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pcold의 글을 읽어온 수많은(핫핫) 분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그 중 일부는 심지어 물어보기까지 한 삶과 우주와 모든 것에 대한 궁극의 호기심, 그것은 바로… “도대체 !@#… 라는 그 말머리는 무슨 의미인가”. 이제 드디어 그 질문에 대한 모범답안이 주어진다. 에에, ’42’는 아님.
!@#… capcold의 !@# 말머리의 기원은 십수년 전, “486이면 충분하지, 펜티엄 같은 고가 신제품에 돈 쓸 필요가 있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9600bps에 행복해하던 시절, 과학생회의 출판물을 담당하는 편집부장의 입장이었다. 애증의 툴 아래아한글 2.1을 2.5로 업그레이드하고, 포토샵보다 하늘소가 친하며, 일반PC에서 단 편집과 글 속 사진 첨부를 구사하는 마법을 부려주기를 강요받던 시대.
그 때 만든 학과 신문인 ‘심동불이’는 여러모로 재미있는 시도였는데, 당대의 관행이었던 무거운(관점에 따라서, “운동권적인”) 사회의식을 버리지 않고도 학과의 일상사나 여러 관심사 등을 유머감각과 함께 버무리는 방식을 추구했다(처음 그런 파격을 시도하여 길을 열어준 전임편집부장 형의 역할이 지대하다). 그런데 그 중 학과 소식 코너가 있었는데, 한 문단 내외의 학과 관련 소식들을 5-6꼭지 모아서 한 페이지에 3단 편집으로 넣는 것. 각 꼭지는 학과 소식을 전하되 그에 대한 날카롭고 유머러스한 촌평을 압축해야 하는 나름 고난도 작문이었다. 그리고 각 독립된 꼭지들이 함께 배치되어 일종의 모자이크처럼 현 상황을 그려내줘야 하고. 그래서 그냥 하나로 묶기도, 각각 완전히 떨어진 것으로 간주할 수도 없다는 것을 표시해야 하는 상황. 그래서 “개별적이지만 연관된” 각 꼭지를 시작하는 일종의 기호가 필요했다.
하지만 적절한 불릿 표시를 넣기가, 여간 번잡한 것이 아니었다. 문자표 매번 새로 띄워서 찾기도 귀찮은데다 그나마 안예쁘고. 예쁜 불릿을 직접 그려서 저장해놓고 자유롭게 입출력할 정도로 당시 편집툴의 기능이 뛰어나지도 않았고. 굳이 하려면 조각그림을 제작하고, 매번 그것을 편집 파일 속에 임베드를 해야했다. 그런데 도스에서 단편집할 때 얼마나 미묘하게 버그로 전체 포맷이 어긋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거 하나 넣다가 잘못되면 밤 샌다. 그래서 키보드 상에서 바로 찍어넣을 수 있는 방식의 꼭지 시작 식별자를 궁리하던 중… 그냥 귀찮아서 쉬프트 올리고 123. 어라, 이거 보기보다 쓸만하네. 글의 일부라기보다 그냥 불릿같고, 그 자체로 별 의미가 없으면서 주목 효과가 있고.
!@#… 그러다가 생각해보니, 그것이 capcold식의 논지전개와 꽤 잘 어울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도 여러 토픽들로 이야기가 튀고, 뜬금없는 사안을 꺼내와서 접목시키고, 그리고 얼추 마지막 즈음 가면서 펼쳐놓은 것들을 하나로 취합해서 독자들의 뒤통수 or 앞이마를 때리고 말이다. 즉 필요했던 것은 완전히 새 주제를 새로 쓰는 것 같은 단절감까지는 주지 않으면서도, 그냥 문단을 나누는 것 보다는 약간 더 ‘화제전환’의 효과가 강한 도구. 그래서 이후 PC통신에서 세상만사 단상 잡문들을 (나름대로 열심히) 연재할 때 !@# 표시를 써보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 온라인상에서 글쓸 때 완전히 하나의 습관으로 굳어버렸다. 그런데 말머리를 새로 발명하면서까지 글이 읽히는 방식을 번거롭게 ‘연출’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을 언젠가부터 깨달았다…;;; 덕분에 capcold만의 개성포인트가 되어버렸다.
!@#… 이게 먼저 정해진 다음, 몇가지 다른 상황들이 생기기는 했다. 예를 들어 이후에 인터넷 메일이 보급되면서 @부호에 새로운 보편적인 의미가 부여된 것. 그뿐이 아니라 .의 의미도 주소 식별자로 보편화되고. 즉 초기 자동화된 코드 속에서 오해를 낳기도 하여, #… 서버의 ! 씨의 메일주소로 인식되기도 했음(핫핫). 그 다음의 난관은 한참 뒤에, 웹이 디렉토리 등록의 시대를 통과하고 로봇 기반 검색엔진으로 넘어간 다음에 찾아왔다. 그걸 무슨 기계어 부호나 코드로 인식해서, 잘못 필터링처리 후 표시하는 것. 뭐 그래도 당시에는 여전히 글은 게시판 위주로 썼고(웹진과 PC통신), 당대의 한국 주류였던 이지보드나 제로보드 게시판들은 어차피 검색엔진들이 제대로 데이터수집을 해주지 못했으니 별 상관 안하기로 함. 한때는 혹시 그럼 !@#을 검색창에 입력하면 내가 쓴 글이 퍼져나간 모든 곳을 손쉽게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문장부호는 검색쿼리에서 무효처리. 아아 날아간 꿈이여. 그리고 또 난관은 블로그시대에 찾아왔다. !@#… 표시가 들어간 본문을 트랙백으로 날리면, 그걸 그냥 그대로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유니코드 번호로 변환해서 받아들이는 블로그엔진들이 여럿 있던(여전히 있는) 것. 덕분에 트랙백 들어간 본문의 앞에 이상한 숫자들이 붙어있어서, 무지하게 보기 흉하다. 트랙백 보낸 내가 다 미안해질 정도. 하지만 이런 숫한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그냥 원래 쓰던 대로 사용한 말머리다. 그런데 다음 난관은 바로… 트위터. 트위터에서는 @가 특정유저를 표시하는 인식표고, #는 특정 주제를 표시하는 인식표. 완전 자동처리된다. 게다가 140자라는 글자수 제한 속에서, 무려 6자를 시작부터 날려먹게 되고. 즉 원래대로 사용하기가 무척 곤란한 경우다. 뭐 결국, 트위터에서는 그렇게 못쓸 것이라고 결론.
!@#… 대충 이런 사연이다. 말머리의 기능은, 분절 효과가 강하되 완전히 새 주제로 들어가지 않는 정도의 화제 전환 연출. 하필 이모습을 선택한 계기는 기술적 이유. 그런데 계속 하고 있다보니 개성뽀인뜨. 별 것도 아닌데 약간만 세부적으로 기억을 들어가면 꽤 온라인 문화사의 단편들이 촘촘히 들어가 있다(핫핫). 여튼 여러 사람들이 간혹 물어봤지만, 그냥 리플로 달기에는 약간 길고 따로 포스팅하기에는 또 별 것 아닌 사연, 결국 이렇게 포스팅으로 남김.
PS. 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들은 어떤 오랜 글습관을 가지고 계신지? 릴레이는 아니지만, 혹 살짝 미소지으며 나름의 회고담을 하실 때에는 트랙백 하나씩 날려주시길. 짧으면 그냥 리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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