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맛 만화, 부실함의 쾌감 [CriticM / 150610]

!@#… “병맛만화” 특집 커버스토리의 한 꼭지. 게재본은 여기로.

 

병맛 만화, 부실함의 쾌감

김낙호(만화연구가)

당대에 크게 유행하는 전복적 개그 코드에는 패턴이 있다. 이전까지의 개그 코드와 상이해 보이는 무언가가 시대적 공감대를 성공적으로 건드리며 유행한다. 그리고 유행이 정착되면, 조금이라도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것들이 그 코드로 사후 재해석 내지 그냥 재규정되어 흡수 통합된다. 어떤 개그코드든 폭넓게 그것으로 대충 부르게 되는 주류화 속에서, 다음 전복적 유행이 도래할 때까지 서서히 그냥 일반명사가 되어버린다. 세기의 전환기에 그 역할을 했던 것이 키치와 자극성의 이미지를 끌어안은 ‘엽기’였다면, 지금 그 왕좌에서 노쇄해가는 것이 바로 ‘병맛’이다.

병맛 만화의 명확한 경계선을 긋는 것은 어렵다. 애초에 장르의 경계를 정해놓고 그 안에서 면밀하게 모든 작품들이 만들어진 것도 아닐뿐더러, 사람들이 병맛이라고 부르는 대상 자체도 유행 속에서 느슨하게 계속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맛 만화라는 호칭의 기원과 함의, 당초 인기를 모으게 된 과정에서 어떤 개그 코드가 당대 수용자의 공감을 어떤 식으로 사게 되었는지 같은 것을 살펴보는 것이라면 교훈이 뚜렷하다. 작게는 개그를 성공시키는 작법에 대한 이야기이자, 크게는 만화가 시대와 호흡하는 방식에 대한 성찰 재료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병맛이라는 코드

용어의 유례 가운데 가장 직관적인 설명은, 그냥 “병신 같은 맛”이라는 뜻의 약자라는 것이다. 이외에도 “병신아 맛 좀 봐라”에서 나왔다는 설, 병신의 완화어인 ‘병삼’에서 일부러 오타놀이를 해서 병맛이 되었다는 설 같이 여러 해석이 있다. 대형 유행어는 어차피 여러 기원들이 중첩되며 만들어지기도 하는 만큼 정확한 유래를 밝히는 수사과정은 사실 큰 의미가 없고, 중요한 부분은 어떤 경우에도 결국 ‘병신’이라는 속어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이다. 이 단어는 몸이 불편한 이를 심하게 모멸하는 원래의 의미 너머, 노골적으로 미흡하고 엉망인 상태를 가리키는 일반 명사로 흔히 쓰인다. 즉 병맛이란 개념에는 무언가가 엉망임에 대한 명백한 인식과, 그런 맛을 즐기게 된다는 의미가 섞여있다. 초창기에는 개그의 부족함을 조롱하기 위한 표현으로 쓰이기도 했으나, 점차 재미 코드 자체로 인정받게 되었다. 엉망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더 훌륭한 내용 때문에 즐긴다는 것이 아니다. 만화가 미흡한 것 자체가 개그 요소인 것이다.

애초에 개그라는 것은 사건이 일반적인 논리적 정합성과는 다른 방식의 결말을 맞이하는 의외성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의외의 신체 충돌이 자아내는 슬랩스틱이든, 같은 단어가 의외의 의미로 해석되는 언어유희든, 가득 기대감을 올려놓고는 갑자기 의외로 김을 빼는 허무개그든 말이다. 하지만 세계관의 내적 논리 구조 안에서 이뤄지는 것, 그리고 개별적 표현은 맛깔나게 그려내는 것이 정교한 개그의 특징이다. 바보 원님 이야기에서는 원님이 바보라서 단어를 의미에 대한 숙고 없이 그대로 외운다는 조건이 있고, 그 조건이 결말에서는 엉뚱한 상황 맥락에서 고스란히 실현되어 버리며 웃음을 준다. 웬만한 슬랩스틱 역시, 넘어지고 부딪히는 방식으로 흘러가서 의외인 것일 뿐이고 사건 자체는 그에 따른 개연성을 기반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병맛 만화로 통칭되었던 흐름은, 그런 정교한 전개와 반대되는 미흡함의 이미지를 내세웠다. 내적 논리 구조에 대한 적극적 위반을 일삼는 부조리, 그리고 온전한 표현을 무시하는 파격이 대표적이다. 그런 방향에서 의식적으로 개그 효과를 구사해낼 때, 그저 망한 만화가 아닌 성공적인 병맛 만화로 인기를 얻게 되었다. 앞서 예로 든 바보 원님 이야기에서, 원님이 말을 그대로 외워서 난처한 상황이 펼쳐질 대목에서 갑자기 이방이 그 엉뚱한 말을 받아치며 프리스타일 랩배틀 현장을 펼치고는 뜨겁게 우정의 포옹을 나눈다면 어떨까. 표현 역시 굳이 그런 흐름을 논리적으로 그럴싸하게 묘사하고자 하지 않고, 그림을 괴발개발로 막 그리거나, 의미 없이 힘주어 그리거나, 여하튼 거침없는 비약을 시치미 뚝 떼고 던진다고 상상해보면 된다.

이렇듯 병맛은 미흡함을 전면적으로 자각하게 해놓고는, 이야기가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수준의 내적 논리를 건너뛰는 어이없는 전개와 표현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승부하는 개그 코드로 자리를 잡았다. “막 가는” 맛은 이전에 엽기유머로 칭하던 유행에도 중요한 부분이었지만, 소재나 표현의 의외의 자극성을 강조하는 것이 먼저였다. 하지만 자극성이란 것은 은근히 논리적이고 정교한 흐름 위에서 만들어지기에, 병맛 만화의 어이없음은 훨씬 사소하고 저돌적으로 흘러간다는 차이가 있었다(당연하게도, 둘 사이에 중첩 영역은 적지 않다).

병맛만화의 흐름

병맛 만화라는 용어는 07년 전후로 인터넷 게시판 커뮤니티에서 거론되기 시작해서, 09-10년 무렵에 제도권 언론에 폭넓게 기사화되고 점차 방송의 개그 코너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대중적으로 유명해졌다.

게시판 커뮤니티의 온라인 하위문화로 돌던 초기의 병맛 만화들은, 병맛이라는 호칭 그대로 미흡함을 선명하게 전면에 내걸었다. 초기 히트작은 무악공고, 잉위 등의 게시판 사용자들이 디씨갤러리에 올린 자작 만화였다. 이들은 이야기의 필요에 의하여 계획적으로 못 그린 척 하는 그림이 아니라, 그냥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대충 막 그린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내용 역시 정상적인 이야기 만화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평가조차 내릴 가치가 없는, 즉흥적이고 어디로 던져졌다가 어디에서 끝날지 모르는 막무가내였다. 하지만 도대체 얼마나 뜬금없을 수 있을까 오히려 궁금하게 만드는 새로운 재미를 결국 만들어내는 것에 성공했다.

이런 방향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중 하나인 [본격 미안해지는 만화]를 보면, 그저 대충 그려놓은 두 사람이 서로 미안하다고 하면서 고개를 숙인다. 그런데 경쟁적으로 더 숙이다가 아주 바닥을 깊숙하게 파고들어가고, 턱없이 깊숙하게 들어간 상황에서 3자가 나와서 “우왕ㅋ 굳ㅋ”라고 관전평을 남긴다. 뜬금없고 갑작스러우면서도, 모자란 짓에 대한 확실하게 모자란 반응으로 묘한 일관성을 이뤄내며 마치 우리 사회에서 겸손의 미덕을 다시 돌아봐야할 것 같은 어이없는 쾌감으로 웃음을 준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온전하게 미흡함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작품을 진지하게 계속 만들다보면, 그림도 전개도 아무래도 향상된다. 그렇기에, 병맛 만화를 내밀어 재능을 대중적으로 인정받은 창작자에게는 선택권이 많지 않다. 많은 초기 무명 사용자들이 그랬듯 그냥 그만 두거나, 엉덩국 같은 극소수 사례처럼 의식적으로 초기의 느낌을 유지하거나, 아니면 병맛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지만 사실은 점점 더 정교하게 정제된 개그를 하는 것이다. 이말년, 조석 등이 마지막 경로에 해당되는데, 아마추어시절 이미지를 “병맛 만화가”로 얻었으나 인기를 모으고 주류 지면으로 옮기면서 점차 당초의 미흡함은 표피적 이미지만 남기고 실제로는 숙련된 설계의 개그를 다양하게 구사하게 되었다.

부실함을 즐기는 문화

부실함을 오히려 즐김의 요소로 받아들이는 것은 영화든 음악이든 타 분야에서도 딱히 낯선 모습이 아니다. 그 부실함에는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장르 안에서 보자면 정제된 ‘웰메이드’에서는 놓치는 기발함에 대한 수요가 쌓인다는 것이 그 중 하나다. 그 너머 소통 환경에서 보자면, 기존의 웰메이드를 요구하는 유통판을 그대로 따르지 않아도 자신의 작품을 대중에게 널리 떨칠 수 있게 된 매체기술과 활용문화의 등장이 있다. 아예 한 단계 더 거시적으로 가자면, 사회적 삶 자체에 기존의 웰메이드로는 해소감을 느끼기 어려워진 갑갑함이 누적된 것이기도 하다(70년대 미국의 B급 “그라인드하우스” 액션영화를 대입하든, 80년대 영국의 펑크 락을 대입하든 비슷한 틀을 적용할 수 있다).

병맛만화의 경우도 00년대 초부터 형성된 몇 가지 흐름들 위에 서있다. 첫째는 90년대 후반 [멋지다 마사루], [이나중 탁구부] 등으로 대표되는 부조리(일본문화에서는 주로 ‘슈르’로 통칭) 개그만화들의 영향을 흡수하며 성장한 이들의 등장이다. ‘엽기’라는 유행어의 전성기 시절에는 전개의 부조리함을 만드는 기발한 자극적 소재가 주목받았으나, 병맛의 시대에는 뜬금없음 자체가 핵심이 되었다.

둘째는 온라인에서 만화 창작 유통의 번성이다. 병맛 만화라는 호칭이 퍼지기 전부터, 절묘하게 이입할 수 있는 어떤 자잘한 순간을 미숙한 그림으로 묘사하던 유행이 ’공감툰‘으로 불렸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작가나 작가지망생이 정식 작품으로 다듬어낸다기보다는 일반인이 그림판 같은 기초적 도구로 간단하게 끄적인 경우가 특히 초창기에 병맛 만화의 일반적 모습이었다. 여기에 아마추어 만화가 게시판 커뮤니티에서 입소문을 얻어 히트를 치는 방식이, 그들만의 하위문화로 머물지 않고 쉽게 포털사이트 등단과 출판사에서 단행본 출간 등과 엮이며 대중적 파급력을 얻는 것이 가능해졌다.

셋째는 일상화된 패배감에 대한 자조다. 00년대 내내 사회적 연대가 해체되는 각자도생 과열 경쟁과 양극화 속에서 개개인의 불안과 스트레스는 증가하고, 지난 시대의 룸펜과는 결이 다른 ‘루저’ 정서가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그냥 극우적 정치인식과 패륜으로 흘러버린 커뮤니티 같은 극단적 사례도 있지만, 별 볼일 없지만 격하게 공감되는 것, 미흡하지만 통쾌한 것, 비웃음과 웃음의 경계가 흐려지는 방식의 유머가 대두된 것이다. 다만 이런 거시적 사회맥락은 아무래도 명확한 자료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느슨한 사후해석의 혐의가 짙기는 하다.

병맛 만화는 부실함이 기본 조건이고 어이없음을 성취로 삼는 종류의 개그를 담아낸다. 인터넷 하위문화를 즐기는 이들은, 미흡함을 단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면적으로 새로운 파격적 재미로 인식하여 공감대 높은 자신들의 문화로 흡수했다. 그런데 그 인기의 범위가 커지자 주류문화의 히트 코드로도 흘러나오게 되었고, 반대급부로 지칭범위도 점점 모호해졌다. 개그양식 자체에 집중하고픈 이들은 파격적 부실함과 어이없음에 대해 더 깊게 살펴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만화의 산업성을 살피고 싶은 이들은, 게시판 커뮤니티 중심으로 아마추어와 프로, 새 매체와 기존 매체가 공생한 과정에서 교훈을 파내면 된다. 사회상과 청년문화를 논하고픈 이들은 병맛 만화 유행에서 자조적 패배자 정서에 대한 영감만 얻고, 수고스럽겠지만 좀 더 탄탄한 근거를 찾는 것이 나을 듯 싶다. 부실함을 그 자체로 즐기게 된 병맛 만화라는 유행에 대해 고민할 부분은, 결국 이런 것들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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