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헤드 신보의 멋진 음모 – OK Rainbow

!@#… Radiohead 신보, 그냥 듣기에도 썩 좋은 앨범이지만 사실은 엄청난 음모론이 도사리고 있다고 한다. 어차피 누구나 다 두 눈에 쌍심지켜고 관심 기울이는 유통 혁신 측면 뭐 그런거 말고, 라디오헤드라는 그룹의 ‘작품’으로서 말이다. 링크된 기사에 자세한 설명이 나와있는데, 이 내용과 이런저런 소문들을 종합 요약하면 이런거다.

!@#… 우선, 이번 앨범 ‘In rainbows’의 상징은 ‘10‘이다. 정확히 1010일 출시. 날짜를 맞추기 위해서 음반 제작 스케쥴을 무시할 수 있는 mp3 디지털앨범부터 먼저 출시했다. 그리고 라디오헤드 그룹 블로그 Dead Air Space에서는 신보가 나오기 전에 9개의 포스트를 올렸고, 출시와 동시에 10번째 포스트를 올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1-8번 포스트는 이상한 암호다. 그리고 9번째 포스트에서 난데없이 “우리 10일 뒤에 앨범 출시할꺼다”라고 선언 (이전에는 그냥 뜬소문들만 있었고, 이게 첫 공식발표였음). 게다가 1-8번의 암호들은, 해독하면 모두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X’를 강조한다. X는 로마 숫자로 하면 바로 10.

10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있는 앨범. 그런데 그래서 뭐? 여기서 우리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 필요가 있다. 1997년, 라디오헤드가 90년대를 대표하는 THE 최고의 앨범들 가운데 하나를 만들어냈다. 제목은 ‘OK Computer’. 그런데 이 앨범, 원래 작업 당시의 제목은 이게 아니었다. 출시전 워킹타이틀은 바로 Ones And Zeroes. 그러다가 그 이진법 컨셉을 약간 부드럽게 다듬어서 결국은 오케이 컴퓨터로 출시된거고. 즉 OK Computer는 ‘01‘이다. ’01’을 컨셉으로 하는 앨범을 낸 뒤 10년만에, ’10’을 컨셉으로 하는 앨범을 만들었다. 그런데 01과 10이라는 두 뒤집어져 있는 숫자들을 더하면? 11이라는 대칭 모양을 지닌 숫자가 된다. 이 암호를 두 앨범에 직접 적용시키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위 포스트의 주인장이 두 앨범의 트랙들을 교차해서 섞어넣었다. 방법은 이렇게 한다:

1. Airbag (OK Computer)
2. 15 Step (In Rainbows)
3. Paranoid Android (OK Computer)
4. Bodysnatchers (In Rainbows)
5. Subterranean Homesick Alien (OK Computer)
6. Nude (In Rainbows)
7. Exit Music (For A Film) (OK Computer)
8. Weird Fishes/Arpeggi (In Rainbows)
9. Let Down (OK Computer)
10. All I Need (In Rainbows)
11. Karma Police (OK Computer)
12. Fitter Happier (OK Computer)*
13. Faust Arp (In Rainbows)
14. Electioneering (OK Computer)
15. Reckoner (In Rainbows)
16. Climbing Up The Walls (OK Computer)
17. House Of Cards (In Rainbows)
18. No Surprises (OK Computer)
19. Jigsaw Falling Into Place (In Rainbows)
20. Lucky (OK Computer)
21. Videotape (In Rainbows)
22. The Tourist (OK Computer)

* Fitter Happier는 원래부터 Karma Police와 사실상 연결되어 플레이되게 되어있고, 앨범 뒷표지의 트랙리스팅에도 그렇게 표시되어 있다. 게다가 앨범의 절반 반환점.
* Deezer.com으로 스트리밍 감상을 걸어놓으려 했지만, In Rainbows트랙으로 올라온 것이 앨범 녹음이 아니라 라이브 버전들이 많아서 그냥 포기. 게다가 중간 버퍼링 없이 주욱 연결해서 들어야 컨셉에 맞고. 그래도 꼭 듣고 싶으면 클릭.

!@#… 자, 이렇게 감상하고 나서 1시간 반 뒤에 다시 봅시다.

(1시간 반 경과)

!@#… 그러니까…

오오오오오오오!!!

크라우저와 네기시가 동시에 눈물을 흘릴, 숑가는 더블앨범이 되어버리고 말았다.두 앨범의 트랙들이 마치 거울처럼 서로를 반영하고 보충해준다. 가사에 던져지는 키워드들도 음색도 앨범 구성의 기승전결도 말이다.

!@#… 사실, 우연일수도 있다. 비록 밴드가 01과 10이라는 코드를 가지고 장난친 건 맞다 하더라도, 음악도 정말로 그런 시나리오에 맞췄다는 보장은 본인들이 고백하기 전에는 뭐 모르는 법. 아니 사실 고백하더라도 그게 진짜 원래 그랬는지 아니면 나중에 그냥 해본 말인지 알 수는 없다. 의도적으로 완벽하게 맞추었다기보다, 그저 원래부터 라디오헤드의 앨범들이 진행 구조가 얼추 엇비슷해서 그럴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우연이면 또 어떤가. 단지 구라 음모론이라고 해서, 핑크플로이드의 다크사이드오브더문을 틀고 오즈의 마법사를 보면서 느끼던 즐거운 시청각 경험이 어디론가 사라지겠는가. 서태지와 아이들 3집을 거꾸로 들으며 ‘피가 모자라‘를 찾던 괴상한 즐거움이 없어지겠나. 그렇듯 이번 라디오헤드 음모론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훌륭한 더블앨범을 조합해냈다는 것이고, 그것이 심히 듣기 좋다는 것 뿐. 10년의 간극을 메꾸는 훌륭한 음악적 다리다.

!@#… 이런 것이 ‘앨범‘이라는 청취 단위의 묘미라니까. 히트송예정곡과 떨거지트랙들을 임의 번들로 묶어서 대충 좌판에 펼쳐놓고는 앨범이랍시고 내놓는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일일테지만. 특수효과 액션장면만 아무렇게나 긁어 모아 놓으면 영화가 완성되나? 흐름이 있고 연출이 들어가야 영화지. 게다가 이 건은 앨범을 트랙단위로 해체해서 재조합하여 더욱 훌륭한 새 앨범을 만든다는 의미에서 웹2.0 스러운(사실 이 단어를 싫어하지만) 즐거움이기도 하다. 가수 명함을 달고 나오는 매니지먼트 회사의 인형들에게 바랄 수 있는 종류의 즐거움과는 차원이 다르다. 창작자들도 팬들도 같이 게임에 참여해서 가장 재미있는 즐길 거리를 같이 만들어나가는 모습 아닌가. 음악을 매개로 진짜로 ‘소통’을 하는 셈이다. 유통구조 혁신도 다 좋고 중요하지만, 그런 시도까지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근간은 바로 이런 창조적 소통 그 자체다. 라디오헤드의 사례를 그렇게 벤치마킹하고 싶다면,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정석이 아닐까.

!@#… 뭐 여튼 요새 이리저리 작업용량을 초과해서 정신머리 부족으로 블로깅이 뜸하고 토막글만 더욱 쌓여가는데, 이런 작은 생활 속의 즐거움이라도.

(추가) !@#… 그건 그렇고, 음반유통의 혁명이니 수많은 관심과 설레발들은 온라인 담론공간에서 잘만 오가더니, 정작 음악 자체에 대한 이야기나 음악을 ‘구매’하고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향유하는 것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가뭄에 콩 나듯. 참 쌉싸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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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thoughts on “라디오헤드 신보의 멋진 음모 – OK Rainb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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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Pingback by acoustic mind of summerz

    radio.blog update #12…

    이번에야 말로 정말 x 100 오랜만의 업데이트 같군요. 백만년만입니다.
    12번째 리스트입니다.

    클릭하면 팝업창이 뜨고 음악이 나옵니다.
    이번에는 제법 스페셜입니다. 바로 라디오헤드죠…

Comments


  1. 리퍼러로그에 잡혀서 들어와봤는데 이런 멋진글이..ㅠ.ㅠ
    정말 잘읽었어요.
    라됴헤드 이번앨범 완전 좋은데.. 오키컴이랑 번갈아가며 들어봐야겠어요 ^^

  2. 재미있군요. 저는 같은 시기에 spitz 의 새앨범에 빠졌는데, 여기 오니 캡선생님은 라디오헤드에 퐁당이시다..

  3. !@#… DynO님/ 가급적이면 비슷한 음질, 음량으로 맞춰놓으시고 들으실수록 좋습니다.

    nomodem님/ 사실 오케이컴퓨터는 그 자체로도 완전체에 가까웠죠. 뭐랄까, 그렌라간이 아크그렌라간이 된 것 정도.

  4. 하하 이거 웹사이트에서 봤던거같네요.
    좀 보다가 영문이라 읽기 귀찮아서 넘겼는데
    이런 엄청난 내용이 있었군요~ 재밌어요!ㅎㅎ

    ‘향유’에 대한 의견은 저도 공감해요. !!

  5. !@#… 딩크뇽님/ 사이트 놀라가보니 더 귀찮은 영어 리뷰들도 잔뜩 번역까지 해주셨던데요 뭘. 좋은 자료 많이 읽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