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싸울 이유가 있다 – 송곳 [기획회의 393호]

!@#… 요즘 종종 사용하는 극화풍 플픽의 출처이기도 함.

 

그럼에도 싸울 이유가 있다 – [송곳]

김낙호(만화연구가)

한겨레신문의 표현을 빌자면 “댓글란에서 노동상담소가 차려지는” 연재 만화가 있다. 한국의 노동현실에 대한 어느 정도 진지한 관심이 있어야 즐길 수 있는 작품이기에, 아무래도 30대 청년보다는 청소년 방문자들의 방문이 돋보이는 네이버 웹툰이라는 매체공간에서 조회수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현실의 노동 문제들을 고스란히 짚어주는 탁월한 현실감 덕분에, 여기에 공감하는 이들도 댓글란 등을 통해서 그만큼 생생한 자신들의 사례를 함께 나누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송곳](최규석 / 창작과 비평)은 사람들이 노조를 만들어 싸우는 이야기다. 이런 소재를 다루는 작품답게, 노동자 신분인 주요 캐릭터들이 받는 부당한 대우, 불리한 처지가 나온다. 이 소재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작품답게, 그 대우와 처지는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실 사회의 사건들을 충실하게 옮겨낸다. 그런데 이 소재를 진지하게 성찰하며 현실 변화의 원동력을 갈구하는 작품에 필요한 다음 단계까지도 건드려준다. 바로 간편한 선악대립 너머, 사람들 각자가 처한 현실적 제약과 그 안에서 잉태된 복합적인 이기심, 비이성, 편견조차 직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울 이유를 발견하는 것이다.

줄거리는 프랑스계 대형 마트 ‘푸르미’의 한 지점에서 벌어지는 노조 분규 과정을 다룬다(민주화 정착과 경제 재성장의 기대감 아래에서 정작 노동 문제들은 더욱 심각해졌던 흐름의 단면이었던, 2003년 까르푸 파업 사건을 직접적 모티브로 삼고 있다). 이수인 과장은 원리원칙을 거스르는 부조리를 불편해하고 결국 부딪히고 마는 성격이다. 그렇기에 규율이 명확한 직업 군인의 생활을 추구했으나, 실제로는 그 안에 만연한 부조리 관행에 반기를 들고는 튕겨나왔다. 그 후 합리적인 조직 운영을 하리라 기대한 외국계 대기업에 들어왔는데, 어느 날 상부로부터 일정 숫자의 직원들을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퇴직하게 만들라는 명령을 받고는 다시금 부딪히게 된다. 그가 우연히 찾아가게 된 것은 노동상담소 구고신 소장으로, 온갖 경험으로 다져진 현장파 활동가다. 구고신 소장의 조언과 교육을 받아가며, 이수인과 푸르미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권을 지키기 위한 조직적 싸움에 한발 한발 나선다.

지금 상태가 잘못되었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누구보다 뚜렷하여 흔들리지 않고 싸움에 나선 이수인이지만, 그런 그조차 노동조합이라는 활동방식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흔한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노동권을 대충 넘어가는 의무교육을 받으며, 노동권 보호를 위한 현실적 견제 장치인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대놓고 역적 취급하거나 논외 영역으로 배제해버리는 주류 담론이 만연하고, 실제로 노조 조직율도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여지도 많은 직종에서 형편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그런 의욕 있고 무지한 주인공 덕분에, 독자들은 자연스레 그와 함께 하나씩 배워나가게 된다. 이수인은 구고신과 만나면서, 원칙적으로 이쪽이 누릴 수 있어야하는 권리를 지키는 싸움에는 이쪽이 옳다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이 필요함을 깨우치게 된다. 싸울 수 있는 힘은 조직화한 머릿수와 연결되며, 노조에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논리의 정합성을 너머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합법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영역과 형식은 생각보다 훨씬 비좁고, 그 안에서도 사측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판을 비트는 것에 다시금 맞서야 한다.

하지만 백전노장 구고신의 가르침은 무슨 무림비급이 아니다. 얼마나 싸움이 어려운지, 그 어려움 속에서도 어떻게 버티는지 경험을 나누어주고, 싸움을 그만 두고 싶은 순간에 싸움을 그만두지 않은 롤모델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에 가깝다. 완벽한 필살기를 사사받아 승리를 얻는 통쾌한 과정이 되기에는 너무 복합적인 싸움이기 때문이다. 푸르미 노동자들이 맞서야 하는 것은 단순히 뿔 달린 악마 같은 사측이 아니라, 온갖 어긋난 사회적 압력과 부조리한 노동 관행, 관련 정보의 부족, 법제도의 허점, 연대를 가로막는 각자의 현실과 부분적으로만 합리적인 이기심 등이다. 작품에 심심할 때마다 한 번씩 등장하는 명언은 태반이 그런 현실을 직시하는 것들이다. “서있는 곳이 다르면 보이는 풍경이 달라진다”든지, “우리가 성공하면 모두가 성공하고, 실패하면 우리만 실패할 겁니다” 같은 대사가 그렇다.

하지만 그럼에도 적당히 비겁한 평범한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속성도 현실로서 충분히 감안하면서 결국 계속 싸우는 자세가 바로 이 작품의 미덕이다. 정당한 노동권을 누려야 하는 것은 일방적으로 핍박받는 희생양이어서도 아니고, 노동권을 위한 싸움에 나서는 것은 고결한 투사여서도 아니다. 그저 그런 구차한 사람들이 다들 누려야 하는 노동권이고, 그런 상태를 얻어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면 어쨌든 함께 할 수 있는 싸움이다. 부조리를 그대로 놔두고 그냥 덮어버리는 거대하고 구차한 현실 조건(‘좋은게 좋은거지’) 앞에서, 역시 잘못되었다며 굽히기를 거부해서 결국 표면을 뚫고 나오는 뾰족한 한 명의 송곳이 어쩌다가 하나씩 나타나주기만 해도 불씨는 꺼지지 않는다.

단순한 선악보다 훨씬 복합적 사정을 지니는, 그런데 역시 특정한 관계에서 가해와 피해의 역할, 순종과 저항의 위치에 서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다양한 얼굴상 속에 세밀하게 그려낸 표정이다. 프랑스인 점장 갸스통이 의욕적으로 처음 부임했을 때의 표정과 수년 후 해고 지시를 내리는 위치에 있는 표정의 차이에는, 그간 한국에서 겪은 기업현장 부조리의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구고신의 장난기 표정, 피로한 표정, 결연한 미소 사이에는 평탄치 않았는데도 계속 움직여 온 송곳 같은 사람의 인생이 스친다. 이수인의 늘 살짝 굳은 표정에는, 아직도 합리적 원리원칙의 옳음을 믿고자 하는 이의 고집이 있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요즘 웹툰 연재작으로서는 이례적인 흑백으로 그린 이유를 작업 편의 때문이라고 했지만, 마치 흑백 다큐 사진처럼 표정 안에 담긴 사연을 섬세하게 읽어보도록 하는 효과도 더해졌다.

[송곳]은 불쌍한 양민을 구하는 노동운동의 슈퍼히어로물이 아니다. 그렇다고 노동자 민중이 계급모순에 분연히 각성하여 노동해방을 쟁취하는 환상담도 아니다. 그저 노동관계로 맺어진 우리들의 일상적인 사회생활 안에서, 욕심과 상대성의 구차함이 가득한 제약 속에서, 조금 더 인간적 처우를 얻으려면 어떻게든 조직화하고 싸우는 것이 필요함을 알게 된 사람들을 하나하나 보여줄 따름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고, 이 작품이 수많은 이들의 필독서가 되어주기를 희망하게 되는 이유다.

송곳 1~3 세트 – 전3권
최규석 지음/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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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목소리의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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