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다운 박력이 넘치는 평범한 연애 – 내 이야기!! [기획회의 352호]

!@#… 평범한 이야기이기에 비로소 재미있는 작품들을 소개하는 건 늘 생각보다 어렵다.

 

남자다운 박력이 넘치는 평범한 연애 – [내 이야기!!]

김낙호(만화연구가)

‘마초’라는 표현은 원래 남자다움이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용어가 탄생한 라틴유럽계 문화에서 남성들은 용기, 모험심, 강함, 주도적 성격 등을 지향해야 하고, 따라서 그런 가치를 묶어서 이야기하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남성이 지향해야할 특성과 남성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의 괴리에서, 말의 뉘앙스가 바뀌어갔다. 추구해야할 원래의 가치가 아니라, 자신이 그런 가치로 넘친다고 공격적으로 과시하는 자세를 가리키는 것으로 말이다. 나아가 남자는 이런 훌륭한 존재니까 결국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식의 성차별적 권위의식까지 확장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꼴불견을 벗어나, 정말 마음 편하고 후련하게 ‘남자답다’고 칭찬할만한 모습은 없을까.

[내 이야기!!](카와하라 카즈네 글, 아루코 그림/ 대원 / 2권 발매중)는 실로 남자다운 주인공의 활약을 그린 작품이다. 험한 얼굴을 지닌 거구의 고교 1년생 타케오는 남자다움의 표상 그 자체다. 그저 무식하게 강하고 용기가 넘친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남자답다는 표현 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일직선이다. 마음도 착하고, 우정을 의심하지 않고, 좋아하는 상대에게 모든 순정을 바치며 어설픈 어장관리 같은 것은 떠올리지도 않는다. 남을 지배하기 위해 싸움질을 일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주위를 잘 돌보는 착한 학생이다. 남성성을 억지로 과시하겠다며 위세를 떨거나 남존여비로 빠질 이유도 없이, 그냥 존재 자체에서 남성성이 물씬 풍긴다.

그런데 작품의 내용은 한 술 더 떠서, 이런 남자다운 주인공이, 그냥 평범한 연애를 하는 이야기다. 타케오의 우락부락함을 무서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딱 취향이라서 천생연분급 커플인 리코가 그 연애사를 함께 하는 여주인공이다. 여기에 잘 생기고 똑똑한 친구 마코토, 그의 누나 등 여러 주변인물들이 함께 일상을 펼쳐 보인다. 언젠가부터 소위 ‘치유계’라고 부르는, 충격적인 설정과 극적인 대반전의 롤러코스터보다는 작은 일상의 에피소드에서 훈훈함을 얻는 그런 류의 작품인 것이다. 그런데 가장 흔해빠진 달콤한 청소년 연애 과정의 모든 것이, 주인공의 의도하지 않고도 넘쳐나는 남자다움 덕분에 묘하게 폭소의 연속이 된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 한 해의 우수 만화를 뽑는 ‘이 만화가 대단해!’의 2013년 조사에서 여성만화 부문 1위를 차지했다. 하늘하늘한 꽃소년 주인공들이 넘치는 종류의 작품들이 지배적인 장르 취향 속에서, 산적 내지 고릴라 같은 주인공의 만화가 압도적인 호응을 얻은 것이다. 남자다움이 넘쳐나되, 그것이 (어떤 식으로 예의를 차리며 잘 해준다 한들) 여성을 객체 취급하는 식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순하고 착한 순정남이 넘치는 박력까지 갖췄을 따름이다. 이런 틀 위에서 연애 자체를 위기로 몰아넣는 흔한 전개는 사실상 배제되며, 우락부락한 타케오가 평범하게 누군가와 서로 좋아하고 발렌타인데이든 첫 유원지 나들이든 조금씩 연애 이벤트를 벌이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소재가 되어준다.

이쯤이면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이 작품의 기본 기조는 액션활극 같은 것이 아니라 코미디다. 외모와 마음씨의 괴리, 무엇을 해도 박력 있는 모습과 소소한 연애의 괴리, 그를 처음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과 친한 친구들의 시선 사이의 괴리 등이 적잖이 유머러스한 상황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크고 작은 순간마다 뛰어난 무력과 용기로 상황을 평정하는 실로 ‘장군감’인 타케오인 만큼, 그런 그가 그냥 소소하게 알콩달콩 연애를 진행하는 것과 대비효과가 뛰어난 것이다.

하나의 설정 안에서만 머물기에(일직선으로 충직하기에, 쉽게 변해서도 안 된다) 평면적인 주인공의 이야기를 쉽게 질리지 않게 해주는 것은, 마찬가지로 평면적이지만 서로 조화를 잘 이루는 여타 인물들의 배분이다. 예를 들자면 자그마하고 소녀스러운 모습의 여자친구인 야마토 리코가 우락부락한 타케오에게 보내는 순도 높은 애정도 걸작이다. 거대하고 험하게 생긴 남자이기에 좀 불편한 구석이 있지 않을까, 혹 다른 잘 생긴 조연들을 보며 갈등하지 않을까, 언제쯤 서로의 세계관이 어긋나서 결국 싸우게 될까 독자들의 고정관념을 한껏 자극한다. 그런데 그런 기대를 조금도 충족해주지 않고, 원래 그런 쪽이 취향이고 첫눈에 반했으며 확실하게 좋아한다. 타케오의 평생 친구인 마코토 역시 잘 생기고 냉혈한 인기인의 풍모를 지녔지만, 사실은 잘 생기고 속 깊게 친구를 챙기며 단지 꽤 많은 것을 귀찮아 할 따름이다. 이렇게 고정관념을 부르면서도 괴리가 있는 이들이 서로 가장 평범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 그 격차만큼의 재미가 만들어진다.

과장된 남자다움과 아기자기한 순정을 동시에 보여주는 쉽지 않은 과제를 충족시키는 것은 원숙한 연출력이다. 마치 야쿠자 행동대장이나 전설 속의 장수 같은 호쾌한 얼굴에, 애인과 친구를 바라보는 순박한 눈을 합쳐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전형적인 순정만화의 세계 같은 야리야리한 캐릭터들 사이에 홀로 장르를 잘못 찾아온 듯한 선 굵은 주인공이 함께 있는데, 순간순간의 상황 연출을 통해 그런 것이 단순한 어색함이 아니라 과장된 괴리감의 유머로 받아들여지도록 조율해낸다. 여성만화 특유의 내면 심상에 따른 화려한 내적 연출로 빠져들기보다는, 그런 것을 암시하면서도 기본적으로 상황 자체를 보여주는 쪽에 집중하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덕분에 ‘순정만화’를 읽는 방식에 낯설기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아예 회피하곤 하는 여러 (종종, 남성)독자들도 손쉽게 책장을 펼쳐들 수 있다.

물론 이야기가 아닌 캐릭터 중심이며 특히 기본 설정이 확고하게 핵심을 이루고 있는 작품인 이상, 유머가 반복적이 되어 결국 앞으로 연재가 지속되며 활력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몰락하는 작품들의 경우는 보통은 단순히 반복해서라기보다는 갈수록 수습 불가능하게 캐릭터들의 관계를 서로 엮어 넣어 꼬아버린다든지, 같은 설정 위에 점점 더 상황의 강도를 높여가다가 막장으로 흐르는 식이다. 반면 캐릭터들을 무리시키기보다는 평온한 거리를 유지시키고, 소재는 계속 새롭게 찾되 무리하게 강도를 높이려는 유혹을 거부하는 작품은 수 십년간 작품이 이어지고 사랑받으며 하나의 일상으로 자리를 잡는 경우도 있다. [내 이야기!!]가 만약 타케오의 남자다움을 지금의 적절한 박력 넘치는 과장을 넘어 희화화하는 수준으로 무리하게 끌어올리지 않고, 타케오와 리코의 서로에 대한 연심에 금이 가고 삼각 사각 관계로 번지게 방치하지 않는다면, 수년 후 이 작품은 아마 ‘일상’이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아니면 적절한 타이밍에 깔끔한 마무리를 짓고, 기억할만한 명작 러브코미디로 남거나 말이다.

내 이야기!! 1
카와하라 카즈네 지음, 아루코 그림/대원씨아이(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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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검둥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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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oughts on “남자다운 박력이 넘치는 평범한 연애 – 내 이야기!! [기획회의 352호]

Comments


  1. 아, 이 글을 보니깐…

    자우림의 김윤아씨가 불렀던… 이 만화책과 비슷한 류의 이야기가 나오는 노래 제목이 “격주 코믹스”였고, 왠지 그 노래가사가 생각나는군요.

    “무쇠팔 무쇠다리 천하무적 근육맨~”
    “가는 팔 가는 다리 청순가련 섹시걸~”
    “싸움이 끝난 후의 어느 화창한 토요일 저녁쯤에, 친구들이 모두모여 파티를 열어주면, 근육맨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입니다~”

    그 노래를 듣고선 김윤아 누님을 싸랑하게 되었다는…

    • !@#… 이 작품은 딱히 누가 납치해가는건 아니고 여러모로 그 노래에서 이야기하는 스테레오타입들을 뒤집는 쪽이지만. (핫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