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예능화를 받아들이기 [주간경향 / 1215호]

!@#… 피할 수 없으면(그럴 필요도 없고) 잘 합시다, 라는 나름 긍정 쩌는 결론과 3가지 방법 제안. 게재본은 여기로: 정치와 예능은 ‘잘못된 만남’인가

 

정치의 예능화를 받아들이기

김낙호(미디어연구가)

정상적인 민주제의 특징이라면, 정치인들이 당선을 위해 대중의 관심을 놓고 경쟁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대단한 사회적 비전과 정교한 실현 계획이 존재한다고 한들, 정책 이전에 정치인 자신에 대한 충분한 관심을 모아내서 공직에 오르지 못하면 실현할 수 없다. 그리고 오늘날 누군가를 스타로 만드는 것에 가장 전문화된 방식 가운데 하나가 바로 캐릭터화된 출연자들의 오락적 대화로 이뤄진 매스미디어 이벤트, 즉 예능이다. 그렇기에 정치와 예능의 만남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고, 어떻게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관건은 그런 현상이 진지한 정치의 쇠락을 부채질하기보다는 건설적 관심과 참여로 이어지도록 방법을 찾는 것 뿐이다.

정치의 예능화를 논할 때 최근 주목받는 모습은 단연 정치인들이 [썰전]이나 [대선주자 국민면접] 같은 토론 형태의 예능 프로그램, [숏터뷰] 같은 SNS 유포에 특화된 짧고 재미있는 온라인 비디오 등에 출연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에 대한 거리감을 줄이고 인지도를 높이지만, 이미지 정치 와중에 정작 정책 검증은 등한시된다는 문제가 흔히 꼽힌다. 그런데 그 것은 4년 전 대선국면에서 예비후보들이 너도나도 아예 [힐링캠프] 같은 인생사 예능에 나와서 앞다투어 “인간미”를 과시할 당시에도 충분히 지적되었고, 지금은 유행하는 예능의 형식만 바뀌었을 뿐이다.

정치와 예능의 잘못된 만남에 대한 한탄의 근본을 파다보면, 매스미디어로 정치가 오락거리가 된다는 우려가 있다. 정확하게는, 오락성에 빠져서 중요한 정치 지식은 놓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대선토론회를 TV 중계했을 때, 전국구 관객에게 후보자들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는 새 미디어 기술을 통해서 케네디가 정책 내용의 장단점보다는 잘생김과 멋진 발언태도를 지닌 캐릭터 구축으로 스타가 되었다든지 말이다. 최근 사례로는 과거에 예능프로 진행자로 저돌적인 경영자 캐릭터를 구축했던 도널드 트럼프가 그 이미지와 인지도를 그대로 활용하여 지지층을 규합하고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일도 있다.

하지만 오락적 요소 그 자체가 정치 참여에 나쁜 것은 아니라서, 오락성으로 정치에 대한 관심은 물론이고 정보 습득까지도 키울 수 있다는 긍정적 가능성이 국내외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한동안 유행어처럼 돌았던 “인포테인먼트”, 즉 정보가치를 오락물 형태로 담아내는 개념이 정치라는 분야에 대해서도 충분히 적용되는 것이다. 오락성을 추구하는 동기 자체 또한 쾌락주의적인 것과 자기실현적 것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후자를 자극하면 정치 사안에 대한 관심, 성찰, 그리고 관련 정보 탐색 욕구를 이끌어낸다는 최근 실험연구도 있다(Bartsch & Schneider, 2014). 이런 효과는 사변과 실험실에 머무는 것이 아니어서, 퓨센터의 2014년 조사에 의하면 정치뉴스 형식의 코미디 토크쇼인 [데일리 쇼]가 미국 온라인 이용자의 12%에게 뉴스를 얻어내는 매체로 꼽힌 바 있다. 노골적 반면교사지만, 파괴적 극우 정치에 환호하는 이들의 방대한 정보 창고인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도 원래 유머게시판을 표방한다.

정치가 예능의 오락적 요소를 활용하여 지지를 모으려는 것, 예능이 정치를 섭외해서 신선한 소재를 개척하려는 것, 대중이 예능 같은 재미를 통해서 골치 아픈 정치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각각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문제는 마치 실제 영어 실력은 형편없는데 온갖 꼼수로 영어시험 점수만 올리듯, 정치와 미디어가 합심하여 정책 콘텐츠의 내실 없이 오로지 재미있는 캐릭터 구축을 통해 인지도 자체에만 몰입할 때다. 좋은 정책을 발현할 이를 매력적 이미지를 통해 골라내는 것이 원래의 목표지만, 그저 캐릭터를 바탕으로 하는 정치 팬덤이 전면에 부각되는 식이다. 그 결과, 정치에 대한 인식이 지난한 사회 운영의 과정이 아니라 운영권을 둘러싼 파워게임으로 축소되어버린다. 그 경우 시민들 입장에서는 선거 당일의 환희 말고는 일상의 구체적 정치 효능감은 떨어지게 되며,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복잡하고 재미없고 모두의 협업이 필요한 정책 기획을 제시할 동기가 떨어져서 적당히 매력적인 추상적 구호를 남발하기 쉽다. 그 과정을 매개하고 주도한 미디어 역시 신뢰를 잃는, 모두가 패배하는 흐름이다.

예능과 정치의 가장 바람직한 결합은, 재미있는 정치인 캐릭터를 만드는 것과 재미없는 정치 과정을 인식하게 만드는 것을 동시에 이뤄내는 식이다. 그런데 사람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포장법과 정책이라는 퍼즐 풀이는 것은 호환이 잘 되지 않는다. 인물의 매력을 키워내는 것은 그럴듯한 배경 스토리와 독보적 카리스마 및 순발력 등인데, 정책은 그와 정반대로 지난한 과정 속에서 절충하여 만든 정교한 기획일 때 그나마 성공한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어려운 과제를 회피하고 그저 인물만 챙기는 손쉬운 예능의 길을 가면, 높은 정치 관심 속의 탈정치화라는 부작용으로 귀결될 수 있다.

결국 문제는 정치의 예능화 자체보다는, 예능으로 정치를 진지하게 다뤄내는 솜씨다. 정치 예능으로 최고의 재미와 호응을 이끌어 내기 위한 황금 공식은 없지만, 모아낸 관심과 진지한 정치 정보를 이어주려면 필요한 몇가지 조건은 있다. 첫째는 정치 예능에서 선보이는 지식에 철저한 전문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방영을 시작한 [대선주자 국민면접]의 경우 면접관 역할로 나온 이들은 저명 논객들이지만, 국가 정책 검증에 적합한 전문분야를 안배한 것과 매우 거리가 멀다. 필요한 것은 패널의 스타성이 아니라, 최소한 뉴스 프로그램의 인터뷰에 준하는 관련 정보의 철저한 사전 준비다. 실제로 뉴스팀이 주도하여 방송을 기획하되, 그 바탕 위에 유머를 얹는 방식의 협업이 바람직하다.

둘째는 정보의 확장이다. 아무리 예능의 틀에서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정치 참여라는 명분을 내건다면 그에 맞는 정보 제공을 해줘야 한다. 해당 방송의 사이트에 고작 방송 다시보기, 질문게시판만 있다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정치인 출연자가 발언한 내용이 과연 사실인지 검증해주고, 특정한 법률이나 정책을 언급했으면 관련 공식 자료를 연결해주고, 논쟁적 소재를 다뤘으면 더 읽을 만한 논점 기사 목록을 준다면, 좀 더 수월하게 관심이 정보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다시금, 뉴스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셋째는 유머코드의 전략적 정비로, 소위 “사이다”로 통칭되는 직설과 호통의 통쾌함보다는 상황의 역설을 추구하는 것이다. 시원함을 추구하는 것은 종종 사안을 단순화하고 대립 구도를 과장하기에, 순간적 해방감에 머물 뿐 그 이상의 생각을 자극하지 못한다. 반면 특정한 정치적 입장이 만드는 모순이나 현실과의 괴리 등을 드러내는 대화와 풍자는 해당 사안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물론 이런 방식은 진행자의 개인기로 만들어내기 어렵고, 각본팀의 정밀한 준비가 있어야 가능하다.

비용과 인력과 시간과 부서간 조율의 한계에 부딪히는 제작진의 탄식이 훤히 보이지만, 정치의 예능화 자체를 막을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든 요구하고 이뤄야할 방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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