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덕: 보노보노 [고대신문 / 170522]

!@#… 굳이 말하자면, 나는 야옹이형 지지자. 게재본은 여기로.

 

느림의 미덕, [보노보노]

김낙호(만화연구가)

한 때, 한국 문화의 가장 큰 문제는 “빨리빨리”라고 비판하는 유행이 있었다. 결과를 빨리 내놓으라 재촉하느라 필수적인 중간 과정에서 부실이 발생하고, 효율성의 이름으로 선명한 불평등의 상명하복이 강요되고 여하튼 모든 안 좋은 것들이 농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반대에 있을 것 같은 ‘느림’을 실천해봐야할텐데, 도대체 그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가 궁금하다. 바쁜 현대사회의 경쟁에서 손을 털고 대충 귀농이라도 하면 되는 것인가(스포일러: 아니다).

우선 한번 심호흡을 하고, 페이지에 묻히지 않고 느긋하게 씹어먹을 주전부리를 옆에 준비하고, 최근 박스세트로 재출간중인 [보노보노] (이가라시 미키오 / 거북이북스)를 펼쳐볼 것을 권한다. 주인공인 아기해달 보노보노는 소심하고 걱정이 많은데, 그런 것이 본격적인 불안으로 악화되기에는 너무나 둔한 성격이다. 라스칼인 너부리는 강한 척 주변인을 괴롭히지만, 근간은 외로움과 불안이 자리잡고 있다. 다람쥐 포로리는 조금의 반어법도 없이 ‘때릴거야?”를 외치다가 성질내는 너부리에게 맞는 역할이지만, 사실은 완벽한 불굴의 마이 페이스다. 세 가지 성격은 절묘하게도 서로 맞물리며 숲 속 일상의 안정적인 역할극을 만들어낸다.

이 작품에서 대부분의 이야기 소재는 화려한 모험이나 드라마틱한 소동이 아니다. 그저 일상의 반복적 모습이나 소소한 작은 계기에서 무언가 생뚱맞은 궁금증이 떠오르고, 그것을 생각해보다가 잊어버리다가 어쩌다보면 생각이 나기도 하는 그런 이야기다. 4칸 만화의 묶음이기는 하지만, 같은 장면이 반복된 모습 속에서 그저 물 위에 둥둥 떠다니며 미세하게 살짝 움직인 것만으로 한 편이 지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말 그대로 속도로서의 느림을 이야기한다면, 모범 그 자체다.

하지만 느림이 그저 단순한 낭비가 아니도록 만드는 요소가 있다. 작은 계기에서 생겨난 의문을 느리고 반복적으로 소화해보면서 도달하는, 대단치 않은 것 같지만 사실은 탄탄한 어떤 생각의 편린이다. 보노보노 명언록 같은 것이 흔히 퍼져있곤 하지만, 대사 자체보다는 만화작품의 그 느린 호흡과 맥락 속에서 미묘한 유머감각과 함께 전달이 될 때 비로소 완전해진다. 예를 들어 “나와 만나지 않을 때의 모두는 가죽을 벗고 쉬고 있을거다” 라는 대사만 놓고 보면 뜬금없다. 하지만 보노보노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란 무엇인가, 나의 고유성은 무엇인가를 순박한 아동의 언어로 곰곰히 고민하고 아빠의 뒤를 밟아보다가 혼자 슬퍼진 그 느리고 희극적이며 울적한 상황 속에서, 어떤 근본적 통찰로 초대하는 열쇠가 된다.

그것을 우리는 바로 성찰이라고 부른다. 그저 골돌히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의 의미 및 그 안에 있는 자신의 의미를 자신이 겪는 일상의 경험과 자신이 처리 가능한 언어로 돌아보며 소화하는 지속적인 과정이 바로 성찰이다. 빨리빨리의 반대는 속도로서의 느림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질문을 놓지 않는 성찰이라는 것을, 싱겁게 웃기고 종종 짠한 아기해달의 일상을 통해서 깨닫는 것은 역시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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