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이 그리 칭찬하던 당초의 단편은 좀 뜨악하다 느꼈는데, 장편에서 보여주는 그 후의 내용들이 진국이다.
가해자가 걸어야할 길 – [목소리의 형태]
김낙호(만화연구가)
왜 물질적 이득을 갈취해내는 것이 아닌 경우라도, 사람은 타인을 괴롭히는가. 사회적 측면에서 동료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앞서서, 그들이 행하는 괴롭힘에 동참하거나 아예 앞장서는 것일 수 있다. 개인적 측면에서 상대의 어떤 특성을 결점으로 여기고 그것을 들쑤시는 것에서 과시적 즐거움을 찾는 것일 수 있다. 어느 한 쪽 혹은 양쪽 모두라도, 기반이 되는 전제는 비슷하다. 다양하고 복합적이며 대체로 올바르거나 현실적으로 합당한 나 혹은 우리가 있고, 그것과 달리 그냥 적당히 단순화한 남이 있다. 그 남이 이쪽 영역으로 들어왔는데 내 또는 우리 질서의 일원이 되지 않거나 못한다. 상대는 우리처럼 여러 속성이 복합적으로 얽힌 섬세하며 온전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단순하고 이질적인 ‘객체’에 불과해진다. 그런 이가 만만해 보이기까지 하다면, 괴롭힌다.
그렇기에 가해자가 속죄를 하는 것은 그냥 자신의 거칠음에 대해 겸연쩍어하는 것이어서는 미진하다. 피해자를 불쌍히 여기다가 감정이 가라앉고 난 후에는 잊어버리는 흔한 잘못된 대처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그보다는, 타자화하여 조롱하고 괴롭혔던 상대에 대해서 그쪽 역시 여러 감정과 생각이 얽혀 있는 별 다를 바 없는 온전한 사람임을 인식하는 것이 먼저다. 다음은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식으로 소통하며 그들의 처한 맥락을 보고, 그 안에서 자신이 했던 행위의 파급을 되짚는 것이다. 그런 바탕 위에 비로소, 길고 긴 바로잡기의 과정을 시작한다.
[목소리의 형태](오이마 요시토키 / 대원CI)는 학교에서의 집단 괴롭힘과 그것을 속죄하는 과정을 줄거리로 하는 작품이다. 쇼야라는 고3 학생이 자살을 결심하고는, 죽기 전에 자신이 어릴 적 괴롭혔던 한 여학생을 찾아내 사과를 하러 간다. 사연의 시작은 초등학교 시절이었는데, 지루함을 싫어하는 6학년생 쇼야의 반에 쇼코라는 청각장애 여학생이 전학을 온다. 어릴 적부터 귀가 들리지 않아 노트에 필담으로 말하는 그녀를 학급 일반은 적당히 친절하게 대해주지만, 쇼야는 따분함을 구실삼아 장난을 건다. 그런데 학급은 쇼코의 상태를 점차 자신들의 발목을 잡는 열등한 것으로 취급하게 되고, 그런 분위기를 타며 쇼야의 행동은 본격적인 괴롭힘으로 악화되어간다. 그런데 어떤 사건을 계기로 그런 집단 괴롭힘이 탄로나게 되자, 학급은 주저없이 쇼야에게 죄를 몰아주고 이제 쇼야가 새로운 집단 괴롭힘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일련의 갈등 속에 쇼코는 결국 전학을 가고, 쇼야는 이후에도 계속 집단 괴롭힘의 대상이 되어 살아간다. 6년 후, 쇼야는 사과를 하기 위해 쇼코를 찾아내고, 사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과로 막 시작하는 속죄의 과정이 펼쳐진다.
초등학생 쇼야가 쇼코를 괴롭혔던 것은, 대단한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따분한게 싫다는 불만이 있었고, 시비를 걸어도 반응이 미진해서 자꾸 더 강하게 골려주고 싶어지는 잘 이해 못할 새로운 대상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행한 것은 명백한 악행이었고, 자신의 의지와 주변의 북돋음 속에서 갈수록 강도가 심해졌다. 결국 상황이 파국으로 치닫고 이번에는 쇼야가 집단 괴롭힘의 대상이 된 이후에도, 그는 괴롭힘 당해서 괴로울 뿐이었다.
그런 쇼야였지만, 쇼코의 전학을 전후로 몇 가지 사건을 겪으며 자신의 좁은 인식을 바꾸게 된다. 쇼코는 그저 세상이 불쌍하다고 일컫는 짜증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복합적 감정으로 가득한 온전한 인간이었다. 자기 대신 새로운 집단 괴롭힘 대상이 된 이에게 측은한 조롱을 날리는 것이 아니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 과오를 제대로 사과하고 싶은 쇼야가 선택한 방법은, 쇼코의 언어를 배워서 말을 나누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죽기 전에 매듭을 짓겠다고 쇼코를 찾아가, 깜짝 놀라고 기겁하는 쇼코에게 그녀가 어릴 적 분실했던 필담 노트를 건내주고 수화로 말을 건다.
원래 [목소리의 형태]는 출판사 응모전에서 신인상을 탔던 단편이었고, 우여곡절 끝에 나중에야 공개되며 큰 호응을 얻은 바가 있었다. 단편 버전에서, 수화로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음에서 끝난다. 재미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는 가해자의 심경 해소까지만 다루는 평면적인 내용이다. 하지만 장편 연재로 확장하면서, 이 작품은 그 다음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에 성공한다. 가해자는 어떻게 피해자의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가. 특수학교나 친가족 외에는 누구에게나 낯선 타자가 되어 있는, 즉 억지로 배려해야하는 귀찮은 짐짝 취급을 받는 삶이 더욱 공고화되도록 만든 가해자가, 상황을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목소리의 형태]는 이런 질문의 답을 갑작스럽게 훈계하기보다는, 일상적 모습을 위화감 없이 찾아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발라놓는다. 초등학교 시절의 사연 등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면, 중반의 대부분은 드라마틱한 사건보다는 이런저런 소소한 즐거움을 가꿔나가는 모습이 그 자체가 교훈이 된다. 귀가 안 들리고 수화로 대화하고 필담 노트를 사용한다고 해도, 그냥 고등학생들이 어른스러운 성장도 하고 우정도 나누고 연애감정도 쌓을 뿐이다. 청각장애를 단순히 흘러가는 소재로 폄하하지 않고도 이런 성과를 이뤄내는 것은, 섬세한 감정선 연출 덕분이다. 머리 속으로 생각하는 바, 뱉어내는 바, 전달되는 바 사이의 괴리가, 언어만으로는 원활하지 못하다는 제약 안에서 더욱 절묘하게 균형과 불균형을 반복하며 정서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해서 작품이 내놓는 해답은 우직하다. 양쪽이 모두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인 수화로 심경을 대화하며,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지금 함께 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을 하고, 공감하는 주변인들을 더욱 함께 모아낸다. 당장의 불편함이든 주변의 시선이든 부차적인 것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다. 자신이 저지른 가해를 외면하거나 망각하지 않되, 그 죄책감으로 상대를 오히려 부담스러워하며 밀어내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빚을 다 갚았다고 손을 터는 것이 아니라 계속 친구관계를 이어가며 좋은 감정 나쁜 감정 다양하게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 속에서 여러 갈등도 있고 현실적 제약들도 부딪히지만, 단순화한 타자가 아니라 그저 온전한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존중하다보면 좀 더 나아질 가능성이 항상 있기 마련이다. 그런 희망을 공유해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작이다.
목소리의 형태 1 오이마 요시토키 지음/대원씨아이(만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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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재앙은 미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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