄책감이 있다. 침략적 제국주의로 근대화를 완성하려는 일본의 정치에 환호라도 할 만큼 무지하지는 않아도, 나서서 평화운동을 할 만큼 용감하지도 않다. 혼란과 충돌 속에서 염세주의와 신경쇠약에 빠졌던 그가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한 것이 바로 문학 창작이었다. 가장 예민하고 스트레스 쌓이는 시대였기에 가장 비루한 현실을 디테일하게 그려내자는 자연주의 사조가 판치던 상황에서, 그는 순진한 예술적 도피가 아니면서도 동시에 인생을 관조하는 방식의 정서를 찾고자 했다.

작품 속에서 나쓰메 소세키는 글을 쓰는 것을 ‘머리로 뀌는 방귀’에 비유한다. 그는 옳고 그름에 대해 늘 생각하기는 하되 사회파가 되기에는 다시금 지나치게 회의적인, 나름대로 풍족한 생활을 하면서도 세세하게 늘 자신이 과연 전업 소설가로 나서면 어떤 식으로 수입을 맞출 수 있을까 계산하는 물질적이며 신중한 사람이다. 갑갑한 사회현실, 답이 나오지 않는 전통과 근대 사이에서의 정체성 고민이 폭발할 때, 술을 마시고 주사를 부린다. 그에게 글이란 그런 현실에서 제정신을 되찾고 어쩌면 다른 이들에게도 그런 것을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르는 무언가다.

그 결과 ‘도련님’은 교육자였던 나쓰메 소세키의 자전적 요소를 담되, 작가 자신과는 정반대의 성격으로 가득한 이야기가 된다. 원래 소설의 줄거리는 문제아였던 어린 시절을 보낸 주인공이 정의로운 고지식한 청년으로 성장하고, 도시에서 고급 교육을 이수한 후 시골에서 선생으로 지내며 답답하면서도 소중한 전통적 마을에서 점차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내용이다. 하지만 [도련님의 시대]에서는 이런 내용에 한층 풍부한 맥락을 만들어준다. 답답하고 느린 전통과 스트레스 쌓이는 근대의 가치관들이 충돌하는 시대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의미를 찾아내고자 했던, 작가 자신의 주변에 있는 생기 넘치는 이들이 모두 작품 속 누군가가 되었다.바로 그들 모두가 어떤 의미에서 작품이 응원하는 ‘도련님’들이다. 스스로는 모든 것을 머리에 담았으나 소심했던 그가 당대의 도련님들에게 보내는 삶의 찬가 같은 것이 완성되었던 셈이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도련님의 시대] 역시, 지금의 독자들에게 보내는 또다른 삶의 찬가인 듯하다.

『도련님』의 시대 1
다니구치 지로 그림, 세키카와 나쓰오 글, 오주원 옮김/세미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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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그러니까 지금 호): 시도니아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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