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결난 타이밍에 맞추어,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개그물.
반복의 개그효과 – [전염됩니다]
김낙호(만화연구가)
웃음을 유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가장 고생스러운 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반복 기법이다. 무엇인가 황당하게 어긋나 있는데 그것이 마치 별 것 아닌 것처럼 당연하게 던져져 있는 상황을 처음 제시하면,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당혹해한다. 아니 “뻘쭘해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그런데 비슷한 상황을 다시 제시하고, 또 다시 제시하면, 사람들은 두 가지로 갈라진다. 한쪽은 이상해하면서 그만 읽는다. 그런데 다른 한쪽은, 계속 읽으면서 그 안에서 유머를 발견해내고는, 그 집요한 뻘쭘한 유머에 전염되어버린다. 주변에서 “그게 도대체 웃기냐?”라는 핀잔을 듣는다한들,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최근 한국어판이 완간된 [전염됩니다](요시다 센샤 / 세미콜론)은 의미심장할 듯 하면서도 무의미하며 앞뒤도 기승전결도 맞지 않는 초월적 개그, 즉 일본에서 ‘슈르’라고 이름 붙은 유머코드의 선구자격인 작품이다. 일본에서 89년부터 94년까지 잡지 연재를 거치며, 이해를 무시하는 부조리를 유머로 승화시키는 접근법을 널리 보급해냈다. 한국에서 소위 ‘병맛’이라고 호칭된 작품들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듯 하면서도, ‘병맛’ 만화가 흔히 극적 드라마 구조를 세우다가 깨버리는 방식을 취하는 것에 비해서 이 작품은 시도 때도 없이 김이 빠진다. 그저 지하철역에서 어떤 괴상한 존재가 뒤에서 계속 바라본다든지 하는 식이다. 시작도 없고, 결말도 없고, 중간 무언가를 보여주는데 그 안에서 극적 긴장이 반드시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극적 구조를 적극적으로 배격하고 파괴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계속 읽다보면, 특유의 개그코드에 전염되고 만다.
그림체는 가볍고 낙서체에 가깝다. 그림이나 연출의 화려함으로 기대감의 격차를 불러서 유머를 만들기보다는, 헐렁한 느낌의 이야기를 헐렁한 그림 속에 표현한다. 수달(으로 추정되는) 아저씨를 세밀한 극화체로 그리면 아무래도 그 캐릭터의 온갖 속성이 궁금해질 수 있겠으니 당연한 선택이다. 그렇게 해서 비극적 부조리가 될 수도 있는 상황들조차, 그냥 개그가 되어준다.
하지만 좀 더 확실한 비결은 어긋난 상황과 반복에 있다. 작품 세계 안에서는 자연스러운 상황이라는 설정을 한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 그 안에 묘한 위화감이 있다. 우선 어긋난 상황을 보자면, 많은 경우에 대단히 이상한 방향으로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가 있다. 직립 보행 수달도, 귀여운 갓파도, 딱정벌레 사이토씨도, 말이 없는 임금님도 있다. 웃음을 준다기보다는 기이하게 부자연스러운 이들인데, 그 세계 안에는 그냥 존재한다. 모습이든, 행동방식이든, 하나의 정해진 패턴을 계속 따른다. 이들은 어떤 무척 엉뚱하고도 이치에 어긋나있는 상황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게 된다. 혹은 동음이의어의 혼선도 있다. 오로지 같은 말이기 때문에 맥락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방식으로 행동을 하거나, 전혀 다른 상황인데도 억지로 같은 언어의 논리를 적응해서 다시금 맥락에서 벗어나버리기도 한다. 별 생각 없이 늘 쓰는 말인데, 문자 그대로 따져보면 이상한 말이라서 난감한데도 그냥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강행해버리는 행동도 있다. 그리고 종종 두 가지가 결합해서, 이상한 캐릭터가 이상한 동음이의 혼선을 벌이기도 한다. 개성과 어긋난 맥락이 유기적으로 섞이며, 웃을 타이밍을 자꾸 놓치게 될 정도로 특이한 감성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런 이상한 4칸 만화가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여러 에피소드들을 책으로 계속 읽어나갈 때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비슷한 행동이 반복되면서, 어이 없음과 웃음 사이의 엇박자에 독자가 알아서 적응을 해버리게 된다. 전염된다기보다는 마치 중독이나 최면이 되듯이, 계속 엇박자의 리듬감이 흘러들어온다. 아무 생각 없는 것 같지만, 언어유희로 각종 황당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들어갔을 노력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우연히라도 황당하고 허무한 것이 아니라 이치에 맞는 상황이 될까봐 열심히 피해간 흔적 또한 역력하게 눈에 띈다. 그렇게 해서 [전염됩니다]는 그저 하나의 트렌드에 대한 원조라서가 아니라, 정말로 그 유머 코드를 대단히 성실하고 집요하게 구축했기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매력을 발휘한다.
이 작품이 지니는 유머는, 단지 난해한 코드까지 즐기는 소수의 개그광들을 위한 것에 머물지 않았다. 마치 미국에서 저예산 인디영화 [나폴레옹 다이나마이트]가 시끄러운 난장판과 황당한 장난 위주의 대중서사물의 트렌드에 느리고 뻘쭘한 개그코드를 새로이 주류로 부각시켰듯, [전염됩니다] 또한 일본에서 광고, TV코미디, 만화 등 다방면에서 하나의 새로운 모델이 되어주었다. 나아가 문예춘추 만화상으로 작품적 완성도도 인정받고, 캐릭터 상품조차 인기리에 확산되었다. 다리 달린 아저씨 수달인지 무엇인지 모를 것이 왜 지금도 메신저 스티커로 절찬리에 판매되는지, 생각해보면 이런 현상조차 뭔가 당혹스러운 유머 같은 측면이 있을 정도다.
상황도 캐릭터들도 맥락 없이 황당한데, 그냥 거기 있다. 왜 수달이 하와이에 집착하는지, 알 길은 없다. 왜 입시준비를 하는 재수생이 딱정벌레인지, 상징적 의미도 전복적 투르기도 없다. 야쿠자 아저씨가 교육방송을 즐겨보는 것에는 어떤 성장배경도 없다. 다만 공통점이라면, 모두들 꽤 소심해서, 자잘한 것에 꽂혀서 끝까지 집착하는 식이다. 그저 그 설정이 던져져있고, 충분히 반복하면 독자들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납득할 따름이다. 모든 것은 4칸 안에서 경쾌한 페이스로 한 토막 지나가고, 다른 이야기가 나오고, 또 그 존재들의 이야기가 재등장한다. 모두들 자신들이 원래 하던 것을 끝없이 집요하게 반복하며 밀고 나가고, 작가도 그들의 개그를 끝없이 집요하게 반복한다.
최대한 거두절미해버리고 중간 과정에 바로 돌입하는 이야기, 언어의 맥락이 거의 의도적으로 철저하게 파괴되고 오해되는데도 어떻게든 추진되는 것, 허망함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인 쳇바퀴, 그 모든 이상한 것에 그냥 올라타서 흘러가는 캐릭터들이 있다. 이런 요소들이 합쳐지고 쌓이면서 개그가 된다. 그런 매력을 본격적으로 설계해준 만화가 바로 [전염됩니다]인 것이다. 어떤 면에서, 황당함을 최대한 열심히 추진한 이런 것들이야말로 현대사회 속 우리의 모습을 마치 살짝 구부러진 거울상처럼 비틀어 보여주는 것이기에 역설적으로 공감대를 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사회 생활을 하는 것은 늘 더 큰 인류 역사든 사회관계든 뭐든 중간에 돌입하는 것이고, 맥락이 망가져도 성찰 없이 달려드는 것이 일상이며, 그야말로 반복 그 자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세상에 올라탄 우습고도 황당한 개성적 존재들이다. 아마도, 직립보행 수달 아저씨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전염됩니다. 5 요시다 센샤 지음, 오주원 옮김/세미콜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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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죽어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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