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과 소망 사이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기획회의 070815]

!@#… 출판 전문 저널에 바로 이런 작품을 소개하는 재미가 바로 이런 연재를 계속하는 이유. 핫핫핫. 그러고 보니 재능과 현실의 차이를 다룬 다른 장르의 명작이 최근 한 편 있었으니, 바로 애니메이션 ‘라따뚜이’… (전혀 달라!!!)

재능과 소망 사이 –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

김낙호(만화연구가)

꿈을 꾸는 자는 아름답다고 한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겉으로 드러날 일은 좀처럼 드물어서, 오히려 많은 경우 꿈을 꾸는 것은 처절하고 고생스럽다. 그리고 그 고통이 있기에 결국 그 종착역에 도달했을 때에 더 나은 무언가가 있기를 바라며, 꿈이 그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런데, 고통도 고통 나름이다. 꿈을 추구하지만 운이 나쁘거나 재능이 없거나 해서 이루지 못하는 상태가 그나마 다행이다. 이루지 못하는 고통은 꿈을 향한 하나의 길 위에 있는 장애물일 따름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자신의 꿈과 정 반대의 영역에서 재능이 넘쳐날 때다. 단지 꿈을 향한 난관을 극복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까지 선택해야하기 때문이다.

왠지 거창하게 꿈 이야기를 꺼내면서 시작했지만,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와카스기 키미노리/서울문화사/1권 발매중)는 이런 삶의 묘미가 아무런 다른 설명 없이도 격렬한 개그감각 속에 녹아들어가 있는 오래간만의 순수하게 멋진 코미디 인간 드라마(?)다. 단순한 개그를 위한 개그로 순간의 웃음만을 쥐어짜거나 교훈 파트와 유머 파트를 물과 기름 나누듯 공식화하여 갈라내는 최근 작품들의 흔한 트렌드와는 달리, 말도 안 되는 처절한 상황 속에서도 꿈을 추구하며 괴로워하기에 독자들을 쉽게 감정 이입시키고 유머를 추구하는 작품인 셈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데쓰메탈 그룹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의 보컬, 클라우저 2세다. 밴드의 이름은 기괴한 분장과 퇴폐적 퍼포먼스로 70년대에 수많은 청소년들을 열광시키고 그들의 건전한 부모들을 경악시켰던 락그룹 키스KISS의 히트곡 ‘디트로이트 락 시티’에서 따왔을 터. 원래 데쓰메탈은 락음악이 추구해왔던 반항 정신이 하나의 이상한 극단으로 흘러들어간 경우인데, 사회에 대한 반항이 극에 이른 나머지 죽음, 신성모독, 흉악범죄 등을 칭송하며 음악 역시 소음에 가까운 절규로 일관하는 상당히 위악적인 음악 형식이다. 물론 무대 퍼포먼스 역시 짙은 악마적 컨셉을 위한 분장과 캐릭터 설정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하필이면 주인공 클라우저 2세는, 분장을 지우고 실제 생활인으로 돌아가면 문학소녀적 감수성을 감미로운 통기타 팝 멜로디에 얹어서 표현하는 ‘스웨디쉬팝’을 추구하는 네기시 소이치다. 데쓰메탈의 천부적 재능을 가진 주제에, 그의 오랜 소망은 재능과 정반대에 있는 감성팝인 것이다. 덕분에 클라우저 2세는 공연에서는 짙은 분장을 하고 부모를 강간하고 죽이자는 노래를 부르지만, 소이치로서의 평소 생활에서는 (분장을 지워서 아무도 못 알아본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부모님께 안부전화 드리는 전형적인 순한 성격의 상경 청년이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직접 만든 감미로운 팝을 들려주고 싶지만, 저녁 공연에서는 다시 짙은 분장을 하고 여자들은 암퇘지라고 절규하며 수많은 거친 팬들을 열광시키는 존재다. 메탈 재능은 점점 더 많은 이들을 매료시키고, 길거리에서 감성팝 노래를 읊을 때마다 재능 부족으로 사람들의 놀림감이 된다. 이 괴리는 본인에게는 물론 사실 굉장한 좌절과 비극감이겠지만, 거꾸로 말하자면 독자들에게는 최강의 코미디 소재다.

실제라면 물론 두 갈래 길 중 하나를 버리는 것이 사실 가장 이상적이다. 재능은 없지만 감성팝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재능을 따라서 메탈 외길을 갈 것인가. 하지만 꿈을 버리기에는 너무 소망이 강하고, 성공가도를 버리기에는 지나치게 재능이 많다. 심지어 우여곡절 끝에 기존의 데쓰메탈 제왕을 이기고 그에게 궁극의 데쓰메탈 기타를 물려받을 정도로 말이다. 주변은 물론, 자기 자신마저도 빠져들 정도의 무서운 재능이다. 데쓰메탈과 소심한 개인으로서의 생활 사이에 균열을 더욱 키워주는 것은 두 여자다. 나긋나긋한 취향 잡지의 기자를 하고 있는 좋아하는 여자와 궁극 메탈 스타로 키워내고자 하는 기획사 여사장이 그들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좀 더 강력한 재능을 일깨워주기 위하여 주인공의 일상생활마저도 호시탐탐 데쓰 메탈화하고 싶어서 안달이다. 건전한 생활을 지키며 팝을 하고 싶은 주인공의 눈물겨운 분투, 하지만 그 분투를 비웃기라도 하듯 넘쳐나는 메탈히어로로서의 카리스마는 호쾌한 웃음과 함께 묘한 페이소스를 남긴다.

두 생활 사이의 괴리라는 소재 하나만 놓고 보자면 단편 하나를 넘어서기 힘든 원-포인트 개그일텐데, 작품 전반을 흘러가면서도 조금도 유머의 끈이 느슨해지지 않는 것은 역시 주인공이 너무나 평범한 소시민적 감성의 젊은이이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실존적 고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걱정되어 부모님께 전화하면서도, 정작 필요할 때는 큰 고민 없이 곧바로 데쓰메탈 히어로 클라우저 2세로 변신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슈퍼히어로급 카리스마를 조금도 흐트러트리지 않고 시골에 사는 동생을 갱생시키기 위해서 낫질을 가르쳐주는 대목에 이르면 사람에 대한 낙관이 은근히 차고 넘치는 이 작품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거칠음을 마구 내뱉는 적당히 거친 그림체, 주인공의 완벽한 두 개의 자아 차이를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 과장된 만화 연출 특유의 매력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이 작품에 단순한 상황 개그 이상의 깊은 코미디적 울림이 갖추어진 것은 굳이 루저들을 위한 찬가를 표방하지 않고, 그렇다고 엄마친구아들을 통한 대리만족이나 염장도 아닌 어중간한 평범함의 승리다. 여차저차 꽤 인정받고 살지만 여전히 허무한 평범한 독자들을 공명시키는 정서다. 나름대로 자기 영역에서 인정도 받고 하지만 한 쪽에서는 내가 원한 건 뭔가 다른 것이었는데, 라고 외치는 평범한 사회인들이라면 받을 만한 어떤 울림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특이한 소재를 중심에 놓고 만들어진 이야기가 빠질 수 있는 소재고갈의 위험은 상존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다분히 일본 주류 만화식의) 전문적 디테일 중심의 만화라기보다는 각 음악장르의 대중적 이미지들을 중심으로 하는 것인 만큼, 장기 연재시의 한계는 앞으로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나중에 가서 걱정할 일이고, 당장 지금 첫 권을 펼쳐들고 재능과 꿈 사이에서 갈등하는 청년의 데쓰메탈 분투기에 빠져들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다.

======================================
(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Copyleft 2007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 1
와카스기 키미노리 지음/서울문화사(만화)

Trackback URL for this post: https://capcold.net/blog/968/trackback
9 thoughts on “재능과 소망 사이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기획회의 070815]

Comments


  1. 애니메이션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크라우저의 생생한 육성을 듣고 싶달까요!

  2. !@#… nomodem님/ 설마요…-_-; 그런데 한국에서 워낙 화제가 안되서, 적당히 기회를 잡기가 힘들군요. 이리저리 오가는 전문가와 일반 블로거들의 평가들이, 중요한 지점들을 오해하는 경우가 워낙 많아서 한마디 하고 싶기는 한데… (예를 들어, 링귀니를 재능이 없다고, 그리고 레미가 노력보다 그저 재능으로 모든 것을 거머쥔다고 보는 것 등등)

  3. 엄청 보고 싶어지는데 살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결정적으로 다음주는 개강이라는. 우워어어어어 (데쓰메탈 버전)

  4. 토시는 지금 마사야라는 인간한테 휘둘려 지내고 있으니 그게 정말로 ‘사랑의 노래’인지는 알 수가 없네요…;; 재결성 역시 지금까지 거부의 입장을 밝혀왔던 토시가 최근 재판에서 졌기 때문에 돈이 궁한 관계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고… 아무튼 한 때 팬이었던 사람으로서 좀 보기 그렇습니다…;;(결론은 God DMC!)

  5. 와우. 드라마로 만들어도 잘 먹힐 거 같은 소재의 만환데요. 누군가는 꼭 미니시리즈로 만들 거 같아요. (현재 KBS방영 중인 아이앰샘도 원작이 일본만화라고 하던데요)

  6. !@#… 진석/ 한번 제안서 올려보는 것도 좋겠지만… 너무 노래 가사들이 막나가서 과연 지상파를 탈 수 있을 것인가! (핫핫) 만든다면 주연은 박해일. 무조건 박해일.

    보라/ 알라딘us.

    stirner님/ 하기야 일설에는, 요시키가 맨날 성대 결절 생길만한 노래들만 작곡해서 토시가 싫어했다는 이야기가…;;; (출처불명, 믿거나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