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의 창작 해설편

‘만화의 창작’ 책 속 해설편 2008.9.

창작을 이해하기

김낙호 (만화연구가)

만화의 창작

만화를 ‘이해’했고, 만화가 처한 현실과 ‘미래’의 가능성을 다루어봤다면 그 다음 단계로 다룰 것은 무엇일까. 굳이 트뤼포의 영화광 3단계 이야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매체에 대한 열정은 결국 ‘창작’으로 귀결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물론 작가 스콧 맥클라우드 자신 역시 원래부터 창작을 업으로 하는 작가지만, 탁월한 이론서를 통해서 다른 이들을 만화의 매력에 심취하게 만든 경력을 그대로 이어가며 이제 창작의 근간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여러분이 손에 들고 있는 이 작품, 즉 ‘이해’한 이론과 ‘미래’의 가능성들을 합치며 나온 신작 『만화의 창작 Making Comics』다.

『만화의 창작』은 상당 부분, 앞선 두 권을 이미 읽었다고 전제를 하는 측면이 있다. 하기야 작품들 사이의 발간 간격이 워낙 길었고 모두 이 분야의 필독서가 되어 있는 만큼, 상당히 타당한 전제일 수 있다. 그간 ‘만화의 이해’에서 제시한 탈바가지 효과나 작가의 창작 동기 등 몇몇 가설은 약간씩 더 정교화되었고, ‘만화의 미래’ 및 이후의 웹만화 실험에서 시도한 초소액결재 모델이나 연출방식은 가능성과 한계를 드러냈다. 『만화의 창작』은 그런 과정의 교훈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고, 그 논의를 창작이라는 작업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다.

그 결과, 만화로서 그려낼 소재를 발굴하는 것, 굳이 세상을 읽어내는 양식으로 만화를 선택하는 것의 의미 등 큰 덩어리는 이미 갖추어놓은 독자를 상정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이전 작품들보다 훨씬 소구대상이 좁아진 셈인데,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단순히 만화가 지망생용 교재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만화뿐만 아니라 시각적 스토리텔링을 하는 분야 일반에서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창작 과정의 원리들이 촘촘히 배치되어 있어서, 특히 캐릭터산업, 애니메이션, 게임 등 만화의 표현양식들과 상당부분 맞닿아 있는 인접 장르의 경우 공통분모가 크다. 또한 창작의 각 과정에 대한 세부적 논의는, 연구 분석은 물론 문화 정책 등에 대한 함의까지도 충분히 던져주고 있다. 단순히 창작력이 부족하다는 푸념이 아니라, 어떤 부분이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 세부적으로 따져볼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물론 작가는 책에서 반복적으로, 역시 본능이 최고이며 이 책은 만약 막혔을 때 참조할 만한 가이드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말이다.

한국어판의 경우,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최대한 원래 구사한 용어의 뉘앙스를 살리는 방향으로 번역작업이 이루어졌다. 이 작품이 하나의 독립된 강의로서 뿐만 아니라, 등장하는 여러 개념들을 통해서 더 많은 발상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밑바탕으로 기능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사실 이전 작품들보다 훨씬 더 집요할 정도로 자세하게 작가 자신이 각종 주석을 달아놓아서 따로 보충설명을 할 부분이 많지 않을 듯 하지만, 미국의 맥락에서 만들어진 책인 만큼 한국 현실에 적용하고 발전시켜 볼 때 더 생각할 만한 것들을 몇 가지 덧붙여보고자 한다. 전작 ‘만화의 미래’처럼 멋진 토론을 위하여 축배를 들 만한 정도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창작이라는 당장의 작업과 맞닿아 있는 만큼 생각거리 만큼은 충분하다.

연출의 선택

연출을 5가지 선택이라는 틀로 풀어내는 1장은, 만화에 있어서 가장 고유한 시각 언어이기에 가장 집중적으로 눈여겨볼 이유가 있다. 사실 연출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작가의 머리 속에는 이야기가 모두 담겨있지만, 독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만 이해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여줘야 이야기의 내용과 감수성이 가장 온전하게 전달될 것인가에 대한 의식적인 고민이 없다면, 종종 작가는 각 선택의 순간에 그저 가장 ‘익숙하게 멋진’ 것을 선택하는 폐단에 빠질 수 있다. 익숙함에 대한 향유 방식이 장르라는 단위로 움직인다는 점을 생각할 때, 연출의 장르적 도식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실 애초에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장르적 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면 연출의 방향 역시 그렇게 간다고 해서 문제될 일은 없지만, 그 반대로 도식화된 연출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전달하려는 이야기 자체가 안정적 틀 안에서만 안주하게 된다면 큰 문제다.

‘대세’라는 말이 흔하게 사용되곤 할 정도로 특정 성공작의 방식에 대한 쏠림현상이 강한 한국의 경우, 이런 부분은 특히 유의해야 할 지점이다. 이야기의 중요성과 큰 관계없이 단시 장르적 도식에 따라서 칸을 깨고 배치되는 순정만화의 전신상, 이야기상의 감정변화가 담기지 않고 그저 일괄적으로 ‘멋진 포즈와 각도’로 일관하는 소년만화의 액션 장면, 연재만화에서 독서의 흐름보다는 작가 자신의 원고마감의 흐름을 따르는 애매한 이야기 단위 잘라내기 등 크고 작은 세부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지면이 협소하고 (큰 돈이 되는) 취향이 한정적일수록 장르적으로 도식화된 연출에 안주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질 수 있기에, 장르적 요구보다 이야기 자체를 연출의 핵심 기준으로 삼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한국에서 어느덧 이미 가장 중요한 주류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은, 스크롤 방식의 온라인 장편만화의 경우 이런 지점들이 극명하다. 페이지 방식이 아니라 무한캔버스 방식으로 만화를 전개할 때 취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거의 예외 없이 똑같은 세로 스크롤의 조작방식을 취하는 것은 물론, 에세이에 가까운 내용의 만화는 칸 경계선 없는 자잘한 칸으로, 좀 더 진지한 이야기는 엄격하게 하나씩 전개되는 닫힌 가로 칸으로 가는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을 발견하기 어렵다. 태동기에는 한국 웹만화의 연출방식 역시 여러 실험이 있었지만, 포털사이트를 매개로 한 몇몇 초창기 대중적 성공작들이 나오자 다양한 발전가능성들은 급속하게 가지치기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칸 간 연출의 대담한 실험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게 되어, 단지 영화의 스토리 보드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양새가 대다수를 이루었다. 그렇다고 해서 칸 속 연출이 혁혁한 발전을 이루기에는 화면의 해상도에 따른 낮은 정밀도 때문에 한계가 있다. 게다가 애초에 내용에 따른 장르 구분에 따라서 주어지는 연출의 도식화에서도 벗어나기 힘들어서, 칸 속 연출이 비교적 헐렁하고 칸 간 흐름의 긴박감을 극대화하는 종이잡지용 소년만화의 연출을, 온라인의 스크롤 방식에서 개별 칸만 뜯어내어 세로로 배치함으로써 연출의 묘미를 잃어버리는 등의 사례가 빈번하다. 그림의 선택 역시 단지 컬러로 표현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컬러에 대한 집착을 한다거나, 이야기에 가장 합당한 그림체를 수련하고 구사하기보다 우선 아무 그림으로나 데뷔부터 하고 보자는 식의 조급함의 패턴도 나타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최악의 경우는, 시야의 단위를 능동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잃는 것이다. 만화의 독서는 개별적인 칸이나 요소들을 읽는 것과 함께, 한번에 시야에 들어오는 단위가 중요하다(halim이라는 필명의 만화인은 이에 대해서 오래 전부터 ‘한바닥’이라는 용어를 제안한 바 있다). 책 만화의 펼쳐진 두 페이지, 신문 만화의 전체 펼침 면 등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스크롤 방식의 웹만화는 그 경계선이 모호하기 마련이다. 만화에서 연출 효과의 상당 부분은 배치된 시각적 요소들이 연속되며 만들어내는 유사성과 대비의 리듬감에서 발생하는데, 음악으로 치자면 각 마디에 해당할 그 호흡의 단위가 흐려지는 셈이다. 이 조건에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할지, 한가지로 정해진 답은 없다. 어떤 이는 공간낭비라는 비난을 받더라도 중간에 도저히 하나의 단위로 간주할 수 없을 정도의 간격을 만들어 넣기도 하고, 다른 이는 급격한 내용 전환으로 심적인 경계선을 만들기도 한다. 다만 중요한 점은 현재 대다수의 웹만화들이 쉽게 그렇게 하듯 그냥 굴복하고 리듬감을 희생하여 스토리보드만 주욱 나열하는 것 보다, 적극적으로 박자를 맺어가며 리듬감을 만들어내도록 방법을 궁리하고 각 단계를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매체간 이식이 이루어질 경우, 연출의 이식 문제 역시 중요하다. 특히 스크롤 방식 웹만화가 주류화되어 있는 한국에서, 해당 작품이 인쇄물 출간을 위해서 종이 페이지 연출로 이식될 때 어떻게 할 것인지는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한다. 각 페이지를 2단으로 나누어 길게 늘여 놓을 것인가? 아예 칸 단위로 분해해서 다시 페이지용으로 연출을 처음부터 새로 구축할 것인가? 그 경우 기존의 모든 칸을 다 활용해야 할까, 아니면 ‘순간의 선택’부터 다시 해야할까? 혹은 반대의 경우라도 정도는 덜하더라도 근본적으로는 마찬가지다.

본능으로 자동화되어 있는 경우 혹은 머리로 일일이 하는 경우가 모두 있지만, 연출은 항상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좋은 만화의 창작을 위해서는 열심히 데생 연습을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연출에 대한 다각적 고민과 실력 축적이 더욱 핵심적이다.

캐릭터 구축

캐릭터 구축은 비단 만화뿐만 아니라, 모든 서사문화의 핵심이다. 심지어 캐릭터의 발달보다 1회성 인물들의 단편적 상황극으로 이끌어가는 개그 만화의 경우도, 연재가 장기화되면 특정 인물들이 반복 출연하여 캐릭터화가 되곤 한다. 그렇기에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내용과 감성에 가장 적합한 캐릭터들을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첫 번째 문제는 캐릭터가 장르의 스테레오타입이나 당대의 유행에 고정되기 쉽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이것은 특히 연재 등의 방식에 있어서 출판부와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종종 나타나곤 했는데, 소위 히트 요소를 주문받는 과정에서 이야기 자체와는 분리된, 캐릭터 자체로서의 매력포인트를 자꾸 덧붙이게 되는 것이다. 이야기를 통해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설정으로서의 매력포인트는, 당대의 유행이나 장르의 기본틀로 회귀하기 쉽다. 즉 아무리 잘 구축된 캐릭터라도, 독특한 매력은 부족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작가가 온전히 혼자 구상을 하더라도, 손쉬운 히트에 대한 열망은 넘치는데 고민의 깊이는 부족하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현상이다.

두 번째 문제는 설정을 너무 많이 보여주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캐릭터는 이야기로 표현되어야 하는데, 결국 독자들이 보는 것은 바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외적 디자인 역시 이야기 속에서 특정한 역할을 하고 느낌을 주기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공들여서 캐릭터를 구축할수록, 그 설정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일념으로 지나치게 많이 보여주려고 하는 경향이 생기기 쉽다. 지나칠 경우, 이야기 자체가 방해받게 된다. 작가가 설정을 따로 공개하는 것은 그나마 낫다. 사실 독자들이 어떤 캐릭터의 이야기 속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이야기에는 나오지 않았으나 공개된 설정자료에 있던 것으로 판명될 때도 있다. 작품을 읽는 이가 설정도 전부 읽을 것이라는 전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썩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적어도 설정을 알게 된 이들에게는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조금 더 주는 셈이다. 하지만 설정을 너무 많이 해놓고는 그것을 어떻게든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에 이야기 자체가 지지부진해지면 어떻게 수습할 방도가 없다. 한국의 경우 캐릭터 중심의 장편 연재만화에서 흔히 나타나는 패턴인데, 사건 위주로 진행되던 이야기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끊고 특정 캐릭터의 이전까지 굳이 중요하게 다루어진 적 없던 과거를 삽입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나타난다. 즉 미리 이야기 속에서 캐릭터를 구축하고 그들이 자유롭게 상호작용하면서 클라이맥스로 가도록 하기보다, 정신없이 그냥 사건 속에서 클라이막스 문턱에 왔는데 그때부터 비로소 난데없이 캐릭터의 모든 것을 풀어놓으며 그의 동기를 설명하는 식이다. 그 결과 이야기 자체가 지지부진해진다면, 이미 구축한 설정을 낭비하더라도 과감하게 생략하는 것이 더 낫다.

캐릭터의 외적 표현에 대해서는, 본문에서 다룬 내용들이 거의 고스란히 한국의 만화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다. 특히 미형에 대한 추구가 충분한 그림실력과 다양성을 겸비하지 못할 경우 비슷한 모습의 캐릭터로 귀결되는 것은 물론, 구사할 수 있는 표정마저 제한받게 된다. 캐릭터의 매력을 위한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캐릭터의 표현 즉 이야기의 폭을 줄여서 매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 화려하지만 엇비슷한 미모의 연기력 빵점 배우보다는 기억에 남는 멋진 연기를 선보이는 독특한 배우가 더 매력적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웹만화의 경우 화면 해상도 등 물리적 한계 때문에 섬세한 표현에 제약을 더 심하게 받는 만큼, 여러 가지 고민이 필요하다.

글의 힘

글을 쓰는 것은 만화의 이야기를 구축하는 중요한 초기 작업이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을 비로소 본격적인 만화작업으로 치부하기 쉬운 작업 패턴에 있어서, 이것은 일종의 작업 이전 단계로 치부되며 상대적으로 가볍게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거꾸로, 글을 쓰는 단계를 프리프로덕션으로 간주할 때 더욱 그 중요성이 부각되어야 옳다. 글을 쓰면서 이야기를 기획하는 작업이 이루어지는데, 이 단계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사전 조율할수록 실제 제작이 수월해진다. 캐릭터 설정시트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이야기 배분이라는 중요한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즉 글의 단계에서 이야기의 전체 분량과 내용배분을 최대한 조율한 후 작업을 들어가는 것이다. 비록 여러 사정이 얽혀서 중간에 바뀌는 일도 얼마든지 있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계획이 먼저 짜여 있지 않고 단지 설정만 있었기 때문에 연재 중간에 급격하게 내용이 무너지는 것은 너무나 허망한 일이다. 한국의 경우 이런 프리프로덕션 공정이 약한 편이라서 작가와 편집자가 서로의 ‘감’만 믿고 뛰어들었다가 중간에 방향이 틀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처음부터 몇 부작 완결, 또는 장기 연재를 염두에 두는 경우 시즌 단위로 출판사와 계약을 맺는 사업모델은 북미권과 달리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다. 물론 작품의 품질 뿐만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 대한 협상력에도 도움이 된다.

세계 구축

이 책에서 세계의 구축을 이야기하는 것은 세계관의 설정이라기보다, 공간적 환경을 표현하는 것을 지칭한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구체적인 공간성을 줄거리 속의 중요한 요소로 끌어오는 것에 대한 가중치가 부족한 편이다. 여의도와 상계동의 풍경 차이가 부각되는 작품, 로봇도시의 번화가와 슬럼의 차이가 시각적으로 중요한 연출이 되어 주는 식의 작품이 적다(수많은 삶의 공간적 풍경을 중심에 놓는『태일이』 같은 작품이 빛나는 예외 사례다). 그것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지나치게 비슷한 공간에서 같이 사는 것에 익숙해서 그런 것인지, 단순히 배경그림에 대한 부지런함이 게으름 같은 자의 또는 작업 시간의 부족 같은 타의로 인하여 부족하기 때문인지는 판단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특정한 공간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상황과 분위기를 활용하는 것에 영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문에 작가가 이야기한 한 가지 원칙을 되새김질할 수 밖에 없다 – 바로, ‘배경’이 아닌 ‘환경’으로 취급하라는 것. 그리고 현장취재와 연구에 확실히 역량을 할애하고 말이다.

도구

한국의 경우, 아날로그 만화 원고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촉펜, 그 중 주로 G펜을 쓰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비록 잉크를 뭍힌 성냥개비로 그린다든지 하는 독특한 예외도 있지만, 펜대가 만화가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따라서 본문에서 붓과 제도펜 등을 같은 촉펜과 같거나 그 이상의 비중으로 다루는 것에 대해서 의아해할 수도 있다. 만약 선 구사에 대한 실질적인 도움을 받고 싶다면 촉펜에 보다 전문화된 기법서를 참조하는 것이 낫다. 그리고 어차피 촉펜이든 붓이든 다른 어떤 도구든, 만족스러운 선을 구사하려면 약간의 지식과 많은, 실로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웹만화의 낮은 해상도에서 작품 활동을 할 예정이라는 미명하에 필력을 충분히 가다듬지 않고 작품에 임하는 사례도 있는데, 캐릭터들의 연기력, 세계의 작품 속 현실성, 연출의 효과 등 모든 것이 일정 정도 이상의 필력 위에서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도구는 자신에게 맞는 것을 고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에 정말로 숙련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디지털 제작툴의 경우, 현재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식자나 편집 같은 후반 작업은 포토샵, 그림 작업은 페인터를 쓰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또한 웹출판은 자체적인 계정과 출판도구보다 포털 사이트 등의 블로그 서비스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그런 본격적인 도구가 없더라도, 윈도 기본 프로그램인 그림판으로 대충 그린 만화들도 내용에 따라서는 크게 어렵지 않게 히트작으로 등극하는 관대한(?) 만화 독자 문화가 온라인상에 형성되어 있기도 하다. 즉 오늘날의 한국은 디지털을 도구로 활용하기에 무척 수월한 상황인 셈이다. 반면 주로 활용되는 도구와 활용기법에 대한 집중이 강하고, 만화 팟캐스팅이나 타퀸 무한캔버스 만화 제작기 등 한층 다양한 가능성을 개척하는 새로운 도구의 유입이 원활하지 않다는 단점도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기술 전파의 속도가 빠른 만큼, 특정한 방식의 히트작이 나오면 쉽게 새로운 도구와 기법이 보편화될 잠재력은 항상 충분하다.

장르적 속성

짧지 않은 역사와 지명도를 지닌 ‘문화판’의 하나로서 한국만화가 지니는 가장 심각한 약점 가운데 하나는, 지금껏 쌓아온 다양한 시도와 기법, 장르에 대한 정리와 탐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출판 산업의 흐름이나 인물연구도 물론 중요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만화를 창작하는 것에 있어서 가장 실용적인 도움이 되어주는 것은 어떤 방식들이 이미 시도된 바 있고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참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소위 “바퀴를 재발명”하지 말고, 축적된 토양을 활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명랑만화에서 고도로 발달시킨 슬랩스틱 표현기법들이 명랑만화라는 장르가 대중의 선호에서 밀려나고 명맥이 거의 끊겼다고 해서 소실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참조해서 오늘날의 개그코드와 융합시키면 더욱 재미있는 효과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혹은 각 세부 장르들이 어떤 코드를 서로 교류하고 그 결과 어떤 새로운 방식들이 만들어져왔는지 역시 같은 것을 처음부터 반복하지 않기 위한 중요한 밑거름이다. 물론 다른 사람의 작품을 일부러 읽지 않고 천재적인 독창성을 발휘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겠지만, 폭넓게 다양한 것을 섭렵해서 자신만의 무언가를 그 속에서 새로 발견해내는 쪽이 더 수월할 것이다. 만화를 접하지 않고 지내기가 오히려 사실상 불가능한 오늘날의 미디어 과포화 상태 세상이라면 말이다.

판에 뛰어들기

누구나 눈치를 채셨겠지만, 이 책의 구성은 기장 뼈대가 되는 발상부터 시작해서 충분히 틀이 잡혔을 때 그것을 그림으로 만들어낼 도구를 소개하고, 작품 활동에서 참조할 장르와 만화문화의 모습들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에 의해서 책의 마지막은 만화판에 입문하는 것에 할애하고 있는데, 그 부분은 놀랍도록 짧다. 사실 전작 ‘만화의 미래’에서 충분할 만큼 다뤄서 그런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독립적인 모범사례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돈 주는 이와 돈을 받고 창작물을 위임하는 이들이 맺는 관계는 창작의 그 어떤 다른 단계보다도 더욱, 관행은 있다 할지라도 공식은 없는 문제다.

특히 만화판 자체가 역동적이며 다양하게 움직여온 한국의 경우, 창작자가 판에 뛰어들고자 한다면 물질적 조건에 대한 고려와 선택에 대한 대가를 더욱 의식적으로 생각해둘 필요가 있다. 몇 가지 핵심 원칙에 대한 자신의 입장 정리 정도라도 좋다. 첫째,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저절로 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주는 사람이 해달라는 것을 해야 돈이 된다. 만약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돈을 주는 사람이 요구하는 것이 서로 다를 경우, 어떤 식으로 타협을 해야 내 창작열을 유지하면서도 수입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자신만의 전략과 방어선이 필요하다. 둘째, 협상에 나중은 없다는 것이다. 미리 최대한 이후 성과를 예상하고 조건을 타진해야지, 지금은 무료봉사지만 나중에 심대해지면 알아서 대우가 달라지겠지 하는 것은 허망한 상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에 가급적이면 계획이 뚜렷하고, 계약을 하는 작품 분량이 정해져 있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그래서 결국 같이 참여하게 된 이들은 작가든 편집자든 스토리작가든 매니저든 어시스턴트든 서로 좋은 작품을 위해 최대한 협력해야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프로의 자세고, 작품을 가장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내는 기본이다.

***

한국의 맥락에서 좀 더 생각해볼만한 이야기 몇 가지를 덧붙이기는 했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이야기들은 본문에 빼곡하게 들어있을뿐더러 확실하게 요약해주고 있기까지 하다.

“누구에게서나 배우고, 누구도 그대로 따르지 말고, 패턴을 찾아내고, 죽어라 작업하십시오”

이것으로 스콧 맥클라우드의 만화이론 3부작은 완성되었다. 이후에 다른 작품을 만든다면 아마 완전히 새로운 것이 되면 모를까 이 3부작의 자기완결성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독자 여러분들도 이제 만화를 이해했고, 미래의 가능성들을 보았다면, 창작에 눈을 뜰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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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만화의 창작 해설편

Comments


  1. 연출의 선택에 대하여 – 강풀 책이 책으로 출판하면 안보는 이유는, 너무 성의가 없어요. 스크롤 2페이지 이상 분량은 한쪽에 우겨넣는 출판. 보기도 불편하고, 대충 출판한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저는 강도하, Nasty Cat의 작품은 사보는데, 온라인 스크롤에 맞춘 편집을 다시 책에 맞춰서 컷 연출이나, 폰트 배치나 크기를 조절하는 점을 보면서 작가가 ‘온라인 – 오프라인’의 차이를 인식하고 성의를 보였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보게 되요.

    2. ‘한바닥’ 만화는 초창기 웹툰이나, 잠시 네이트 웹툰에서 했던 적이있었죠…. 결과는 대실패. 다시 스크롤로 회귀했습니다.

    3. 한가지 주장 – 스콧 맥클라우드의 만화 기법서는 만화 원론적으로 보면 훌륭해요. 하지만 한국적 특성에 대입하면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는 점도 있고 (특히 웹 만화 서술한 것에 대해서). 우리 만화를 예를 들어 놓은 기법서가 많으면 하는데 아쉽습니다. (박무직은 좋은데 너무 자기 작품만 다룬 다는 것이 한계이고, 다섯수레에서 나온 책은 2권 이후로 너무 일본 작품만 예로 들어서…)

  2. !@#… Skyjet님/ 1. 그 2단 막편집은 스크롤 연출을 통해서 만들어졌던 매력에 그냥 안주하는 것이죠. 물론 그것도 가능한 선택 가운데 하나이긴 하지만, 말씀하셨듯 굳이 책으로 낸 이유가… 2. 뭐, 모든 실험은 독자들과 함께 가야하니까요. 다만, 독자들도 변하기 마련이니 가장 효과적인 것을 찾기 위한 실험을 그만두지만 않았으면 할 따름입니다. 3. 저도 그렇게 느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설편을 우겨넣곤 했지요;;; 한국만화를 예로 들며 접근하는 책은… 그러게 말입니다. 작가의 자기비법공개가 아니라(이미 충분히 나와있고, 예로 드신 박무직 만화공작소 시리즈도 있으니), 큰 흐름들을 조망하며 분류하는 방식이 필요하죠. 지면만 마련되면 한번 연재해보겠노라 벼르고 있는 주제이기는 한데, 이상하게 계속 기회가 안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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