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깨알 같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작품. 게재본은 여기로.
퓨전사극의 정석 – [타임 인 조선]
김낙호(만화연구가)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사극들이 최근 상당히 유행한 바 있다. 확실히 이 소재는 소위 ‘어항 밖 물고기’에 비유되곤 하는, 주인공이 전혀 다른 세상에 뚝 떨어져서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좌충우돌 상황을 만들어내기 편리하다. 동시에 어떤 문제의 해결책 역시 그 세계에서는 떠올리지 못하는 의외의 요소로 돌파하는 쾌감을 심어 넣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반드시 그렇게 이야기를 짜야만 할 것 같은 고정관념이 생기는지, 비슷비슷한 응용형만 차고 넘쳐서 웬만큼 훌륭하게 만들지 않으면 지겹다.
그런데 [타임 인 조선](이윤창)은 대단히 재미있다. 현대의 평범한(즉 과학소년도, 국사소년도 아닌) 고등학생인 주인공 장준재와 미래에서 온 더 평범한 백수 김철수철수가 시간여행 사고로 떨어진 곳은 춘춘주막, 그곳에는 강고한 무력의 주모와 딸 춘대례가 있다. 일꾼으로 눌러 살며 겪는 나날들이 펼쳐지다가, 이 시대로 떨어진 또 다른 시간여행자와 접촉하고, 어쩌다보니 하나씩 음모가 드러나며 정조와 사도세자를 둘러싼 큰 이야기로 발전한다.
이 작품의 완성도를 지탱하는 두 요소는 고르게 지속되는 특유의 개그감각, 그리고 역사적 개연성과 탄탄한 복선으로 전개되는 큰 드라마다. 개그 중심의 에피소드에서도 잊지 않고 큰 드라마의 복선들이 깔리고, 큰 드라마로 확대되고 나서도 소소한 개그를 잃지 않는다.
개그감각의 측면에서, [타임 인 조선]은 무표정(deadpan)개그가 특징이다. 조선시대에 각종 현대사회의 모습이나 인터넷 유머문화의 필수요소들을 패러디하는 기법이 기본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기는 하지만 – 조선시대도 초딩 말투는 현대의 초딩 말투와 다를 바 없더라는 꽤 알기 쉬운 패러디부터, ‘만렙나무’ 같은 꽤 매니악한 패러디까지 – 그런 내용들을 겉도는 일회성 웃음이 아니라 이야기의 분위기 속으로 끌고 들어오는 것이 바로 일관된 무표정 개그의 정서다. 무덤덤하게 과소반응하는 캐릭터들이, 대비효과를 통해 그들이 처한 상황 자체의 괴상함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여기 이 부분에 패러디가 있다고 시끄럽게 강조하는 노골적 방식이 아닌, 그냥 당연하다는 듯이 그 세계의 일부로서 이야기 속에 지나가는 식이다. 패러디 요소가 아니라 캐릭터 상호작용에서도 마찬가지로, 묘한 엇박자의 개그로도 섬세한 감정표현으로도 꽤 효과적이다(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들을 떠올려보면 된다). 원래 무표정개그는 전달 타이밍을 놓치고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서 구현 난이도가 상당한데도, 상당히 자연스럽게 성공해내고 있다.
이런 개그감각을 유지하면서도, 왕실 모반을 둘러싼 진지한 큰 드라마도 펼쳐진다. 출생의 비밀, 선대의 억울한 누명과 복수, 칼부림 등 사극의 핵심요소들이 탄탄하게 펼쳐지며, 그 위에 다시금 시간여행 이야기가 또 한 겹 덧씌워진다. 시간여행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여러 시점의 사건들에 대한 인과관계들을 각종 복선으로 미리 깔아놓고, 적절한 타이밍에 하나씩 회수하며 독자들의 관심을 빨아들인다. 이 모든 과정에서 주인공은 현대인의 지식으로 초월적 수를 쓰는 것이 아니라(시간여행으로도, 정해진 역사를 바꾸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세계관이다), 딱 여러 일들을 겪어나가는 만큼씩 성장해 나간다.
왕도에 가까운 사극 전개를 깔고, 치밀하게 조율된 시간여행 패러독스를 이질적 요소로서 합쳐 넣는다. 이종결합이 삐걱거리지 않도록 일관된 스타일, 이 작품의 경우 확고한 무표정 개그 감각으로 전체를 아우른다.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이것은 바로 완성도 높은 퓨전 사극의 정석이다. 드라마, 영화, 소설 등 여러 매체양식을 통틀어서도, [타임 인 조선]은 근래 작품들 가운데 가장 탄탄한 재미를 보장해주는 퓨젼사극이다. 아니, 왜 퓨젼사극이라는 장르가 재미있는지에 대한 모범답안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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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웹진 ‘IZE’ 연재글. 연재중인 웹툰을 다루며, 얕지 않되 너무 매니악한 선정도 피하며 고루 소개하는 것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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