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함의 승리 – 옆자리 세키군 [기획회의 349호]

!@#… 소소하지만 무슨 감성의 통찰 어쩌고 하는게 아니라, 정말 시시하다. 그런데 그게 매력이다.

 

시시함의 승리 – [옆자리 세키군]

김낙호(만화연구가)

독자를 확실하게 몰입시키는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 가운데 가장 흔한 두 가지 방향은, 강렬하게 격한 이야기를 추구하거나, 또는 독자의 현실을 읽어내는 듯한 확실한 공감을 주는 것이다. 물론 두 가지를 같이 이뤄내는 것이 성배 같은 것인데, 실질적으로는 하나를 추구하면 다른 쪽을 다소 감소시키는 트레이드오프 관계이기도 하다. 그런데 두 가지의 공통점은, 풀어내고 있는 이야기가 뭔가 중요하고 의미심장할 듯한 느낌을 유도한다는 점이다. 무언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독자가 자신의 시간과 인지력을 써가면서 빠져들 만한 이유가 생긴다. 반면 격한 드라마와 거리가 멀고, 현실적 공감을 하기에도 너무 황당한 내용이면 그저 시시해진다.

그런데 오늘날 대중서사물의 세계는 워낙 크고 넓어서, 그런 시시함에서조차 탁월한 재미를 이끌어내는 작품이 등장하곤 한다. [옆자리 세키군](모리시게 타쿠마 / AK북스 / 4권 발행중)이 바로 그런 사례다. 이 작품의 이야기가 얼마나 시시한가 하면, 거의 모든 에피소드들이 오로지 학교 교실에서 세키라는 남학생이 수업은 듣지 않고 몰래 다른 짓을 하는 내용 이다. 나름대로 모범생스러운 느낌으로 시작한 여주인공 루미가 그 광경을 훔쳐보며 자꾸 신경을 쓴다. 그냥 그것이 매 에피소드마다 반복되는 것이 전부다. 행여나 진지하게 받아들일 독자라도 있을까봐, 주역들의 이름들조차 말장난이다. 세키는 ‘자리’라는 뜻이라서 옆자리 세키군이라는 제목은 ‘옆자리 녀석’이라는 동음이의어고, 여주인공의 성과 이름을 합치면 ‘옆(요코)에서(이루) 본다(미)’는 의미다.

이렇게게까지 시시한데 도대체 어째서 재미있게 계속 읽게 되는 것인가. 한 가지 이유는 무의미한 장난을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리는 집요한 유희 정신에 있다. 세키군이 수업시간에 몰래 책상에서 하는 딴짓의 향연은, 수업시간에 해보고 싶어 했을 만한 혼자놀기 장난질의 꿈의 목록이다. 지우개로 도미노를 세우고 넘어트리는 것은 기본이다. 장난감 로봇들을 들고 와서 상황극 놀이를 하는 정도는 좀 더 대담하지만 쉽게 상상해볼만한 것들이다. 학교에가져와서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을법한 잡동사니로 새로운 즐거운 행위를 창조하는 방식에 있어서, 별의 별 아이디어들이 다 나온다. 이런 무궁무진한 소재를 보고 있으면, 수업시간에 다른 좀 더 재미있는 짓을 하고 싶었던 내 안의 무언가가 다시 깨어날 것만 같다.

그런데 수업 시간에 혼자 장난친다는 것 하나라면 공감대라는 방향을 추구한 셈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성의 공감과 다른 방향으로 가버리도록 하는 것이 바로 에스컬레이션의 과정이다. 즉 장난의 시작은 소소하게 현실적이지만, 전개 과정에서 도저히 피식 웃음을 터트리지 않고는 못 버틸 정도로 예술적인 과장의 경지로 폭주한다. 다음에는 과연 어디까지 해버릴까, 그런 생각이 은근한 스릴과 황당한 웃음을 주는 셈이다. 책상 위에 하는 작은 낙서로 시작했으나, 이쯤에서 멈추겠지 싶으면 거대한 장관을 자아내는 명화로 어느덧 발전한다. 책상을 쓸 수 없으면 책상 밑에서 발로 화살놀이를 하고, 중간에 걸릴 것 같아서 화살놀이가 더 이상 어려워지겠지 하면 더 탁월한 실력으로 한층 강력하게 놀이를 계속한다.

이 과정에서, 루미는 세키가 딴짓을 그만하고 수업을 좀 듣도록 만들고 싶어 한다. 기본적으로는 일본 전통 코미디 구조의 ‘보케’와 ‘츳코미, 즉 한 쪽이 바보 같은 짓을 하면 다른 쪽이 그런 행동에 태클을 걸며 지적을 해서 해소시키는 방식과 비슷하다. 그런데 선생님에게 고발해봤자 금방 치워서 걸리지 않으면 되고, 놀이판을 엎어버리는 나쁜 동급생이 되는 것은 좋지 않고, 그렇다고 그만 놀라고 이야기를 건네봤자 한번 자신의 놀이 세계에 몰입한 세키군은 듣지 않는다. 그렇기에 놀이가 계속될 수 없도록 넌지시 놀이상황을 사보타지하는데, 그런 험악한 도전을 세키군은 한층 절묘한 실력으로 극복해내며 계속 논다. 이런 에스컬레이션의 와중에서, 루미도 어느덧 놀이를 구경하는 것이 빠져든다.

그런데 아무리 도전과제 속 긴장이 일어나고 현란한 기술이 선보여도, 기본적으로 그런 것이 얼마나 시시한 내용인지에 대해서 조금도 숨기지 않는 것이 이 작품의 묘한 매력이 되어준다. 주사위 굴리기와 캐릭터카드 전략게임으로 문명을 구원하고 세계의 운명을 좌우할 것 같은 어떤 부류의 작품들과 달리, 아무리 책상에서 대단한 예술을 펼친다해도 매 에피소드는 수업시간에 딴짓을 했다는 기본 세계관을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수학여행을 간다든지 하는 것이 기본 공간에서 최대한 이탈한 것일 뿐이다).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철저하게 차단하여 이 모든 것이 시시한 이야기라는 점을 늘 명확하게 직면시키는 상태에서, 시시한 짓의 최대한 화려하고 강렬한 완성도를 향해 달려간다.

그런 목표를 위해서는, 캐릭터간 갈등 역시 강렬해서는 안 된다. 수업시간에 늘 한 쪽을 쳐다보는 남녀 주인공의 사이를 애정으로 오해하는 동급생이라든지 하는 몇몇 전형적인 구도는 있지만, 장난질을 관찰한다는 기본 에피소드 구조를 파괴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도록 통제된다. 그 일환으로 심지어 남자주인공 세키는 대사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말을 하지 못한다는 설정이 아니라, 그의 장난은 거의 자연현상이나 신의 섭리에 가깝고 루미는 그를 온갖 자신만의 상상을 하면서 지켜볼 따름이다. 초지일관 밝고 가벼운 정서 속에, 악역도 없고 거창한 내적 갈등도 없이 기본 상황이 장난의 소재만 바꿔가면서 반복된다. 그것을 표현해내는 시각적 스타일 역시, 적은 선의 덤덤한 그림체 속에서도 장난의 내용만큼은 매우 명확하게 알아볼 수 있는 세밀함을 자랑한다.

[옆자리 세키군]이 원-노트 개그, 즉 매번 같은 패턴의 유머 코드를 반복하는 작품이고, 각 에피소드별 페이지 분량이 짧음에도 불구하고, 단행본 4권의 분량이 전개되도록 모든 장기 연재 개그만화의 숙명과도 같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은 것은 이런 집중력 덕분이다(물론 앞으로 결국 빠져버리게 될지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애매하게 확대하지 않고, 차라리 처음부터 계속 이런 패턴이라고 박아놓고는, 모든 창작력을 더 맛깔스러운 딴짓을 고안해내는 것에 집중한다. 그것도 혼자 놀기로 이뤄져야한다는 상당한 제약조건이 걸려있는 상태에서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작품의 작가야말로 세키군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너도나도 엄청난 인간적 비극 또는 세계의 명운을 건 싸움 속에 허우적대거나, 독자 당신들도 이런 생활 속 통찰에 공감해야 한다는 듯 과도하게 가까운 척 하는 작품들이 잠시 피곤해질 때, 좀 가벼운 개그만화를 선택해서 펼쳐본다. 하지만 그렇게 펼친 개그물조차 너무 필사적으로 중요한 척 웃기려고 할 때, 시시하면서 재미있는 개그가 당길 수 있다. 바로 그런 때, [옆자리 세키군]이 적합하다.

옆자리 세키군 1
모리시게 타쿠마 지음, 정은서 옮김/에이케이(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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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설국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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