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부러 3권이 나올때까지 기다렸다가 리뷰를 올린 작품. 작품 전개상, 한 5권 정도면 완결되지 않을까(혹시나 인기 연재작의 무한 루프에 걸리지만 않는다면).
동성애 ‘코드’의 유쾌함 – 『그=그녀』
김낙호(만화연구가)
최근 크게 유행했던 TV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이 있다. 보통 한국의 소위 전문직 드라마들이 그렇듯 커피를 다루는 부분은 거의 곁가지고 결국 커피 다루는 사람들의 연애 이야기인데, 사실 방점은 ‘프린스’에 있다. 청소년 대상 주류 순정만화의 캐릭터 취향을 깊이 참고한 듯한 성격안배도 안배지만, 여자 주인공마저 신분위장하고 남장을 시켜서 프린스로 만들어버린 것. 그 결과 남녀주인공의 연애는 미묘한 동성애 코드를 품게 되고, 극의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진짜 매력은 오히려 여기서부터 시작되는데, 동성애 자체를 다루지 않고 동성애 코드를 일상사에 활용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동성애 자체를 놓고 보면 여전히 이 사회에서는 개인 간의 애정 문제, 취향문제가 아니라 인권문제의 영역에서 다루어져야만 할 것 같은 비장함이 있다. 혹은 동성애에 대한 무지한 편견으로 무장하여 유치한 희화화(‘남자/여자답지 못한 것’)로 가버리거나 말이다. 그런데 동성애 자체가 아니라 동성애로 읽힐 수 있으나 아닌 것을 다룸으로써, 비장함도 희화화도 살짝 비켜나가며 편견도 버리게 해주고 자연스러운 의외의 재미를 주는 것이다. 코드만을 취함으로써 오히려 희화화하지 않고도 성 역할과 가치관의 전복에서 나오는 건강한 웃음을 만끽할 수 있는 셈이다. 물론 사회적 상황이 있는 만큼 정면승부도 필요하지만, 이런 접근을 통해서 즐거움과 약간의 생각을 던져주는 미덕 또한 만만치 않다.
소재는 전혀 다르지만, 『그=그녀』(킨다이치 렌주로/학산문화사/제3권 발매중) 역시 동성애 자체가 아니라 동성애 코드를 통해서 큰 재미를 주는 멋진 작품이다. 원제는 ‘니코이치’인데, 서로 다른 두 대의 차량을 하나로 이어붙인 중고차량을 칭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질적인 결합이면서도 결국 하나라는 뜻 그대로, 이 작품의 주인공은 두 개의 성별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사연인 즉슨, 작품의 남자 주인공이 사랑하던 여자가 죽어서 홀로 두 살짜리 애를 키우는 입장이 된다. 그런데 애가 하도 엄마를 찾아서, 결국 생각해낸 것이 아들 앞에서 여장을 하고 엄마 흉내를 내는 것. 얄궂게도, 이 남자 워낙 소심하고 꼼꼼한 성격이라서, 십년 동안 계속 그렇게 하고 다녔다. 게다가 그 동안 열심히 수련을 해서 최고의 미모와 당당하면서도 우아한, 이상적인 여성상을 만들어버렸다. 그 결과 이제 꽤 큰 아들에게 존경받는 멋진 엄마가 되어있고, 온 동네에 동경하는 남자 여자들이 널렸다. 다른 가족들마저 그런 상황을 납득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두 가지 큰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하나는 아들에게 “나는 사실 네 아빠란다”라고 고백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필이면 남자로서의 자신 말고 여자로서의 자신을 사랑하는 짝사랑 회사동료에게 “제가 사실 그 남자에요”라고 고백해야 한다는 것. 이 엄청난 과제를 앞두고, 주인공은 고백의 타이밍을 못 잡아서 각종 상황에 자꾸 말려들어간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굉장히 끈적하고 칙칙한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실제로 『그=그녀』는 대단히 낙천적이고 유쾌한 분위기의 코미디다. 주인공의 곤혹스러운 상황들이 주는 재미는 가학적이라기보다 기발하고, 그의 우물쭈물함은 궁상스러운 느낌보다는 현실적인 소심함으로 다가온다. 동성애의 코드가 넘칠 듯 등장하지만 모두들 그저 확실한 사랑을 택하는 것 뿐이고, 무엇보다 다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장이든 동성애든 별반 혐오하지 않는다. 게다가 주인공의 여성버전은 화초 같은 현모양처가 아니라 당당한 싱글맘으로, 본 모습보다 훨씬 돋보이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전혀 동성애자도, 성정체성의 혼동을 겪으며 성전환을 동경하는 것도 아니다 – 여장에 대한 특별한 애착도 혐오도 없는 그야말로 좋은 부모로서 육아에 혼신을 바치는 청년일 뿐. 그런 상식의 소유자이기에, 이 작품은 기인열전도 인간극장도 아닌, 조금 비범한 생활에 처한 평범한 주인공이 펼치는 은근히 따듯하기까지 한 일급 개그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원래 이 작가의 출세작이었던 『정글은 언제나 하레와 구우』에서도 사실 그런 소심하고 세심한 남자주인공과 그가 매일매일 처하는 당혹스러운 상황 사이에서 나오는 멋진 개그를 선보인 적이 있었다. 하지만 환타지 요소와 부조리 캐릭터 개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전작, 그리고 방향의 갈피를 제대로 못 잡았던 몇몇 마이너한 후속작들을 뒤로 하고 현실세계의 성인 코미디를 만든 것이 바로 『그=그녀』다. 대범함은 부족하더라도, 현실적 고민들이라든지 사소한 오해와 그것을 수습 못하며 전전긍긍하는 주인공이 주는 아기자기한 재미는 확실하다. 게다가 이 작품은 삼각 사각 관계나 과장된 에로성이 없이도 얼마든지 팽팽한 신경전과 에로틱함을 포함한 성인의 연애를 그려내는 유연한 이야기 솜씨를 발휘하고 있다. 지나치게 과장된 변형이나 호들갑스러운 시각연출을 비교적 자제한, 전통 순정 극화를 연상시키는 차분한 연출력은 이러한 이야기 성향을 견고하게 받쳐주고 있다. 게다가 미묘한 선을 통해서 수많은 느낌의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에 강점을 지닌 만화 특유의 매력을 잘 살려서, 소심한 샐러리맨과 당당한 아름다움의 여성을 오가는 주인공의 격한 변화과정을 부담 없이 표현해내고 있다. 회사 동료 같은 몇몇 조연 캐릭터들이 실제 매력에 비해서 다소 낭비되고 있다거나 정작 연애 자체는 진심이 심심할 정도로 일직선으로 전달되고 있다는 이야기상의 소소한 아쉬움은 있지만, 근래 접한 러브코미디 계열의 작품 가운데 단연 수위를 차지한다.
출판 자체에 대해서는 좀 더 여러 아쉬움이 남는다. ‘맨얼굴’ 같은 일상용어를 놔두고 ‘생얼’ 같은 은어를 동원하는 식의 다소 안이한 발상의 번역이라든지 그다지 센스 있다고 보기는 힘든 한국어 제목은 그래도 전체적으로 볼 때는 무난한 번역 품질로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별다른 차별점 없이 그저 평범한 소년만화 코믹스 판형으로 출판함으로써 정작 이 작품을 재미있어할 20대 이상 남녀 성인층 일반들에게는 지극히 한정적으로만 소통이 되고 있는 모습은 절로 한숨이 나온다. 재미있는 작품의 기근보다, 붐을 만들어내려는 의지의 기근이랄까. 커피프린스를 열광적으로 소화해낼 수 있는 정도가 된 이 사회에서, 『그=그녀』 같은 작품이 그저 그렇게 묻힌다면 참 아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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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 Copyleft 2007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그=그녀 1 킨다이치 렌주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
나츠미와의 현재 관계에 만족해버리곤 하는 마코와 어떻게든 남자로서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마코토 사이에 벌어지는 격투 만담이야말로 이 작품의 개그를 완성시키는 꽃이 아닌가 싶습니다. 치킨 파티에서 느꼈던 약간의 아쉬움을 그대로 덮어버리는군요.
!@#… stirner님/ 왠만한 애정이 아니라면, 치킨파티는 아주 많은 아쉬움이 느껴져도 됩니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어떤 종류의 “윤리”나 기존의 가치관에 대한 거부감이 비교적 없이, 성에 관한 코드를 코드자체로 받아들이는 건, 하나의 일종의 문화랄까, 사고방식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프트 야오이 만화에서 주변 여성들이 게이들을 그렇게 크게 받아들이지 않듯이. 성과 사랑에 관해 조금 다른 윤리를 가진 일본이라는 나라의.
!@#… soju님/ 사실, 한국사회도 코드를 코드 자체로 즐길 줄 알게된 시대입니다. 스스로들 그걸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