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식에 대한 고민은 내용으로부터 시작한다. 지난 여름(…) 게재본은 여기로.
“효과툰” 릴레이는 공포에 성공하였는가
김낙호(만화연구가)
90년대말 즈음의 흔한 개인 홈페이지들은, 움직이는 그림 아이콘들이 빼곡하게 온갖 발랄한 색으로 방문객의 눈을 괴롭혀주었다. 그렇듯, 신기한 기술이란 딱 필요한 만큼만 필요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맞다. 네이버 웹툰에서 효과툰이라는 신조어를 내밀며 들고 온 올해의 납량특집 릴레이만화 프로젝트 ‘소름’을 보는 개인적 감상이다.
최근 개발되어 하일권 작가의 [고고고] 등에 사용된 효과 저작툴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공포만화 릴레이를 활용하는 것은 분명히 적절하다. 만화의 가장 기본적 표현양식인 정지 화상의 연속을 넘어서는 어떤 작동 장치로 공포효과를 얻어낸 것의 모범적 선례로 수년전 호랑 작가의 [옥수역 귀신], [봉천동 귀신] 등이 있었듯, 감상 중간에 무언가 다른 요소가 섞이는 의외성은 공포효과에 어울린다.
하지만 “왜” 그렇게 움직여야하고 그렇게 움직여서 얻는 “경험”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두지 않으면 그저 깜짝 놀라는 조건반사일 뿐, 서늘하게 감정을 건드리는 공포가 아니다. 특수효과 가운데 남용되기 쉬운 예인 동영상 반복 움직임 효과는 어떨까. 만화에서 칸이란, 기본적으로 어떤 한 순간을 잘라내 고정시키는 방식이다. 그렇기에 순간이 무한히 지속되는 경험을 줄 때 적합하다. 그런데 서서히 고조되는 것이 아니라 급박한 페이스로 넘겨버리게 되는 이야기 대목에 반복 움직임 효과를 넣으면, 그저 촐싹거리는 느낌으로 끝난다. 한 화면을 구성하는 여러 층위가 다른 속도로 스크롤되는 “패럴랙스” 효과는 어떤가. 움직임을 통한 풍경의 깊이감을 위해 존재하는 기법인데, 공간적 깊이를 보여줘야 제대로 성립하는 이야기 대목이 아니라면 그저 노력 낭비다.
‘소름’ 연작 가운데 효과를 매우 적절하게 활용한 대표적인 두 작품이 있다. 박수봉의 [현상]은 사진사가 의문의 손님으로부터 받은 필름을 현상하면서 범죄 현장을 목격하게 되는 내용이다. 그런데 필름 사진을 현상한다는 것은, 화학작용으로 인하여 아무 것도 없던 종이 위에 저절로 서서히 모습이 떠오르는 과정이다. 특정 대목에 도달할 때 강제로 페이드인 효과가 작동하여, 빈 종이 위에 범죄의 현장이 떠오르는 연출과 상성이 좋다.
joana의 [무보 월13 즉입]은 독자를 가해자의 시점에 집어 넣어 찝찝함을 유도한다. 이 작품에는 고시원을 찾아온 피해자를 무거운 유리 장치로 서서히 눌러 죽이고 그 순간을 구경하며 즐기는 살인마가 등장한다. 독자가 작품을 계속 읽기 위해 스크롤을 하면, 피해자가 점점 짓눌리는 모습을 살인마의 시점으로 보는 연출이 펼쳐진다. 유리장치로 피해자를 누르는 것은 내용상으로는 살인마지만, 사실은 독자 자신이 되어버린다. 이 경우도 이야기의 전개와 효과의 기술이 잘 맞아떨어진 사례다.
하지만 이런 두 작품조차, 이야기를 위해 효과를 동원한 것인지 효과를 위해 이야기를 만든 것인지 혼돈스러운 면이 있다. 효과를 활용한 연출의 섬뜩함과 별개로,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릴레이 기획 원래의 표어에서 기대하는 방식의 공포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사에게 필름 현상을 맡기는 관행은 디지털 카메라 시대의 우리에게 어떤 경험의 고리를 주는가. 저렴한 숙박공간에서 범죄를 당할 수도 있다는 현실적 불안감은, 고시원 관리인이 엽기살인마라는 강렬한 설정과 썩 어울린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떻게 보자면, 야밤에 혼자 다니는 도시생활의 흔한 불안에 귀신괴담을 결합했던 수년 전의 [봉천동 귀신] 같은 소박하게 기본적인 이야기 틀에서 오히려 후퇴한 측면이 있다.
그저 깜짝 놀라게 만드는 것에 그치는 갑작스런 소리나 움직임이라면, 그 자체만으로는 심장에 안 좋을 뿐이지 ‘소름’은 돋지 않는다. 지금 우리의 사회상과 생활 풍경에 발을 딛고 있는 막연한 불안감을 극적인 괴담으로 키워내는 것이 핵심이고, 그런 고민이 부족하면 아무리 화려한 특수효과로 점철한다고 한들 기법에 대한 호기심이 이야기의 방향성을 압도해버리는 함정에 빠진 것일 뿐이다. 그렇게 해서 남는 것은 기법 실험이지, 작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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