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성잡지 ‘멘스헬스’의 기획코너에서, 통찰력, 창의력, 추진력, 분별력, 친화력이 돋보이는 만화를 추천해달라 하여 보낸 소개글.
1 통찰력/ 인간과 사회를 관통하는 번뜩이는 시선이 있는 만화
: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 (래리 고닉/ 궁리):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 (래리 고닉/ 궁리). 통찰력이란 무슨 비법을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 여러 사실을 냉정한 균형으로 비교하고 연결해보며 그 과정에서 지금에 필요한 교훈을 찾아내는 것이다.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의 총합이 바로 세계사이며, 다양한 문명권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의 현명함과 우둔함, 여러 문명권 사이의 건설적 충돌과 파괴적 협력을 꼼꼼하게 되짚어준다면 그야말로 통찰력 그 자체일 것이다. 래리 고닉이 만화로 그리는 세계사는 그 모든 것을 충족하며, 심지어 특유의 공정함을 유머로 승화시키기까지 한다.
2 창의력/ 사고를 확장하는 경이로운 표현력을 가진 만화
: 올라치코스 (조훈): 의외성이 있는데 절묘하게 말이 될 때, 흔히 창의적이라고 칭하게 된다. 유머를 주로 과장과 위악에 의존하는 것에 익숙할 때, 그저 한없이 실없는 상상을 어쨌든 구체적 그림으로 무심하게 던져놓는 경우라면, 확실히 그런 의미에서 창의적이다. 팬더의 얼룩, 얻어맞는 야구공의 얼굴, 뫼비우스의 띠 같은 무협물, 귀엽게 생겼는데 사실은 도시를 파괴중인 거대고양이까지, 웃기려고 기를 쓴다기보다는 정반대로 탈력을 유도하는 듯한 유머가 대단한 작품이다. 그 안에는 느슨해 보이지만 시각적 연상을 극대화하는 표현력, 은근히 드라마틱한 연출력이 고루 담겨 있기에 더욱 훌륭하다.
3 추진력/ 노력과 비전, 성공에 대한 새로운 영감이 될 만한 만화
: 들어는 보았나 질풍기획 (이현민): 노력하면 성공한다, 그런 것은 구시대의 판타지다. 성공할 수 있을지 어떨지 불확실한 것이 현실이고, 개개인의 노력과 게으름에 대한 잘못된 책임 지우기가 난무하는 세상이다. 직장에서 하루하루 일과가 액션 스펙타클이고, 사람들의 관계가 일일드라마와 시트콤을 오간다. 그렇다면 아예 광고회사의 일상 업무를 열혈 활극 개그 만화로 만들어버리면 어떨까. 질풍기획의 세계에서 성공은 노력만의 결과인 것도, 훌륭한 비전으로 도달하는 경지도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각자의 방식으로 열심히 싸우기도 굽히기도 하며 살아갈 때 오늘을 살아남고 내일을 생각할 수 있다.
4 분별력/ 윤리와 야만의 경계 앞에서 질문을 던지는 만화
: 송곳 (최규석): 문명화된 사회와 야만의 차이는 무슨 첨단기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수탈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잘 막아내고 있는가, 아니면 방치하거나 숫제 장려하고 있는가에서 나온다. 송곳은 기업의 부당한 주문에 맞서서 노조 활동을 하는 이야기로, 앞장서게 된 중간 관리직 이수인 과장과 노동권 보호를 전문으로 하는 운동가 구고신 원장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각자의 입장에서 행동을 선택하는 수많은 적당히 선하고 적당히 비열한 평범한 사람들이 넘친다. 필요한 것은 선악의 싸움이 아니라, 구차하든 어떻든 다들 누려야할 인간적 처우를 위한 제도 활용이고 현실적 조직화인 것이다.
5 친화력/ 이야기를 끌고 가는 빼어난 능력과 재치가 돋보이는 만화
: 삼국지 (고우영): 삼국지라는 역사 소설은 여러 성격의 캐릭터들이 펼치는 스케일 큰 충돌 덕에, 그 자체로 재미있다. 하지만 캐릭터들의 특성을 원본의 방향을 간직하되 더욱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에피소드들을 능란하게 배치하며 함의를 뽑아내고, 더불어 절묘한 풍자까지 풀어낸다면 더할 나위 없는 명작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고우영 삼국지는 삼국지를 펼쳐낸 모든 국내외 매체를 통틀어서 단연 최고 수준의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확신한다. 마치 판소리처럼 작가의 입담과 이야기 속 전개가 엮이며 이야기 보따리가 펼쳐지고, 그 안에서 풍부한 맥락과 극적 긴장, 그리고 무엇보다 유머가 만발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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