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모씨님의 글에서 트랙백. “한국만화 볼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이상한 일이다. 나는 별 문제없이 제가 즐길만한 ‘우수한’ 한국만화들을 잘만 읽고 있는데. 현재 출간중인 것들이든, 과거의 명작들이든. 한국만화가 일본망가에 비해서 우수하다 또는 열등하다? 그런 대단한 전체 차원 같은 건 알 길이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엄마가 더 좋아, 아빠가 더 좋아 만큼이나 철학적인 질문.
그냥, 만화라는 커다란 풀 속에서 볼만한 것을 뽑을 때, 한국 만화가 상당 비율 들어간다는 것이 내게는 너무 당연하다. 한국 독자이다 보니, 한국 특유의 요소들에 대한 코드 공감도가 높으니까. 예를 들어 <츄리닝>이나 <트라우마>의 군대개그들은 어느 다른 나라 만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소중한 문화적 종 다양성이다. 아 물론 한국이라는 현실사회 – 아니 현실 자체를 별로 안 느끼고 사는 사람들은 경우가 다르겠지만.
물론 장르에 따라서 일본망가가 압도적으로 더 강세인 경우도 있고, 미국만화가 강세인 경우도 있다. <드래곤볼>의 유구한 전통위에 서있는 ‘점프식 스펙타클 격투 성장물’이나, 요리만화류 같은 소위 ‘전문소재 만화’가 일본의 주류 잡지연재 시스템에서 가장 효과적/효율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이제는 상식이다. 적어도, 만화가 어쩌느니 떠들 수 있으려면 그 정도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어야겠지. 미국이 수십년간 고안한 이슈 단위 분업화 제작시스템보다 더 슈퍼히어로물을 효과적으로 뽑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예외적인 개별 작품들은 나올 수 있지만, 하나의 ‘경향’은 그렇지 않다. 비록 만화가 상대적으로 덜 자본 소모적인 대중문화장르라고 할지라도, 시스템의 힘이란건 그런거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장르적 장점은?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기회에 따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그런데 “생각없이 때려부수면서 괜히 지적인 풍미도 살짝 넣어주는 SF액션 영화” 라는 장르에서 헐리웃 블록버스터가 우위를 지닌다고 해서, 미국영화 이외의 것들은 모두 ‘볼 것이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생각없이 때려부수면서 괜히 지적인 풍미도 살짝 넣어주는 SF액션 영화”만 보는 것은 뭐 취향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그것이 영화의 전부라고 주장하면 그건 그냥 미친놈일 뿐. 심지어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아아…한국영화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면서 짐짓 걱정해주는 제스쳐까지 나오면 그건 정말 구제불능일 뿐. 뭐랄까,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대단히 좁고 특정적인 취향을 성급하게 판 전체로 일반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그 범주에서 벗어나면 인정해주지 않아버리고. 이런 부류를 일반 용어로는 ‘초딩’이라고 하기도 하고, ‘찌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마 현재 한국 – 아니 세계 인구의 95.3204%를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가설을 세워본다. 통계적으로 검증할 생각은 당연히 없다.
식당에 비유를 하자면… 오로지 햄버거만을 세상 음식의 전부로 생각하면서, “이 동네에는 먹을 것이 없어”라고 투정하는 회사동료가 있다고 치자. 그런데, 그 동네는 사실 바지락 칼국수 전문이다! 그렇다면 보통은 이렇게 말해주기 마련이다: “야 그런 것도 좋지만, 맨날 편식만 하지 말고… 이 동네는 바지락 칼국수가 죽여주거든? 한 번 먹으러 가자!”. 그 결과 그 친구는 어쩌면 새로운 맛의 세계에 눈을 뜰지도 모른다.
!@#… 칼럼이나 리뷰 등의 저널리즘으로서 만화 글쟁이들이 해줘야 하는 역할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에서 <배가본드>가 일본에서만큼 안팔린다고 해서 한국만화판이 존내 망해간다고 확신하는 바보들에게 제발 만화 선택의 폭을 좀 넓혀주는 것. “한국만화 사랑하자!” 뭐 이런 것이 아니다. 제발 만화 좀 제대로 즐겨봐라, 사실 너 같은 생활이면 이런 만화가 훨씬 더 재밌을 것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도록 좀 도와주고 한번 시도해보라고 용기를 북돋아주마, 뭐 그런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스스로 참 여러 장르와 취향의 만화들에 익숙하고 또 즐겨야만 한다. 편협한 미식가가 소개하는 편협한 맛집소개가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있을리가 없지 않은가!
!@#… 그래도 결국 열쇠를 쥔건 독자들 자신이다. 한국만화가 볼 것이 없다는 엄청난 주장을 남발하기 전에, 만화라는 거대한 카테고리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어떤 취향 장르라는 작은 카테고리로 줄여서 생각하는 법을 좀 익히기를. 햄버거가 지겨우면 밥먹는 걸 포기하는 게 아니라, 하다못해 떡라면으로라도 바꿔볼 수 있도록 말이다. 어쩌면 그 떡라면이 바로 신이 내린 궁극의 떡라면일수도 있다. 그정도까지는 아니라도, 적어도 지금의 나 자신에게 가장 맞는 맛있는 물건일 수 있다. 사랑의 실의에 대해서 느껴보고 싶다면 30대 1 구도의 주류 하렘물을 찾을 것이 아니라 애정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은 단편집을 골라보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한국이라는 이 현실공간의 정치적 현실에 분개하고 싶다면 <쿠니미츠의 정치> 같은 경파물보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지 않는다> 같은 스릴러가 더 효과적이다. 전문만화를 통해서 전문 지식을 쌓는다고? 그럼 아예 교양 정보만화를 보면 될 것 아닌가. <십자군 이야기>가 <마스터키튼>보다 덜 재미있는 것도 아닌데(적어도 나라는 독자에게는). 한국만화가 볼 것이 없는 게 아니라, 일본 주류 장르만화가 아니면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아예 만화가 아니다 라고 먼저 굳건하게 가정을 세우고 들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안얹어도 된다) 생각해보기를.
별로 대단한 이야기도 아니다. 재미있는 것이 없다고 단언하고 스스로 재미를 포기해버리지 말고, 재미를 좀 적극적으로 추구해보라는 말이다. 그 과정에, capcold가 글쟁이로서 도와줄테니.
— 2005 copyleft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네이버덧글 백업]
– 발파공사 – 한국만화, 볼 것이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기실은 뭐가 있는지부터를 모르겠습니다. (정보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컨텐츠라는 것은, 보통 ‘나 여기 있소’하고 외쳐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키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림으로서 사람들에게 비교, 선택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한국 만화는 독자에게 다가오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정보? 찾아보면 있다.’ 라고 할 수도 있지만, 다른 만화들은 굳이 ‘찾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귀에 눈에 잘 밟히는데.. 아니, 그 전에 선택받아야 하는 입장인 컨텐츠가 독자에게 ‘니가 알아서 찾아 봐’라고 하고 있다면 선택받지 못해도 할 말 없는게 아닐지..
즐거운 미국생활 되시길.. 2005/08/19 10:03
– 캡콜드 – !@#… 정보라는 게 참 그렇습니다. 사실 한국만화뿐만 아니라, 일본 주류 잡지연재 소년/소녀만화를 제외한 어떤 만화도 정보부족에 허덕이고 있죠. 한국만화, 미국만화, 유럽만화, 다니구치 지로 같은 비소년소녀 일본만화… 정작 출판사는 그리 대단히 한국만화를 차별한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한국만화고 일본만화고, 어느쪽이든 홍보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면 모를까. 그런데 사실, 만화를 소개하는 각종 공식지면(신문, 잡지 등)을 보면 전혀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경향신문이나 중앙일보만 보더라도 지속적으로 좋은 신간만화에 대한 소개가 매주 나오고, 전혀 일본 주류 장르만화 편향적이지 않습니다. 물론 자신이 최근 본 일본 신간만화를 자랑하기에만 여념이 없는 함량미달의 필자가 전문기자 노릇을 하는 지면도 없지 않지만…;;; 하지만 자칭 ‘만화팬’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런 정보는 애초에 보지도 않습니다. 자신들만의 매니악한 커뮤니티에 모여서, “이번주 일본 점프에서 나온 <나루토>에서, ***가 죽었다며?” 같은 정보를 옹기종기 나눌 뿐.
!@#… 이런 사태에 대한 해결책이라면, 누구에게나 “만화 및 만화 인접 장르에 대해서는 이것이 알짜 정보다, 게다가 매니악한 잡학 교류가 아닌 멋진 문화적 취향이다, 게다가 이 지면은 재미있다”라는 인정을 받을 만한 공식 지면공간을 만들어내는 것. 최근의 만화 언론 프로젝트 (http://www.manhwain.com/marsheaven/discs_journal/)에서 제가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2005/08/19 11:04
– 토리실 – 암튼 확실한 것은, 절대로 ~하다, 라는 단정은 함부로 하면 안된다는 거죠. 어떤 분야에서든^^ 2005/08/19 18:39
– pseudo – 1001, 트라우마, 캣츠비, 순정만화 등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만화/신문 만화들이 최근에 얻은 폭넓은 인기와 높은 평가를 고려하면 문제는 구심점의 부재겠죠.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한국 만화’를 말할 때, 저런 만화는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일 테니까. 독자의 시각이 온라인/신문 만화, 한국 소년/순정만화, 수입 일본 만화로 완전히 갈려서 교류가 별로 없는 것 처럼 보입니다. 세 가지를 다 읽는 사람들이라도 뇌 속에서는 영역 분리가 되어 있는지 한 쪽 얘기를 할 때는 다른 쪽을 배제하고는 하죠. 세 가지에 대한 이야기가 한국 독자라는 수용자 시점의 관련성을 가지고 이야기되는 것은 별로 본 적이 없습니다. 2005/08/20 00:21
– 쿠쿠 – 휘유. 한때 한국영화 볼꺼없다라고 했던지가 언 몇년전이군요.. 웬지 그때가 생각납니다. 그때도 저런 사람 많았죠(본인포함^^;) 2005/08/20 23:07
– 캡콜드 – !@#… 영화에서 그런 상황을 타개한 케이스를 참조할 필요가 분명히 있죠. 새로운 세대의 담론가들이 한국영화에 호의적인 지면을 다수 만들어내어 ‘뽀대’를 실어주었고, 그것과 맞물려 제작자들이 체계화된 시스템을 도입해서 ‘웰메이드’ 오락성을 추구하게 되었고, 그러자 대량의 돈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하고, 감독 및 각본가들도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순응하는 쪽으로든, 적극적으로 반항하는 쪽으로든) 힘내서 힘있고 역동적인 아이디어들을 쏟아내고. 뭐랄까 환상의 콤비플레이. 만화라고 그렇게 못하라는 법이 없습니다. 2005/08/21 01:51
– 기린아 – 저같은 경우는 인터넷 만화같이 완전히 새판?에서 시작한 한국 만화를 봅니다만, 서점이든 대여점이든에 꽃혀 있는 일반 잡지 연재 만화는 한국 만화는 안보게 되더군요. 정보가 부족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제 캐릭터 취향에 안 맞아요.-_-;; 이제 일본식 캐릭터에 완전히 정착이 된건지, 적어도 ‘미형 캐릭터’로 승부를 볼 경우에 한정하자면, 일단 저 자신은 한국 만화를 볼 일이 거의 없을듯 합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마찬가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만화판의 독자들이 자신들만이 보아온 만화를 만화의 전체인양 안다는 것은 이미 꽤 오래전에 인식될 수 있었던 문제입니다. 대략 97~98년부터 그런 경향이 보였고, 사실은 그 이전부터 그런 경향이 있었지요. 그것은 일본만화가 대량으로 수입되던 시절과 대강 일치 합니다. 그 이전의 선배들이 ‘거의 모든 만화’를 다 볼수 있는 처지에 있었고, 따라서 장르의 다양성을 이해할 수 있었던 시절이라면, 대략 97~98년정도를 넘어가면서 자기만의 세계를 소화하기도 벅찬 시절이 왔습니다. 사실 여기서 만화정보잡지가 출간했어야 하는건데, 그 만화정보잡지의 역할을 대여점의 싼 대여료가 커버해 냈다고 보는게 맞을듯 합니다. 정보를 두번 보느니 만화책을 직접 한번 보는게 나으니까요.
누구나 자신이 본만큼만 보이는 법이고, 그걸 억지로 개안시키는게 과연 가능할지요. 만화는 과도할 정도로 ‘엘리트주의’가 약해져 있습니다. 엘리트주의를 ‘오타쿠주의’가 대체 했다고 할까요. 폭넓은 관점이라는건 엘리트주의하에서나 ‘자랑’거리이지, 오타쿠가 세상의 중심인 공간에서는 그다지;;;
자기 분야의 미세한 부분에 대한 집착을 좀더 넓은 공간에 대한 관심으로 바꾸어 낼 필요가 있겠지요. 이 문제는 대부분 자신들이 보는 만화가 만화의 전부인거 같은 느낌이 들게 되는 만화판의 ‘과도한 넓음’입죠;; 옙;;
@기린아 2005/08/23 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