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페지기의 한계, 언론의 드립 개그에 필요한 것 [IZE / 160412]

!@#… 늘 그렇듯, 이게 어찌 c일보 하나만의 패턴일까. 게재본은 여기로.

 

조페지기의 한계, 언론의 드립 개그에 필요한 것

김낙호(미디어연구가)

흔히 언론의 규범은 민주적 공론 형성에 도움이 되도록 사회적 거울과 감시견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언론의 존재 양식 자체는 훨씬 간단하다. 바로 뉴스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널리 뿌려서 사업을 꾸려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뉴스를 접하기 위해 활용하는 매체 경로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면 그만큼 존재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기에, 오늘날 SNS에서 존재감을 뽐내기 위한 노력은 당연하다. 그런데 SNS는 사람들의 연결로 이뤄지는 것이라서, 언론 역시 회사의 공보처라기보다는 일종의 사람 흉내를 내며 ‘스타’가 되는 방식을 택한다. 그래서 작년까지 아사히신문코리아의 트위터 계정은 살아가는 사연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유명‘인’이 되었고, 경향신문 등 다수는 덧글을 다는 이들에게 답변하며 거리감을 좁혔다. 한편 조선일보는 오프라인에서의 영향력이나 디지털에 대한 상당한 투자에 걸맞지 않게 오랫동안 페이스북 공간을 그저 건조한 홍보자료 정도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한 순간에 완전히 새로운 전략을 선보인 것이다.

조페지기의 화제성은, 상당한 수위의 ‘드립’ 개그, 즉 즉흥적 느낌을 줄 정도로 뜬금없는데 살짝 절묘한 연결을 떠올리는 유머 멘트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시작했다. 그것도 가벼운 사회성 기사 뿐만 아니라 사실관계의 무게로 인해 근엄하게 다뤄지는 것에 익숙한 정치기사에도 적용한 것이다. 분당을 일으킬 수준의 야권 최고위 정치인들의 첨예한 갈등을 보도했던 “안철수, ‘문재인 대표의 사퇴 여부, 의미 없다’” 기사를 페이스북에 유포할 때, 멘트는 “헤헤 잘 알겠습니다”였다. 아예 두 겹으로 드립을 치기도 해서, 이명박 전대통령의 덕담 발언을 다룬 기사인 “MB ‘세상, 여전히 아름답고 열심히 살 가치가 있다’”의 경우는 먼저 통으로 노출되는 카드 구역에 “여러분 이거 다”라는 부제를 달았다. 그리고 페이스북 소개문에는 “온!갖! 음해에 시달렸습니다”라는 멘트를 붙였다. 게다가 더피알의 관련인터뷰에서 밝혀졌듯, 이것은 어떤 개인의 일탈적 재주가 아니라 공식 팀으로서의 전략이다. 이것은 SNS상에서 언론 기사, 특히 정치 기사들이 유통될 때 흔히 풍자와 조롱 같은 개인들의 감성이 입혀지며 더욱 힘을 얻으며 퍼져나가는 패턴과 비슷하다. 회사 계정이라 해도 사람의 모습을 흉내 내는 것이 필요한 SNS상에서 쓸 수 있는 접근법인 셈이다.

화제성과 함께, 이런 파격이 과연 독자층을 효과적으로 늘릴 수 있는지, 언론사가 지켜야할 품위의 금도를 깨버린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비판과 토론 또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젊은 독자들을 새로 얻어낼 수 있을 것인지 기존 독자들의 반감을 살 것인지는 어차피 해당 언론 기업이 주판을 튕겨보면 될 일이고, 이전에도 ‘인간 어뢰’나 ‘웹툰 폭력’등 자신들의 의제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품위를 내던지고 선정성을 극대화한 경력이 모자라지 않다. 물론 자신들을 1등신문이라고 브랜딩하는 곳인 만큼 언론 전반의 품격 수준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감을 자극할 수도 있지만, 얄궂게도 그 부분은 이미 충분히 바닥이다.

그보다 좀 더 면밀하게 따져야할 부분은, 드립 개그에 담기는 가치관이다. 총선 특집을 표방하며 특정 정치인들의 딸 외모를 비교 평가에 붙인 사례라든지, 유럽의 일부 가족들이 딸을 보호하겠다며 가슴을 훼손한다는 타블로이드 기사를 소개하며 “비뚤어진 모성애가 아닐까요” 운운한 사례는 전형적인 남성 우위 성차별적 편견을 유머로 은폐한다. 웃자고 하는 말에 진지하게 맞서면 안 된다는 문화적 허용치는, 웃음이라는 접근을 용납해야 한다는 것이지 그 이면의 역기능적 편견이나 악의를 용납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기에, 더 진지하고 정밀하게 비판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드립 개그를 입히는 소재의 범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성역 없는 풍자가 용납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말로 성역을 두지 않는 것인데, 가장 흔한 성역은 바로 살아있는 최고 권력, 그리고 자기 자신이다. 조페지기의 드립 대상에 과연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가 얼마나 다루어지고 있으며, 조선일보의 잘못된 보도 순간에 대한 자학이 얼마나 담겨 있는가. 달리 말해, 정치에 대한 드립을 통해서 권력을 되묻는가 아니면 선별된 도발로 평범한 정치혐오를 부추키는가. 자기 자신도 문제의 일부로 포함시키며 세상의 모순을 직시하게 하는가, 아니면 그냥 상석에 앉아 대충 훈계하는가.

물론 대부분 실제 개개인들도 “먹이를 주는 손”을 물기 어렵고, 자아성찰은 언감생심이다. 하지만 조페지기든 기타 어떤 언론사의 SNS 계정이든, 실제 사람이 아니라 사람 흉내를 낼 뿐인 언론인 만큼 언론으로서의 규범적 역할까지 요구하는 것이 당연하다. 언론의 품위는 고작 표현의 가볍고 무거움에서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시선과 성역 없는 냉엄함의 추구 수준에 달려 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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