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헤드윅, 한국판. 보고오다.

!@#… 주말에, 여자친구님과 헤드윅 뮤지컬 보고 오다. 헤드윅 주연 4인조 가운데 조승우 주연, 속칭 조드윅 공연으로 보고 오다. 조드윅 출연분은 초유의 예매 시작 당일 매진 사태였는데, 반드시 조승우표로 구해내라는 여자친구님의 강력한 압박에 허겁지겁 무대 맨 뒤쪽 끝자락에 겨우겨우 구한 표. 다행히도 라이브 소극장은 말 그래도 소극장이라서 공연 관람에는 큰 지장은 없었다. 에에, 앞에 계셨던 여자분들이 머리가 크고, 긴 생머리에다가 심지어 허리까지 길었던 것만 제외하자면. (여담이지만 관객중 여성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던데… 조승우라서 그런건가, 아니면 헤드윅이라는 작품 자체가 여성에게 더 어필이 큰 건가?) 원래 영화판을 보고 또 보고 또 봐서 왠만한 노래는 줄줄 외우고 따라부를 정도로 좋아하는 작품인지라, 원작인 뮤지컬판이 국내공연한다니 당연히 보려가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게다.

!@#… 그리고 충분히 그런 기대가 충족되는 좋은 공연. 가창력, 정확한 발성, 의외로 상당히 높았던 가사전달력, 자연스러운 농짓거리 등등 외모만 빼면(…아아… 조승우씨는 확실히 ‘여성스러움’을 강조하기에는 선이 너무 굵다) 도저히 흠잡을 데가 없을 정도. 락 공연으로서의 완급조절도 일품이어서, 배우들, 밴드, 연출진의 노고가 뚜렷하게 각인되었다. 자꾸 초대 헤드윅이자 감독, 영화판 주연이자 감독인 존 카메론 미첼과 비교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게 얼마나 바보같고 무의미한 짓인지는 따로 언급하기도 귀찮다.

!@#… 아니, 사실 약간 흠잡을 데가 있다. 가사 번역 부분. 원작의 화려한 각운을 그대로 전달하는 건 어차피 힘들다는 것 알고 있기에 사실 상당히 수준높은 번역작업이기는 했지만. 하지만 뮤지컬로서 좋은 번역일지는 몰라도, 헤드윅으로서는 2% 부족하다. 예를 들어 Origin of Love 하나만 놓고 보면… 많은 분들이 지적하시는 부분 “한 눈 한다리 남겨주세요” 대목. 원작 가사는 만약 신들에게 또 대들면 (4개 다리 두개의 머리를 가졌던 원시 종족을 지금 인간의 모습으로 갈라놓아버렸던 바로 그) 제우스가 또 나와서 우리를 다시 한번 반쪽으로 갈라버리고, 그러면 우리 모두 외팔외눈외다리가 될 거라는 전형적인 헤드윅식의 비극적인 익살이다. 그런데 그걸 무슨 신들에 대한 인간들의 애원처럼 오역한거다. 노래로서는 매끈한 가사가 되었으되 헤드윅의 감성은 전혀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노래 속에 언급하는 신화에 대한 이해도도 좀 부족했던 것이, ‘Some Indian God’를 인디언 신으로 오역했다. 인도 신이 맞다. 사실 ‘인디언’이라고 잘못 불리우는 미국 원주민들은, 신을 섬기지 않는다; 위대한 전사의 영혼들과 자연의 혼에게 경외를 바칠 뿐. 그리고 배꼽이라는 것이 둘로 갈라졌을 때 생긴 등짝의 그 상처를 앞으로 가지고와서 꼬맨 것이라는 맥락도 살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시리스를 영어식 발음인 ‘오사이러스’로 간 것도 좀 어색했다; 제우스를 쥬스라고 하지는 않지 않으니까. 영화판에서는 무식한 토미 노시스가 그걸 ‘사이러스’라는 남자이름으로 잘못알고 불러버리는 대목이 나오지만, 뮤지컬판에서는 그것도 없으니 더더욱 오시리스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 팜플렛이나 기타 정보에 에밀리 허블리의 이름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은 좀 의외였다. 무대 배경으로 사용된 – 특히 Origin of Love의 그 감동적인 배경 그림들이나, ‘하나가 된다는 것’에 대한 상징물들 – 은 영화판을 위해서 에밀리 허블리가 만든 애니메이션 창작물들의 표현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 무대용 애니를 제작한 회사의 이름만 있고 정작 허블리는 크레딧에서 쏙 빠져있다. 극 진행의 일부로서 그 이미지들이 차지하는 위상을 놓고 보았을 때, 좀 거시기한 처사.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에 삽입된 제랄드 스카프의 애니메이션 이후로 가장 인상적인 창작물이었는데, 이렇게 새까맣게 무시당할만한 작품이 아닌데.

!@#…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98%는 만족하고 – 아니 만족 이상으로 멋지게 즐기고 나왔다. 2%의 부족함을 지적해내는 건 어차피 직업병이니까. 단, 그 2%가 앞으로 충분히 개선 가능한 것일 때만 지적한다는 나만의 ‘규칙’을 철저하게 준수하고자 할 뿐. 여튼 간만에 멋진 문화행사 경험이었고, 이제는 조승우와 정 반대 지점에서 헤드윅의 인물해석에 접근했다는 오만석 버젼 표를 구해보려 한번 뒤져봐야겠다. 성공확률은 물론 지극히 낮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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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edwig.co.kr 한국판 뮤지컬 홈피

http://www.hedwigandtheangryinch.co.uk/ 영국판 뮤지컬 홈피

http://www.finelinefeatures.com/sites/hedwig/ 영화판 공식홈피

http://eee.eplus.co.jp/s/hedwig/ 일본판 뮤지컬 재공연 홈피. 오카마 전통이 강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한국 캐스트보다도 더 남성적인 선을 가진 아저씨가 주연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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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thought on “뮤지컬 헤드윅, 한국판. 보고오다.

Comments


  1. [네이버덧글 백업]
    – 코믹도치 – 애니메이션을 그냥 에밀리 버전으로 틀어줬으면 좀더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한국판 애니는 뭐랄까? 좀 너무 밋밋하고 식상해요… 2005/05/03 10:36

    – 객 – 번역 가사를 보니 오시리스가 나일의 여신으로 나오네요. 이것도 오류^^; 2005/05/03 21:45

    – 캡콜드 – !@#… 허걱. 그렇군요! 오시리스와 이시스 부부가 졸지에 백합물로…;;; (원 가사에서는, Osiris and the gods of the Nile… 즉 ‘오시리스와 나일강의 신들’. 게다가 오시리스의 본업은 나일강의 신이 아니라 죽은 자의 신… 나일강은 ‘하비’의 담당.) 2005/05/03 2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