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개그만화 – 세인트 영 멘 [기획회의 322호]

!@#… capcold 만화대상 ‘염장의 전당’ 부문(국내 미출간 작품)에 선정한 것이 무려 2008년의 일인데 올해 나오기 시작하니 밀린 분량 주루룩 출간중인 작품.

 

성인(聖人)개그만화 – [세인트 영 멘]

김낙호(만화연구가)

믿음의 체계인 종교는, 종종 그 종교를 성립시킨 핵심적 인물로 상징적 압축이 이뤄진다. 그렇기에 어떤 믿음 체계에 대한 칭찬이든 비판이든 진지한 공격이든 풍자든, 그 인물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흔하다. 물론 그 믿음 체계를 자기 생활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이들에게는 그런 것이 항상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법이 없다. 그렇기에 무슬림교를 창시한 무함마드를 풍자만화에서 웃음소재로 삼아 큰 소동이 벌어졌던 몇 년 전 한 덴마크 신문 같이 종교적으로 민감한 부분이 폭발하는 사례들은 널리고 널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대중문화에서 종교 성인의 캐릭터화가 자주 이뤄지는 것은, 여러모로 재미있기 때문이다. 진중한 메시지의 현대적 전달이든, 현존하는 믿음 체계들에 대한 진지한 성찰으로서든, 혹은 근엄함에 대한 전복에서 나오는 유머효과로서든 말이다.

종교 성인 캐릭터화로 치자면 늘 한 손가락에 꼽힐 대표적 인물이라면 불교의 싯다르타 부처와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릴 수 있다. 기록으로 남은 극적인 삶의 과정이 주는 재미와 영감은 물론이고, 그들을 매개로 만들어진 종교가 현실 사회에서 차지하는 몫도 크다(즉 많은 이들이 그 믿음 체계를 채택하고 살아간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두 사람은 꽤 닮아있다. 둘 다 동시대 주류 종교가 지니던 경직된 규율을 깨고, 박애적 사랑을 전면에 내세운 새로운 교리를 창시하며 활동했다. 편안하고 인본적 선함을 실천하고 널리 퍼트리며, 이능력을 발현하기는 하지만 권위적 정복이 아니라 각종 돕는 행위로 주변을 매료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정작 이후 이들이 남긴 교리가 확산되고 세속적 조직화되며 왜곡된 경우가 적지 않지만, 그 시작에 있는 두 캐릭터들만큼은 뭐랄까, ‘러브 앤 피스’다. 어떤 의미에서 엄혹한 고대 사회보다는 현대에 더 어울릴 법하고, 무엇보다 둘은 서로 죽이 잘 맞을 것 같다.

[세인트 영 멘](나카무라 히카루 / 5권 발매중)의 주인공은 바로 예수와 부처다. 화제는 일찌감치 모았으나, 종교 성인들을 대놓고 코미디물의 주인공으로 삼는 것의 종교적 민감함에 출판사들이 지레 조심스러워하다가 몇 년만에 결국 출간되었다고 알려진 작품이다. 그런데 정작 실제 작품은 딱히 민감할 구석이 없는 즐거운 이야기다. 기본 설정은 세기말도 무사히 넘기고 오랜만에 지상으로 휴가를 나온 청년 부처와 예수가, 현대 일본에서 평범하게 느긋한 나날을 즐긴다는 것이다. 부귀영화와 거리가 먼 두 성인들의 속성상, 아무래도 호화 해변 리조트가 아니라 토쿄 근교의 방세 저렴한 곳에서 룸메이트로 지내며 적당히 평범한 일본 청년들의 생활을 누린다. 다만 인간 세상의 경험이 가끔 서툴러서 소동이 벌어지기도 하고, 도저히 누를 수 없는 성스러움 때문에 작은 기적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성스럽지만 인간이기도 하기에, 그간 너무나 즐거움에 특화된 인간문명 속에서 나름의 취향과 소소한 욕심도 슬쩍 부려본다. 그렇게 별반 큰 일이 벌어지지 않는(최강의 성인들이 있으니 오히려 큰 일이 일어나면 난감하다) 느긋하고도 발견으로 가득한 나날이 이어진다.

[세인트 영 멘]의 기반에 깔린 개그 코드는 ‘어항을 나온 금붕어’ 즉 자신의 세계에서는 멀쩡한 누군가가 갑자기 낯선 (하지만 독자들에게는 익숙한) 세상에 떨어져서 부적응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들이 워낙 출중한 존재들이기에, 그들의 곤혹감보다는 주변인들의 곤혹감이라든지, 성인들이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 재미의 초점을 맞춘다. 그 발견은 놀이공원 방문이든, 만화방에서 부처의 일대기를 그린 만화를 읽는 것이든, PC방에서 롤플레잉게임을 하는 것이든 다양하면서도 지극히 현대 젊은이의 일상의 차원이다. 특히 그 과정에서 종교적 기적들이 지극히 소소하고 세속적인 차원에서 발현되는 패러디 감각이 일품이다. 공중목욕탕에서 기분이 들떴더니 목욕물이 포도주로 변해버린다든지, 부처가 곤경에 처하자 온갖 동물들이 어디선가 달려온다든지 하는 식이다. 그런 맥락에서 그들이 체화하는 두 종교의 주요 내용들도 패러디된다. 성서의 요한계시록은 현대사회의 예수가 설명하는 바로는 세상의 미래에 대한 영화 스포일러 같은 것으로 설명된다. 당연히 두 성인과 관련된 주변인물들도 등장하게 되는데, 다들 종교적 근엄함보다는 일상적 인간성에 가깝다. 예수를 과보호하는 보호자 같은 느낌으로 등장하는 4대천사들, 부처의 1호 팬인 아난다와 숙적이지만 나름 친한 마왕 마라 등 천계의 여러 인물들이 오고 간다.

하지만 이 작품의 매력이 가장 빛나는 지점은 두 성인의 성격 묘사다. 영화배우 조니 뎁을 닮았다는 말이 은근히 마음에 든 예수와, 유치원생들이 이마의 점을 눌러보는 것에 고민하는 부처다. 이들은 신성하기에 기본적으로 긍정적이고 선하면서도, 각자의 미묘하게 현대적인 특징이 뚜렷하다. 예수는 호기심 많게 이 일 저 일 벌이는 낙천적 성격이며, 블로깅을 하고 가젯류의 새 물건에 은근히 관심이 많다. 부처는 뭔가를 말리는 성격이고, 다소 신중하다 못해 소심한 면이 있으며, 가사 부문에 관심이 많다. 둘은 일본식 만담 콤비의 보케(바보 같은 상황을 초래하는 쪽)와 츳코미(그것을 지적하여 웃음을 유발하는 쪽) 같은 역할이기도 하며, 서로의 성격을 훌륭하게 보충해준다. 엉뚱하게 발현된 기적 때문이든 낯선 상황 때문이든 어떤 소소한 소동에서 벌어지는 곤란함 속에서도 둘은 결국 헐렁하지만 즐겁게 현세의 생활을 누린다. 이들은 거대 종교조직들에서 종종 동원하는 멀고 먼 상징적 존재가 아니라, 사랑과 평화를 이야기하고 다닌 어떤 긍적적 정신 상태의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세인트 영 맨]은 진지한 종교적 성찰이 아니다. 예수와 부처의 모습은 현실 종교조직에 대한 비판적 풍자라기보다는, 우리의 일상을 살짝 낯설게 돌아보기 위한 이방인 캐릭터들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각종 허울을 거두고 일상적 가치들에 대한 예찬을 이뤄낸다. 평범한 순간들에서도 종교적으로 찬탄할만한 즐거움이 만들어진다. 테즈카 오사무의 부처 일대기 만화 [붓다]에 감동하여 몰입하는 실제 부처의 모습에서도, 크리스마스가 인간 세상에서는 자기 생일로 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크리스마스 기분에 들뜬 예수의 모습에서도 손쉽게 드러난다. 그렇기에 각종 종교 패러디는 따로 떼어 놓지 않고 작품 속에서 읽을 때는 신성모독이 아니라 악의 없는 현대풍 개그로 받아들여진다. 두 성인들이 그들의 가장 본질적인 장점인 사랑과 평화 정서를 마음껏 내보이는 방식으로 말이다.

워낙 뚜렷한 컨셉의 코미디인 만큼 초장기간 연재가 되면 결국 동어반복으로 망가질 가능성도 다분하지만(특히 일본의 주류 잡지 연재방식에서는 인기작이 그런 굴레에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정도까지 종교 모독과 거리가 먼 낙천적 정서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세인트 영멘 1
나카무라 히카루 지음/시리얼(학산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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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무림수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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