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이라 부르는 것의 층위에 관하여

!@#…오늘날 한국사회의 ‘인문학 담론’에 대한 약간의 단상.

이번 화두도, 애스크픔에서 주고받은 문답 때문에 나왔다.

Q.근데 강유원은 왜 강신주처럼 인기스타가 되지 못할까요?
A.요리의 품격과 건강을 챙겼으나 즐기려면 그만큼의 노력도 필요한 식당 vs 맥도날드.

원래도 불친절한 대답이 특기지만(하지만 대답하는 것 자체는 친절한거라고 굳게 믿고 있…), 이건 특히 불친절했다. 여기서 ‘노력’은 인문학에 대한 배경지식 뭐 그런 차원에 머무는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인문학이라는 개념을 적절하게 인식하는 것 자체부터시작하는 노력을 지칭하고 싶었다. 그 시작은 다른 어떤 화두라도 그렇듯, 하나의 말에 뭉뚱그려진 내용들의 층위 쪼개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최소한 4가지를 쪼갤 수 있다고 본다: (‘엄밀한 것’부터 ‘느슨한 연결고리’의 순서로 정렬)

A. 분과 학문으로서의 문/사/철.
: 역사적으로 제도화된 전문적 학문 분야라는 층위.
: 인간다움의 특징, ‘의미’의 추구. 사변적 접근. 규범의 지향.
: 지식 추구 방식의 발전 속에서 자연과학이 먼저, 그리고 근대에는 사회적 현상에 대한 토픽들이 사회과학으로 독립해 나갔음에도(인류학, 소통, 문화연구, 법학…) 불구하고 여전히 남는 적지 않은 영역을 다룸.
: 대표적인 3가지 영역이 문학(말의 탐구), 사학(인간 행적의 탐구), 철학(성찰, 믿음의 체계. 종교학도 편의상 이쪽으로 분류).

B. ‘교양’ 학문 일반 (liberal arts).
: “자유 시민이 사회생활을 위해 갖춰야 하는 교양 일반.” 분야의 한정보다는 깊이와 범용성에 대한 범주.
: 현대에는 수학, 심리학 등에 대한 지식도 당연히 포함.
: 즉 큰 틀의 이해를 목표로 하고, 분야 융합적 속성, 학문과 실용을 잇는 범용적 토픽 등도 일반적. 그러다보니 그냥 “자신만의 세부 전문 기술 말고도 나머지 폭넓은 세상 이해” 정도 뉘앙스로 쓰이기도 함. 그러다보니 과학의 반정립이라는 듯 편견이 박힌 ‘인문학’과 연결지어짐.

C. 사회적 규범으로서의 인본주의.
: 사회의 기계적 메커니즘 속에서 인간이 겪는 물질적, 정신적 불편에 대하여, 인간됨의 가치들을 우선시하는 방식으로 사회를 가꿔야 한다는 규범.
: 인문학의 원래 테마인 ‘인간 조건의 탐구’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자연스럽기에 ‘인문학’이라는 용어로 함께 퉁치지만, 실제로는 학문적 세밀함의 영역이라기보다는 당대의 사회적 합의(인권 등)로 움직이는 영역.

D. 물질적 가치에 대한 반정립 일체.
: 기계적 메커니즘의 갑갑함과 다른 무언가에 대한 추구가 가능하다는, 여집합을 통한 위안의 영역.
: 인본주의 규범이 구체성을 벗어나서 아예 모호한 표어로 변화한 층위. 인문학이라고 부를 이유가 딱히 없음에도, 힐링 등 버즈워드의 연속선상으로 그럴듯하게 올라탐.
: 사회적 규범으로서의 전략적 구체성을 벗어나기에, 자연스레 개인의 정신적 가치 추구로 평안 찾기에 초점.

!@#… 흔히 돌아다니는 이야기들에, 위 층위들을 적용해보자. ‘인문학의 위기‘론은 보통 A. ‘인문학의 창조적 가치‘는 B. ‘인문학에서 길을 찾자‘는 C. 물론 정작 ‘인문학 붐‘은 D.

벗뜨, 인문학을 내세우는 입장에서는 저 층위들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섞어 넣고 싶은 것이다. 동일한 용어로 대충 통칭되는 현실이, 나름의 이용 가치가 있는 셈.

– 직업적 문사철 전문 연구자들은 A에서 일하면서, 제발 투자 좀 해달라고 마케팅하고자 B,C,D로 이뤄지는 논의들도 틈만 나면 아전인수하는 분들도 나오곤 한다. 물론 D의 성공이 A의 상황 개선으로 이어질 개연성이란 희박하기 그지없지만.

– B는 한쪽으로는 종합 교양인을 양성하자는 고등교육의 패러다임이지만, 다른 쪽으로는 스티브 잡스의 경우처럼 좋은 마케팅 재료. C의 이미지를 슬쩍 끌어들여서 간지를 내는 것이다.

– C는 A를 바탕으로 해야할 것 같지만 대체로는 거사적 당대 분위기에 따라서 굴러가면서, 대중적 호응을 위해 D를 자극하기도 한다.

– D는 스타가 되기 좋은 층위. A의 권위를 경력으로 걸치고, B의 접근을 그럴듯하게 설파하며, C를 논하는 듯 분위기를 풍기되, 결국 D층위에서 놀 때 대중적 위안(어르기든 호통이든) 스타 탄생.

– 반면 C를 진지하게 논하며 A의 논의를 탄탄하게 바탕 삼고, 그걸 위해 B를 실천하되 D와 거리를 두는 매우 훌륭하고 바람직한 접근은… 당연히 인기가 없을 수 밖에. 말하는 것도 알아듣는 것도 노력이 많이 들고.

!@#…뭐, 나야 기본적으로 정명을 좋아하기에… A만 인문학으로 부르고, B는 교양학문 C는 인본적 규범 D는 그냥 힐링으로 불러 준다. 뒤섞음으로 얻는 장점보다, 논의가 이끌어내는 함의의 혼란으로 생기는 단점들이 훨씬 신경쓰여서. 그렇기에 이런 식으로 주장을 정리하곤 한다:

의미 층위들을 (의도적으로) 뒤섞어 장사하는 ‘인문학이 필수다’ 구호 대신, 그냥 이 정도 이야기가 인정받으면 좋겠다: “온갖 판단과 활동을 할 때, 인간과 인간 사회에 있어서 무엇이 바람직한 것인가 규범에 대한 성찰을 생략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이런 식으로 말하고 다니다보니 마이너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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