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의 재발견 [학교도서관저널 1109]

!@#… 언젠가는 내 위인전도 만화로 나와주기를. (…호러만화? 개그만화?) 그건 그렇고, 한 달 이내로 수상쩍은 출판사에서 엄청 급조한 티가 나는 스티브잡스 위인전 “학습”만화가 출간될 것 같은 막연한 예감이 든다.

 

위인전의 재발견

김낙호(만화연구가)

 

어떤 의미에서, 모든 서사물은 어떤 타인의 삶을 훔쳐봄으로써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장치다(물론 훔쳐보는 재미 자체만 너무 극대화해서 굳이 각자의 삶을 돌아보지 않도록 막아버리는 ‘소비적’ 작품들이 넘치지만). 그런데 그 중에서 가상보다는 실존한 타인의 삶을 보라고 하며 그것도 그의 삶을 어떤 식으로든 직접적으로 본받아보라고 넌지시 전제를 깔아놓는 장르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위인전이다. 흔히, 위인전은 성공한 인간을 보고 배우라는 식으로 그의 인생과정을 미화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도 그럴 것이, 특히 어릴 적 부모 선생들이 그런 편협한 사고로 위인전을 골라주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사람으로서의 위인을 뽑을 때, 하필 그 위대함은 부와 권력 등 세속적 성공에 대한 것들이라든지 말이다. 아니면 거의 인간의 수준을 벗어난 ‘성인’ 수준의 박애를 보여준 사람의 뜬구름 같은 활약상도 마찬가지다. 위대함에 대한 틀에 박힌 편견으로 선택받은 위인전 특유의 훈계조 속에서, 타인의 삶에서 얻을 세밀한 단서들을 자신의 삶의 맥락에 적용해보는 재미를 잃기 쉽다. 그보다는, 최선을 다해 무언가 의미를 남긴 이들이 어떤 식으로 그들 시대의 맥락 속에서 함께 호흡했고, 그들의 세상은 우리 세상과 얼마나 다르고 또 비슷한가를 보는 것이 더 위인전을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틀에 박힌 훈계수단 같은 위인전의 이미지를 깨려면, 가장 먼저 굳이 세속적 성공(=돈)이나 ‘성인’이 아니라도 어떤 사회적 모범을 세우고 불멸의 영감을 준 이들의 위인전을 보는 것이 어떨까. 특히 지금 우리 시대 우리 사회에도 시사점이 많으면 금상첨화다. 우선, 대단할 것 없는 일반 직공 신분이었으나 노동자로서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를 자신과 주변 동료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 노동자 위인으로 시작해보자. 만화 [태일이](최호철/돌배게/전5권)이 그려내는 노동자 전태일은 세속적 성공으로 생각하자면 본받을 만한 구석이 없는, 그냥 “손재주 좋은” 방직 노동자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성인마냥 평화와 박애를 추구했다기보다, 그저 자신 및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모든 이들이 노동법에 규정된 만큼이라도 더 인간다운 대접을 받기를 원한 마음씨 착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책에서 차근차근 보여주는 한국전쟁 후 앞뒤 돌아보지 않고 경제성장에 전력질주하던 사회의 모습이라는 맥락을 읽을 때, 서사는 굵어진다. 못가진 자들이 상대적으로 더 못가진 자들을 이용하는데 국가라는 사회는 애국을 강요하면서도 인권은 나 몰라라 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가장 가진 것 없는 일개 방직노동자가 나서서 노동 실태를 어떻게든 세상에 더 알리려 하고 사장들과 협상하고 노동자들을 조직한다. 그리고 모든 노력이 많은 준비가 되어 있으나 결정적 벽에 부딪힐 때, 결국 비극적 자기희생으로 이후 더 많은 노동인권 싸움을 위한 씨앗을 남기고 간다. 자기 세상을 보고, 최선을 다 해서 문제점에 도전하는 것보다 더 본받을 만한 위인의 삶이 있을까. 사람이 사는 빼곡한 풍경을 그려내는 것에 특히 능숙한 작가의 만화로 볼 때, 이야기는 더욱 강력한 울림을 준다.

다른 사회적 맥락에서, 인간애라는 꿈 위에서 싸우고 또 싸운 위인도 있다. 쿠바 혁명의 주역이었던 체 게바라는 워낙 많은 위인전이 나온 인물인데, 그 중 두 만화작품 [체 게바라](브레시아 글, 오스터엘드 그림), [만화 체 게바라 평전](제이콥슨, 콜론)을 함께 보면 특히 흥미롭다. 충분한 사회적 제어도 없이 유사제국주의적 국제관계까지 얹어놓은 천민자본주의의 길로 급격하게 들어서며 빈부격차와 인권 경시가 심화되던 20세기 중후반 남미에서, 보통 사람들의 삶의 실상을 경험한 의사지망생 에르네스토가 게릴라전사 ‘체’로 성장한다. 오랜 전투를 통해 부패한 정권을 몰아내는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 다음 핵심 권력자로 눌러앉을 수 있었음에도 결국 더 많은 남미 국가들에서 혁명을 성공시키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서고, 결국 전장에서 잡혀서 처형당하는 일대기다. [체 게바라]는 강렬한 흑백의 명암으로 그려진 그림 속에, 축축한 전장에서 과거의 기억들을 끄집어내어 체를 움직인 열정과 인간애를 전달한다. 반면 [평전]은 신문의 탐사취재 특집기사처럼, 실제 사건 위주로 그의 연대기를 그려내며 거리를 유지한다. 감정선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의 증언과 기록자료들을 끌어오는 방식이다. 마치 다큐와 시를 같이 읽는 듯한 느낌으로 두 작품을 함께 읽으며, 마냥 성인도 아니고 혁명의 마스코트 같은 것도 아닌, 그저 더 나은 세상을 자기 손으로 앞당기고 싶었던 한 인간의 모습과 그가 싸워왔던 사회를 볼 수 있다.

좋은 위인전은 심지어 다루는 개인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하는 것에 집중할 필요조차 없다. 즉, 반드시 위인전에서 다루고자 하는 개인의 인생 자체가 중심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 사람이 추구했던 특정 주제를 중심에 놓고, 주제를 설명하면서 그 과정에서 인생의 성장담을 엮어 넣을 수도 있다. 만약 추구했던 주제가 확실하고 풍부한 맥락으로 가득하다면 소소한 개인 신격화로는 이루지 못할 탄탄한 내용적 구심력을 얻을 수 있다. [로지코믹스](독시아디스 외 / 랜덤하우스)는 흔들림 없는 절대적 진리를 찾고자 평생을 보내고, 그 과정에서 유명한 반전평화 운동가로 자리매김하기까지 한 논리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이야기다. 수리적 논리를 통해 진리를 찾아내려는 여러 접근법,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동기, 논리를 다듬어 나가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당대 근현대철학과 수학의 다른 거두들이 자연스럽게 엮인다. 그리고 논리 추구라는 관점에서 볼 때, 러셀의 인생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논리적으로 보다 깊은 인생과 세상에 대한 깨달음, 이성에 대한 설파, 평화를 위한 노력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로지코믹스]는 작가들의 개념 설명, 러셀의 강연과 자신의 삶에 대한 회상 등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다소 난해할 수 있는 논리철학을 가장 재미있는 주제로 변환하여 서사의 중심축으로 삼는다.

주제에 집중하는 것 말고도, 특출난 개인만의 이야기를 중심에 놓지 않는 다른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그가 처한 시대상의 이야기에 훨씬 중점을 두고, 하나의 주인공보다는 집단 주인공의 느낌이 더 강하게 나도록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얼마나 당시의 사회의 복합적 맥락을 재미있게 잘 묘사해내는가가 중요해진다. 세계를 충분히 잘 설명해놓고, 주인공인 위인은 그 속에서 ‘운신’을 하는 이야기인 셈이다. [조선왕조실록](박시백)은 조선 시대의 왕이라는 위인들의 연대기를 표방하지만, 사실은 지배운영방식 전반의 맥락이 촘촘하게 담겨있다. 왕, 또는 왕들이 언제 즉위해서 언제 죽었는가 수준이 아니라 당시 어떤 제도들과 어떤 대립구도로 인해서 어떤 갈등이 있었고, 사람들의 삶은 어떤 식이었으며, 국제적으로는 어떤 처지에 있었는데, 그런 복합적 세상을 조율해야할 통치자 역할로서 주인공인 왕이 등장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럭저럭 좋은 개혁정책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키며 잘 해나가고, 다른 많은 이들은 노력만 하다가 오히려 상황이 이상하게 꼬이면서 고생만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 상황에서 폭군이 되어 나라를 망칠 따름이다. 친절하게 설명하지만 직접적으로 교훈을 설파하지 않는 작가의 자세, 무겁고 현란하지 않게 역사적 과정들을 담담하게 묘사하는 그림으로 수백년의 역사를 담은 방대한 원작(즉 조선왕조실록)이 만화라는 서사로 담겨진다.

위인전의 고정관념에서 더 벗어나려면, 아예 사실과 픽션을 노골적으로 섞을 수도 있다. 완전한 사실인양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적 디테일이 풍부한 사극으로서 접근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문자 그대로만 사실로 받아들이는 우둔한 수용자들이 생길 위험은 언제나 있겠지만, 다행히도 만화적 과장을 활용해서 살짝 사실감의 거리를 벌려두면 조금은 더 안심할 수 있다. [어~이! 료마](타케다 테츠야, 코야마 유우)는 일본 근대개화기(메이지유신) 무렵의 검객이자 외교관이자 상인이었던 사카모토 료마의 일대기다. 정확히는 일대기에 기반한 시바 료타로의 역사소설을 참조해서, 다시금 역사적 사실들을 더 섞고 픽션 부분을 더욱 가다듬은 또 다른 이야기다. 그런데 픽션화를 할 때 흔히 저지르는 실수인 주인공 개인의 초인화를 피하고, 오히려 혼란스러운 근대화 시기에 어떤 식으로 사람들의 가치관이 충돌하는지, 봉건적 질서에서 어떤 식으로 인권이 탄압받고 있었는지, 무엇을 위해 사람들을 화합시키는 것인지 굵직한 주제의식들을 섬세한 디테일로 완성해나간다. 90년대 이후 소년 장르만화들의 멋을 중시한 느리고 반복적인 전개가 아닌 호방하고 빠른 페이스로 전개되며,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사연과 뚜렷한 동기, 의지를 가지고 움직인다. 한국인 독자의 입장에서는 주인공들의 노력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이 그 직후 제국주의 야욕에 휩싸여 한반도를 집어삼킨 현대사가 떠올라서 거부감이 드는 대목들이 생길 수 있겠지만, 그런 미래까지는 내다보지 않고 그저 누구나 평등할 수 있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움직였던 이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까지는 방해되지 않는다.

 

앞서 소개한 작품들에서 보았듯, 좋은 위인전은 반드시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일 필요도 없고, 초인적이어야 할 필요도 없으며, 때로는 해당 개인의 삶이 중심 주제가 아니어도 되고, 심지어 모든 것이 엄격한 사실이어야 할 필요조차 없다(물론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 가상인지 독자가 어느 정도 판별할 능력이 된다는 전제 하에). 본받아야 한다는 듯 스스로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세상과 상호작용이 남달랐던 이들이 펼치는 완성도 높은 서사를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작품, 그래서 그들의 삶으로 우리들의 맥락까지 둘러볼 기회를 주는 작품을 찾아 읽는 것이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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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학교도서관저널. 특정 컨셉 아래 청소년들에게 추천하는 책들을 묶는 내용으로, 만화를 진득하게 즐기는 것의 즐거움과 세상사에 대한 관심을 적당히 배합해보자는 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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