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가 있는 사회 [시사IN 304호]

!@#… 시사IN 문화섹션의 좀비 특집에 한 꼭지 들어간 글(게재본은 여기로. 보통 그렇듯 제목 등은 편집부의 선택에 맡겼음). 여기 꼽은 세 작품들이 한미일 좀비만화를 대표한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고,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사회가 망가진 후의 모습을 나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

 

좀비가 있는 사회

김낙호(만화연구가)

좀비물이 재미를 줄 수 있는 방법 중, 끝없이 몰려오는 괴물들을 퇴치하는 액션이나 육신을 뜯어먹어 훼손하는 피바다 같은 요소는 생각보다 쉽게 질린다. 특히 만화라는 양식에서는 더욱 그렇게 되기 쉬운데, 따로 특수효과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기에 그런 상황들을 최대한 과장되게 묘사해내기가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다른 방향의 재미, 즉 좀비의 사회성에 주목하는 만화들이 더 신선한 재미를 주곤 한다. 자극적 묘사에 집중하는 것이 매우 쉬운 양식임에도 그런 자극은 소재로만 삼고 좀 더 섬세한 이야기를 하는 것, 예를 들어 좀비가 있는 사회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 말이다.

좀비 재앙이 발생한 이후의 사회를 그려내는 작품은, 기본적으로 지금의 사회를 거울상 삼기 마련이다. [워킹데드](로버트 커크먼 글, 토니 무어, 찰리 애들라드 그림), [아이 앰 어 히어로](하나자와 켄고), [당신의 모든 순간](강풀) 이 세 작품은 각각 미국, 일본, 한국의 오늘날 현대 사회가 좀비 창궐로 인하여 무너진 이후의 상황을 그려낸다. 가장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사회적 근간이 파괴되었을 때, 어떤 나날들이 펼쳐지는가. 세 작품에서 인간 주인공들이 좀비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상을 비교하며 읽다보면, 각 문화권이 가치 있게 여기는 사회적 모습에 대한 묘한 우화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워킹데드]의 생존자들은 경찰 출신 주인공과 함께, 소중한 이들을 잃은 아픔을 극복해가며 어디론가 사람들의 마을을 다시 만들 개척 여정에 나선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마찰이 있고, 결국 인간에게 가장 잔인한 존재는 다른 인간이다. 마녀사냥, 계급차별 같은 폐단들이 날것 그대로 다시 발생한 좀비 재앙 후의 미국에서 펼쳐지는 일종의 서부극인 셈이다.

그런데 현대 일본을 무대로 하는 [아이 앰 어 히어로]는 사뭇 다르게, 사회질서의 무력함 자체에 집중한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덮친 좀비 재앙 앞에, 일본 정부는 축소 발표를 하고 생존자들은 일대혼란 속에 어리둥절 빠져나오기에 급급하다. 만화가이자 사격 취미가 있는 주인공 히로는 좀비 재앙으로 엉망이 된 세상에서도 각종 사회 규율에 얽매이며 소심한 갈등과 생존의 두려움을 함께 겪는다. 그 세상에서 생존률 높았던 이들은 역설적이게도 홀로 방에 틀어박혀 있었기에 사람들로부터 ‘감염’을 피할 수 있었던 방구석 폐인들이다.

그럼 한국을 무대로 하는 [당신의 모든 순간]은 어떨까. 한국드라마는 뭘 해도 연애로 귀결된다는 우스개를 연상시키듯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좀비가 있는 세상의 연애물인데, 두 주인공은 각각의 아파트 방에 고립되어 생존중이다. 또한 이곳의 좀비들은 육식괴물이나 전염병의 이미지라기보다는, 어느 할머니도 어느 퇴근하는 회사원도 어느 건설업 이민노동자도 각자 단 하나의 미련만 남아 그것만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원령들에 가깝다. 좀비 세상이 되어 더 극단화되었을 뿐,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서로 겉도는 사람들의 현대사회가 그대로 연장되어 있는 격이다. 셋 가운데 가장 덜 공포스러운 작품임에도, 가장 묵직한 뒷맛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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