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를 기르는 법], 삶의 질을 되묻는 어떤 방법 [고대신문 / 16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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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를 기르는 법], 삶의 질을 되묻는 어떤 방법

김낙호(만화연구가)

한국사회가 필요 이상으로 성원들에게 괴로움을 안기는 가장 근본적인 패턴 가운데 하나는, “삶의 질”을 늘 후순위로 밀어낸다는 것이다. 매일 야근이 기본인 것은, 성공가도를 꿈꾸는 창업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게 강제된 일상적 업무환경이다. 일자리 기회의 열악한 분포는, 선택 가능한 거주 환경의 질을 희생하게 만든다. 물가 관리 구조는 어떤 거시적 경제지표만 맞추기 위함이지, 시민들의 생활여건 개선을 목표로 움직이는 것 같지 않다. 지나친 오지랖과 외롭게 던져진 개인이라는 두 극단 사이에 있어야할 건강한 중간지대도 옅다.

[혼자를 기르는 법](김정연 / 미디어다음)은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도시라는 서식 환경에서 어떤 혼자인 사람을 길러낸다는 감수성으로 접근하는 만화다. 혼자 살며 작은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고 작은 방에서 사는 젊은 여성 도시민 이시다에게 이 사회가 겪도록 만드는 너무나 일상적이기에 무덤덤해질 것만 같은 스트레스에 대해, 건조한 유머로 풀어낸 관찰이다. 형편없는 삶의 질의 문제를, 소모적인 일터와 나아질 길 없는 거주 공간과 그 안에서 쪼그라드는 감정의 관계 속에서 자연스레 질문한다.

이 작품의 특징은 시적이라는 점인데, 단지 여운을 준다고 해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그림체는 절제된 선의 둥근 카툰화법으로 효율적으로 시각적 비유를 구사해낸다. 6칸 구조의 이야기 몇 개를 묶어서 하나의 테마를 만들어내는 등 정교하게 통제된 형식미를 갖추고 있다. 각각의 이야기는, 사람을 소모품 취급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의 업무 일상과 그 안에서의 ‘빡침’을 생생한 언어로 전달하기도 한다. 반려동물의 어떤 행태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처지가 그와 비슷함을 돌아보는 차분한 비유를 그릴 때도 있다. 생활의 사소한 순간에 벌어지는 어떤 궁색한 모습을 포착해서 공감을 유도하는 방식도 있다. 이런 이야기들 몇 가지가 대구를 이루고 큰 주제로 엮이며, 마지막에는 왜 우리가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것일까에 대한 절묘한 울림으로 귀결된다.

모든 청년들이 이시다와 같은 삶을 살고 있거나 살게 될 것은 아니다. 더 쾌적한 여건을 타고난 이들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훨씬 비극적인 환경도 있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널리 공감을 받을 정도로 꽤 평범하고 흔한 젊은 도시인의 모습이 그럭저럭 열심히 살아도 역시 형편 없는 삶의 질 속에서 쳇바퀴를 도는 것이라면, 이것이 어떤 개인의 사정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우리를 기르는 법에 문제가 있음을 인식할 때다. 인식의 계기가 되는 지점이 이런 우아한 작품이라면 더 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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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혼자를 기르는 법 (김정연 / 미디어다음): 오늘날 서울이라는 기이한 서식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길러내는” 우리들의 삶에 대한, 건조하고도 시적인 리듬감의 관찰. 좀 더 긴 평은 여기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