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대결의 쾌감 – 갓오브하이스쿨 [IZE / 130714]

!@#… 텐아시아분들이 독립하여 새로 만든 문화웹진 ‘IZE’에 위근우 기자님과 로테이션으로 쓰는 연재코너 시작. 게재본은 여기로.

 

힘 대결의 쾌감 – [갓오브하이스쿨]

김낙호(만화연구가)

미국의 슈퍼히어로든 일본의 환타지 격투물이든, 자고로 소년독자들을 위한 만화의 가장 보편적으로 사랑받는 코드는 바로 싸움박질이다. 잘 연출된 싸움의 묘사 속에는 다른 방식의 어떤 섬세한 서정적 접근 같은 것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즉각적이고 노골적인 쾌감이 있다. 그것도 줄거리상의 필요에 의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줄거리 자체가 그냥 싸우는 것이라면 금상첨화다. 요즈음 연재중인 웹툰 가운데 가장 그런 쾌감이 뛰어난 작품을 고르라면, 큰 망설임 없이 럭키ㅉ… 아니 [갓 오브 하이스쿨](박용제)을 추천할 만하다.

제목인 ‘갓오하’는 무술 대전의 이름이다. 막강한 전투력의 수수께끼 비밀결사체가 싸움 재능 넘치는 전국의 고등학생들로 그 무도회를 열고, 우승자는 소원을 한 가지 이뤄주기로 한다. 그 와중에 태권도를 기반으로 한 모리, 공수도와 막싸움으로 단련된 대위, 검술의 달인인 미라 등이 한 팀을 이뤄서 싸우고 또 싸운다. 알고보니 신과 싸울 힘을 얻고자하는 행사이며 적대하는 수수께끼의 종교단체도 있고 뭐 그렇지만, 중대한 내용이라기보다는 점점 더 강적을 등장시키기 위한 설정일 따름이다.

원래 싸움을 통한 작품 진행에는 크게 두 가지 접근이 있는데, 하나는 힘의 대결이고 다른 하나는 상성의 대결이다. 전자는 강약의 충돌을 그려내고, 후자는 서로 상이한 특수능력의 약점을 파고들며 퍼즐 맞추는 듯한 묘미를 준다. 퍼즐의 절묘함을 설계해야 하는 능력 상성물에 비하면 힘의 우세만 판가름하면 되는 힘 대결물은 훨씬 간편하게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이쪽이야말로 만만치 않다. 전투의 동작 묘사, 개별 기술의 멋스러움, 힘의 우위가 판가름 나는 과정의 확실한 시각적 연출 등이 즉각적으로 전달되어야 하기에, 데생력, 구도, 칸 연출 등에서 작가에게 맨몸 승부를 요구한다. 게다가 [드래곤볼]이라는 이쪽 계열의 전설적 걸작 때문에 독자들의 눈마저 무척 높다.

그런데 [갓오하]는 그런 요소들을 썩 훌륭하게 충족시킨다. 웹툰 연재 속성상 주간 컬러임에도 매 회 어안이 벙벙할 정도의 전개 분량과 과장된 박력 넘치는 싸움 장면들로 가득하다. 기술 동작들은 구체적이며, 동선은 깔끔하다. ‘무투파’와 ‘차력’ 같은 기술의 계열들은 적절한 캐릭터 다양성을 부여하되, 결국 상성이 아니라 힘의 강약으로 승부를 낸다는 기본 방향을 확실히 잡고 있다. 무슨 기를 흡수하고 허상을 창조하고 초음파를 내고 하는 초능력들이 난무해도, 상황을 정리하는 것은 강건한 리뉴얼태권도 회축이다. 킥과 펀치, 혹은 그것의 연장선인 기공파들의 향연이다. 때리고, 쪼개고, 쓰러지고, 일어나 반격한다.

주인공들이 더 강해 보이는 적을 만나서 고전하다가 싸움 중에 각성으로 성장을 이뤄내 강해지고, 싸움 후 또 수련해서 강해지고, 동료들끼리 격려하면서 또 강해진다. 갈수록 막나가는 여러 필살기들의 파괴력은, 연재 초기에는 불량배 몇 명들을 쓰러트릴 정도에서 요즈음은 일격에 도시를 날려버릴 만큼 자연스럽게 인플레를 이뤘다. 강렬하게 싸우고 어처구니 없이 강해지는 이 명쾌한 연쇄를 계속 보여주면서도 아직 주요 종족들 사이 놓인 힘의 균형 설정이 망가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사실 대단하다.

어설픈 인생 교훈을 고집하지 않으며, 각종 인물간 설정은 부족하지는 않되 왜 싸우는지 동기를 부여하는 선에서 정리될 뿐이고 결국 싸움의 쾌감 자체를 극대화한다. 잠재적 매력요소를 여기저기 흩뿌려 놓고 입질을 하기보다는 확실하게 하나의 오락성에 몰입하는 이런 접근은 모 아니면 도인데, [갓오하]는 장인정신에 가까운 액션에 대한 집념에 힘입어 뚜렷한 모다. 웹툰에서 작가주의적 실험성이나 절묘한 일상성이 넘치는 무언가를 기대 분들도 있을 것이고, 웹툰 리뷰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고 생각할 분들도 있겠다. 하지만 웹툰도 결국 만화의 형태일 뿐이다. 종이만화가 주류이던 시절부터 축적된 소년만화 격투물의 오랜 장르적 재미를 멋드러지게 정제해내고 웹에서 재현한 [갓오하]에 눈길을 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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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웹진 ‘IZE’ 연재글. 연재중인 웹툰을 다루며, 얕지 않되 너무 매니악한 선정도 피하며 고루 소개하는 것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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