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 좀 소중하게 취급합시다 [IZE / 161007]

!@#… 일전의 틀거리 설정 글의 논지를, 기사용으로 재처리. 게재본은 여기로.

팩트를 좀 소중하게 취급합시다

김낙호(미디어연구가)

“팩트 폭력”이라는 조어가 적잖이 유행하고 있다. 얼핏 보면 어떤 불편한 사실을 던짐으로서 상대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정도로 이해하기 쉽지만, 그보다는 더 역설적이다. 즉, 논쟁이라는 싸움판에서 반박 불가능한 사실관계를 가득 던져놓는 방식으로 누군가를 제압하는데, 그 모습이 거의 폭력적일 정도로 일방적이라는 것이다. 냉엄한 사실이 거짓 선동에 이긴다는 안전한 정의감, 그리고 내가 그쪽 편에서 패배자를 비웃을 수 있다는 즐거움으로 충만한 용어다.

하지만 팩트 폭력, 팩트 폭격, 팩트리어트 미사일 발사의 와중에서 너무나 쉽게 빠질 수 있는 큰 함정이 있다. 팩트라는 싸움도구를 써먹을 생각이 앞서서, 팩트가 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 팩트를 통해서 결국 도달하려는 진실과 이뤄낼 당위는 무엇인지를 정작 잊어버리는 것이다.

세상에 횡행하는 지배적 의견은 막연한 감성에나 호소하는 거짓 선동이고 나는 팩트라는 무기로 분연하게 이들을 물리치겠노라는 사자후가, 어제 오늘 갑자기 생겨난 것일 리가 없다. 급진 페미니즘의 추구 과정에서 발생한 무리수에 대한 반감을 구실삼아 여성인권회복 전반에 대한 노골적 반대가 표면화된 최근의 여러 게시판 공간에서, 툭하면 나오는 소재가 여성이 차별받지 않는다는 요지로 여러 일화나 유리한 수치들을 가득 모아놓은 ‘팩트’ 폭격이다. 그 전에는 극우성향이 강한 유머공간 일베에서 광주 민주화 항쟁을 조롱하고자 사실은 그게 빨갱이의 사주고 폭동이었다는 내용을 어디서든 긁어오고는 ‘팩트’로 승부하자고 나섰던 바 있다. 그 전에 미국 쇠고기 검역 문제 정국에서도 어떤 ‘애국시민’들은 과장된 광우병 공포를 바로잡는 것에 그쳤어야할 과학적 팩트를, 시민들을 촛불좀비라며 조롱하기 위한 도구로 휘둘러버렸다.

팩트는 서술된 기록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기록 그 자체는 누군가의 진술일 뿐이라서, 이해관계와 인식한계에 따라서 의도적 변형, 기억 왜곡, 취사선택 등을 거친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탐탁치않게 여기는 쪽의 치부를 화끈하게 묘사한다는 이유로 통쾌한 마음이 앞서 훌륭한 팩트라고 여겨 신나버리는 것은, 논리적 망함의 지름길이다. 예를 들자면 갈수록 흔해지는 온라인 폭로는 한 쪽의 강력한 주장이기에, 옳을 수도, 거짓일 수도, 옳은 부분 과장된 부분 지어낸 부분 고루 섞여있을 수도 있다. 다각 검증으로 공통되는 부분을 걸러내야 팩트지, 내 정의감에 부합한다고 팩트가 아니다.

나아가 개별적인 팩트는 퍼즐의 조각일 뿐이라서, 전체의 일부만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의 두뇌는 조각이 없는 부분을 대충 끼워 맞추며 전체 상을 그리는 것에 워낙 능하기 때문에, 엄밀함의 고삐를 조금만 늦추면 주장하는 쪽도, 알아듣는 쪽도 마음껏 자기 원하는 대로 아무 그림이나 그려내기 쉽다. 메갈리아 공간의 혐오발언이 보편성이 있다고 분석했던 연구자의 글이든, 나무위키의 메갈리아 항목에서 분노한 남성들의 왜곡된 정의감을 분석했던 시사인 기사든, 비판자들이 지목해낸 문제점은 듬성듬성한 사실의 파편을 결론에 유리하게 짜맞췄다는 것이었다.

사실관계를 모아 경중을 신중하게 겨루어 풍부한 맥락을 더해야 제대로 상황이 묘사되고, 그런 관계들이 작동한 체계적 과정까지 더해지며 진실에 가까워진다. 그 부분적 진실을, 더 나은 세상은 원래 어떤 상태여야 하는가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그려본 규범과 비교하여 그 격차를 채울 방법을 논하는 것을 바로 나아가야할 당위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런 엄밀함을 생략하고 대충 무난한 “통찰”을 시도할 때, 논리는 꼬이고 제안은 공허한 말잔치가 된다. 예를 들어 일각에서 팩트 폭격이라고 칭송받은 경향신문 칼럼 ‘혐오의 상승작용’을 보면, 화두로 삼은 여장 행사를 미러링이라고 칭해지는 운동방식에 잘못 등치시키는 우를 범했다. 나아가 개별 관계의 경중을 견주지 않고 모두 비난하는 것이 옳다며 넘어가는 바람에, 평범하게 대책 없는 양비론을 벗어나지 못했다.

백여년 전 영국 가디언지의 편집장은 “의견은 자유지만 팩트는 신성하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 말은 팩트를 들이밀면 어떤 의견과 맞붙어도 이길 수 있다는 필승비결이 아니라, 그만큼 사실의 검증에 만전을 가하고 그 위에 비로소 의견을 펼치라는 엄중한 제안이다. 이것이야말로 집단적 분노 배설의 거대한 구덩이가 아니라, 집합적 문제해결을 궁리하는 장을 만들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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